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의 행복철학
팀 필립스 지음, 정미현 옮김 / 빅북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예전에 내가 조금 감명 깊게 서적으로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라는 도서였다. 그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으로서 독일지성인으로 매우 유명한 인물이다. 그의 서적은 다소 난해하지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거기서 가장 이해가 쉽고 간단한 것은 내가 다시 정리하자면, 우리 인간은 꽃을 좋아한다. 꽃을 왜 좋아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물어보면 각자의 취향마다 다를 것이다. 어느 이들은 향기가 어느 이들은 외관이 어느 이들은 약용으로서 좋다고 할 것이다. 나 역시 꽃은 싫어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꽃은 억지로 피어있는 꽃보다 저기 산자락 바위틈이나 나무들이 그냥 우거져있는 숲에 피어있는 꽃이다. 그것만큼 자연의 미를 살리는 예술은 없다.

 

하지만 에리히 프롬을 서적을 읽다보면 누군가 지나가다 우연히 마음에 드는 예쁜 꽃을 발견했다고 하자. 꽃이 너무 좋아해서 그 사람은 자신의 집에서 구경하기 위해 그 꽃을 꺾은 후에 집에 가져갔다. 그리고 며칠 이내 그 꽃은 시들어 죽어버리고, 다시는 그 꽃을 구경하지 못했다. 또 다른 선택이다. 그 남자는 우연히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어서 화분을 가져가 그 꽃을 자신의 화분에 심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꽃은 볕이 잘 드는 창가 아래 책상에 나두고 그 전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도저히 꽃에 대한 매력을 볼 수 없었다.

 

그것은 왜 그런 것일까? 그는 계속 고민했고, 또 생각하였다. 마지막에 내린 결과는 그 꽃은 원래 있던 자리에 있어야 그 꽃의 미를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바위틈이나 혹은 나무에 핀 꽃들은 그 자리에 있기에 그 아름다움을 힘껏 뽐낼 수 있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깊이 들어가면 어려우나, 이 정도 일화는 충분히 보통 사람이라면 이해가 가능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치가 좋은 곳이라고 여긴 장소에 찾아하면 어느 순간 식당, 여관, 술집, 도박장 등이 생긴다. 그리고 그곳은 원래의 아름다운 자연이 아닌 이상한 관광지로 되어버린다.

 

자연의 미를 찾아가려고 하는데, 오히려 그 미를 파괴한 것이다. 따라서 러셀의 행복철학에는 그런 미덕에 대한 행복을 강조한다. 아니 그 강조조차 강조라고 볼 수 없다. 거기에 자신이 눌리는 순간 또 자신에 대한 속박에 빠지는 딜레마를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에게 그 딜레마라는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고 하여 그대로 내 자신에게 목이 졸리는 사태는 피해야하지 않은가? 러셀의 행복철학은 그렇게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다고 하여 철학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칸트와 니체,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등으로 너무 이어지면 모두 머리가 아플 뿐이다. 다소 깊이를 추구하는 학도라면 좋은 길이나, 모두가 그럴 이유가 없기에 러셀의 행복철학은 대다수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철학도서다. 물론 어렵고 난해한 도서를 읽으면 연구하는 사람도 좋다. 그들은 깊이는 매우 깊을지 몰라도 그릇의 넓이는 넓지 못할 것이다. 깊이의 추구에서 인간의 넓이 역시 중요하다. 조금은 주변을 보고 머리를 식히며 무엇이 인간에게 행복인지 가치인지 생각해 볼 이유가 있다.

 

우리 인간들은 만족이란 단어를 찾기가 어렵다. 그런 부분은 나 역시 특히 그렇다. 다소 나라는 사람은 냉소적인 요소가 강하고 회의적인 인간상이 도출된다. 인간에 대한 회의감보단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사회에 대한 회의감으로 말이다. 그런다고 인간 자체에 대해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 된다. 우리 인간들은 자신 스스로를 너무 속박하고 옭아매고 무엇을 위해 살아갈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러셀은 그런 인간에게 너무 앞만 보고 가라고 하지 않는다. 세상의 기준은 자본과 권력, 명예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주변에 있다고 한다. 가족, 친구, 이웃 등 우리는 이런 단어를 대해 너무 피상적으로 인식한다.

사실 그렇다. 인간에게 소중한 공기와 물은 항상 코로 흡입하고 입으로 마신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공기가 탁하면 괴롭고, 물상태가 좋지 못하면 구토를 한다. 인간이란 언제나 옆에 있음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기에 슬픔이 온다. 정작 행복의 파랑새는 어디가 아니라 자신의 곁이라고 말이다. 물론 자신의 일상을 넘어 정처 없이 나그네 길을 다니는 사람 역시 행복은 있다. 그 자신이 거기에 있다는 자체로 말이다. 잘 나가는 차, 멋진 의상, 화려한 직위도 다 좋다. 하지만 모든 것은 영원하지 못하다. 물론 저런 외재적인 부분도 중요하다. 사람의 욕망이니깐. 그래도 여기에 모두를 걸면 인간은 자신에게 버림받아야 하는 것이다.

 

러셀은 그런 거대한 것보다 작고 일상적인 것에 즐김을 원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표를 모우거나 동전을 모우거나 인형을 모우거나 어디서는 쉽게 간단하게 누구나 부담 없이 말이다. 그래서인지 러셀의 가르침에는 “타인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모든 즐거움은 소중히 다뤄져야 한다.”, 이 말에서 우리는 타인에 대한 취향존중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생각하게 본다. 이 책이 다소 에세이 방식으로 지어진 철학교양 도서지만, 그렇다고 그 교양은 남에게 잘 보이고 겉치레를 위한 것보다 자신의 인생에 즐거움을 찾아보란 의미다.

