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정치, 일상의 민주주의"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사실 청소년들에게 지금은 살아있는 정치 수업의 장을 제공하는 시기이리라.

 

  정치에는 신경 끄고 공부에만 신경쓰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결과가 무엇인가.

 

  정치의 농단으로 나타났으며 수많은 죽음으로 나타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민들레 이번 호의 거리의 정치, 일상의 민주주의라는 제목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살아 있는 배움의 장이 펼쳐지는데, 여기서 각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목소리들이 서로의 말들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생각할 만한 사례가 있다. 이 책에 실린 하승우의 글이다. 브라질과 스페인의 사례를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간 사람의 모습. 지금 우리도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함께 논쟁하고 토론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모습이 정치를 변화시킨다. 그것이 광장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치에 대해서 이번 호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정치와 교육이 따로 떨어져 갈 수 없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고.

 

여기에 민들레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지니고 있는 대안교육, 또 대안적인 삶에 대해서도 많은 글들이 있다. 한 편 한 편 읽어가면서 그런 사례들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말, 역사의 한복판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그 한복판에서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인해 역사는 진보하게 되어 있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 민들레 108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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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굴라.오해 알베르 카뮈 전집 1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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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계속 읽어가고 있는 카뮈의 작품들 중에서 이번엔 희곡이다. 젊은 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 전에 카뮈의 '정의의 사람들'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방인'이나 '페스트'라는 학교에서 들었던 작품 이외에 내가 처음으로 읽은 카뮈의 작품이 아마 그 작품일 듯하고, 그래서 카뮈의 소설 말고도 희곡도 읽을 만하다는 생각을 계속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 읽은 두 편의 희곡 중에서 '칼리굴라'는 그다지 감흥이 오지 않았고, '오해'는 엇나가는 운명에 대해서, 인간들의 삶이 이토록 엇나가고 있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서 괜찮은 편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로마의 황제 칼리굴라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다. 그가 폭군이었다는 것, 그래서 쫓겨났다는 것, 그것이 전부 다다. 이 희곡에서 그가 폭군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런데 어떻게 폭군이 되었나 하는 것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희곡이 아닐까 한다.

 

로마의 황제, 절대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 그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단 하나만 빼고. 그것은 바로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 그 진리 앞에서는 황제라도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면 절대권력의 소유자에게도 자유란 완전하지 않다는 말인가?

 

여기서 '달을 따다 달라'고 하는 말은 결국 소유할 수 없는 진리를 개인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 이 욕망은 바로 죽음을 자신이 조종하려는 마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죽음마저 조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자유에 이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칼리굴라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누구라도 그렇게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차피 막지 못할 죽음을 자신의 뜻대로 해보려 하는 것. 이때부터 궁정에는 피바람이 분다. 그는 죽음의 본질은 어쩌지 못하니 다른 사람의 죽음을, 즉 다른 개체의 죽음을 자신이 조종하려 한다.

 

또한 자신의 죽음에서도 한 발 물러나 있기도 하다. 암살 기도를 알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 죽음을 조종하려는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여기서 부처가 생각났다. 부처 역시 절대권력을 쥘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 그는 진리를 깨우치려고 한다. 그는 절대로 진리를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깨우치려 할 뿐이다. 여기서 칼리굴라와 부처의 길이 달라진다.

 

부처의 깨달음, 그 깨달음 뒤의 자유, 그것은 죽음조차도 넘어서는 자유다. 그러니 부처는 진리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도달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람들에게로 그 진리의 세계를 가지고 온다.

 

'옛다, 여깄다' 하고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도록. 스스로 깨우침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님으로. 그 깨우침으로 죽음을 넘어서도록 안내자가 된다. 칼리굴라는 죽음으로 이끄는 안내자라면 부처는 죽음을 넘어서게 하는 안내자다. 이렇게 다르다. 이런 점을 중심으로 읽긴 읽었는데...

 

그렇다면 '오해' 역시 '죽음 앞에 선 인간'-필립 아리에스의 책 이름이기도 하다- 이다. 오해로 아들과 오빠를 죽인 여인숙 주인들. 그러나 이런 오해는 운명 앞에서 서로의 말이 빗나가는 데서 나온다.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말의 비틀림.

 

말은 진실에 한 발 다가서기도 하나 자꾸만 그 자리에서 어긋난다. 서로의 마음을 열어주는 말들이 아니라, 서로가 알아주길 바라는 말들일 뿐이다.

 

즉, 내 감정의 진실을 담아 전달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방이 내 진실을 알아주길 바라지만 미끄러지는 말을 하고 만다. 이 미끄러지는 말들 속에 사람들의 관계가 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이렇듯 말들이 미끄러지고 만다면 진실한 관계에 이를 수가 없다.

 

좀더 크게 보면 죽음 앞에서 인간들은 진실한 말들을 주고 받아야 하는데도 자꾸만 말을 비트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진실을 담지 않고서도 남들이 진실을 알아주기만 하는 말들. 그런 말들은 기필코 오해를 부른다. 그리고 오해의 끝은 죽음이다.

