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물무늬 > 반딧불의 묘; 주검의 얼굴과 마주하기

일본 만화영화 반딧불의 묘를 봤다. 복잡한 서사구조를 보여주진 않는다. "전쟁 속에 고생하며 죽어가는 남매의 슬픈 이야기" 정도로 압축될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이다. 그러나 그 단순함은 단아함으로 잔잔하게 다가오는 슬픔을 깊이 전해준다.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이 극에 달한 전쟁이 우리의 소중한 이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살해하는지....

여러 이야기가 가능하겠지만 곱씹게 되는 것은 죽어가는 꼬마아이, 그 작은 소녀의 얼굴이다. 그 얼굴은 어떤 이성적 판단이나 합리적인 사고를 사치로 여기게 한다. 존재가 혹은 우리 안의 님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 내게 무엇을 요구는지, 또 내 안에 님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사고나 판단이 아니다. 오히려 존재의 근원적인 깊이에서 울려오는 욕망이다.

어떤 사고나 판단은 욕망의 자양분으로 자라난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면 문제는 욕망에 의해서 잘못된 판단이 이뤄지는 수많은 오류들을 어떻게 하느냐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논리적 이성에 근거한 보편적 진리가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진리가 고정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 하지만 해석학적인 발견 이후에는 그런 본질론적인 진리관은 오해일뿐이고, 참과 거짓의 구분, 진위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인식과 진리는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고 삶을 충일케하고 생명을 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적 판단에 의해서만 그 진리성이 판단될 수 있다.


인간은 어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상대의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을 그대로 공감하는 "마주-울림"으로 인해 열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붙들려 마주 울리는 강렬한 힘이 자신 안 깊은 곳에서 퍼져 나올 때, 힘겹더라도 그 간절한 바램과 욕망으로 인해 행복해 진다. 집착을 삼키는 집중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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