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넘어가는 우리역사 3 - 조선 건국부터 을사사화까지
한우리역사독서연구회 지음 / 해와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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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 시작되었다. 고려의 왕씨 정권이 끝나고, 권력을 잡은 이성계를 시작으로 이씨 정권, 조선이 이어지게 되었다. 물론 초기에는 새로운 나라 이름에 반대하고 오직 한 나라만 섬기겠다며 충절을 맹세한 신하들이 있었으나 그 중심인물인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여 조선을 대놓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고려를 그리워하고 있던 탓일까? 개경의 사람들은 이성계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이성계는 민심을 얻지 못한 그런 장소에서 한 나라의 왕으로 있기에는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고민끝에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직접 가서 임시 숙소에 머물며 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도읍지가 빨리 옮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태조는 많은 아들을 낳았기에 왕위 계승에 있어서 문제가 많았고, 결국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서 형을 정종의 위치에 오르게 한 후 모든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다. 곧 정종은 이방원에게 왕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이에 실망한 이성계는 전국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는데,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한 태종은 어떻게든 아버지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함흥차사라는, 잘못된 전설이 하나 생겼다. 함흥차사라고, 이 책에서도 이야기는 그대로 나온다. 

이성계가 함흥에 머물고 있었는데 태종이 차사를 보내면 모두 이성계에게 죽임을 당하여 오지 않았기에 한 번 가면 오지 않는다는 뜻에서 함흥차사란 말이 생겨났다. 그러자 태종은 아버지의 오랜 친구 박순을 그에게 보내어 설득을 시켰고, 마음이 흔들린 이성계는 박순을 떠나보내고 고민하다가 신하들이 박순을 죽여야 한다고 하자 그의 오랜 친구를 살리고 싶어 그가 강을 건넜거든 목을 베지 말라 했다. 하지만 병을 앓아 강을 늦게 건넌 박순은 결국 목을 베이고 만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함흥에 머물러 차사들을 죽이지 않았으며, 실제로 오직 두 사람의 차사만이 그 곳의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 뿐이었고, 그 중 한명이 박순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을사사화는 인종 때의 일로, 결국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 중후반부까지를 다룬다. 아직도 한반도는 두 차례의 슬픔을 겪어야만 했다. 얼른 4권과 5권을 읽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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