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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굳이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겠지만, 한 편 한 편이 모두 독립적인 소설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겠지 하면서 일곱 편의 소설에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고민을 한다.
우선 이 소설들, 잘 읽힌다.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의 거리를 유지하게 하면서도 그 인물들에게 끌려들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아, 이것이 바로 사람 살아가는 일이겠지 하기도 한다.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에게는 깊은 동감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피하고 싶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경멸의 마음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선망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자신의 행동이나 말을 유지하기도 바꾸기도 한다.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함께한다. 함께하면서 그 사람을 받아들인다. 다름에도,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음에도 함께하면서 서서히 관계를 만들어가고, 그 관계는 어느덧 자신의 삶에 들어와 바꿀 수 없는 무엇이 된다.
그것이 '나쁜 무리'이건, '아무 사이'가 아니던 상관이 없다. 세상에 만나는 사람에게서 '아무 사이'도 아닌 관계로 지내기는 힘들다. 어떻게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 '소란한 속삭임'이다. '소란'이란 말과 '속삭임'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 붙어 소설을 이루고 있다. 속삭이는 사람에게 듣는 사람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기 때문이다.
이때 귀를 기울이는 행위는 자신을 열고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시끄러움과는 다른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우리들 관계가 이렇게 속삭임만으로 유지가 될까. 아니다. 시끄러움도 공존해야 한다.
소설에서 속삭임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시내와 광장에서 자신의 종교를 믿으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수자가 함께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큰소리를 내는 사람도 늘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에게도 속삭이고 싶은 내용이 있고, 그렇게 남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마찬가지로 속삭이는 사람도 늘 속삭일 수만은 없다. 어떤 때는 큰소리를 내기도 해야 한다.
이렇게 이들은 만나서 속삭이기도 하고, 남들에게 지적받을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때 시내의 윗층에 사는 두리가 등장한다. 삶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극도로 소리를 내지 않는, 남들과 어울리지 않는 두리. 하지만 아래층에 사는 시내는 윗층의 소음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이 소리의 원인은 시내가 두리의 집에 들어서면서 밝혀진다.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그러한 소음이라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지내는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소음, 이것은 보통의 시끄러움과 다르다. 우리 삶에서 공존해서는 안 될 요소다. 하여 이들은 힘을 합쳐 쓰레기들을 치운다. 소음을 내는 쓰레기를 치우고 나서 맥주를 마시면서 하는 대화.
이 대화를 통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들을 각자 깨닫게 된다. 속삭임과 시끄러움 사이. 아니 시끄러움과 속삭임에서 결국 자신을 발견하는 인물들. 그런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
읽으면서 마음이 따스해진다. 관계란 일방적일 수 없음을. 상대에게 또 자신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을 다해 다가가야 함을. 그렇게 하기 위해선 자신이 쌓고 있는 벽을 허물어야 함을.
어쩌면 이러한 관계는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보려고 하는 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소설집에 실린 첫소설인 '추운 뺨에 더운 손'을 보면 '마임'이 나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데 보이는 것처럼 연기하는 마임. 이 마임을 통해 서로를 읽어가는 인물들. 그렇게 서로가 만들어가는 관계는 눈에 확 띠지 않지만 '마임'을 하는 사람과 '마임'을 보는 사람이 어떤 공통적인 것을 찾아내듯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될 때 만들어진다.
그러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쁜 무리'는 없다. '아무 사이'도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뿐이다. 이러한 기댐을 깨달아가는 인물들. 소설에서 만날 수 있다. 일곱 편의 소설 모두 이러한 관계들을 중심으로 읽어도 좋겠단 생각을 한다.
끝으로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라는 사람에게서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 살수록 더 희미해지고 미약해지는데 사라지는 나를 붙들어주는 건 늘 내 곁에 있는 함께 희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어느덧 나를 정체화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 또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삶에 대한 의지가 생겼습니다.'(292쪽)
이렇게 이 소설집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 그것이 마임처럼 확실한 실체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 관계 속에서 서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소설이 보여주고 있으니...
최근에 읽은 책에 실린 그림이 생각났다. 각자 존재하지만 또 함께해서 또다른 모습을 만들어내는... 우진영이 쓴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한겨레출판 2025년]에 실려 있는 그림인데(196쪽에 실려 잇다)... '이내'라는 화가의 <기억-마음에 담은 별>이라는 그림이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이 그림이 떠올랐으니... 미술과 소설이 통하는 지점이기도 하겠다. 이 그림 속 원들은 모두 소설 속 인물들이라고 보면 이들이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다른 모습,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생각한다. 우리 삶도 그러하기를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