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장화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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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빨간 장화>는 히와코와 쇼조의 결혼생활을 그린 소설이다. 작은 장들로 구분되어 마치 단편의 모음 같이 가벼운 질감이다. 문장은 여전히 경쾌하고 섬세하며, 묘사는 촘촘하지 않고 성기다. 유채나 수채화가 아닌 파스텔화처럼. 문장 가운데의 '쉼표들'이 이를 완성시키는 트레이드마크다.

히와코와 쇼조, 결혼한 지 10년 된 이 부부는 마치 '사이 좋은 평행선' 같다. 히와코는 쇼조의 무심한, 곰 같은 성격, 전신주처럼 늘 거기에 있으면서, TV를 켜고 밥을 달라고 하며, 대답은 '응'이 대부분인 이 부분을 '쿡쿡 웃으며' 넘겨버린다. 조금은 슬픔에 차 있으면서도 그가 거기 있어서 행복한 느낌 같은. 이 둘 간의 거리감은 좁혀지지 않고 폭발하지도 않는다.  

이런 결혼 생활도 가능할까, 또 행복할까? 작가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주 희미하게나마. 

소담출판사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출간하는 에쿠니 가오리. 이번에도 여성적이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표지와 디자인. 겉표지보다는 연노랑의 양장본 표지가 더 마음에 든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이 사람은 내 말을 이렇게 곧이곧대로 믿는 걸까. 말은 통하지 않는데, 어째서, 무엇을, 믿어버린 걸까.  

"내일 맑으면 좋겠다."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울어버릴 것 같아서, 히와코는 말했다. -59P 

 
   
   
 

이를테면, 그런 말을 히와코가 매일같이 하던 나날. 대답 좀 제대로 해주면 좋겠어. 드러눕지 말고, 일어나 앉아 있어주면 좋겠어. 뭐든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어. 어째서 언짢은 사람처럼 하고 있는데? 구두는 왜 아무렇게나 벗어던지는 거야? 어째서 나랑 살려고 마음먹었는데?  

히와코가 '진실'에 사로잡혀 있던 결혼 초. -107P 

 
   

 

 

 

"야구, 재미있었어?" 물었지만, 쇼조는 대답이 없다. 소파에 털썩 누웠다는 걸 알았다. 

정말이지, 동화 속에 나오는 곰 같아. 히와코는 생각한다. 아무 말 않지만, 나쁜 짓도 하지 않는다. 나쁜 역할은 통념상 늑대나 여우가 맡는다. -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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