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죽기에는 2
카리 스마코 지음, 오지은 옮김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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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중,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도 연락하고 지내지 않는다.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연락처를 알아내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운 친구도 별로 없다. 어릴 때는 사는 모습도 비슷하고 가치관이나 취향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친구로 지내기가 어렵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된 지금은 각자 사는 모습도 다르고 가치관이나 취향도 달라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고, 예전에 친구였던 사람을 계속 친구라고 말해도 될지 고민 된다. 그래도 이따금 누군가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그 감정은 분명 비호감이나 무관심보다는 우정에 가까운 무엇일 거라는 생각은 든다.


카리 스마코의 만화 <내일 죽기에는> 2권에는 1권에서 예고처럼 잠깐 등장했던 인물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중학교 동창인 사와코와 토코는 학창 시절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본 영화 이야기를 즐겨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화 마니아인 사와코가 주로 이야기하고 영화만 보면 잠드는 토코는 사와코의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 시절 사와코는 같은 반의 나루카미 사라라는 여학생이 신경 쓰였는데, 얼마 전 오랜만에 토코와 만났을 때 나루카미의 근황에 대해 슬쩍 물었다. 그때 토코가 말한 나루카미의 근황에 충격을 받은 사와코는 이후 비슷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노화 다음에 죽음이 온다고 생각했는데, 죽음이 노화보다 먼저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와코는 극단적인 상상을 하고 있지만, 사실 나루카미는 코가 말한 '사건' 이후 무사히 목숨을 건졌고 지금은 어머니의 집에 얹혀 살면서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고 있다. 나루카미의 어머니는 딸을 영원히 잃을 뻔한 경험을 한 이후 딸을 더욱 조심히 대하는데, 나루카미는 그런 어머니를 볼 때마다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 나머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커진다. 동년배들은 부모를 부양하는데 자신은 아직도 부모의 부양을 받고 있는 처지인 게 괴롭다. 아직 젊으니까 뭐라도 할 수 있다는 말, 과거에 겪은 일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 하지 말라는 말도 나루카미를 힘들게 한다. 2,30대도 일자리를 못 구해서 난리인데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40대 여성에게 일자리가 있을까.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또 다시 비슷한 일을 겪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성 은둔형 외톨이 하면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마츠코가 떠오른다. 마츠코도 그렇고 나루카미도 그렇고 영화나 만화에 이런 사람들 나오면 왜 이렇게 사나 싶고 답답한데, 밖에서 다른 사람들 괴롭히는 사람에 비하면 집에만 있으면서 자기 혼자 괴로운 사람이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나루카미가 만난 사람들만 해도 누가 만나도 싫어했을 사람들이라서 그런 사람들과 부대끼며 계속 사느니 은둔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TV에 안 좋은 뉴스가 너무 많이 나와서 TV 자체를 안 보게 되는 것처럼, 자신의 삶에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 삶 자체를 멈추고 싶어지는 그런 걸까 싶기도 하고... 


나루카미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2권에는 사와코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 2권 중반부터 사와코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몇 가지 생기는데 그래서 3권이 매우 기대된다. <내일 죽기에는> 2권에는 작가 카리 스마코와 요시나가 후미의 대담도 실려 있다. 두 분이 무려 동인 작가로 활동하던 10대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1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만화를 그리고 계신 두 분 모두 너무 멋지다. (3권 기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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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죽기에는 1
카리 스마코 지음, 오지은 역자 / 열림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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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그때 뽑은 흰머리 지금 아쉬워>라는 책 제목을 보고 무릎을 쳤다. 요즘 들어 흰머리가 많이 생겨서 눈에 띌 때마다 뽑고 싶은데, 엄마가 절대 뽑지 말라고, 나중에 숱 줄어들면 뽑은 흰머리도 아쉽다고 말했던 걸 떠올리며 참고 있는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지? 흰머리도 그렇고 피부도 예전 같지 않고 몸도 많이 굳고... 사람이 태어나면 늙고 병들어 죽는 게 당연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그 단계를 하나씩 경험할 때마다 영혼이 조금씩 죽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면서 살아온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걸 다 한 것도 아닌데, 이대로 이렇게 인생이 끝나면 어떡하나. 어떡하기는. 나만 손해지.