 

우리는 늘 언제나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어디에 속박하여 누군가를 앞지르려고 한다. 운전하는 나라도 느낀다. 사람들 90% 정도가 나는 운전을 남보다 잘 한다는 점이다. 그런 오만은 나도 가지고 있었고, 그 덕분에 몇 번의 작은 접촉사고도 났다. 다행히 나와 다른 사람이 트게 다치는 일들은 없었으나, 나에겐 다소의 금전적 손해와 시간적 손실이 따랐다. 내가 무엇에 집착하는가? 우리 인간은 그런 상황에서 도저히 벗어날 길은 없다. 차라리 벗어날 길이 없다는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속이 편하다. 그러면 그런 강박관념이 오히려 자신을 궁지로 몰아가지 않기에 그렇다.

 

물론 그런 행동들은 자신의 상황에 비례한다. 만약 어떤 인물이 눈앞에 폭격이 일어나거나 또는 전쟁터에서 총알세례가 떨어지거나 더 나아가 자동차가 인도로 덮치는 상황을 보자. 그 상황에는 강박관념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인간의 이성은 마비될 것이다. 그런 극단적 상황이 없는 곳에 인간은 뭔가 강박관념에 쫓기므로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다르게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러셀의 행복철학 중요한 교훈으로 자신을 자극하는 것에 대해 모두 off switch를 눌러보라는 것이다. 컴퓨터도 끄고 전화기도 받지 않고 잠시 자신만의 명상 안에 머물러 보라는 것이다.

 

성격이 급하고 덤벙대는 내 같은 경우 여유라는 것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 역시 너무 자극에 휘둘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나친 집착과 불안은 오히려 더 큰 집착과 불안을 야기하는 셈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에게 휘둘린 본 기억에서 왜 나는 그 사람에게 대한 분노와 짜증에 앞서서 왜 그런 사람하고 같이 있어야 하고, 왜 그렇게 당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물론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다소의 싸움이나 오해는 불가결한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 단지 인간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에 이성적으로 다 해결될 수 없다. 참으로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아 인간들끼리 부딪히지 않으면 어떨까 하나, 인간은 혼자서는 너무 외로워서 심신이 병들어 버린다.

 

이도 저도 안 되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행복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일상생활의 발견은 때로는 네잎 클로버를 찾는 일보다 어려울지도 모른다. 행운의 네잎 클로버에 빠지면 행복의 세잎 클로버는 자기 발밑에서 죽어 가는지도 모를 것이다. 이런 인생의 행복을 당장 찾아 나서기는 어렵다. 이 책에서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 단지 구체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로 통해 풀어간다. 행동은 각자의 의지와 자유에서 말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책의 모티브가 된 버트런드 러셀이란 학자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매력적이다.

 

나이를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몰라도 백발의 머리에 주름살이 얼굴을 장식한 그의 한쪽 손에는 파이프 담배가 하나 들려져 있었다. 파이프담배를 입에 넣으며 지긋이 상대방을 바라보는 한 늙은 철학자의 모습에서 근엄하기보다 매우 친숙하다. 그는 본래 영국 귀족의 후생이나, 귀족이란 직위보다 귀족으로서 책임과 직무를 다했다. 평화주의자에 반핵운동 그리고 인권을 향하여 계속하여 외쳤다. 자신의 행복을 알기에 그는 다른 이의 행복을 추구하길 바란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회록 - 루소
J.루소 지음 / 집문당 / 1991년 1월
평점 :
품절


루소의 자서전인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읽은 후에 왜 루소가 이런 성격이 되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두 서적에서 루소의 옛날의 이야기가 나오나 그렇게 심층적으로 나오진 않았다. 단지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에선 프랑스 파리에서 지독한 꼴을 당하는 루소가 프랑스인들이 자신에 대한 오해와 왜곡, 편견과 오만, 조롱과 비난으로부터 그런 불행에 대한 근원에 대해 자기 자신을 타자로 내세워 변증법적인 대화를 오고간다. 그것도 나 자신을 혼자가 아니라 자신에 대해 심판하는 자신과 그 심판당하는 자신, 그 심판을 하게 만든 가상의 프랑스 신사로 말이다.

 

그리고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는 열띤 토론과 자신에 대한 변증법적인 대화보단 조금 더 깊이 자신을 성찰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주변에 있는 두려움보다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도 모르고, 그런 일들을 프랑스사람들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두려움이 루소를 괴롭게 했다. 루소에게 닥친 불운한 일들은 그 자체로서 그를 괴롭히지 않았다. 아마 언제까지 자신이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모든 현실적 고뇌를 승화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도 힘들고 괴롭고 죽고 싶어질 정도로 루소의 생애는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생각해볼 점은 왜 그를 이토록 강하게 만들었는지 그의 총명함은 어디서 나왔는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루소는 당시 귀족이나 명사처럼 학교라는 정규적으로 지식을 알려준 곳에 다니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독학과 자신만의 사유로 사상을 발전시켰다. 독일 관념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임마누엘 칸트마저 루소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칸트의 3대 비판서인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은 루소의 심오하고 깊고 자유로운 사유에서 탄생했다.

 

모든 프랑스인들이 모든 세속인들이 루소의 몸을 가두고 감시할 수 있을지언정 그의 머릿속에 넘치는 사유의 세계는 아무도 접근도 방해하지 못했다. 루소에게 언제나 자연이란 세계에서 몽상을 채운다. 그런 루소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칸트는 항상 정해진 시간에 가벼운 산책을 일정한 시간에 나간다고 한다. 인간에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이유는 자신과의 만남과 사유의 발달일 것이다. 그런다고 루소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된 게 아니다. <참회록>은 자신의 성숙한 인격을 보여주기보단 오히려 자신이 열정적이고 못나고 때로는 어리석은 바보처럼 때로는 격렬한 용사처럼 적어 내려간다.