 

이런 파멸적인 관계로 치닫는 말들... 마지막 장면이 계속 마음에 울린다. 마음을 받아주는 말들이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슬픔에 가득 차 있는 마리아에게 하인이 하는 말, '아뇨.'

 

소통하지 못하는 말들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걸 희곡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카뮈는. 그런 생각을 하게 한 희곡 '오해'였다. 

 

희곡이라는 글의 특성 상 무대에서 상연될 것을 전제로 쓰여졌기에, 대사가 많으니 그 대사를 중심으로 읽어가면 빨리 읽게 된다. 그러나 빨리 읽으면서도 지시문에 있는 내용들을 머리 속에서 상상해내야 하기 때문에, 읽어가면서 연극의 장면처럼 머리 속에 내용을 떠올리며 읽게 된다. 그것이 희곡을 읽는 매력이기도 할 것이다.

 

아마, 직접 연극으로 보면 또다른 감흥을 맛볼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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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6-12-22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뮈 희곡 중에 칼리큘라는 많이 들어본 거 같아요.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서평을 읽는 동안 한번쯤 꼭 접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해도 마찬가지구요. 좋은 서평 잘 읽고 갑니다.

kinye91 2016-12-22 09:41   좋아요 1 | URL
저한테 그렇다는 얘기니까요.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다른 느낌이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봄에 피었던 꽃이 겨울에 다시 피다

 

봄에 피었던 꽃이

가을에 겨울에 다시 피었구나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던 꽃이

뜨거운 열기를 전해주러 다시

광장 한복판에 피었구나


발갛게 세상을 밝히던 꽃이

세상이 더위에 헉헉거릴 때

땅 밑에 그 열기를 담아두고

세상이 추위에 덜덜 떨 때

다시 길가에 피어나는구나


4월의 바다 속에서

5월의 함성 속에서

6월의 승리 속에서

다시 우리 곁에 온

밝음과 뜨거움을

우리가 어깨를 걸고

손에 손을 잡고 피우고 있구나


세상이 얼어붙을 때 다시

세상을 녹이려 하는구나


봄에 피었던 꽃이

겨울에 다시 피는구나


꽃은 

겨울을 위해 졌던 거구나


겨울에 우리들 손에서 피어나려고

그 화사했던 봄에

졌던 거구나


이렇게,

겨울 광장에 밝고 따스한

꽃으로 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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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가 들려주는 문화 이야기
전세화 지음 / 예경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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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이런 말이 있었다. 연예인의 인기도를 알려면 광고를 보면 된다고. 즉, 광고에 얼마나 출연하느냐가 인기의 척도라고.

 

그만큼 광고는 유명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꼭 연예인만이 아니다. 유명인이면 광고에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유명한 만큼 광고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쉽다는 이유였으리라.

 

그렇다고 유명인이 나온다고 모두 그 광고를 보고 제품을 사지는 않는다. 아니 꼭 광고만 보고 제품을 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광고를 통해서 제품에 대해서 인지하게 되면 아무래도 제품을 구입할 때 참조하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서 어떤 것을 구매해야 한다면 많이 들어본 것, 아는 것에서 선택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광고에 그만큼 투자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광고기획자들은 소비자들에게 호기심과 흥미를 줄 만한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지나치는 광고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흥미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는 그 시대의 문화를 따르거나 또는 그 문화를 토대로 넘어서는 무엇을 제시해야 한다.

 

그냥 자기 멋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과 장소에 맞는 광고를 기획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당시 유명인을 출연시킨다든가 또는 문화적 공통성이 있는 광고를 만든다든가 아니면 그 시대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이게 무슨 광고인가 생각하게 하는 광고를 만들기도 한다.

 

어떤 형태로든 소비자의 눈을 잡아야 한다. 눈을 잡고 마음에 닿게 해야 발을 이끌 수 있고, 광고된 제품을 손에 잡히게 할 수 있다.

 

그러니 광고에는 그 시대의 문화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광고를 보면 그 사회의 문화를 알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광고를 보아야 할까? 이 책은 2004년까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광고들, 해외 광고제에서 수상한 작품들과 우리나라에서 펼쳐진 광고들을 대상으로 광고 읽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냥 광고를 아무 생각없이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광고의 이면에 숨겨 있는 문화까지 읽어낼 수 있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 광고가 나왔는지, 그 광고가 의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 광고에서 사용한 방법이나 의도는 무엇인지를 기존의 광고를 중심으로 해설해주고 있다.

 

따라서 광고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그 광고의 문화적 맥락을 읽어내는 재미도 있다. 그런 재미를 통하여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광고를 더 넓고 깊이있게 만날 수도 있고.

 

광고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그 광고를 능동적으로 읽어내려고 하는 사람을 위한 광고에 관한 책이라고 보면 된다.