오지은 작가님이 번역하신 카리 스마코의 만화 <내일 죽기에는>을 읽으며 나이듦에 대해 생각했다. 이 만화는 중학교 동창인 40대 여성 3인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혼나 사와코는 영화 홍보 회사에서 일하는 42세 비혼 여성이다. 어느 날 밤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리는 통에 잠에서 깬 사와코는 이게 말로만 듣던 갱년기 증상인가 싶어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혹시 심장에 이상이 있나 싶어서 병원을 찾아가 보는데, 의사가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증상이라고 해서 기분이 더 처진다. 제 나는 더 이상 젊지 않은 건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이렇게 계속 늙어가는 건가 하는 생각에 점점 더 우울해지는 사와코. 인생의 벽에 부딪힌 듯한 기분을 동년배에게 털어놓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중학교 동창 노자키 토코가 보낸 편지 한 통이 눈에 들어온다.


토코는 졸업 후 도쿄로 가서 취업한 사와코와 달리, 스물세 살 때 결혼해 딸 하나를 낳고 고향에서  살고 있다. 남편은 외국으로 전근 가고 딸은 대학생이 되면서 한가해진 토코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동료나 손님에게 '아줌마'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싶어서 가슴이 철렁한다. 동갑인 여성 동료와 대학생 딸은 자신의 기분을 알아주지 않는데, 젊은 남자 동료가 오히려 자신을 이해해주고 배려해줘서 그게 사무치게 고맙다. 그가 건네는 친절한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설레는 마음. 이래도 되는지 가까운 친구에게 상담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오래 전 사와코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이 도착한다.


아직 40대는 아니지만 40대를 코앞에 둔 30대 후반 여성으로서 공감 가는 장면이 아주 많았다. 사와코는 어릴 때부터 좋아한 영화를 직업으로 삼은 운좋은 케이스인데, 좋아하는 걸 일로 하다 보니 더 잘하고 싶고 열심히 하게 되어 과부하가 걸린 상태인 것 같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것 같지만 영화 자체에 대한 애정은 아직도 있는 것 같고, (아마도 그 덕분이라고 생각하는데) 2권 후반에 이르면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이 생긴다. 역시 좋아하는 걸 한다고 해서 무조건 잘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후회는 없는 것 같다. 토코는 <빨간머리 앤>의 다이애나 같은 타입인데, 내가 워낙 다이애나 같은 타입의 인간을 좋아해서 그런지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오타쿠 딸도 너무 재밌고 ㅎㅎ

내용도 작화도 너무 좋아서 완결까지 무조건 읽고 싶고, 카리 스마코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 이 만화는 분류하자면 성인 여성을 위한 휴먼 드라마 장르에 속하지만, 인터넷 서점에서 '카리 스마코'를 검색해 보니 BL이 많고 19금도 많다. 이 만화들도 조만간 읽어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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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최진혁 사진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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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소설 <흰>을 언제 처음 읽었는지 확인해 보니 초판이 나온 2016년이다. 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9년 전. 그 사이 한강 작가의 다른 책도 몇 권 나왔고,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한강 작가가 2024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기쁨도 있었다. 예전에 쓴 리뷰를 다시 읽어보니 낯설다, 벅차다 같은 단어들을 자주 쓴 것이 눈에 띈다. 이번에 <흰>을 다시 읽으면서는 고요하다, 차분하다 같은 감정들을 자주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 화자가 처한 상황은 사실 고요함이나 차분함과는 거리가 멀다. 


낯선 외국에 혈혈단신으로 와서 얼마간 살기로 한 '나'는 익숙지 않은 생활에 적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저분한 벽과 문을 다시 칠하고, 무겁게 가져온 짐을 정리하고, 새로운 음식과 언어, 문화를 배워야 하는 압박을 느낀다. 어느 날 '나'는 자신이 살게 된 도시가 2차 대전 때 히틀러에 의해 심하게 파괴되었으나 전후에 사람들이 열심히 복구해 현재에 이르렀음을 알게 된다. 도시가 한 번 죽었다가 새로 태어났다는 생각을 하던 '나'는 어릴 때 어머니가 해줬던 죽은 언니 이야기를 떠올린다. 태어난 지 몇 시간도 안 되어 죽은 언니. 그 언니를 품었던 포궁에서 태어난 '나'는 언니의 죽음과 자신의 삶이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잊지 않았다.


