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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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가끔 챙겨 읽게 되는 윤대녕. 이번 작품집에는 총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40대 남성의 쓸쓸한 로맨스를 그려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의 거의 모든 단편에서 주인공 남자는 소설을 쓰거나 광고문구를 쓰거나 여행작가를 밥벌이로 하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그에 비해 현실적인 아내와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 그 가운데 등장하는 젊은 여성과의 연애, 혹은 혼외정사라 칭할 만한 사건들.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그런 내용일까" 하며 시비를 걸다가도, 아름다운 문장과 정갈한 묘사에 취하게 된다.  

7편 중에 쓸쓸하고 아름다운 '보 리', 왠지 여운이 많이 남는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 남녀의 엇갈림을 그린 '대설주의보' 등이 절창이었다. 우리나라의 四季라든지 바다나 山寺 등의 자연 풍경, 미술 등 문화에 대한 그의 취향이 그의 소설을 더욱 구체적으로 만들고 읽힐 만하게 포장한다.

작가 전경린이 40대 여성의 로망을 그려낸다면, 윤대녕의 이번 소설집은 남성의 로망을 대변한다. 공교롭게도 <대설주의보>에 실린 단편 제목 중에도 '풀밭 위의 점심'이 있고 전경린의 최근 장편소설 제목 역시 <풀밭 위의 점심>이다. 마네의 그림에서 다들 '한 여성과 두 남성 사이의 불균형한 로맨스'라는 영감을 얻고 있는 것. 

최근 유행하는 표지에 버금가는 넓은 띠지를 두르고 있는데, 특히 속의 책이 아름답게 제본되었다. '눈으로 뒤덮힌 듯한' 백색의 오돌토돌한 종이를 사용하였고, 연회색의 제호가 정갈하다. 

생각도 못했는데, 윤대녕 작가의 사인본이 도착하여 깜짝 놀랐다. 사인 옆에 책도장도 찍혀 있어 흐뭇. 

   
 

그녀는 비가 내리듯 조용히 어깨를 흔들며 잠깐 흐느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고 말했다. "내가 뭘 해주면 좋을까. 목걸이라도 사줄까?"  

그녀가 손수건으로 눈을 콕콕 찍어내며 말했다.  "부장님 저 정말, 좋아하세요?"  

"거듭 말하면 숲에 숨어 있는 새들이 모두 날아갈 텐데."  -147P

 

 

 
   
 

"항상 조금은 차갑고 서글펐지만 그래서 더 달콤한 꿈 같았어요. 한밤중에 깨어나 딱 하나 남은 겨울 사과를 냉장고에서 꺼내 먹을 때처럼 말예요."  -1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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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장화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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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빨간 장화>는 히와코와 쇼조의 결혼생활을 그린 소설이다. 작은 장들로 구분되어 마치 단편의 모음 같이 가벼운 질감이다. 문장은 여전히 경쾌하고 섬세하며, 묘사는 촘촘하지 않고 성기다. 유채나 수채화가 아닌 파스텔화처럼. 문장 가운데의 '쉼표들'이 이를 완성시키는 트레이드마크다.

히와코와 쇼조, 결혼한 지 10년 된 이 부부는 마치 '사이 좋은 평행선' 같다. 히와코는 쇼조의 무심한, 곰 같은 성격, 전신주처럼 늘 거기에 있으면서, TV를 켜고 밥을 달라고 하며, 대답은 '응'이 대부분인 이 부분을 '쿡쿡 웃으며' 넘겨버린다. 조금은 슬픔에 차 있으면서도 그가 거기 있어서 행복한 느낌 같은. 이 둘 간의 거리감은 좁혀지지 않고 폭발하지도 않는다.  

이런 결혼 생활도 가능할까, 또 행복할까? 작가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주 희미하게나마. 

소담출판사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출간하는 에쿠니 가오리. 이번에도 여성적이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표지와 디자인. 겉표지보다는 연노랑의 양장본 표지가 더 마음에 든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이 사람은 내 말을 이렇게 곧이곧대로 믿는 걸까. 말은 통하지 않는데, 어째서, 무엇을, 믿어버린 걸까.  

"내일 맑으면 좋겠다."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울어버릴 것 같아서, 히와코는 말했다. -59P 

 
   
   
 

이를테면, 그런 말을 히와코가 매일같이 하던 나날. 대답 좀 제대로 해주면 좋겠어. 드러눕지 말고, 일어나 앉아 있어주면 좋겠어. 뭐든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어. 어째서 언짢은 사람처럼 하고 있는데? 구두는 왜 아무렇게나 벗어던지는 거야? 어째서 나랑 살려고 마음먹었는데?  

히와코가 '진실'에 사로잡혀 있던 결혼 초. -107P 

 
   

 

 

 

"야구, 재미있었어?" 물었지만, 쇼조는 대답이 없다. 소파에 털썩 누웠다는 걸 알았다. 

정말이지, 동화 속에 나오는 곰 같아. 히와코는 생각한다. 아무 말 않지만, 나쁜 짓도 하지 않는다. 나쁜 역할은 통념상 늑대나 여우가 맡는다. -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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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타워 3 - 하 - 황무지 다크 타워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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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타워 3 - 상,하>편을 드디어 끝냈다. 그 전 줄거리와 연결하면서 읽어야 하고 워낙 어두운 분위기의 환상문학이라서 처음에는 마치 어두운 숲길을 더듬어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점점 그 재미에 빠져들었다. 역시 스티븐 킹은 최고의 작가다. 

