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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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속도가 있을까? 속도는 이동이다. 단지 공간만이 아니라 다른 것에도 속도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속도는 움직임이다. 그런데 어둠이 움직임일까? 어둠은 정지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 소설을 읽다가 어둠도 움직임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둠이 그냥 오지 않으니까. 어둠은 빛과 상반되어 나타나니까. 그런데 빛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어둠을 인식해야 하니, 소설의 인물이 말한 것처럼 어둠의 속도가 빛보다 빠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어둠을 비유로 쓰면? 안 좋은 것을 어둠이라고 한다면 안 좋은 것은 좋은 것보다 빠르다? 그럴 수 있을까? 부정을 어둠이라 한다면 부정은 긍정보다 빠르다? 어둠을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보면 밝혀지지 않은 것은 밝혀진 것보다 늘 앞에 있다. 


우주는 암흑으로 가득차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빛을 본다. 빛을 보면서 어둠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미 와 있는 존재인 어둠이 우리의 인식에 들어오려면 빛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는 무엇일까? 정상을 빛이라고 하고 비정상을 어둠이라고 한다면, 비정상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정상을 생각할 수 있나?


정상 가족이라는 말은 비정상 가족을 상정하고 하는 말일 테니, 이미 존재하는 것 중에서 정상이라는 말을 한다면 다른 것들은 비정상이라는 개념에 갇히고 말 것이다.


하여 요즘엔 정상 가족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 한다. 가족의 다양한 형태일 뿐이라고... 수많은 가족의 형태가 있을 뿐인데, 그 중 어느 가정의 유형을 정상이라고 하면 나머지는 비정상이 되어 버리니까.


가정이 그렇다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정상인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비정상인이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보면 사람을 틀지우게 된다. 이 틀에 맞지 않으면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났다고...


그런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정상의 범위에 들어오게 해야 한다고... 그들의 어둠을 빛으로 사라지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눌 수 있을까?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빛과 어둠이 함께 있는 곳, 우리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우주의 대부분이 암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람은 그만큼 어둠 속에 있다고, 먼저 그러한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그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빛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이 어둠을 안 좋은 쪽으로, 바꿔야 하는 쪽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오히려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면서 그 다양함에 감탄해야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다.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 그런 사람인 루 애런데일을 서술자로 선정해서 소설을 이끌어 간다. 


덕분에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의 사고 방식으로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가 의미 없이 하는 말과 행동들이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돌아보게 된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내 틀에 집어넣고 그 틀 속에서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는지,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틀을 지니고 살고 있음을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루 애런데일을 따라가면서 사람들은 각자 고유한 자기들의 삶을 살고 있음을,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함을 생각한다. 그들을 치료할 기술이 나왔다고, 임상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때도, 외부에서 당신들은 치료를 받아야 해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올리려는 회사(관리자)와 치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인들의 고민, 그리고 선택. 


그의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옳지 않았는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는 변화의 갈림길에서 자신이 길을 선택했다. 그것이 과거와는 다른 자신이 될지라고 그 선택은 존중되어야 하고, 알지 못했던 어둠을 향해 자신이 스스로 나아갔다. 


이런 루 애런데일을 따라가면서 흥미롭게 읽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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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삶이 보이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인간은 예측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낀다. 그러한 불안감은 생활을 안정되게 하지 못하는데...


예측 불가능이 아니라 예측 가능하게 하는 것. 이렇게 하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된다는 믿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생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창의적인 활동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면 마음껏 도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음껏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고, 그러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이 보이는 삶 아닐까.


삶이보이는창을 읽으면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들 역시 삶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만, 낙관이다. 좋아질 거라는 믿음. 적어도 삶이 보인다는 믿음을 보이는 사람들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그래서 읽게 된다. 앞이 안 보인다고, 삶이 막막하다고 할 때도 창이 있다고, 문이 있으니 열고 나오라고, 우리는 살 수 있다고, 생존을 넘어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고 있으니. 또한 그런 삶을 보여주고 있으니.


우리 사회 각지에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할까. 고민에 빠져 있을 때도 그것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것이 돈이 많이 드는 일도 또 우월한 누군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서 좋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바로 삶이 보이는 사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번 호에서 '물구나무종과 권영국'이라는 글을 읽어보라. 거꾸로 된 세상을 보는 법. 거꾸로 서서 보는 것. 