 

<참회록>은 루소에 대한 자서전보다는 오히려 반성문에 가깝다고 본다. 자신이 늙은 나이에 가장 치욕적인 일과 자신이 가장 부끄러운 일과 자신이 가장 마음이 아픈 이야기까지 늘어놓는다. 그는 그것에 빠져서 고난을 겪었다고 고백하고, 그것으로 인해 지금까지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또한 그런 고통에 빠져 현명하게 대처했기보단 오히려 하지 못함에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자서전에는 언제나 인간들은 자신의 영웅담을 늘어놓기 바쁘다. 심지어 위기에 빠져도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 재미로서 풀어간다. 원래 인간이 크게 보이기 위해서는 거대한 위기에서 훌륭하게 넘어가는 묘미가 있다.

 

왜 그렇지 아니한가? 영화, 연극,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등 모든 이야기가 있는 곳에 위기가 없다면 이야기의 진행이 어렵고, 그 위기를 건너지 못하면 영웅의 이야기가 재미가 없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인간은 어떤 것들도 억지로 붙어버린다.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하고 전설은 그렇게 알프스 산에 내린 눈송이가 거대한 눈덩어리로 변해 굴러간다. 루소의 <참회록>은 그 알프스 눈송이가 눈덩이가 아니라 그 눈송이 자체가 내린 만큼 눈송이로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눈송이가 사라질 것만 같은 격정적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눈송이를 사라지게 만들 정도의 회오리가 말이다.

 

루소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시계수리공인 아버지만 있다는 점은 알았다. 하지만 그가 만약 어머니를 잃지 않았으며 이렇게 그의 인생에 큰 벽이 생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머니 없다는 점은 결국 어머니 같은 여자가 필요했다. 루소의 집안은 기독교였으나, 우연히 천주교로 개종하고 이후 봐랑 부인을 만났다. 이 운명 같은 만남은 루소의 최고의 역전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못 받아 자기 마을이나 혹은 다른 마을의 아가씨들에게 열정적 마음을 바친 루소에게 봐랑 부인은 자기가 머물러 갈 수 있는 안식처였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봐랑 부인은 아이가 없이 무의미한 결혼생활을 빠져나와 빅토르 아메데 왕이 자신의 집 근처에 올 때 그 왕에게 몸을 의지하여 결국 아느시에 정착한 것이다. 루소에게 이 귀부인은 세상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존재였다. 나는 <참회록>을 읽는 내내 다른 인물은 별로 생각나지 않고 봐랑 부인만 생각날 뿐이다. 읽는 독자가 그러한데 본인에 대해 참회하는 루소는 오죽하랴! 봐랑 부인은 혼자 살기에 주변에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그녀는 매우 친절하고 교양이 넘치고 타인들에게 친절하다. 루소는 이 봐랑 부인이 너무 좋기에 나중에 “엄마”라고 부른다.

 

자신의 친모는 이미 자기를 낳고 세상을 떴지마는 봐랑 부인에게 자신의 엄마보다 더 엄마 같았다. 그녀도 그런 루소를 보고 마음에 격동이 일어났는지 루소를 “아들”로 봐주었다. 진짜 엄마와 아들은 관계는 몇 년간을 유지한다. 그러나 봐랑 부인이 하인인 아네가 죽은 뒤 루소가 그 뒤를 이은 후 잠시 자리를 비우고 다른 사람이 루소의 자리를 차지하여 결국 루소는 사랑하는 엄마 봐랑 부인 곁을 떠나게 되었다. 게다가 봐랑 부인은 너무 소비욕구가 강했고, 덕분에 빚이 지게 된 점과 루소가 예전에 돈을 모아두면 그 돈을 인정사정없이 소모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루소는 이 봐랑 부인에게 너무 많은 사랑과 아픔을 느꼈다. 핏줄도 아닌데, 오히려 더 핏줄 같은 그녀에게 루소는 성적인 존재로 볼 수도 없었다. 아니 처음에는 봐랑 부인의 아름다움에 루소는 성적 육욕이 있었는지 몰라도 전혀 없었다. 그녀의 경건함을 존중하고, 자신의 모든 영혼을 맡길 정도였다. 물론 루소는 다른 여자와 친구와 애인도 되었으나, 봐랑 부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루소가 1737년 라르라즈 부인을 만나기 전에 그는 여자의 육체를 몰랐다.

 

루소가 살던 시절에 많은 귀부인들은 수많은 애인들을 거느렸다. 부인의 나이가 4~5살, 아니 10살 이상 차이가 나도 애인이 가능했다. 루소는 자신이 20살 시절 자신의 나이보다 4~5살 정도 많은 동네처녀와 결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시절에는 계몽주의와 더불어 낭만주의 시대였고, 낭만과 달리 귀부인들은 결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집안의 이해관계에 성사되었다. 따라서 남편은 남편대로 애인과 여자 친구가 있고, 아내는 아내대로 애인과 남자친구가 있었다. <참회록>에서 파리의 남성이 성공하려면 애인과 여자 친구의 조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과연 그런지 루소는 많은 여성들과 우정을 나누었다. 여기서 루소의 상태를 보면 매우 착실한 점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루소는 프랑스 파리의 사교계에서 은밀함을 그렇게 착실하지 누리지 못했다. 루이왕정시대 절대군주의 영향은 남의 부인을 강탈할 정도로 문란했다. 어떻게 중세의 파리가 지금의 파리만큼 성적으로 더 문란하고 분방할 수 있냐는 생각에 놀란다. 아니 오히려 루소의 눈에는 성적인 욕망은 남성의 것보다는 부인의 것이었다. 성적호기심이 눈뜨는 청소년 시기에 루소는 낮에는 그토록 친절하고 조용한 부인이 밤에 왜 이리 시끄럽고 잠을 방해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렇지만 가난한 서민들의 집은 방 하나에 가족들이 다 지내는 경우가 있기에 루소의 여린 점들이 루소의 순진성을 보여주었다.