이번의 줄거리는 총잡이 롤랜드가 (전편에서 시공간을 연결하는 문을 통해 뉴욕에서 데려온) 에디, 수재나와 함께 하는 여정과 (전편에서 죽었던) 소년 제이크가 다른 운명의 고리를 통해 이들 무리와 합류하여 암흑의 탑을 향해 나아가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표지의 그림이기도 한) 기차 블레인을 타는 데 성공할 것인가?"가 작품 감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븐 킹은 '어두운 본성'과 '끔찍한 괴물들'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도시 러드의 백발이들과 어린둥이들 묘사는 참 흥미진진하다. 제이크를 끌고 가는 악당 개셔와 대장 똑딱맨의 캐릭터도 발군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선한 부분과 용기'를 통해 감동을 준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소년 제이크의 불굴의 용기와 그가 개너구리, 롤랜드와 나누는 우정을 보면 인간의 선한 부분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게 된다.

아래는 흑마법사 멀린이 악당 똑딱맨에게 건네는 대사인데 참 으스스하면서도 유머러스하다.


   
 
"난 이름이 여러 개라네, 친구."  

어두운 두건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의 목소리는 근엄했으나 똑딱맨의 귀에는 그 목소리 아래 어른거리는 웃음소리도 함께 들렸다. 

"지미로 부르는 사람도 있고, 티미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네. 핸디로 부르는 사람도 있고, 댄디로 부르는 사람도 있어. 패자로 불러도 좋고 승자로 불러도 좋아, 저녁 밥상에 늦지 않게 부르기만 하면 난 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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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타워 3 - 상 - 황무지 다크 타워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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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타워 3 - 상,하>편을 드디어 끝냈다. 그 전 줄거리와 연결하면서 읽어야 하고 워낙 어두운 분위기의 환상문학이라서 처음에는 마치 어두운 숲길을 더듬어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점점 그 재미에 빠져들었다. 역시 스티븐 킹은 최고의 작가다. 

이번의 줄거리는 총잡이 롤랜드가 (전편에서 시공간을 연결하는 문을 통해 뉴욕에서 데려온) 에디, 수재나와 함께 하는 여정과 (전편에서 죽었던) 소년 제이크가 다른 운명의 고리를 통해 이들 무리와 합류하여 암흑의 탑을 향해 나아가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표지의 그림이기도 한) 기차 블레인을 타는 데 성공할 것인가?"가 작품 감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븐 킹은 '어두운 본성'과 '끔찍한 괴물들'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도시 러드의 백발이들과 어린둥이들 묘사는 참 흥미진진하다. 제이크를 끌고 가는 악당 개셔와 대장 똑딱맨의 캐릭터도 발군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선한 부분과 용기'를 통해 감동을 준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소년 제이크의 불굴의 용기와 그가 개너구리, 롤랜드와 나누는 우정을 보면 인간의 선한 부분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게 된다.

아래는 흑마법사 멀린이 악당 똑딱맨에게 건네는 대사인데 참 으스스하면서도 유머러스하다.

   
 

"난 이름이 여러 개라네, 친구."  

어두운 두건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의 목소리는 근엄했으나 똑딱맨의 귀에는 그 목소리 아래 어른거리는 웃음소리도 함께 들렸다. 

"지미로 부르는 사람도 있고, 티미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네. 핸디로 부르는 사람도 있고, 댄디로 부르는 사람도 있어. 패자로 불러도 좋고 승자로 불러도 좋아, 저녁 밥상에 늦지 않게 부르기만 하면 난 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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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3-24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름이 여러개죠~ 저녁 밥상에 불러만 주신다면야~~^^;

베쯔 2010-03-24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왠지 오싹한데요~^^;
 
가든파티 - 영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캐서린 맨스필드 외 지음, 김영희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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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 셋트를 구입하고 가장 먼저 영국편을 꺼내들었다. 왠지 문학의 출발점인 것 같은 나라, 영국. 영국편 <가든파티>에는 작가 8명의 11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어릴 때 읽은 세계문학전집에는 장편 위주로 실려 있어서 여기서 읽은 작품들은 모두 처음 접하는 것들이었다. '유명 작가의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발간한다는 취지를 잘 살린 것 같다. 

오랜만에 고전을 읽으니 색다른 재미가 있었고 품격이 느껴졌다. 특히 토머스 하디의 '오그라든 팔', 조지프 콘래드의 '진보의 전초기지', 버지니어 울프의 '유품',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가 인상적이었다. 간단한 평을 써보자면 다음과 같다.

  • 토머스 하디 '오그라든 팔' : 계급에 따라 정해지는 여인의 운명을 조명한, 환상문학을 가미한 비극
  • 조지프 콘래드 '진보의 전초기지' :  인간성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블랙 코미디
  • 버지니어 울프 '유품' :  죽은 아내의 일기를 읽으면서 발견하게 되는 인생의 아이러니
  • 캐서린 맨스필드 '가든파티' : 중산계층의 위선을 따뜻한 분위기로 버무린 달콤한 작품

겉모양도 워낙 아름답게 잘 만든 책인데다 간단한 작가 소개와 작품 해제, 그리고 같이 읽으면 좋은 국내 번역 작품 현황까지 실려있어 편집도 충실하다. 꼭 한번 사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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