미식 예찬
에비사와 야스히사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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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주방의 철학자 한식을 논하다'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 있는데, 프랑스의 유명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와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츠지조의 교장 츠지 요시키가 한국을 방문해 한국음식을 평가하는 내용이 나왔다. 누들로드의 PD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음식과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볼만한 프로그램이었는데, 특히 츠지 요시키의 잘생긴 외모와 날카로운 지적이 눈길을 끌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책 <미식 예찬>은 바로 그 츠지조리학교의 창업자 츠지 시즈오(아마 츠지 요시키의 부친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이다.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가공의 이야기를 믹스했다고 한다. 요리소설이라면 환영인 데다 츠지조리학교에 대한 이야기라서 읽기 전부터 흥미를 끌었다.  

주로 스포츠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이 작가 에비사와 야스히사는 아직 우리에겐 좀 낯선데, 일본에서는 꽤 인기있다고 한다. 이 책도 안정감 있는 스토리와 탄탄한 문장으로 몇 십 년에 걸친 한 인물의 요리 탐구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그는 단순히 요리학교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프랑스 음식을 일본에 제대로 소개한 인물이며, 프랑스의 성을 사서 조리학교 분원을 세울 정도로 파격적인 경영으로 세계 최고로 키워내었다. 프랑스 음식의 불모지였던 일본이 지금은 미슐랭 가이드 선정 레스토랑이 세계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많은 것은 이런 인물들의 공이 아니었을까. 

진귀한 소재의 귀한 음식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프랑스의 유수한 레스토랑과의 교류 장면이라든지 읽을거리가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꿈에 도전하려는 젊은이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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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하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3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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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가 책임 편집을 맡아 작품을 고르고 주제별로 묶고 간단한 해제를 단,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이 드디어 완간되었다. 책을 받아보니 두께와 중량감이 있어 일단 뿌듯하다. 그래도 읽기는 순식간, 마지막 권이라서 더욱 아쉬운 느낌. 표지의 컬러가 상, 중 권과 무척 어울리고 책 만듦새가 참 단아하다. 

총 8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작품은 '사이고사쓰'와 '국화 베개 - 누이조 약력'이다. 두 편 모두 논픽션 느낌을 살려 쓴 글로,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환경이나 품성의 모자람으로 인해 '남들 눈에는 비루한' 생을 살았던 주인공들이 나온다. 사실 이 작가는 옛 문헌이나 고증을 잘 인용하기 때문에 어떤 작품들은 첫 몇 페이지가 퍽 지루해 보인다.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에도 뭣하고 어찌 보면 순수문학 쪽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몰입시키는 힘에 있어서는 순수 추리소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과다 지불한 중매 사례비'는 혼기를 넘긴 딸을 둔 시골 유지의 전전긍긍 심리가 흠이롭게 그려져 있고, '까마귀'는 별 볼일 없는 중년 남자의 탈주를 그린 작품으로 특히 마지막 문장이 놀랍다. '불의 기억'과 '뼈단지 풍경'에서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소소한 사건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논픽션인 '데이코쿠 은행 사건의 수수께끼'는 일본 최대의 은행 강도 사건의 진범에 대한 의문을 집중력있게 파헤친다. (위생국 직원을 가장하여 17명의 은행 직원들에게 독약을 먹이고 금품을 강탈한 이 사건은 사건 자체로도 퍽 흥미롭고 일본적이다.)  

가장 긴 작품인 '살아 있는 파스칼'은 <검은 화집1>에 나온 '언덕길의 집'과 플롯이 유사하다. 여자에게 쥐여 사는 남자의 몸부림. 가장 대중적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범인을 밝히는 착상이 무척 흥미롭다.  

