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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스 ㅣ 세계문학의 숲 52
스탕달 지음, 임미경 옮김 / 시공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N22097
'자, 이것이 내가 최초로 행하는 고결한 행동이다. 안녕, 영원히 안녕, 사랑하는 아르망스!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리라!'
스탕달의 첫 소설인 <아르망스>. 안드레 에치먼의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정말 읽어보고 싶었었다.(콜미를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듯...) 결국 우연치 않게 이 책을 구해서 읽게 되었다. 너무너무 좋았다.
남자주인공인 "옥타브"는 화려한 외모와는 다르게 특이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돈을 밝히는 귀족들을 경멸하고, 언제나 우울을 가지고 있었으며, 염세주의자였던 "옥타브"는 자신은 절대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의 열정은 어딘가 다른 데 원천을 둔 것으로, 이 지상에 존재하는 것에 기인하지는 않은 듯했다. 옥타브의 지극히 고상한 용모까지도 부인의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아들의 눈은 그토록 아름답고 다정했지만 어머니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눈은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며 천상에서 펼쳐지는 행복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그 눈 속에는 지옥의 고통이 내비쳤다.] P.27
여자주인공인 "아르망스" 역시 특이함이 가득했다. "옥타브"의 친척이자, 부모없이 다른 친척집에서 자란 그녀는 자신의 신분과 가난 때문에 행복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주변사람들의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쓴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전전긍긍해 한다.
['아르망스는 나에게 듣기 좋은 말을 건네지 않았어. 이 장소에서 그녀 혼자만 나에게 관심이 없어. 돈 때문에 나에 대한 관심이 갑절이 된 이곳에서 말이야. 이곳에서 그녀만이 유일하게 고상한 심성을 지니고 있어.' 그러자 아르망스를 바라보는 일이 그에게 위로가 되었다. '천박함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야.' 옥타브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한 마디도 건네지 않고 있었지만, 그렇게 저녁 시간이 무르익어갈수록 그는 앞서 가슴속에 차 있던 우울함만큼이나 선명한 기쁨을 맛보았다.] P.34
이런 두사람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옥타브"는 다른 귀족과는 다르게 돈에 얽매이지 않은,자신과 비슷한 영원을 가진 "아르망스"에게 사랑을 느끼고, "아르망스" 역시 오래전부터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옥타브 앞에 장애물 하나가 가로놓여 있었다. 그 장애물 때문에 그는 행복에 다가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장애물을 응시하다 보면, 그 너머의 행복이 보였다. 적어도 괴로움은 끝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어떤 고통은 끝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이제 그의 삶에 목표가 하나 새로 생겼다. 그는 자신을 향한 아르망스의 존중심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P.67
하지만 둘의 관계는 시작부터 엇갈린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한 "아르망스"는"옥타브"에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거리를 둔다. 이런 "아르망스"의 태도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옥타브"는 단지 친척으로서, 친구로서 '우정'으로 그녀를 대한다.
[이제 그는 아르망스로부터 영원히 달아나야만 했다. 어떤 구실로든 다시 만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한 추억을 빼고 나면, 모든 것이 그 자신에게 점차로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마음에 깊이 새긴 어머니에 대한 애정조차 그 추억 앞에서는 빛을 잃었다.] P.190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우정이라는 포장으로 언제까지 감출 수는 없는 법이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리나... 이런 신분 차이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혼을 승낙받은 후에도 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기, 질투, 오해, 그리고 이에 다른 또한번의 소통의 문제. 왜 두 사람은 사랑을 확인했으면서도 또 한번 자신의 사랑을 의심했던 걸까?
["아니에요, 오라버니를 향한 내 감정이 단지 우정만은 아니에요. 이 지상의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는 오라버니만큼 소중하지 않아요."] P.238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어느 사이엔가 아르망스라는 여인을 떠올리며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가늠하곤 했었죠. 그랬으면서도 몰랐어요. 정작 내 눈은 멀어 있었던 거예요.] P.240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로 "옥타브"가 가진 비밀이 등장한다.누구에게도 단 한번도 말한적 없었던 비밀. "옥타브"는 그녀와 결혼하기 전에 이 비밀을 그녀에게 말할까 말까 망설인다.하지만 끝내 말하지 못하고 떠난다. 도대체 어떤 비밀이었기에. 이 비밀이 혹시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았던 가장 큰 비밀이었을까?
["때때로 이런 생각도해요. 오라버니가 저지른 일에 버금가는 어떤 죄를 나도 범해야겠다고 말이에요. 그러면 오라버니는 내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은 접어버릴 수 있을 텐데."] P.331
책을 다 읽고 나서고구마 100개쯤 먹은 기분이 들었다. 해설을 읽고 나서도 '뭐야 이건' 하는 기분이 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지. 옥타브의 예민한 성격도, 갑작스러운 결투도, 전하지 못한 편지도 다 그것때문이라니... 옥타브는 어쩌면 사랑의 이유 보다는 이별의 이유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뭐가 그렇게 어려웠기에, 뭐가 그렇게 두려웠기에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걸까?
의사소통.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숨기니 알 수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행동을 보고 오해할 수 밖에 없고, 결국 그렇게 엇갈리게 될 수 밖에 없는 운명.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하긴 서로에게 솔직할 수 있다는게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언제나 가장 중요한 건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