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산양 바우 - 햇볕은 쨍쨍 8
박신식 지음, 김민철 그림 / 두산동아 / 200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지막 산양 바우를 읽고 써 본 일기이다.

바우의 일기  - 삵이 기습한 날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난 후 아빠, 엄마 그리고 누나와 함께 산에 올라갔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해보지 못한 나인지라 다리가 후들거리고 배도 고팠다. 중간 중간에 거친 풀들을 뜯으면서 겨우겨우 정상까지 갔을 때에는 이미 해가 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꽈아우, 꽈아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 가족이 삵의 기습이라는 사실을 알아챘고, 나와 누나는 산 아래로 달려갔으나 엄마와 아빠는 삵과 싸우고 계셨다. 삵은 결국 밀려났으나 상처투성이가 되신 아버지의 모습은 내 가슴을 분노로 가득 차오르게 했다. 아빠를 그렇게 만든 삵에 대한 분노인지, 아빠를 도와 같이 싸우지 못해 아빠를 이렇게까지 만든 내 자신에 대한 분노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직 뿔도 나지 않은 어린 내 자신이, 나보다 작은 삵을 못 이긴다는 사실에 큰 분노가 찾아왔다. 하지만 아빠는 우리를 진정시키셨다.

“바우야, 풀내야. 삵이란 녀석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단다. 얼른 바위위로 올라가 안전하게 쉬자꾸나.”

그렇다. 지금 여기서 그대로 있는 다면 온가족이 삵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시원한 바위 위로 올라간 나는 갑자기 이상한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숲이 온통 빨갛다. 활활  타오르는 것은 바로 불이었다. 푸른 나무들이 검게 변하여 쓰러지고, 그 불이 점점 더 널리 번졌다. 다급하게 엄마가 소리쳤다.

“바우야, 풀내야! 당장 불길이 번지지 않은 곳을 따라 가거라. 가다보면 절벽이 나올 텐데, 그 곳을 뛰어넘어 불길이 너를 덮치기 전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달려라!”

그렇다면 곧 아빠, 엄마와 헤어져야 한다는 소리인 것이다. 하지만 누나와 엄마가 내 등을 마구 밀었고, 결국 부모님을 뒤로 한 채 전속력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나온 절벽에 너무나 놀랐다.

“바우야, 넌 할 수 있어. 눈 꼭 감고 뛰어 봐.”

겁이 났다.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 해졌다. 뛰어넘고 싶지만 밑의 낭떠러지는 몇 킬로미터 깊이로 엄청난 깊이인 것 같다. 떨어지면 어쩌지, 하고 고민할 때 벌써 뜨거운 열기가 등 쪽을 엄습했다. 결국 뛰어넘을 수밖에 없었는데 눈을 떠 보니 벌써 건너 뛰어넘어 있었다. 그 사이 누나도 이쪽으로 건너 뛰어왔다. 불길은 반대쪽 절벽을 완전히 태워 버렸다. 이제는 힘도 없다. 엄마와 떨어져서 누나와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내 마음속에는 그래도 희망이 하나 있었다. 예전 살던 곳에서 엄마 아빠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누나. 나 힘도 없고 배고파.”

“조금만 참아. 조금만 더 가면 맛있는 풀을 뜯어 먹을 수 있을 거야.”

누나 말대로 노력하긴 해야겠지만, 그래도 나에게 더 남아있는 힘이 있을지는 몰랐다. 터벅터벅 걷다가 갑자기 큰 굉음이 들렸을 때, 나는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 순간, 큰 광음과 동시에 연기가 뭉게뭉게 뿜어져 나오는 곳 옆에서 왼쪽 앞다리가 사라진 누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뢰를 조심하라던 어머니의 말씀을 곧이듣지 않던 내가, 지금 내 앞에서 다리를 잃은 내 누나의 모습을 보고 지뢰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아니, 그것보다  나를 안내해줄 누나가 다리를 잃었으니 엄마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겠지. 나는 울부짖었다.

“누구든 제발 와 주세요! 우리 누나 풀내를 제발 살려주세요!”

한참을 울부짖었을 때, 엄마가 조심하라던 군인들이 달려왔다. 그들이 풀내 누나를 침대에 싣고 갔고, 난 그들이 의심되어 나를 묶으려는 그들을 향해 소리치며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그들은 내 주둥이조차 꽉 묶어버렸고, 이제는 반항할 힘조차 떨어진 나에겐 눈물을 흘리는 일밖에 없었다. 그들은 우리를 따로 가둬 놨고, 나중에 다시 누나를 만났을 때에는 누나는 피로 물든 붕대를 다리에 감고 링거액이 꽂힌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군인들이 놓아준 시래기를 누나에게 먹으라고 재촉해 보았으나, 배부르다면서 나에게만 먹으라는 것이다. 나는 누나와 같이 먹어서 힘을 내어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누나는, 이곳을 살아 나가려는 의지가 벌써 없어진 듯 했다. 누나가 화를 내자 나는 결국 시래기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드디어 누나가 붕대를 풀었다. 아직도 신경질적으로 음식을 먹기를 거부하는 누나의 모습을 보자니 안쓰러웠다. 결국 나는 설움이 북받쳐 올라 울기 시작했다.

“누나! 누나의 이런 나약한 모습을 보시면 엄마 아빠가 좋아하실 것 같아?”

그 때 나는 누나의 슬픈 눈을 다시 보았다. 누나는 그러자 내 말에 기운을 얻은 듯 했다.

“그래, 바우야. 얼른 먹고 기운을 차려야겠지......”

그러고선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린 누나는 세 발로 걷는 연습을 했다. 나는 군인들에게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요청했고, 그들은 웃으며 그렇게 했다. 누나는 바깥으로 나가서 열심히 걷고, 조심스럽게 뜀박질도 하였다. 시설 내에서 좋은 먹이를 먹으며 걷는 연습도 하고 몸을 튼튼히 다진 우리는 다시 바깥으로 나가 엄마 아빠를 찾아 떠나고 싶었다. 드디어 우리가 떠날 때, 군인들 모두 아쉬운 듯 우리를 떠나보냈다. 촐랑거리며 엄마 아빠를 만나는 기대에 부푼 나는 누나와 우스갯소리를 하며 걸었다. 석양지는 그날, 두루미의 울음소리가 참 예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