꼭 거꾸로 설 필요는 없다. 다만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는 있다. 주어진 것을 주어진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볼 수도 있음을, 그럴 때 세상이 더 바르게 보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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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틱톡 - 완역본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8
L. 프랭크 바움 지음, 존 R. 닐 그림, 최인자 옮김 / 문학세계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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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인간 세계의 소녀. 도로시와 비슷한 나이. 노새와 함께 오즈의 나라로 가게 된 벳시. 벳시는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 나선 털북숭이 노인을 만나고, 허황된 세계 정복의 꿈을 꾸던 우가부 여왕 앤, 그리고 무지개 딸인 폴리크롬, 여기에 틱톡과 함께 모험을 하게 된다.


전 편보다 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내용은 동일하다. 모험은 사람을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만드니까.


이번 편 제목에 틱톡이 등장하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여러 명이다. 물론 벳시라는 소녀가 중심이 되지만. 마치 도로시가 모험을 겪은 것과 비슷한 모험을 벳시 역시 겪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벳시와 도로시가 만나고 이들은 모두 오즈에서 살게 된다.


이번 편에서는 황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털북숭이 노인의 동생을 통해서 알려준다. 보물숲에 갇혀 있지만 황금들보다는 살아있는 나무들이 더 소중하다는.


또한 놈 왕이었던 루게도의 최후를 보아도 그렇다. 그에게 보물을 한껏 가져가게 하지만 그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한정된 것. 또한 보물은 영원할 수 없기에 루게도는 놈 왕국에 남아서 살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니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황금과 같은 보물이 아님을 이번 편을 통해서 알 수 있겠고, 그러한 행복은 결코 정복을 통해서, 또는 전쟁을 통해서 얻어질 수 없음을 앤 여왕을 통해 깨달을 수 있게 된다.


평범한 사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진정한 권력자라는 사실을 티티티 후추라고 불리는 진진 왕을 통해 말해주고 있는데... 왕과 여왕이 아니라 시민이 바로 티티티 후추이고 그는 공정한 판단을 내린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우리나라 헌법 조항도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은 시민이 쥐고 있다는 것을 직접 말하고 있는 이번 편은, 오즈마 공주가 다스리는 오즈와는 좀 다를 수 있지만, 권력의 문제를 다른 편에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여기에 티티티 후주가 하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법과 정의가 서로 충돌할 때면, 법을 무시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일 것이오.'(120-121쪽)


여기에서 법이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 법은 한 시대에 맞는 정의였겠지만, 정의는 고정 불변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 거기에 맞춰 법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모든 법은 그렇다. 법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가장 정의를 잘 반영하고 실현하는 조항이었을 터.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면 법도 달라져야 한다. 과거의 법을 가지고 현재의 정의를 판결하면 안 된다.


법조문에 얽매여서도 안 된다는 말이 되는데... 문구 그대로만 해석하고 판결하는 사람이 법관이라면 지금 이 시대에는 그런 법관은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수많은 판례들을 입력하면, 그에 맞춰 또는 가장 유사하게 인공지능이 판결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관은 그러면 안 된다. 법관은 법과 정의 사이에서 발전하는 가치, 지나간 과거가 아닌 다가올 미래에 필요한 정의를 법이 실현할 수 있도록 법 조항을 해석하고 판결해야 한다. 법이 과거에 매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법관의 역할이고, 오즈의 마법사 8편에서 티티티 후주는 이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번 편에서는 벳시의 모험을 통해서 법과 정의, 그리고 삶의 행복은 황금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자, 다음 편에서는 어떤 가치를 발견하게 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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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습격 -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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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편안함을 추구한다. 불편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없다. 가능하면 편리한 쪽, 편안한 쪽을 선택한다. 2퍼센트라고 하던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있을 때 계단을 선택하는 사람의 비율이. 그만큼 사람들은 편안함을 선택한다.


지금 우리의 생활을 보라. 얼마나 편안함을 추구하는지. 사람이 직접 하던 일들을 기계에 맡기려 하는 것도, 하다못해 운전조차도 자율주행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도 편안함을 추구하는 일다. 예전에 빨래를 손으로 하던 것, 수도가 없을 때 물을 길으러 먼 길을 가거나 또는 펌프로 물을 뽑아 쓰던 것들을 지금 하라고 하면 다들 손을 내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편안함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다면... 각종 성인병이 이러한 편안함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이 책의 제목과 같이 '편안함의 습격'이라고 할 수 있다. 


