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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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굳이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겠지만, 한 편 한 편이 모두 독립적인 소설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겠지 하면서 일곱 편의 소설에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고민을 한다.


우선 이 소설들, 잘 읽힌다.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의 거리를 유지하게 하면서도 그 인물들에게 끌려들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아, 이것이 바로 사람 살아가는 일이겠지 하기도 한다.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에게는 깊은 동감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피하고 싶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경멸의 마음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선망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자신의 행동이나 말을 유지하기도 바꾸기도 한다.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함께한다. 함께하면서 그 사람을 받아들인다. 다름에도,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음에도 함께하면서 서서히 관계를 만들어가고, 그 관계는 어느덧 자신의 삶에 들어와 바꿀 수 없는 무엇이 된다.


그것이 '나쁜 무리'이건, '아무 사이'가 아니던 상관이 없다. 세상에 만나는 사람에게서 '아무 사이'도 아닌 관계로 지내기는 힘들다. 어떻게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 '소란한 속삭임'이다. '소란'이란 말과 '속삭임'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 붙어 소설을 이루고 있다. 속삭이는 사람에게 듣는 사람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기 때문이다.


이때 귀를 기울이는 행위는 자신을 열고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시끄러움과는 다른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우리들 관계가 이렇게 속삭임만으로 유지가 될까. 아니다. 시끄러움도 공존해야 한다.


소설에서 속삭임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시내와 광장에서 자신의 종교를 믿으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수자가 함께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큰소리를 내는 사람도 늘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에게도 속삭이고 싶은 내용이 있고, 그렇게 남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마찬가지로 속삭이는 사람도 늘 속삭일 수만은 없다. 어떤 때는 큰소리를 내기도 해야 한다.


이렇게 이들은 만나서 속삭이기도 하고, 남들에게 지적받을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때 시내의 윗층에 사는 두리가 등장한다. 삶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극도로 소리를 내지 않는, 남들과 어울리지 않는 두리. 하지만 아래층에 사는 시내는 윗층의 소음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이 소리의 원인은 시내가 두리의 집에 들어서면서 밝혀진다.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그러한 소음이라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지내는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소음, 이것은 보통의 시끄러움과 다르다. 우리 삶에서 공존해서는 안 될 요소다. 하여 이들은 힘을 합쳐 쓰레기들을 치운다. 소음을 내는 쓰레기를 치우고 나서 맥주를 마시면서 하는 대화. 


이 대화를 통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들을 각자 깨닫게 된다. 속삭임과 시끄러움 사이. 아니 시끄러움과 속삭임에서 결국 자신을 발견하는 인물들. 그런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 


읽으면서 마음이 따스해진다. 관계란 일방적일 수 없음을. 상대에게 또 자신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을 다해 다가가야 함을. 그렇게 하기 위해선 자신이 쌓고 있는 벽을 허물어야 함을. 


어쩌면 이러한 관계는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보려고 하는 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소설집에 실린 첫소설인 '추운 뺨에 더운 손'을 보면 '마임'이 나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데 보이는 것처럼 연기하는 마임. 이 마임을 통해 서로를 읽어가는 인물들. 그렇게 서로가 만들어가는 관계는 눈에 확 띠지 않지만 '마임'을 하는 사람과 '마임'을 보는 사람이 어떤 공통적인 것을 찾아내듯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될 때 만들어진다.


그러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쁜 무리'는 없다. '아무 사이'도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뿐이다. 이러한 기댐을 깨달아가는 인물들. 소설에서 만날 수 있다. 일곱 편의 소설 모두 이러한 관계들을 중심으로 읽어도 좋겠단 생각을 한다.


끝으로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라는 사람에게서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 살수록 더 희미해지고 미약해지는데 사라지는 나를 붙들어주는 건 늘 내 곁에 있는 함께 희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어느덧 나를 정체화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 또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삶에 대한 의지가 생겼습니다.'(292쪽)


이렇게 이 소설집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 그것이 마임처럼 확실한 실체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 관계 속에서 서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소설이 보여주고 있으니...


