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사진엽서, 식민지 조선을 노래하다 ㅣ 知의 회랑 40
최현식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국주의.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는 국가를 주로 일컫는 말. 1900년대 초반 일본은 이러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옆 나라인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았다. 중국을 침략하여 만주국을 세우고 식민권력을 세웠다. 그리고 대만 및 동남아시아를 침략하여 또한 식민지로 삼았다.


식민지로 삼아 착취를 했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이 아무리 사실을 가리려 해도 가릴 수 없는 사실.


그렇다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무엇보다도 먼저 식민지배를 했던 과거에 대해 사죄를 해야 한다. 식민지였던 나라에 대해서, 또 그 나라의 국민들에 대해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를 한 다음,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새출발을 해야 한다.


여기서 책임질 자들이 책임을 지는 일이 가장 먼저 이루어졌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책임자가 책임을 면했다. 그리고 이들이 계속 권력을 잡았다. 이런 모습의 일본이 세계 평화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하면 식민지 경험이 있던 나라들은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다른 나라를 침략한 이유로 든 것이 바로 평화공존 아니었던가. 허울 좋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 일본이 재무장을 하려고 하는 것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한데... 책임도 지지 않고, 사죄도 하지 않고, 과거는 없던 일인 양 미래로 나아가자고만 외치고 있는 일본 권력자들의 모습에서 식민권력을 보게 된다.


그런데 총칼만으로 식민지를 지배할 수는 없다. 무력으로 한 나라의 주권을 빼앗더라도 계속 지배하기 위해서는 문화적으로도 지배해야 한다. 


이는 자신들을 우위에 두고, 식민지 사람들, 식민지 문화들을 열등한 것으로 만들어서 자신들에 의해 계몽되거나 발전되었다는 생각을 알게모르게 식민지 사람들이 지니도록 하는 정책을 펼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 정책 중에 문화, 교육을 통한 정책이 있는데, 이들은 교묘하게 의도를 감추고 있어서 쉽게 반발하지 못한다. 이 책은 그러한 일제의 식민정책 중에서 사진엽서를 통해서 조선인들의 무의식에 일본의 우월함을 각인시키고, 조선의 낙후성을 받아들이게 하는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엽서는 글과 그림으로 되어 있지만, 엽서에 있는 글들이 노래로 불렸다는 것, 이는 자신들의 선전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 총칼만이 아니라 노래를 통해서도 식민지 이념을 전파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진엽서를 통한 식민지 권력의 선전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는데, 처음은 아리랑으로 시작한다. 아리랑만큼 많이, 대중적으로 불린 노래가 있을까 싶은데, 이 아리랑조차 일본은 자신들의 선전도구로 삼으려 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은 아리랑을 통해 저항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는 점, 즉 노래를 통해 식민권력에 대한 저항을 도모하기도 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일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 아리랑에 비교될 수 있을 만한 노래들을 만들어 유포하는 것이다. 그 노래에는 일제를 찬양하고 조선을 비하하는 내용이 들어가도록 하는 것.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사람들이 듣고 부르게 하는 것.