 

아니 아직 철이 덜 들었다고 할까나? 그는 아마 어머니가 없다는 심적 우울함이 있기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심적 우울은 테레즈라는 자신보다 어린 처녀를 만나 변했다. 글을 제대로 알려주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1~12월까지 철자를 알려주어도 외울 수 없는 그녀는 지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테레즈는 그 누구보다 루소에게 친절하게 아주 다정하게 해주었다. 루소는 테레즈에 대한 사랑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참회록>보다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나온다. 마지막 10장이 그가 작성 도중 서거하는 바람에 미완의 원고였으나, 루소는 서거하던 그날도 테레즈와 함께 아침식사를 나누고 산책을 나누었다. 그리고 테레즈는 루소가 여기저기 도망치고 핍박을 받아도 그의 옆을 지켜주었다.

 

덕분에 루소는 테레즈만이 오직 자신의 어머니인 봐랑 부인의 그림자를 떠나보낼 여인이라 여겼다. 그런 루소에게 봐랑 부인의 그림자가 물러가는 동시에 새로운 불운이 닥쳤다. 루소는 초반에 여린 기질로 성공하지 못했으나, 점차 성격이 강직해지고 자신의 재능에 능숙하게 되자 그의 능력을 파리에 전할 수 있었다. 유명한 작가인 볼테르와 디드로를 만나 친분을 나누고, 자신이 발표한 <신 엘로이즈>는 당시 파리에 큰 화제였다. 모든 귀부인들이 루소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 전에는 <학문예술론>,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학술적으로 그를 큰 반열에 올렸다.

 

그러나 <에밀>과 <사회계약론>이 나오고, 루소를 시기 질투하는 자들이 나타나면서 루소는 가시밭길로 접어들었다. 남을 미워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오직 인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집필한 루소에게 운명의 소용돌이가 친다. 바로 이런 점에서 루소는 자신의 운명에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참회와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자신에게 이런 상황이 될 수 없음에 대한 참회를 한다. 안타까우나 후에 프랑스 사람들은 그런 루소의 참회를 비웃음으로 놀려댄다. 후에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를 잠시 돌아보면 알겠지만, <참회록>은 루소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정신으로 집필하기보단 순간적이고 열정적인 마음으로 쏟아내었다.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분출하는 마그마처럼 타올라 가는 것이다.

 

루소의 3대 <참회록>,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로 본다면 그의 심리상태, 급박함, 위기, 슬픔을 어떻게 변해 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후에 가면 <참회록>에 저술한 자신의 경솔함을 루소는 다시 또 반성하고 거기에 대한 성찰과 비판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 대해 정직하게 적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록 그 누구도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외톨이라도 루소는 계속 자신을 마주보고 있었다. 루소의 글을 보면 이런 한심한 작자라고 말할지도 모르나, 그는 자신의 단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런 과오를 보여주고 인정하고 더 나은 자신을 찾으려는 루소이기에 그의 사상이 이토록 길고 진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우연히 블로그 이웃 분에게 루소 탄생한지 300주년이 되었다고 한다. 1712년 스위스에서 태어났고, 그리고 1762년 인류의 보물이자 큰 가르침인 <사회계약론>이 250주년을 맞이했다. 지금도 프랑스에선 프랑스국가로서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부른다. 프랑스혁명 때 부르던 노래가 아직도 프랑스에서 울려 퍼진다. 비록 불완전한 혁명이었고, 공포와 폭력이 난무했지만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프랑스혁명과 동시에 미국독립혁명까지 이어지고, 근대와 현대에 와서도 시민민주주의에 대한 정초가 되었다. 그런 루소이기에 우리는 그가 매우 위대한 사상가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참회록>의 루소는 위대하지 못함을 계속 보여준다. 그가 그렇게 위대한 인물로 되기 위해 엄청난 시련과 고통, 눈물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인간 루소 그 자체를 만나기 위해 <참회록>을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아직도 프랑스에는 자유와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국기가 흔들리고 있다. 그 깃발 아래에는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이 있었는지 모르고, 지금도 프랑스 내부에서 자유와 평등, 박애를 위해 그리고 그것이 손상당하는 것에서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또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도 루소의 숨결은 계속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처음부터 주어진 인권이란 소중한 권리에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한길그레이트북스 91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 한길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루소가 자신의 답답하고 피로한 마음을 담은 자서전인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 대화> 저술 이후, 다시 루소가 자신의 자서전을 낸 도서가 바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읽은 후에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 대화>와 비교해보면 상당히 다른 문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 대화>의 경우 자신의 대한 의견을 매우 강렬하고도 열정적으로 내뿜는 것이라면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의 경우 아주 잔잔한 호숫가에 떠돌아다니는 작은 돛단배와 같다.

 

루소의 생애가 이제 60이란 초로에서 죽기 전까지 저술한 이 고요한 자서전은 루소의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자기가 살아온 가치와 목표, 세상풍파를 이래저래 몽상가처럼 적어 내린다. 루소라는 인물은 상당히 소요학파적인 인물이다. 그의 소요에서 자연과 벗을 하며 조용한 숲속에서 걸어 다니는 산책이란 것이 그의 몽상을 활발하게 해주었다. 그에게 남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이 자신이 언제라도 빠질 수 있는 몽상의 세계였다. 그 몽상은 현실에 대한 도피보다는 그 현실 속에 대한 초월이었다.