같은 삶이라도 간단한 말조차 배우지 못하고 죽은 언니의 삶과 언니가 살았더라면 너는 태어나지 못했을 거라는 말들 속에서 산 '나'의 삶은 다르다. 그러나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채 끝나버린 언니의 삶이나 언니의 죽음으로 인해 생겨난 나의 삶이나 삶이기는 마찬가지이기도 하다. 마치 어떤 흰 것은 아무것도 묻은 적 없어서 희고, 어떤 흰 것은 색이 있던 자리가 바래서 희고, 어떤 흰 것은 색이 있던 자리를 덮어서 희지만, 흰 것들은 똑같이 흰 것처럼.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흰 것들 - 또는 산 자들 또는 살았던 자들 - 을 헤아리는 동안 내 마음은 모처럼 흰 것들처럼 평온하고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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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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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하지만, 인간이 태어나면 죽는다는 사실만은 예외가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될 죽음 직전에 각자가 보게 될 것은 무엇일까. 2023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데뷔 40주년을 맞은 해인 2023년에 발표한 소설 <샤이닝>을 읽으며, 어쩌면 이 소설에 그려진 상황이나 풍경이 우리가 죽음 직전에 겪거나 보게 될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한 남자가 운전을 하다가 아무것도 없는 숲 앞에서 차를 세우며 시작된다. 차를 돌려서 돌아가려고 하지만 바퀴가 길바닥에 처박혀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전화를 걸 만한 집도 안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눈까지 내리자 남자는 눈이라도 피하려고 숲속으로 들어간다. 숲에서 그는 실제인지 허구인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구분하기 힘든 존재들과 마주치고, 그 결과 도달하게 된 어떤 경지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이 책에는 2023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도 실려 있다. 어릴 때 큰소리로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욘 포세는 글을 소리 내어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 자신에게 더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글을 쓰면 다른 감정들이 생겨나 두려움을 몰아낸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글을 썼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은 오직 글로 쓸 수 있다"라는 믿음을 자신의 작가 인생을 통해 관철했다.


그동안 욘 포세의 작품들 - <3부작>, <아침 그리고 저녁>, <멜랑콜리아 I-II> - 을 읽으며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고 느꼈는데, 작가 자신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글로 써왔다고 하니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게 당연하구나 싶다. 삶의 끝 또는 죽음의 시작을 경험하는 인간의 심리를 상상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아침 그리고 저녁>의 2부와 유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의 대표작 <7부작>의 내용을 압축한 것 같다는데, 분량이 무려 1200쪽에 달한다는 그 책을 과연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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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트] 전생에 효녀 (총22화/완결)
야상 / 투비닷(TOBE.dot)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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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전래 동화가 있다. 흥부 놀부, 콩쥐 팥쥐, 금도끼 은도끼 같은 것들이다. 효녀 심청도 빼놓을 수 없다. 효녀 심청은 눈이 안 보이는 아버지 심봉사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가 우여곡절 끝에 금의환향한 심청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이 효(孝)라는 사실에 대해 의심해 본 적 없었다. 야상 작가의 <전생에 효녀>를 읽기 전까지는. 


<전생에 효녀>는 토론 수업이 한창인 교실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토론의 주제는 '심청이는 과연 효녀인가'. 주인공 은박하는 다른 학생들이 "맹인 아버지를 두고 물에 빠지면 아버지는 홀로 어떻게 하나", "당시 유교 사상적으로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을 함부로 바다에 내던지는 건 불효로 느껴지고" 같은 말을 하는 걸 듣다가 자기도 모르게 분노를 조절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졸지에 '과몰입녀'라는 별명까지 얻은 박하는 흑역사를 안은 채 중학교를 졸업하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박하의 흑역사를 아는 이옹주가 나타나 인사를 건넨다.


이 만화는 효녀 심청과 바리데기 공주 설화를 축으로 진행된다. 둘 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효녀 이야기이고, 어려서 이 이야기들을 읽을 때에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이번에 이 만화를 보면서 효녀 심청과 바리데기 공주 설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니 의문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젖동냥에 응해준 이웃들이 사실은 심봉사와 심청 부녀를 마을의 골칫거리로 여기지는 않았을까.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약을 구해 병든 아버지를 살린 바리데기에게 정녕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을까. 자식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는 부모들의 이기심을 효로 포장하는 것이 온당할까. 


외전에는 콩쥐 팥쥐 이야기도 나오는데, 콩쥐는 착하고 팥쥐 모녀는 나쁘다는 생각이 정말 옳은가, 내가 직접 책을 읽고 한 생각이 아니라 주변 어른들에 의해 주입된 생각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어려서부터 익히 듣거나 읽은 이야기들의 숨은 의미, 진짜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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