이를 문화통치라고 할 수 있는데, 압록강, 백두산에 관한 노래를 통해 교묘하게 조선의 산하를 칭송하는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일제의 대륙 침략을 옹호하고, 또 자신들의 발전 상을 드러내며, 조선의 낙후성을 보여주어 사람들의 의식 속에 그러한 이념이 스며들게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드러내놓고 선전을 하지 않았지만 1930년대 후반으로 가면 '압록강, 백두산'을 소재로 한 사진엽서에서도 노골적으로 대륙 침략, 일황을 위해 전쟁터로 나가라는 내용을 드러내고 있으니, 노래를 통해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하고, 독려하고 있음을 저자는 여러 자료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교묘한 식민권력, 제국주의가 무력으로만 지배한다면 식민지 사람들이 저항하기도 쉬운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교묘하게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려 한다면, 그 본질을 깨닫고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바로 그러한 방법을 일제가 사진엽서를 통해서, 또 노래를 통해서 쓰고 있음을 여러 자료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일제가 이러한 사진엽서 또는 노래를 통해서 - 이것은 나중에 국민학교(일제시대 용어다. 지금 초등학교에 해당한다) 음악 책에 실은 노래들을 통해 더 노골적이 되는데 - 자신들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 했음을,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파악해서는 안 됨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참 많은 사진엽서들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에게 전해졌구나, 이것들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사람들이 쉽게 세뇌당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이것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방법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지금은 이러한 사진엽서, 노래를 통하지 않고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는 '유튜브'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 많은 '유튜브'들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그래서 비판적 읽기/듣기/보기가 중요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엽서 한 장을 보라. 이런 노골적인 내용이 일제말기에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니, 처음에 의도를 숨긴 엽서들이 나중에는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이런 적나라한 홍보를 통해 처음의 의도들을 유추할 수 있다.



<출전:최현식, 일제 사진엽서, 식민지 조선을 노래하다, 성균관대출판부. 2023년. 352쪽>


참고로 절(節)은 일본어로 '부시'라 하고, 이 '부시'는 일본 전통 민요를 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307쪽)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나랏님 위해 피어난 꽃이여 / 나라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을에는 / 아- 산화하시라 그대여 용감하게'


그리고 왼쪽에 있는 작은 글자들은

'몹시도 어여쁜 야마토의 아기도 총후 보국의 마음은 단단하니, 나의 쓸쓸한 마음은 아기의 건강함에 기대어 그대가 보다 순결하고 보다 강해지기를 기도한다'라고 한다.' (352-253쪽)


참 노골적이다. 이렇게 노골적이라니, 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굳이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겠지만, 한 편 한 편이 모두 독립적인 소설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겠지 하면서 일곱 편의 소설에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고민을 한다.


우선 이 소설들, 잘 읽힌다.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의 거리를 유지하게 하면서도 그 인물들에게 끌려들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아, 이것이 바로 사람 살아가는 일이겠지 하기도 한다.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에게는 깊은 동감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피하고 싶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경멸의 마음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선망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자신의 행동이나 말을 유지하기도 바꾸기도 한다.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함께한다. 함께하면서 그 사람을 받아들인다. 다름에도,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음에도 함께하면서 서서히 관계를 만들어가고, 그 관계는 어느덧 자신의 삶에 들어와 바꿀 수 없는 무엇이 된다.


그것이 '나쁜 무리'이건, '아무 사이'가 아니던 상관이 없다. 세상에 만나는 사람에게서 '아무 사이'도 아닌 관계로 지내기는 힘들다. 어떻게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 '소란한 속삭임'이다. '소란'이란 말과 '속삭임'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 붙어 소설을 이루고 있다. 속삭이는 사람에게 듣는 사람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기 때문이다.


이때 귀를 기울이는 행위는 자신을 열고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시끄러움과는 다른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우리들 관계가 이렇게 속삭임만으로 유지가 될까. 아니다. 시끄러움도 공존해야 한다.


소설에서 속삭임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시내와 광장에서 자신의 종교를 믿으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수자가 함께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큰소리를 내는 사람도 늘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에게도 속삭이고 싶은 내용이 있고, 그렇게 남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마찬가지로 속삭이는 사람도 늘 속삭일 수만은 없다. 어떤 때는 큰소리를 내기도 해야 한다.


이렇게 이들은 만나서 속삭이기도 하고, 남들에게 지적받을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때 시내의 윗층에 사는 두리가 등장한다. 삶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극도로 소리를 내지 않는, 남들과 어울리지 않는 두리. 하지만 아래층에 사는 시내는 윗층의 소음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이 소리의 원인은 시내가 두리의 집에 들어서면서 밝혀진다.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그러한 소음이라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지내는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소음, 이것은 보통의 시끄러움과 다르다. 우리 삶에서 공존해서는 안 될 요소다. 하여 이들은 힘을 합쳐 쓰레기들을 치운다. 소음을 내는 쓰레기를 치우고 나서 맥주를 마시면서 하는 대화. 