 

루소는 이 서적에서 논하고 있지만, 상당히 프랑스에서 특히 파리라는 곳에서 심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에밀><사회계약론>은 공개된 장소에서 화형이 되었다. 그의 도서는 금서가 되었고, 그의 존재는 모든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면서도 가장 우습게 된 악마가 되었다. 산책에서 몽상에 빠진 그의 글을 보면, 루소는 한 번 죽음을 당할 뻔 했다. 길가를 지나가다가 어느 큰 개와 부딪히는 바람에 길에서 쓰러졌다. 그는 넘어지면서 다리부터 지면에 닿을 것이 아니라 머리부터 닿았다. 그 덕분에 기절을 했다.

 

게다가 그 개와 충돌 직후 마차가 달려오고 있었고, 마부가 조금이라도 늦게 확인했다면 마차의 수레바퀴가 루소가 가진 숙명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했을 터이다. 다행히도 마차는 자기 자리를 지켰고, 루소는 사람들에 의해 구해진다. 그러나 심하게 부딪힌 것인지 루소는 고통마저 느끼지 못했다. 아니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사람들이 당신 집이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에 오히려 여기가 어디죠?”라는 발언을 했으니 말이다.

 

루소는 그 개와 부딪히면서 자신의 죽음과 같은 삶에서 오히려 삶이 있다는 반전되던 상황을 맞이한다. 그러나 세상은 루소를 다시 음모와 같은 루머로 그를 괴롭혔다. 루소는 직접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보다 그를 괴롭히겠다는 보이지 않은 악의를 더욱 무서워했다. 너무 많은 도망과 망명, 조롱 속에서 그는 외로움 속에서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루소는 자신에 대해 당당했다. 얼마나 당당했을까?

 

루소가 개와 부딪히자 루소가 크게 다쳤다는 소문이 조금씩 나돌았고, 심지어 루소가 그 사고로 죽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당시 프랑스 왕 루이 16세가 루소의 죽음을 왕궁에서 들었다고 하고, 심심하면 루소에게 파리 경찰부청장 부관이 와서 확인한다고 하니 그의 인생은 이미 자유라는 단어가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루이16세는 루소가 만든 사회계약론을 들고 다닌 로베스피에르와 그 일행에 의해 목이 무참하게 분리된다.

 

모든 프랑스 국민들이 그를 조롱하고, 모든 파리 시민들이 그를 외톨이로 만든다. 그래도 루소는 자신의 세계를 더 넓힌다. 자연을 찾아 숲속과 호수를 돌며, 숲속에 혹은 거리에 있는 풀과 꽃에 애정을 보인다. 루소는 식물학에 대해 관심이 참 많았다. 그는 풀과 꽃에 대한 유용적인 경제성보다는 그 풀과 꽃에 대한 그 자연적인 부분을 좋아했다. 겉치레로 이루어진 것들을 외면하고, 동물을 무참하게 죽이거나 또는 벌레나 곤충에 핀을 꽂는 것도 싫어했다. 그저 풀과 꽃을 보면서 마을에 위안으로 삼았다.

 

루소에겐 사람에 대한 증오와 분노보다는 오히려 그 분노와 증오를 받아들이어 그것으로부터 초월하려고 했다. 자신의 최고 무기인 말의 포탄은 더 이상 남발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말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특히 루소가 사랑스럽게 대하던 아내 테레즈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었다. 루소는 그 시련과 고통 속에서 힘들었지만, 그가 사랑하던 아내인 테레즈는 오죽할까? 아니 두 사람에게 태어난 다섯 명의 아이들 역시 그랬을 게다.

 

하지만 루소는 <에밀>에 적은 것처럼 아이들에 대한 교육은 억지로 해서는 안 되고, 특히 부모에 의해 망치지 않아야 한다며, 자신의 자녀 모두 고아원에 맡긴다. 어떻게 보면 세견의 말처럼 그는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아버지처럼 보이나, 루소는 자신의 아이를 매우 사랑하며, 심지어 길가에 걸어가는 아이들까지 사랑스럽고 그들의 친구처럼 살았다고 고백한다. 길가에 어느 남자아이가 간식을 먹고 싶어 그에게 용돈을 주고, 그 아이의 아버지에게 가서 대화하려고 한 사례는 그가 분명히 아이들에 대해 사랑 없는 사람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루소는 언제나 파리의 경찰들이 보낸 염탐꾼에 의해 감시되었고, 그 감시꾼들은 그 남자아이를 만난 루소가 그 남자아이의 아버지를 만나려는 것을 방해했다. 마치 루소가 그 아버지에게 먼저 가는 것을 못마땅한 듯 번개 같이 뛰어가니 말이다. 루소에겐 인간은 모두 소중한 존재였다. 특히 어리고 가여운 아이들이라면 루소에겐 그들의 얼굴에 미소를 보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었다.

 

루소에겐 그 미래에 대한 미소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 것 같았다. 루소는 자신이 살던 시절에 결코 자신의 책이 용납되지 않음을 알았다. 자신의 서적은 언젠가 볼 먼 훗날을 기약했다. 그 훗날이 오면 루소가 애지중지하던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는 점이다.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읽다보면 가난한 남자아이의 모습이 나온다. 굴뚝에서 일하는 어린 남자아이들에게 사과를 사주던 루소는 자신이 사줬던 사실보단 그들의 미소로 통해 위안을 삼는다. 그것은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어느 구절을 보면 루소의 소망이 보이지 않을까?