최근에 읽은 책에 실린 그림이 생각났다. 각자 존재하지만 또 함께해서 또다른 모습을 만들어내는... 우진영이 쓴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한겨레출판 2025년]에 실려 있는 그림인데(196쪽에 실려 잇다)... '이내'라는 화가의 <기억-마음에 담은 별>이라는 그림이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이 그림이 떠올랐으니... 미술과 소설이 통하는 지점이기도 하겠다. 이 그림 속 원들은 모두 소설 속 인물들이라고 보면 이들이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다른 모습,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생각한다. 우리 삶도 그러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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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받아놓고 천천히 읽는다. 마치 빨리 읽으면 책하고 맞지 않는다는 듯이.


  근본으로 돌아가자. 이 빨리빨리의 세상에서 조금은 느리게 살아도 되고, 눈 앞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세상에서 내가 보지 못하더라도 좋아지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세상을 추구하는 책인데, 후다닥 읽어버리면, 정말, 이 책을 잘 읽는 걸까 하는 생각.


  꼼꼼하게 읽어야 하지만, 천성이 그렇지 못해 그냥 천천히 그러나 꼼꼼하지는 않게 읽는다. 어떤 글에서는 아, 이건 생각 못했네... 하는 내용을 발견하고,(이헌석, '핵산업은 과연 황글알을 낳는 거위일까 - 산업으로서의 원자력을 묻는다'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수원의 2025년 말 기준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사업 부문공사손실충당부채는 1조 4,346억 원에 달한다') 이런, 이런 사실이 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을까 ?


원자력 발전소 수출에 성공했다고,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다고 자랑스레 떠벌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해외사업에서 오히려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고?


여기에 '국내 재생에너지산업은 핵산업에 비해 수출액이 10배 정도 큰 산업이다.'(이헌석, '핵산업은 과연 황글알을 낳는 거위일까 - 산업으로서의 원자력을 묻는다'에서. 26쪽)고 하는데, 정부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핵발전소를 추가 건설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여기에 노후 원자력발전소를 가동 중지시키지 않고 수명 연장을 허가함으로써 계속 가동하도록 한다고 하는데, 그럼 그 비용은 어떻게 되지? 이런 것 저런 것 다 따지면 원자력 발전 수출과 국내 건설이 다르다고 해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안전성 면에서는, 또 폐기물 처리에 관해 들어가는 비용에 관해서는...


이런 내용에다 '용인에 들어설 반도체 산업단지로 인해 원전 15개 남짓의 추가 전력이 필요하게 된 상황'(하승수, '66개의 '밀양'을 만들 것인가'에서. 69쪽)이라는 내용을 보고는, 아이고, 또 송전탑! 밀양 송전탑 건설로 인해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를 그렇게 경험하고도 또! 하는 생각.


도대체 이런 산업이 계속 언급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오히려 그러한 산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하기 때문이고, 장기적인 산업 정책이나 에너지 정책은 성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의 성과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삶보다는 성과를 먼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데,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고... 지역에서 공동체를 꾸려 살아가는 사람들, 다른 존재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실려 있으니까.


그렇게 생명 평화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 평화를 위협하는 경제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러한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각각의 소리가 따로따로 겉돌지 않고 융합이 되어 합창이 되었듯이, 사람을 살리는 경제도 역시 이렇게 사람들이 함께 소리를 내야 함을 이번 호를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번 호 표지에 '사람을 살리는 경제는 가능하다'고 쓰여 있다. 경제가 무엇인가? 영어로 된 말을 들여올 때 한자어로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두 글자를 따와 경제라고 했다고 하지 않는가. 이미 경제란 말에는 사람을 살린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니 우리 지금 경제는 그 말에 충실하기만 해도 된다. 그 점을 명심하기만 해도 사람을 죽이는, 다른 생명체, 또 다른 존재들을 죽이는 경제란 말은 있지도 않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런 경제를 계속 추구한다면? 최근에 읽은 서정홍 시인(농부)이 언급한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에 있는 말을 곱씹어 본다. 정말, 우리 그런 세상을 만들 것인가?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서정홍,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교육공동체벗, 2025년.] 중 '권정생 선생님께'에서. 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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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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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있는 기획이다. 근대와 현대 미술을 이어서 감상하게 하다니... 이 책에 실린 기획 의도를 미술관에서 전시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겠지만.


