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이펙트 - 인간은 어떻게 사람다울 권리를 찾게 되었는가 10 그레이트 이펙트 3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박홍규.인트랜스 번역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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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관심 있는 분야 중에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서 각별히 생각하는 것이 인권이다. 인권(人權)은 고대철학보다는 근현대철학으로 넘어오면서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인권을 생각하면 진보나 보수,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 공화주의, 시민주의 등등 다양한 정치적 논쟁의 기본인 되는 것이 바로 인권이다. 인권이 중요하기에 모든 가치를 담아낼 하나의 슬로건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난날의 많은 큰 변화 내지 혁명, 개혁이란 인간의 인권에 대한 열정에서 그 인권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냐? 라고 물어보면 막상 난해한 반응이 닥친다.

 

 

개인적으로 나 같은 경우 인권에 대해 논점으로 만든 사람은 장 자크 루소라고 생각했다. 그의 저서인 <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국가에서 기초가 되는 서적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혁명의 지침서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것보다 더 큰 격동을 맞이한 인물과 그 인물의 책이 있다는 사실에 솔직히 많이 놀라웠다. 이펙트 시리즈 중에서 여러 가지 서적을 보면 크리스트교의 성서부터 시작해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마르크스의 자본론, 아담 스미스 국부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등등을 생각하면 그들의 유명세는 분명하나 미국독립전쟁의 혁명과 법률의 기초가 된 인권이란 도서를 안 것은 이번에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 저자가 토마스 페인이란 인물로서 당시 미국의 지식인과 대통령을 지닌 조지 워싱턴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프랭클린과 상당히 가까운 인물이었단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은 영국인이면서 미국의 자유를 원하였으며, 미국의 자유와 더불어 프랑스혁명에 대하여 다소 보수적인 그는 인권은 누구에게나 있어야 할 것이기에 심지어 단두대 아래로 사라질 루이16세 역시 정당한 재판을 벌여 그를 무리하게 죽이면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라는 공포의 혁명정치가는 루이16세에게 처형을 명을 내리고, 계몽이란 새로운 신화 속에서 이성을 상실한 프랑스혁명 후에 정치권에서 토마스 페인은 이성의 중요도를 강조했다. 덕분에 운이 없었다면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목과 몸이 두 동강이 날 운명이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로베스피에르 역시 수많은 사람들을 단두대로 보낸 업보만큼 그 역시 단두대 앞에서 혁명의 광기에서 희생되는 주인공으로 변모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유와 평등을 외친 토마스 페인은 인간에게 닥치는 파시즘을 매우 경고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루소 역시 인간에게 의지는 일반의지로서 살아가야 할 것이나 대중들은 전제의지로 살아가며 그들에게 사고하는 능력을 상실한 민주적 전제주의로 빠지는 것처럼 토마스 페인은 그것을 매우 경계했다. 토마스 페인은 주장한 미국독립에서 인권에 대한 보장과 더불어 그 인권수여자에게 종교의 자유는 필수이며, 노예와 인종차별 역시 반대했다. 그의 사상이 후에 링컨과 루즈벨트, 게다가 공화당 대통령 레이건의 입에서도 나올 정도라면 토마스 페인의 역할을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나 미국은 흑인노예를 인정하고, 링컨이 이것에 대항하여 남북전쟁이 일어나고, 인종차별의 벽은 지금까지도 내려오며, 특히 미국 인권운동가인 킹 목사의 살해사건은 미국이란 국가가 과연 인권이란 토마스 페인의 선물을 잘 간직하고 있는가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미국은 자랑스러운 미국독립기념일에 모두 함께 자유를 외치나 그 자유의 선구자의 노력이 가끔 물거품이 되는 일들이 종종 벌여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토마스 페인은 마르크스와 엥겔스보다 더 선구자라고 한다.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 선언>이란 선언문을 만들고, 그것은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10월 혁명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미국독립혁명이 토마스 페인의 인권선언문으로 불과 6개월 만에 일어난 결과라면 엄청난 일이다. 물론 그 뒤에는 프랑스의 지원이 있었고, 프랑스의 지나친 지원은 결국 루이16세가 3부회를 소집하고,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지나친 군사력의 소모는 재정을 악화하고, 국민경제를 파괴한다.

 

 

이것이 역사적 교훈이고 사실이란 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현실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토마스 페인은 전쟁에 대한 문제점을 넘어 국민경제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미국의 자유와 평화를 만든 자가 오히려 복지와 안정을 고려한 점에서 놀라웠다. 그는 노인에게 연금을 부부들과 새로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복지적 혜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모든 재산을 균등하게 나누는 것보다 지나친 기근과 가난을 해결해야 것이 중요하게 여겼다. 그것은 최근 경제민주화라고 떠들어대는 위선자 역시 이런 토마스 페인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적인 기반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따라가나 정작 미국의 민주주의의 기반자의 사상이나 철학 따위는 안중에 없는 것이 모순이다. 보수 세력에게 보수주의라는 철학이 없다는 이 책의 역자의 말처럼 프랑스혁명에 대해 비판적으로 적은 보수주의철학자(물론 인식적으로 진보적이나) 에드먼드 버크는 진정한 보수주의 정치자로서 권력으로서 정치낭비를 하는 것을 무척이나 반대했다. 지난날 우리의 과거에서 권력으로 정치를 휘두른 것이 보수의 논리라고 한다면 보수주의철학의 기반이 되던 버크의 기본적 명제마저 어기는 것이 아이러니한 발상이다.

 

 

버크 역시 작은 정부를 원했으나, 그 작은 정부는 인권에 대한 어떠한 간섭을 하면 안되는 것이었고, 당시 18~19세기 자유주의 철학과 부르주아의 성장에 따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도 경제의 자유도 중시했으나 그 과정의 원칙과 윤리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점에서 버크와 상반된 길을 가던 토마스 페인이 알고 보면 두 사람이 본래부터 친한 사이란 점에서 조금 특이한 상황을 보았다. 그러나 관점이 다를 뿐이지 두 사람 모두 인간의 자유와 공화적인 가치를 추구했다. 인권 이후 상식 그 외의 책이 버크가 비판한 프랑스혁명에 대한 문제점이라도 그 지적은 무조건적인 과격행위는 옳지 못함을 지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추후에 토크빌의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에서도 광기로 갇힌 프랑스혁명시기와 그것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국가정치에 대한 변증법적인 사실로서 객관적인 입장을 취한다. 당대를 살아가는 인물에겐 객관적인 관점이 될 수 없다. 그 상황에 놓이면 그 순간 자체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딜레마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딜레마에서 어떤 최선의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과 반대되는 위기는 찾아오고, 최후의 모습은 외롭게 마감하는 이도 많다. 그 중에 인권의 저자인 토마스 페인도 그렇고, 루소도 그렇고, 마르크스도 그렇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은 지금도 살아있다. 토마스 페인의 사상은 미국만이 아니다. 보편적인 인간에 대하여 선언하는 윤리적인 인간상이다. 자신의 고국 미국, 자신의 고향 영국, 자신이 의원이 되게 한 프랑스, 그리고 친구 버크의 출신인 아일랜드 할 것 없이 모두가 주인 없는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란 것이다. 아직도 미국에서 토마스 페인의 사상을 기리고 있으나 정작 그것을 실천하려고 하는 자에게 도리어 역으로 가는 점에서 모순으로 가득한 현실을 느낀다. 그 역으로 가게 하는 자도 토마스 페인의 책 내용을 되새기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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