 

어떤 한 사람의 특권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허다하다. 개인의 이해는 거의 언제나 공공의 이해와 맞선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자신이 이야기하는 상대방의 유용성을 위해 타인들의 유용성을 희생시켜야 하는가? 어떤 한 사람에게는 유리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해가 되는 진실을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하는가? 사람들이 말해야 하는 모든 것의 무게가 오로지 공공의 선이라는 저울에 달아야 하는가, 아니면 배분성의 정의라는 저울에 달아야 하는가? 내가 이용하는 지식들이 형평성의 규칙을 충족시킬 만큼 사실의 모든 관계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가? 타인에 대한 의무를 검토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와 진실 그 자체에 대한 의무에 대해 충분히 검토해 보았는가? 타인을 속일 때 그에게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해서 나 자신에게도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떤 경우에도 결백하기 위해서는 부당하지 않은 것만으로 충분한가?”

 

루소의 글에 나온 것을 보면 자유에 대한 권리와 책임, 의무를 생각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라면 반드시 새기고 또 새기야 할 글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루소의 사상을 엄청난 위력을 끼쳤다. 저 글은 민주주의에서 여러 가지 사고방식 중인 공리주의적인 요소를 다룬다. 민주주의는 공리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시민주의, 방임주의, 공화주의 등등이 이래저래 섞여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관용이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중요한 관점이다.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자유로우나 사회에서 구속받을 수밖에 없기에 인간이 사회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고방식이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무서운 책 속의 문구란 점이다. 루소가 살아온 현실에서 그가 기대하는 세상은 현실에 없다.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에서 명상과 몽상을 꿈꾸길 위해 루소는 언제나 산책을 떠난다. 심지어 그가 이 책 10번째 마지막 미완의 글을 적을 때도 산책을 나간다. 그의 산책은 세상과 루소의 싸움이 아닌 루소와 장 자크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 싸움은 산책에서 모두 해소되어 편안한 일상을 마무리한다.

 

그래서인지 루소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은 왠지 모르게 갑작스럽게 보는 것보단 차라리 과연 그렇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루소는 삶의 경험에서 죽음에 대해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을 때 자신이 가진 온갖 재물과 재산에 집착하는 자들에 대해 어리석게 여겼다.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말하는 소크라테스나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어간다는 하이데거나 매한가지로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그의 글을 적어보면,

 

청춘기는 예지를 배우는 시기다. 노년기는 그 예지를 실행에 옮기는 시기다. 경험은 언제나 교훈을 준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각자 자신 앞에 남은 생의 기간에 대해서만 유익할 뿐이다. 죽어야 할 바로 그때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워야 할 때는 아니잖은가?”

 

그러면서 루소는 이제 초로의 나이에 배워야 하는 것들은 자신이 바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삶이 고뇌와 절망이라도 루소는 삶으로부터 도망치거나 회피하기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죽음 그 자체를 받아들인다. 지나친 삶에 대한 집착이나 가진 것들에 대한 집착에서 말이다. 그의 산책에서 얻은 몽상이란 루소로 향하는 모든 것에 대해 루소가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스스로 정리함으로 생을 마감하려 했다. 루소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냉소어린 비난과 조롱이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화유물론의 이론적 전개 현대문화론선 19
앤드류 밀너 지음, 박거용 옮김 / 현대미학사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문화유물론이란 분야에 대해서는 주로 문화인류학 방면에서 생각했다. 예전에 읽어본 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은 문화인류학에 대해 마르크스주의, 신마르크스주의,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 다양한 관점으로 문화인류학에 대해 보면서 각각에 대한 장단점과 문화유물론자에 대한 공격적 비판에 대해 반박과 동시에 문화인류학에서 문화유물론이 새로운 대안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논문집이다. 따라서 문화유물론을 문화인류학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내 입장에선 이번에 읽어보는 <문화유물론의 이론적 전개>는 그런 취지가 다소 들어가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이 책에서 문화라는 것을 단순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고, 문화라는 것에서 인간의 하부토대인 경제적 구조가 그 사회에 강한 영향을 주는 점과 기상조건, 지리적 조건, 생태적 조건이 문화형성에 큰 영향을 주는 것 역시 강조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문화(文化)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문화라는 단어는 국내외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에서 지역과 연령, 경제와 심지어 음식까지 적용된다. 문화라는 단어를 적용하는 것이 매우 광범위하여 <문화유물론의 이론적 전개>의 서문에서도 문화라는 단어를 “영어에서 가장 까다로운 두세 개 단어 가운데 하나”라고 명한다.

 

이것을 논한 사람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영문학 교수인 레이먼드 월리엄즈에 의해 정의되었다. 그런 점에서 <문화유물론의 이론적 전개>란 도서는 유물론이란 것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장한 점과 그 후에 마르크스주의가 발달시킨 점에서 대부분의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사상가와 학자들이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의 사회연구소라고 한다면, 이 도서에서는 영미문화권에서 보는 마르크스주의와 문화연구에 대한 전개라고 볼 수 있다.

 

저자인 앤드류 밀너 역시 호주에 위치한 대학교의 교수로서 영미문화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접근하는데 있어서 20세기 대부분의 사상은 프랑스와 독일이 주축이 되었다면 20세기 후반과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영미문화권에서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는 의미다. 특히 문화유물론이 영국의 문화연구라는 비교문화연구 내지 마르크스주의 비평으로 발전하면서 작고한 레이먼드 월리엄즈를 비롯하여 테리 이글턴이란 세계적 지식인이 문화이론에서 큰 획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 따른 발전과정에서 프랑스 구조주의에서 특히나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인 루이 알튀세르에 대한 언급을 피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뭐라고 자세히 설명하기 어려우나 프랑스 철학과 사상사에서 루이 알튀세르가 가지는 의미는 막대한 것 같았다. 그가 말하고자하는 마르크스주의는 21세기에 와서 강력한 전환점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것을 마르크스로만 보는 것은 아니나, 마르크스주의로서 시작하는 문화이론과 문화연구, 문화유물론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문화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검토를 요구할 수 있게 한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런 문화에 대한 복잡성에 대해 앤드류 밀너의 <문화유물론의 이론적 전개>에서는 기본적으로 그 과정을 레이먼드 월리엄즈 중심으로 진행한다. 일단 레이먼드 워리엄즈가 문화라는 그 복잡성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아본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그의 최초의 중요저서인 문화와 사회(Culture and Society)에서 “① 개인의 정신습관, ② 전체 사회의 지적 발전 상태, ③ 예술, ④ 한 집단 또는 국민의 삶의 전체 방식”이라 했다. 문화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매우 미시적인 개인영역에서 거대한 국가영역으로 넘어가는 점에서 문화라는 것은 매우 광범위한 의미를 가진 것이다.

