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를 끝냈다. 정말 착하고 웃음 많은 시댁식구들과 치룬 잔치는 다소는 자기의 이익만 찾는 얌체형인 친척들도 있지만 하하호호 웃는 사람들 틈에 묻혀 버려서 그 모습까지 웃음으로 순화되었다. 처음에는 좀 더 넓은 곳에서 치룰 예정이었지만 이리저리 옮기기도 귀찮고 거기는 에어컨이 없다는 관계로 다소 좁지만 에어컨만 틀면 시원한 집에서 치루었다. 생일케잌 대신 층층히 올린 떡에 촛불을 붙이고 "후" 부는 어머님의 얼굴은 연방 웃음이 넘쳤고 이 더운날에 음식한다고 고생했다고 연방 칭찬하는 노인들의 틈에서 난 부끄러워서 어쩔줄을 몰랐다. 장성한 외손주에서 5살난 친손주까지 할머니의 생신을 축하하는 모습은 울 어머니가 민수 군에 갈때까지 살고 싶다는 말씀에 다소 맘이 뭉클했지만 평소 웃기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시는 고모와 삼촌의 피서지에서 생긴일을 말씀하시는 통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흘러가 버리고....
사진찍기를 좋아하며 어머님 칠순잔치를 모습에 담을려고 급하게 수리를 해서 찾아 놓은 디카는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바빴던 나는 오늘에사 가방안에 고이 있는 디카를 보면서 아뿔싸 했다.
소현이에게 줘서 그냥 찍어라고 해야되는데 먹고 논다고 그것까지 까먹고 있었다니-..-
항상 아가씨가 설거지를 다 해주고 가서 나는 뒷정리만 하면 되고, (시집와서 지금까지 설거지 담당은 아가씨였다. ) 마음 비우고 산 것이 더욱더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이제는 우리집의 제일 큰 행사는 끝난 셈이다. 어머니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손님을 초대해서 대접하는 일은 앞으로는 없을 것이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모두들 돈을 내어 놓았다. 수고했다고, 그러나 어머니께 다 드리라고 했다. 아가씨와 형님도 그러면 안된다고 음식값이라고 20만원씩을 봉투에 넣어 주었다. 음식은 내가 담당하기로 했으니 모두다 어머니께 드리라고 옥신각신했다. 이번만큼은 내가 다 하고 싶은 욕심이 엄청 들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돌아가고 난 저녁, 어머님이 누구는 얼마 누구는 얼마 봉투를 정리하시고 난 기록했다. 그러면서 고생했고 욕봤다고 나를 다 주시고, 안 할 거라는 나를 나중에는 반씩 가르자고 했다. 너무 옥신각신하니 남자가 낚아채었다. 그리고 내가 또 낚아채고....어머니께 어머니께 칠순에는 더 많이 드려야 되는데 어머니 요거라고 받으세요하면서 되돌려 드렸다. 그렇게 웃고 지나갔다.노인네가 주머니가 두둑해야 어깨에 힘도 나는 법이다.
몸은 힘이 들었지만 하고 나니 엄청 게운하다. 어머님이 안 계셨더라면 이렇게 척척 처리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호된 꾸지람에 묵묵히 나 자신의 일을 찾아 한 것에 대한 보람을 느낀 최고의 날이었다.
오늘 점심 동네의 아줌씨들이랑 한 끼 했다. 썰어 놓은 재료로 해파리는 소스에 다시 무치고 (오이가 다 떨어져도 힘들다고 그냥 먹었다.) 회만 빠지고 한 상 그득 차려먹고 배 두리며 (설거지는 옆집 엉가가) 커피를 한 잔씩 먹으니 진짜로 끝난 것 같다.
어머님이 앞으로 안 아프고 치매에 안 걸리고 지금처럼 짱짱거리고 다니시면 좋겠다. 어머님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사실은 나를 위해서 말이다.
누가 뭐라해도 나의 할 도리는 하고 살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스리고 이제 또 원래의 생활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