이 대화를 통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들을 각자 깨닫게 된다. 속삭임과 시끄러움 사이. 아니 시끄러움과 속삭임에서 결국 자신을 발견하는 인물들. 그런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 


읽으면서 마음이 따스해진다. 관계란 일방적일 수 없음을. 상대에게 또 자신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을 다해 다가가야 함을. 그렇게 하기 위해선 자신이 쌓고 있는 벽을 허물어야 함을. 


어쩌면 이러한 관계는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보려고 하는 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소설집에 실린 첫소설인 '추운 뺨에 더운 손'을 보면 '마임'이 나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데 보이는 것처럼 연기하는 마임. 이 마임을 통해 서로를 읽어가는 인물들. 그렇게 서로가 만들어가는 관계는 눈에 확 띠지 않지만 '마임'을 하는 사람과 '마임'을 보는 사람이 어떤 공통적인 것을 찾아내듯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될 때 만들어진다.


그러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쁜 무리'는 없다. '아무 사이'도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뿐이다. 이러한 기댐을 깨달아가는 인물들. 소설에서 만날 수 있다. 일곱 편의 소설 모두 이러한 관계들을 중심으로 읽어도 좋겠단 생각을 한다.


끝으로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라는 사람에게서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 살수록 더 희미해지고 미약해지는데 사라지는 나를 붙들어주는 건 늘 내 곁에 있는 함께 희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어느덧 나를 정체화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 또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삶에 대한 의지가 생겼습니다.'(292쪽)


이렇게 이 소설집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 그것이 마임처럼 확실한 실체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 관계 속에서 서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소설이 보여주고 있으니...


최근에 읽은 책에 실린 그림이 생각났다. 각자 존재하지만 또 함께해서 또다른 모습을 만들어내는... 우진영이 쓴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한겨레출판 2025년]에 실려 있는 그림인데(196쪽에 실려 잇다)... '이내'라는 화가의 <기억-마음에 담은 별>이라는 그림이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이 그림이 떠올랐으니... 미술과 소설이 통하는 지점이기도 하겠다. 이 그림 속 원들은 모두 소설 속 인물들이라고 보면 이들이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다른 모습,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생각한다. 우리 삶도 그러하기를 바라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책을 받아놓고 천천히 읽는다. 마치 빨리 읽으면 책하고 맞지 않는다는 듯이.


  근본으로 돌아가자. 이 빨리빨리의 세상에서 조금은 느리게 살아도 되고, 눈 앞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세상에서 내가 보지 못하더라도 좋아지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세상을 추구하는 책인데, 후다닥 읽어버리면, 정말, 이 책을 잘 읽는 걸까 하는 생각.


  꼼꼼하게 읽어야 하지만, 천성이 그렇지 못해 그냥 천천히 그러나 꼼꼼하지는 않게 읽는다. 어떤 글에서는 아, 이건 생각 못했네... 하는 내용을 발견하고,(이헌석, '핵산업은 과연 황글알을 낳는 거위일까 - 산업으로서의 원자력을 묻는다'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수원의 2025년 말 기준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사업 부문공사손실충당부채는 1조 4,346억 원에 달한다') 이런, 이런 사실이 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을까 ?


원자력 발전소 수출에 성공했다고,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다고 자랑스레 떠벌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해외사업에서 오히려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고?


여기에 '국내 재생에너지산업은 핵산업에 비해 수출액이 10배 정도 큰 산업이다.'(이헌석, '핵산업은 과연 황글알을 낳는 거위일까 - 산업으로서의 원자력을 묻는다'에서. 26쪽)고 하는데, 정부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핵발전소를 추가 건설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여기에 노후 원자력발전소를 가동 중지시키지 않고 수명 연장을 허가함으로써 계속 가동하도록 한다고 하는데, 그럼 그 비용은 어떻게 되지? 이런 것 저런 것 다 따지면 원자력 발전 수출과 국내 건설이 다르다고 해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안전성 면에서는, 또 폐기물 처리에 관해 들어가는 비용에 관해서는...