 

하지만 문화라는 것은 역사적인 부분에서 어떻게 보는 것 역시 난항이다. 역사적인 부분을 문화적인 영역으로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문화를 역사적인 영역으로 넘어갈 것인가?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역사라는 시간적 흐름아래 우리가 가진 문화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역사와 문화 중에서 역사가 문화에 종속되는 부분이 강하다고 본다. 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처럼 인간은 상부구조보단 오히려 하부구조에 의해 형성되기 마련이고, 또한 상부구조가 헤게모니적인 변동으로 통해 하부구조에 영향을 주는 점에서 모순되나 결국 그 상부구조에서 만들려는 변화자체가 하부구조에 대한 피드백현상으로 여긴다.

 

어떻게든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서로 만나고 얽히며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문화라는 공간인 것이다. 환경공학 전공자의 관점에 본다면 세계정치 현상으로 교토의정서나 바젤협약과 같은 국제조약은 상부구조에 의해 일어난 현상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일어난 환경오염에 따른 정치적 행위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물질과 현상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그들에게 지배를 받고 있는가? 물질로서 토대가 되어가는 것이 차라리 현대사회의 포커스라고 보는 것이 낳을지 모른다고 여긴다. 특히나 플라톤주의처럼 형이상학적 미의 가치를 따르는 것이 현세의 인간이 아니라 물질적 혜택과 신자유주의로 통한 자본주의가 통용되는 국제사회 경향을 보면 오히려 문화유물론적인 요소가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은가 싶다.

 

단지 문화유물론이란 영역은 자본주의화가 일어난 곳이나 혹은 전혀 일어나지도 않은 원시부족에 대한 관찰에서 별로 큰 차이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문명사회의 인간이 누리고 있는 물질과 과학적 혜택을 떠나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의식과 무의식구조가 크게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인 <문화의 수수께끼>,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식인과 제왕>과 같이 일반 대중이 상식도서로 읽히기 위한 도서이라도 기본적으로 다 읽고 나면 원시사회와 혹은 중세유럽, 또는 근현대의 인간들의 모습에서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을 증명한다.

 

아니면 오히려 그렇게 믿고 폭력을 신성화하여 억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지성인이라고 여기는 현대인들이 더 야만적이지 않은가 라는 의문마저 든다. 이런 부분은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류학 영역에서 내가 문화유물론에 대해 접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이들은 문화가 가진 사회적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라는 점에서 단순히 원시부족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하듯 <문화유물론의 이론적 전개> 역시 그런 국제사회의 역사적 흐름과 사상의 변화에서 큰 전환점을 맞이하고, 그 중심축인 레이먼드 월리엄즈가 정리한 도서와 그런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사상가들이 거론된다. 그런 점에서 딱히 이 도서에는 각 사상과 학파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고찰보다는 영미문화권 특히 영국의 버밍엄현대문화연구소에 노동자문화론에 대해 영향을 준 마르크스주의자 내지 문화연구를 만든 자들 흐름을 집어낸 도서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으로 통해 그런 내용을 알 수 있기보다는 그런 내용을 만들어낸 자들의 학문적 변화에 초점이라고 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권 이펙트 - 인간은 어떻게 사람다울 권리를 찾게 되었는가 10 그레이트 이펙트 3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박홍규.인트랜스 번역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내가 관심 있는 분야 중에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서 각별히 생각하는 것이 인권이다. 인권(人權)은 고대철학보다는 근현대철학으로 넘어오면서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인권을 생각하면 진보나 보수,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 공화주의, 시민주의 등등 다양한 정치적 논쟁의 기본인 되는 것이 바로 인권이다. 인권이 중요하기에 모든 가치를 담아낼 하나의 슬로건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난날의 많은 큰 변화 내지 혁명, 개혁이란 인간의 인권에 대한 열정에서 그 인권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냐? 라고 물어보면 막상 난해한 반응이 닥친다.

 

 