예술은 독창적이기도 하지만 전통적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실학자인 박지원이 이야기했듯이 법고창신(法古創新)이거나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통하는 분야가 바로 예술이다.


그러니 근대 미술과 현대 미술이 완전히 동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 예술 사조 역시 하나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추구한 것이니. 이런 예술의 흐름과 별도로 개별적인 작가들에게서 연결점을 찾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예술가들끼리는 비슷해지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표절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고. 물론 오마주라고 그 작가를 기리는 작품을 만들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영향을 받더라도 자신의 작품에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도록 한다. 드러나더라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화풍이나 색감, 주제 등에서 영향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작가 자신이 직접 밝힌 경우다. 전혀 교류가 없던 작가들에게서 연결성을 찾아내어 비교하면서 작품을 설명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를 일 대 일로 대응시킨 경우는 더더욱.


그래서 이 책에는 근대 작가 한 명과 현대 작가 한 명을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현대 작가에게 질문하고 받은 내용이 실려 있다. 그 질문 중에 제일 먼저 나오는 질문이 '이 기획을 통해 근대 작가와 연결되었는데, 이 연결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함께 소개된 작가 000을 알고 있는지, 글에서처럼 본인의 작업과 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되는지 궁금하다'이다.


이렇게 24개의 주제로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를 엮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 현대 작가의 인터뷰가 없는 부분이 몇 부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현대 작가에게 질문을 하고 그 답을 받은 내용도 실려 있어 이 책에서 저자가 설명한 부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특이한 점은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를 한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인데, '박서보' 작가는 이 책에서 유일하게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고 있어서 근대 작가 박서보와 현대 작가 박서보로 설명하고 있다.


많은 현대 작가들이 자신과 비교되는 근대 작가를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 기획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서로 연결되기 힘든 작가들을 연결하는 저자의 미술을 보는 눈에 대해서 감탄하게 된다.


전혀 다른 시대, 다른 경향을 지닌 작품 속에서도 연결성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삶 아니겠는가. 늘 같은 듯이 살아가지만 꼭같지 않고 다른 삶을 살아가듯이, 또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듯이, 그렇게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 사이에서 찾아낼 수 있는 연결점을 찾아내어 보여주는 것. 미술을 감상하는 또다른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시대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자신의 삶도 그림 설명 속에 녹여내고 있다. 즉 그림이 우리의 삶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점이 이 책을 읽는데 더 몰입할 수 있게 한다.


많은 작가들, 사실 근대 작가 중에는 처음 이름을 듣는 작가도 있으니, 그러한 작가들의 작품을 이 책을 통해서나마 볼 수 있었다는 점, 비교하는 작품 두 점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보여주고 있어서, 작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한 점 등이 좋은 책이다.


결국 미술은 작가 개인의 독창성이 발현되는 것이지만 작가가 살아온 사회를 벗어날 수 없고, 작가가 존재하기까지의 역사가 작품 속에서 들어가게 된다는 것, 이렇게 근대 미술과 현대 미술은 연결이 된다는 것. 우리의 삶이 계속 연결되어 유지되듯이, 미술도 이렇게 연결되어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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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평범 -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상
장혜영 지음 / 후마니타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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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금지하자는데 반대를 한다.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하면서... 역차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역차별... 이것은 자신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지만 상대는 누릴 수 없는 권리라는 말과 통한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누구는 누리고, 누구는 누릴 수 없는 권리가 무엇일까? 그런 권리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라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는 어떤 사람도 누리지 못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보장하는 법이 차별금지법 아니던가. 


