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미네르바 > 민둥산 - 억새풀밭에 서다
민둥산 정상을 향해... 억새 눕다
떠나야 했다. 숨막히는 일상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야 했다. 부메랑이 되어 다시 일상으로 내던져질지라도 지금은 떠나야 했다. 보들레르의 어떤 시구처럼, 단지 떠나기 위해 떠남을 선택했듯, 나 역시 떠남 자체가 목적이었다. 아니, 지금은 가을이니까 떠나야 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곳은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
오래 전에, 어떤 문예지에 실린 김형경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읽고 나서 참 쓸쓸했다는 느낌만이 강하게 남아 있다. 민둥산은 나에게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곳이다. 쓸쓸함만이 남아 있는 곳...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한 다음 6시에 강원도로 출발하였다. 억새꽃 축제가 있어서 그런지 가는 길이 막힌다. 민둥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도 억새보다 사람이 더 많다. 나만 홀로 조용히 억새를 감상한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겠지. 90도 가까이 경사진 산을 숨가쁘게 오르니 정상이다.
해발 1,119m의 정상에 오르니 바람이 차다. 민둥산 정상의 주인은 역시 바람과 억새다. 바람이 부니 억새가 출렁거리며 눕는다. 휘청 휘청... 그러나 뿌리까지 휘청거리지 않는다. 가냘픈 억새풀이라지만 그 삶의 뿌리는 얼마나 견고한가? 바람에 휘청거려도 뿌리까지 뽑히지 않고 잘 견딘다. 지금 내 삶의 뿌리는 견고한가?
미당 서정주는 <자화상>에서 ‘...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고 했다. 그럼 나를 키운 건?... 이 곳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리움과 슬픔이었다. 그리움과 슬픔은 나를 키워주기도 했지만, 때론 나를 세상과 격리시켜 놓기도 하였다. 시인 허수경은 ‘슬픔 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라고 했지만 그 슬픔이 거름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내와 가혹한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아직도 나의 슬픔은 거름이 되지 못하고 있다. 내 안에 있는 슬픔의 뿌리들은 분해되지 못하고, 썩지도 않고 내 나약한 영혼을 쿡쿡 찔러댄다. 이제 그리움의 시간을 넘어, 슬픔의 시간을 넘어, 초월의 시간 앞에 서 있고 싶다.
민둥산 정상에서 난 19세기 프랑스 작가와 시인인, 조르즈 상드와 알프레드 드 뮈쎄가 생각났다. 그리고 이어서... 또 한사람이 떠올랐다. 그를 생각하니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 온다. 살아가면서 될 수 있는 대로 미안한 일은 만들지 않고, 상처 줄 일도 만들지 않고, 또 상처도 받지 않고 살면 참 좋겠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게 삶이겠지... 그 상처에서 향기가 나기까지는 얼마만한 시간이 흘러야 하는 것일까? 아직도 내 상처에선 고름냄새만 나는 것 같은데...
민둥산 능선을 따라... 걷고 또 걷다.
바람을 등지고 민둥산 능선을 따라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다. 그리고 하산... 내려가는 길은 올라오는 길보다 더 힘들다. 이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온다. 발을 헛딛었는지 휘청하며 굴렀다. 여기저기 아프다. 그러나... 그렇게 육체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정신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면... 미안한 마음을 덜 수만 있다면, 혹시나 내가 준 상처가 조금이라도 희석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난 즐겁게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설령 코카서스 정상에서 날마다 독수리에게 내 간을 쪼아 먹힐지라도 미안한 마음을 덜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해질녘의 정암사.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수마노탑으로 오르다
민둥산을 떠나 정암사로 향했다. 이곳까지 온 김에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라는 태백산 정암사에 오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신라의 국통이었던 자장율사가 세우고 또 그가 입적할 때까지 머물렀던 절. 천연기념물 열목어가 서식할 만큼 이 곳은 청정지역이다. 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자신 속으로만 침잠해 가는 곳. 내 안의 적멸보궁을 찾아 이곳까지 왔는가?
이곳에서는 가을이 더욱 깊어간다.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해질녘의 비 내리는 산사는 한없이 처연하기만 하다. 짙게 단풍 든 모습조차 슬픔을 머금고 있다. 그 곳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렇게 나도 풍경이 되고 싶었다. 탑이 되고 싶었다. 돌이 되고 싶었다.
수마노탑. 182개의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만날 수 있다.
182개의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만날 수 있는 수마노탑. 7층 높이의 수마노탑은 층층이 지붕 추녀 끝마다 풍경이 달려있다. 잠시 스치는 바람에 수마노탑에 걸려 있는 풍경이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바람이 한번 지나칠 때마다 명징한 소리가 가을산에 퍼져 든다.
두 눈 가득 가을의 풍경을 담고 집으로 왔다. 그런데도 이 헛헛함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아직도 나의 가을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 주말에는 춘천에 다녀와야겠다. 그 곳에서 가을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