개인적으로 나 같은 경우 인권에 대해 논점으로 만든 사람은 장 자크 루소라고 생각했다. 그의 저서인 <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국가에서 기초가 되는 서적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혁명의 지침서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것보다 더 큰 격동을 맞이한 인물과 그 인물의 책이 있다는 사실에 솔직히 많이 놀라웠다. 이펙트 시리즈 중에서 여러 가지 서적을 보면 크리스트교의 성서부터 시작해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마르크스의 자본론, 아담 스미스 국부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등등을 생각하면 그들의 유명세는 분명하나 미국독립전쟁의 혁명과 법률의 기초가 된 인권이란 도서를 안 것은 이번에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 저자가 토마스 페인이란 인물로서 당시 미국의 지식인과 대통령을 지닌 조지 워싱턴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프랭클린과 상당히 가까운 인물이었단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은 영국인이면서 미국의 자유를 원하였으며, 미국의 자유와 더불어 프랑스혁명에 대하여 다소 보수적인 그는 인권은 누구에게나 있어야 할 것이기에 심지어 단두대 아래로 사라질 루이16세 역시 정당한 재판을 벌여 그를 무리하게 죽이면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라는 공포의 혁명정치가는 루이16세에게 처형을 명을 내리고, 계몽이란 새로운 신화 속에서 이성을 상실한 프랑스혁명 후에 정치권에서 토마스 페인은 이성의 중요도를 강조했다. 덕분에 운이 없었다면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목과 몸이 두 동강이 날 운명이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로베스피에르 역시 수많은 사람들을 단두대로 보낸 업보만큼 그 역시 단두대 앞에서 혁명의 광기에서 희생되는 주인공으로 변모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유와 평등을 외친 토마스 페인은 인간에게 닥치는 파시즘을 매우 경고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루소 역시 인간에게 의지는 일반의지로서 살아가야 할 것이나 대중들은 전제의지로 살아가며 그들에게 사고하는 능력을 상실한 민주적 전제주의로 빠지는 것처럼 토마스 페인은 그것을 매우 경계했다. 토마스 페인은 주장한 미국독립에서 인권에 대한 보장과 더불어 그 인권수여자에게 종교의 자유는 필수이며, 노예와 인종차별 역시 반대했다. 그의 사상이 후에 링컨과 루즈벨트, 게다가 공화당 대통령 레이건의 입에서도 나올 정도라면 토마스 페인의 역할을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나 미국은 흑인노예를 인정하고, 링컨이 이것에 대항하여 남북전쟁이 일어나고, 인종차별의 벽은 지금까지도 내려오며, 특히 미국 인권운동가인 킹 목사의 살해사건은 미국이란 국가가 과연 인권이란 토마스 페인의 선물을 잘 간직하고 있는가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미국은 자랑스러운 미국독립기념일에 모두 함께 자유를 외치나 그 자유의 선구자의 노력이 가끔 물거품이 되는 일들이 종종 벌여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토마스 페인은 마르크스와 엥겔스보다 더 선구자라고 한다.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 선언>이란 선언문을 만들고, 그것은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10월 혁명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미국독립혁명이 토마스 페인의 인권선언문으로 불과 6개월 만에 일어난 결과라면 엄청난 일이다. 물론 그 뒤에는 프랑스의 지원이 있었고, 프랑스의 지나친 지원은 결국 루이16세가 3부회를 소집하고,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지나친 군사력의 소모는 재정을 악화하고, 국민경제를 파괴한다.

 

 

이것이 역사적 교훈이고 사실이란 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현실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토마스 페인은 전쟁에 대한 문제점을 넘어 국민경제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미국의 자유와 평화를 만든 자가 오히려 복지와 안정을 고려한 점에서 놀라웠다. 그는 노인에게 연금을 부부들과 새로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복지적 혜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모든 재산을 균등하게 나누는 것보다 지나친 기근과 가난을 해결해야 것이 중요하게 여겼다. 그것은 최근 경제민주화라고 떠들어대는 위선자 역시 이런 토마스 페인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적인 기반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따라가나 정작 미국의 민주주의의 기반자의 사상이나 철학 따위는 안중에 없는 것이 모순이다. 보수 세력에게 보수주의라는 철학이 없다는 이 책의 역자의 말처럼 프랑스혁명에 대해 비판적으로 적은 보수주의철학자(물론 인식적으로 진보적이나) 에드먼드 버크는 진정한 보수주의 정치자로서 권력으로서 정치낭비를 하는 것을 무척이나 반대했다. 지난날 우리의 과거에서 권력으로 정치를 휘두른 것이 보수의 논리라고 한다면 보수주의철학의 기반이 되던 버크의 기본적 명제마저 어기는 것이 아이러니한 발상이다.

 

 

버크 역시 작은 정부를 원했으나, 그 작은 정부는 인권에 대한 어떠한 간섭을 하면 안되는 것이었고, 당시 18~19세기 자유주의 철학과 부르주아의 성장에 따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도 경제의 자유도 중시했으나 그 과정의 원칙과 윤리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점에서 버크와 상반된 길을 가던 토마스 페인이 알고 보면 두 사람이 본래부터 친한 사이란 점에서 조금 특이한 상황을 보았다. 그러나 관점이 다를 뿐이지 두 사람 모두 인간의 자유와 공화적인 가치를 추구했다. 인권 이후 상식 그 외의 책이 버크가 비판한 프랑스혁명에 대한 문제점이라도 그 지적은 무조건적인 과격행위는 옳지 못함을 지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추후에 토크빌의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에서도 광기로 갇힌 프랑스혁명시기와 그것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국가정치에 대한 변증법적인 사실로서 객관적인 입장을 취한다. 당대를 살아가는 인물에겐 객관적인 관점이 될 수 없다. 그 상황에 놓이면 그 순간 자체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딜레마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딜레마에서 어떤 최선의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과 반대되는 위기는 찾아오고, 최후의 모습은 외롭게 마감하는 이도 많다. 그 중에 인권의 저자인 토마스 페인도 그렇고, 루소도 그렇고, 마르크스도 그렇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은 지금도 살아있다. 토마스 페인의 사상은 미국만이 아니다. 보편적인 인간에 대하여 선언하는 윤리적인 인간상이다. 자신의 고국 미국, 자신의 고향 영국, 자신이 의원이 되게 한 프랑스, 그리고 친구 버크의 출신인 아일랜드 할 것 없이 모두가 주인 없는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란 것이다. 아직도 미국에서 토마스 페인의 사상을 기리고 있으나 정작 그것을 실천하려고 하는 자에게 도리어 역으로 가는 점에서 모순으로 가득한 현실을 느낀다. 그 역으로 가게 하는 자도 토마스 페인의 책 내용을 되새기고 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