모든 분야에서 똑같은 권리를 달라고 주장하는 법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것, 그런 권리에서 차별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다.


그러니 차별금지법은 이미 누리고 있는 사람에게서 권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권리를 함께 누리자는 것이다. 그런 권리를 함께 누린다고 해서 권리를 양이 줄거나 힘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러한 권리들은 함께할수록 더 커지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의 말처럼 그것을 평범한 삶이라고 하면, 우리는 누구나 평범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하여 제목이 '평등한 평범'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이상함만큼 평범한 것은 없다. 모든 평범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고, 모든 이상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다.'(11쪽)


누구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평범함이다. 이러한 평범한 삶을 누구나 누리도록 하자는 법이 차별금지법이기도 하고.


한데, 차별금지법은 지금도 제정이 되고 있지 않다. 올해 초에 발의가 되었다던데, 상임위에서 심의를 했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지난 19년간 차별금지법은 국회에서 14차례나 발의되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심의되지 못하고 고사했다.'(287쪽)고 저자도 말하고 있으니...


저자가 21대 국회의원이 되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하고, 그에 대한 공부를 하고 또 제정이 되도록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역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가 차별금지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연,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의 과정, 국회의원이 되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어떻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 또 자신이 만난 사람들,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차별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쉽게 설명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저자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 그러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존재들은 누구인지, 또 그들은 어떤 논리를 동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차별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표지에 작은 제목으로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계'란 문장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우리 모두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시설에 갇혀 살아야 하는 현실이 아닌, 특정 성별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추행을 당하는 일, 이주민 또는 난민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일이 없는 세상.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세상, 그러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너무도 어렵다. 국회를 통과하기도 힘들다. 설문조사를 하면 압도적인 다수가 차별금지법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도, 민의를 대변해야 한다는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 심사되지 않고 폐기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서 정치가 중요하고, 정치인을 움직일 수 있는 시민의 힘이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정당을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인이 국민을 제대로 대의할 수 있도록 정치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물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식으로, 정치 개혁 역시 국회의원들에게 맡겨서는 또다른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하여 시민들이 힘을 합쳐 정치개혁이 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저자가 직접 경험한 차별금지법에 관한 과정을 통해 정치 개혁의 중요성이, 정치 개혁을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시민들의 힘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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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 노동인권 변호사가 함께한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
윤지영 지음 / 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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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인사말은 안녕하지 않은 시대에, 상대의 안녕을 바라면서 건네는 말이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으면 예전에 "밤 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있었겠는가?


그러니,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살기가 힘들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우리나라에서, 어떤 노동자들은 성과금으로 수억 원을 받기도 한다는데, 그러한 노동자들이 언론을 장식할 때 그들에 가려진 더 많은 노동자들은 과연 안녕할까?


노동자들이 안녕하지 않은 세상,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법도 만들었지만 여전히 일터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이런 세상에서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이라는 인사말처럼... 정말, 모두가 안녕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하고, 이러한 비정규직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좋지 않은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노동자들도 있으니, 이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안녕하지 못하다.


소년공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고,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고용노동부 장관이 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가려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파업을 하는 순간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선진국이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서 고통받고 있는데, 그들에게 법은 어떠한가? 약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강자를 위한 법 아닌가.


심지어 대형 로펌들이 변호하는 존재는 강한 자, 있는 자이고, 그들은 절대로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법에 호소하는 순간, 노동자들은 대형 로펌, 즉 승소할 가능성이 많은 대형 로펌의 변호를 받지 못하고, 자원봉사를 하거나 공익을 추구하는 변호사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대형 로펌에 변호를 의뢰할 돈을 마련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한데... 반면 기업은 이러한 대형 로펌에 의뢰할 자금이 있으니... 노동관련 소송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처럼 다윗이 이기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는 골리앗이 이기는 현실이다.