이런 내용에다 '용인에 들어설 반도체 산업단지로 인해 원전 15개 남짓의 추가 전력이 필요하게 된 상황'(하승수, '66개의 '밀양'을 만들 것인가'에서. 69쪽)이라는 내용을 보고는, 아이고, 또 송전탑! 밀양 송전탑 건설로 인해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를 그렇게 경험하고도 또! 하는 생각.


도대체 이런 산업이 계속 언급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오히려 그러한 산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하기 때문이고, 장기적인 산업 정책이나 에너지 정책은 성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의 성과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삶보다는 성과를 먼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데,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고... 지역에서 공동체를 꾸려 살아가는 사람들, 다른 존재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실려 있으니까.


그렇게 생명 평화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 평화를 위협하는 경제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러한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각각의 소리가 따로따로 겉돌지 않고 융합이 되어 합창이 되었듯이, 사람을 살리는 경제도 역시 이렇게 사람들이 함께 소리를 내야 함을 이번 호를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번 호 표지에 '사람을 살리는 경제는 가능하다'고 쓰여 있다. 경제가 무엇인가? 영어로 된 말을 들여올 때 한자어로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두 글자를 따와 경제라고 했다고 하지 않는가. 이미 경제란 말에는 사람을 살린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니 우리 지금 경제는 그 말에 충실하기만 해도 된다. 그 점을 명심하기만 해도 사람을 죽이는, 다른 생명체, 또 다른 존재들을 죽이는 경제란 말은 있지도 않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런 경제를 계속 추구한다면? 최근에 읽은 서정홍 시인(농부)이 언급한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에 있는 말을 곱씹어 본다. 정말, 우리 그런 세상을 만들 것인가?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서정홍,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교육공동체벗, 2025년.] 중 '권정생 선생님께'에서. 31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미 있는 기획이다. 근대와 현대 미술을 이어서 감상하게 하다니... 이 책에 실린 기획 의도를 미술관에서 전시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겠지만.


예술은 독창적이기도 하지만 전통적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실학자인 박지원이 이야기했듯이 법고창신(法古創新)이거나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통하는 분야가 바로 예술이다.


그러니 근대 미술과 현대 미술이 완전히 동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 예술 사조 역시 하나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추구한 것이니. 이런 예술의 흐름과 별도로 개별적인 작가들에게서 연결점을 찾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예술가들끼리는 비슷해지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표절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고. 물론 오마주라고 그 작가를 기리는 작품을 만들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영향을 받더라도 자신의 작품에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도록 한다. 드러나더라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화풍이나 색감, 주제 등에서 영향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작가 자신이 직접 밝힌 경우다. 전혀 교류가 없던 작가들에게서 연결성을 찾아내어 비교하면서 작품을 설명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를 일 대 일로 대응시킨 경우는 더더욱.


그래서 이 책에는 근대 작가 한 명과 현대 작가 한 명을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현대 작가에게 질문하고 받은 내용이 실려 있다. 그 질문 중에 제일 먼저 나오는 질문이 '이 기획을 통해 근대 작가와 연결되었는데, 이 연결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함께 소개된 작가 000을 알고 있는지, 글에서처럼 본인의 작업과 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되는지 궁금하다'이다.


이렇게 24개의 주제로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를 엮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 현대 작가의 인터뷰가 없는 부분이 몇 부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현대 작가에게 질문을 하고 그 답을 받은 내용도 실려 있어 이 책에서 저자가 설명한 부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특이한 점은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를 한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인데, '박서보' 작가는 이 책에서 유일하게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고 있어서 근대 작가 박서보와 현대 작가 박서보로 설명하고 있다.


많은 현대 작가들이 자신과 비교되는 근대 작가를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 기획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서로 연결되기 힘든 작가들을 연결하는 저자의 미술을 보는 눈에 대해서 감탄하게 된다.