아직 번역 안 된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들을 더 많이 만나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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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블랙 캣(Black Cat) 17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이기원 옮김 / 영림카디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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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라는 나라를 알게 해준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그의 책들에서는 춥고 황량한, 하지만 그래서 시적인 레이캬비크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세 번째로 읽은 그의 작품 <목소리>는 전작들만큼 만족스러웠다. 그는 순문학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문장력과 이야기 솜씨를 갖춘 작가다. 인간 내면 탐구나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레이캬비크의 한 호텔에서 산타 차림으로 살해당한 도어맨. 다들 그의 존재조차 잘 모를 정도로 죽음에 무관심하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 형사 에를렌두르는 그의 죽음의 원인을 추적해 나간다. 마치 발굴작업을 하듯이 과거로부터 증오와 인간의 망가짐과 인생의 쓰고 단 순간들을 파헤쳐 나간다. 그의 모든 소설에서 '과거의 연대기'는 정말 중요하다. 그러한 발굴작업을 통해 한 인간의 생애가 낱낱히 드러난다. 죽은 자는 원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돌아가서는 안 되는 과거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 홀로 앉아 있었던 도어맨에 대해 "누군들 자신의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겠는가"라고 에를렌두르는 중얼거린다. 그 집이란 단순히 생활의 거처가 아니라 평화가 깨지기 이전의 '가족'을 의미할 것이다.  

그의 소설들을 읽으며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시련은 온다. 하지만 그 시련이 자신을 망가뜨리게 두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망가진 사람의 인생은 소설에서나 재미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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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리플레이 판타 빌리지
켄 그림우드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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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목받고 있는 시간여행 소설이다. 받아보니 책의 만듦새는 꽤 괜찮았다. 꽤 두꺼운데도무게는 가볍고 사람의 실루엣에만 박을 입힌 깔끔한 무광의 표지.  

주인공 제프는 43살의 나이에 사망하여 19세의 대학생으로 깨어난다. 육체는 과거의 자기지만, 정신은 43살 그대로의 기억을 간직한.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미래를 아는 능력을 활용해서 부를 축적하고 결혼도 하지만 43살에 다시 죽어 과거로 돌아간다. 같은 구간을 여러 번 산다는 아이디어는 처음이어서 꽤 흥미로왔다.  

여러 가지 삶을 살아볼 수 있지만, 그 옵션은 과거의 삶의 버전을 0로 만든다는 함정이 있다. 아무리 행복했던 인생도 다시 리플레이되면서 연기처럼 사라진다. 다시 하루하루를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다양한 삶의 버전 실험은 '보는 이(독자)'에게는 흥미롭지만 본인에게는 고통일 수도 있을 것.  

아무래도 이런 소설을 읽으면 주인공과 똑같은 상황에 처하면 어떨까 하고 상상하게 된다. 아, 다시 돌아가면 지금의 삶이 무너진다니, 대학 때의 따분한 공부를 다시 해야 하다니, 라는 불평도 생기지만 그래도 한번쯤 인생을 리플레이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잘 살 자신이 있다. 하지만 영원한 리플레이는 질색이다. 기회는 삼세 번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1988년 작품이 20년 지나서야 번역되다니. 시간여행이라는 주제가 풍부해진 지금에야 덜 새롭지만 당시에는 꽤 혁신적인 소설이었을 것이다. 성에 대한 묘사 같은 게 너무 통속적이고 전반적으로 가벼운 미국소설이지만 재미로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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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의 반어법 지식여행자 4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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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는 러시아어 통역사인 일본인으로, 어릴 적 프라하에서 공산당원인 아버지를 따라 생활한 적이 있다. 이 책은 그러한 경험과 공산권 국가에 대한 관심을 살려 쓴 소설이다. 작가의 에세이는 좀 읽었지만 소설은 처음. "소설가로서의 재능도 있을까? 재미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올가라는 프라하 러시아학교의 무용 선생. 그녀의 삶에는 대체 무슨 비밀이 숨어있었던 걸까. 과거와 현재, 회상과 추적을 교차하는 형식으로 쓴 이 책은 그다지 재미없어 보이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있었다. 추리소설 기법과 논픽션 같은 분위기, 역사소설이 짬뽕된 이 책은 에세이스트의 소설로 치부하기에는 참 좋은 작품이다.  

러시아 강제수용소에 대한 묘사에서 가장 끔찍했던 건 그게 몇 년이든 수용된 세월 동안 매끼니를 멀건 죽과 딱딱한 빵만 배급되었다는 사실. 음식에 대한 그 빈곤한 상상력이라니. 영화 올드보이의 원작인 일본만화 <올드보이>를 보면 한 남자를 가둬놓고 몇 년 동안 짜장면만 먹인다. 세상에서 가장 참을 수 없는 고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아, 그렇게 먹으면 정말 미쳐버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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