물론 능력 면에서 공익변호사들이 대형 로펌에 뒤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더 열심히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신들의 능력까지도 기꺼이 내놓는다. 오히려 이들이 더 능력이 있고, 더 많은 노력을 하며, 열정을 가지고 재판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고질적인 한국 사회의 문제인 학연, 지연에 전관예우라는(법으로 전관예우를 금지한다고 하지만, 전관예우라 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예우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대형 로펌에는 고위직 법조인들이, 또는 관련자들-대기업 임원, 장-차관, 유명 경제학자(경제관료), 경찰 간부 등등이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것 때문에 이들의 노력이 정당한 결과를 낳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한국의 노동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안녕을 위해서 기꺼이 시간과 재능, 노력을 내놓는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들이 있어 안녕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안녕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노동자들을 위한 변호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총 11개의 노동자가 관련된 사건이 수록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어떤 노동자들의 사건인지 보면, 아파트 경비노동자, 핸드폰 판매노동자, 방송국 비정규직 PD, 국가정보원 전산사식 분야 여성노동자, 택시기사, 파견노동자, 현장실습생, 골프장 캐디,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형사 사건, 노동자 손해가압류 사건 등이다. 


이렇게 약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존재들이 있음을, 때로는 법이 이러한 약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음이 나타나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룬 사건들 중에서 노동자들 편이 승리한 경우도 있지만 재판에서 진 경우, 또는 재판을 포기한 경우도 나오고 있다.


재판, 쉽게 말하면 정의를 추구하는 이 과정이 노동자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돈도 돈이지만 엄청나게 길어지는 재판 기간으로 인해 생업에 지장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먹고살 문제 앞에서 재판까지 가기는 많이 힘들다.


이 책의 저자처럼 무료 변론을 해주겠다고 해도, 재판은 노동자에게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거기서 진이 다 빠져버리기도 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이렇게 힘든 과정을 인지하면서도 재판까지 가는 이유는, 노동자 자신의 안녕만이 아니라 노동자들 모두의 안녕을 바라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싸움이 아니라 모두의 싸움이 되고, 그 과정과 결과가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힘들지만 재판까지 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 함께하는 변호사. 소중한 존재다.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변호사가 비단 이 책의 저자인 윤지영 변호사만이 아니라 많이 있음을, 윤지영 변호사가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변호사들의 이름을 계속 언급하는 이유도 노동자를 위한 변호가 자신만의 일이 아니라 법을 통해 살아가는 변호사들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한 노동자들이 승리한 재판 역시 자신의 혼자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변호사-노무사-노동자-언론-그리고 노동자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된 것이라는 점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여 이 책을 읽으며 법조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법(法)이라는 한자어가 물이 간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라면,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러운 것,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곧 법의 정의라는 것을 의미할 텐데...


그렇다면 법조인은 이렇게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돕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즉 물의 흐름을 막는 것들을 치우는 존재, 그런 존재가 바로 법조인이어야 하는데, 과연 지금까지 우리나라 법조인은 그런 존재였던가?


어쩌면 지금까지의 법조인은 (윤지영 변호사와 같은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고 이들은 예외라 할 수 있지만, 대체로 대형 로펌을 비롯해, 정치 검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약자가 아니라 강자의 편에서 판결을 하는 판사들을 주로 지칭한다) 물의 흐름을 오히려 방해하거나 막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 나오는 검사들의 모습, 또 재판장의 모습 속에서 그러한 존재들을 발견하고는, 물의 흐름을 막는 이러한 법조인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법조 개혁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는데...


여전히 한국의 노동자들이 안녕하지 못한 현실,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노동자였던 사람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금 이 시대, 이제 사람이 아니라 사회분위기로 또 제도로 노동자들이 안녕할 수 있는 우리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이다.


저자의 이 말이 실현되는 한국이라면 정말 노동자들이 안녕한 세상이지 싶다.


'노동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 일하다 죽음에 내몰리지 않는 세상, 헌법에 있는 권리를 누구나 누리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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