전혀 다른 시대, 다른 경향을 지닌 작품 속에서도 연결성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삶 아니겠는가. 늘 같은 듯이 살아가지만 꼭같지 않고 다른 삶을 살아가듯이, 또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듯이, 그렇게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 사이에서 찾아낼 수 있는 연결점을 찾아내어 보여주는 것. 미술을 감상하는 또다른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시대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자신의 삶도 그림 설명 속에 녹여내고 있다. 즉 그림이 우리의 삶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점이 이 책을 읽는데 더 몰입할 수 있게 한다.


많은 작가들, 사실 근대 작가 중에는 처음 이름을 듣는 작가도 있으니, 그러한 작가들의 작품을 이 책을 통해서나마 볼 수 있었다는 점, 비교하는 작품 두 점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보여주고 있어서, 작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한 점 등이 좋은 책이다.


결국 미술은 작가 개인의 독창성이 발현되는 것이지만 작가가 살아온 사회를 벗어날 수 없고, 작가가 존재하기까지의 역사가 작품 속에서 들어가게 된다는 것, 이렇게 근대 미술과 현대 미술은 연결이 된다는 것. 우리의 삶이 계속 연결되어 유지되듯이, 미술도 이렇게 연결되어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평등한 평범 -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상
장혜영 지음 / 후마니타스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별을 금지하자는데 반대를 한다.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하면서... 역차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역차별... 이것은 자신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지만 상대는 누릴 수 없는 권리라는 말과 통한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누구는 누리고, 누구는 누릴 수 없는 권리가 무엇일까? 그런 권리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라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는 어떤 사람도 누리지 못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보장하는 법이 차별금지법 아니던가. 


모든 분야에서 똑같은 권리를 달라고 주장하는 법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것, 그런 권리에서 차별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다.


그러니 차별금지법은 이미 누리고 있는 사람에게서 권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권리를 함께 누리자는 것이다. 그런 권리를 함께 누린다고 해서 권리를 양이 줄거나 힘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러한 권리들은 함께할수록 더 커지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의 말처럼 그것을 평범한 삶이라고 하면, 우리는 누구나 평범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하여 제목이 '평등한 평범'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이상함만큼 평범한 것은 없다. 모든 평범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고, 모든 이상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다.'(11쪽)


누구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평범함이다. 이러한 평범한 삶을 누구나 누리도록 하자는 법이 차별금지법이기도 하고.


한데, 차별금지법은 지금도 제정이 되고 있지 않다. 올해 초에 발의가 되었다던데, 상임위에서 심의를 했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지난 19년간 차별금지법은 국회에서 14차례나 발의되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심의되지 못하고 고사했다.'(287쪽)고 저자도 말하고 있으니...


저자가 21대 국회의원이 되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하고, 그에 대한 공부를 하고 또 제정이 되도록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역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가 차별금지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연,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의 과정, 국회의원이 되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어떻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 또 자신이 만난 사람들,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차별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쉽게 설명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저자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 그러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존재들은 누구인지, 또 그들은 어떤 논리를 동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차별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표지에 작은 제목으로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계'란 문장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우리 모두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시설에 갇혀 살아야 하는 현실이 아닌, 특정 성별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추행을 당하는 일, 이주민 또는 난민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일이 없는 세상.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세상, 그러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너무도 어렵다. 국회를 통과하기도 힘들다. 설문조사를 하면 압도적인 다수가 차별금지법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도, 민의를 대변해야 한다는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 심사되지 않고 폐기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서 정치가 중요하고, 정치인을 움직일 수 있는 시민의 힘이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정당을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인이 국민을 제대로 대의할 수 있도록 정치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물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식으로, 정치 개혁 역시 국회의원들에게 맡겨서는 또다른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하여 시민들이 힘을 합쳐 정치개혁이 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저자가 직접 경험한 차별금지법에 관한 과정을 통해 정치 개혁의 중요성이, 정치 개혁을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시민들의 힘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