 

이 광고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구나, 이 광고에는 이런 문화가 깃들어 있구나 하면서, 광고가 이렇게 변해왔구나까지... 그렇다면 지금 나오는 광고는 이런 맥락에서 이런 문화적, 사회적 상황에서 나오는 거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 소비자가 되기 위한 광고 읽기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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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나카노 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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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관한 책은 재미있다. 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림을 통해서 화가의 삶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림을 통해 그 당시의 사회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가의 삶과 당시의 사회, 역사를 만난다는 것, 그림을 통해 통합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와 상통한다. 여기에 미적 감상을 통해 감수성을 키울 수도 있으니, 인문학도 이런 인문학이 없다.

 

단순한 그림의 역사와는 다르게 책을 신과 왕, 그리고 민중의 3부로 나누어 그림의 역사를 알 수 있고, 그림들이 사회적 변화에 어떻게 맞물려 변하는지도 알 수 있게 해주었지만, 그 시대에 유행했던 미술사조로 국한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한 사람에게서는 딱 하나의 특징만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특징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여러 특징들 중에서 화가의 말년에 또는 맨 마지막 그림에 나타난 정신, 기법, 모습, 사회, 역사 등을 고찰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다고 화가의 마지막 그림만 나오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화가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그림도 나오며, 그 화가의 생존시에 유명했던 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따라서 읽다보면 자연스레 미술사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편제를 신과 왕, 민중으로 한 이유도 그것이다. 또 등장하는 화가도 연대순으로 배치하여 자연스레 미술사를 익히게 된다. 여기에 화가의 삶을 통해서 단 하나의 사조가 아닌 여러 사조가 그의 그림에 나타남을 보여주기도 하고.

 

먼저 화가와 신 편에는 보티첼리, 라파엘로, 티치아노, 엘 그레코, 루벤스가 나온다.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음 직한 화가들이다. 그들의 대표작도 직접 미술관에서 보지는 못했더라도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았을테고.

 

이들이 말년에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그때의 상태는 어땠는지, 특히 보티첼리 같은 경우는 화려하고 기교가 넘치는 그림에서 그 기교를 쪽 뺀 그림이 말년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들어 한 화가에게 공존하는 여러 모습에 대해, 화가를 한 유파로만 정리해서는 안됨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화가와 왕 편에는 벨라스케스, 반다이크, 고야, 다비드, 비제 르브룅이 나온다. 소위 궁정화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그림에 궁정의 모습이 많이 나오는 것은 그들이 속한 지위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 나름대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으며, 고야의 경우에는 어느 하나로 국한시킬 수 없는 다양한 그림들이 나오고 있다. 그 점을 볼 수 있는 장인데... 비제 르브룅이란 작가에 대해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 고맙다.

 

궁정화가가 되어 마리 앙투아네트의 화가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여성 화가. 당시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음에도 자신의 실력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날렸던 화가.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어느 부인의 초상'도 그의 그림이라고 하니, 편견을 딛고 우뚝 선 화가라 할 만하다.

 

또한 이들로 인해 왕가의 사람들이 역사에 남았다는 사실, 별 볼 일 없는 왕이나 왕족이 이들의 그림으로 영원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당시에는 왕가가 갑이었겠지만, 지금은 화가들이 갑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로 남기도 한다.

 

마지막 편인 화가와 민중에서는 브뤼헐, 페르메이르, 호가스, 밀레, 고흐가 나온다. 이제는 시민사회가 시작되는 것이다. 시민들의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그림도 변한다. 궁정화가들의 시대는 끝났고, 시민화가들의 시대, 시민들에게 그림을 팔아야만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 그들이 그릴 수 있는 작품은 시민들의 의식에서 관심에서 멀리 벗어나면 안 된다. 그렇게 그림은 시민사회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 활약했던 화가들 중에 몇 사람을 뽑아 그들 그림의 마지막 작품에서 작가의식과 사회를 읽게 해주고 있다.

 

얼마나 다양한 그림들이 나오는가. 얼마나 다양한 기법과 소재가 동원되는가. 이제 그림은 어느 한 분야로 국한되지 않는다. 화가에 따라 수천 수만의 그림이 나오게 된다.

 

이런 식으로 흥미롭고 재미있게 책을 읽어가는 중에 그간에 읽었던 미술사에 관한 내용들과 더불어 새롭게 한 화가에게 들어 있는 많은 특성들을 읽어가게 된다. 더불어 그 시대의 특성 등도 함께.

 

그러니 단순히 그림만을 감상하는 책이 아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화, 적응해 가는 예술에 관한 책이다. 그것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 어떠해야 하는 것과도 통한다. 너무도 난해해지는 현대미술이지만, 언제까지 난해할 수만은 없다.

 

난해함 속에서도 사람들 곁으로 다가오는 미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사조가 역사 내내 지속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 우리 시민들 속으로 들어올 예술은 어떤 예술일까, 그런 생각도 하게 한 책이기도 하다.

 

풍부한 그림을 통해 눈요기도 맘껏 하고, 다양한 삶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기도 하고,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화가의 모습을 통해 시대와 예술가에 대한 공부도 하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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