편안함을 추구한 것이 결국은 우리를 해치는 결과를 낳고 있는 현상. 이 책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추구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저자의 경험과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이 책에서 잘 버무리고 있는데... 그냥 자신이 경험한 다큐멘터리로 읽어도 좋지만, 그 사이사이 자신의 경험을 뒷받침해주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있어서 객관성도 확보하고 있다. 물론 이 객관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저자는 알래스카로 순록을 사냥하러 떠난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 달 넘게... 극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 우선 몸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어떻게 몸을 만들까? 단순히 근육을 키우는 쪽으로, 지구력을 키우는 쪽으로?


이렇게 몸을 만드는 현대적인 방법이 많은데,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단순하다. 과거로 돌아가자. 그렇다고 과거의 생활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사람들처럼 스스로 자기 몸을 움직이고 자연과 접촉하는 시간을 늘려가자는 것이다.


걷고 움직이고 자연을 접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등등. 책의 앞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최근에 쏟아진 증거들은 옛날 옛적 조상들이 겪었던 것과 꼭같은 불편함을 경험하면 모든 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나은 상태가 된다고 밝히고 있다. 육체적으로 튼튼해지고, 정신적으로 강인해지고, 영적으로 건강해진다.' (20쪽)


이 문장을 보면서 어떤 증거들? 어떻게 제시하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것은 책을 읽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알래스카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단계부터 가서 경험하는 일들 사이사이에 이러한 증거들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직접 전문가들을 만나서 인터뷰한 내용을 알려주는데, 이것이 딱딱하지 않고 생활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고요한 적막의 세계에 도달했을 때 우선은 두려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여기서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알려주고 있으며, 배고픔이 우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또 자주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 우리 건강에 도움이 되는 점,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삶에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직접 알래스카에서 순록을 사냥하는데, 멀리서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사냥감과 가까이에서 직접 그들을 느끼고, 또한 사냥 이후에 그 결과물을 직접 지고 나르는 장면, 그러면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고 우리가 그동안 잃은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으니...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편안함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동안 편안함에 빠져 불편함을 죄악시했었는데, 그러한 불편함의 죄악시가 오히려 내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했으니.


이 책에서는 어려운 운동을 소개하지 않는다. 최신 건강 기법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냥 단순한 방법, 누구나 돈도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을 알려준다. 그것은 불편함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가령 어디로 갈 때 자동차로 이동하기보다는 걸을 수 있는 거리면 걸어서 가라는 것, 걷되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곳을 통과하면 더욱 좋다는 것. 여기에 자신이 먹는 것을 그대로 기록해 보라는 것.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루에 섭취할 수 있는 칼로리만큼만 먹는 연습을 하라는 것. 어떤 음식이든 좋다고, 다만 정량을 지키라고. 여기에 편안 의자에 앉거나 소파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다른 방법으로 앉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고 한다.


이런 방법들을 보면 옛날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다. 무거운 것을 지고 이고 먼 거리를 이동할 수밖에 없었으며 편안하게 앉거나 누워서 쉬는 시간보다는 움직이는 시간이 더 많았다는 것(물론 자는 시간은 제외하고, 깨어 있는 시간에), 자연과 늘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 그리고 죽음이 늘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


책의 마지막에 가면 위생적인 삶이 과연 우리들의 건강에 좋을까라는 다소 동의하기 힘든 주장도 하지만 우리 몸에 있는 수많은 균들이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러한 균들을 항생제로 모두 없애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는 일이니...


이렇게 알래스카에 가기 전, 가서 순록을 사냥하고 고기를 먹기까지의 과정, 다시 돌아와서 겪은 일까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여기에 불편함이 우리 삶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주장하고 있다.


왜 편안함의 습격인가? 편안함은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쉬운데, 편안함에 안주하면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 적당한 불편함이 우리를 더욱 건강하게 한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과 여러 증거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각종 편안함으로 무장한 또 더더 편안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생활태도에 대해서 뒤집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하는 책이다.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 이 책을 읽으면 정말 좋을 것이다.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그냥 지금 당장 여기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건강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으니 말이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사람도 읽으면 좋겠고... 스마트폰이나 더 많은 현대의 편리, 편안함 속에 다른 경험을 해보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보다는, 이것들 없이 모험, 어려움을 겪고 자란 아이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테니, 그것에 대한 과학적, 의학적 증거를 제시한 이 책은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자신의 경험에 전문가들의 증거를 책에 잘 녹여냈기 때문에 딱딱한 건강 관련 서적, 또는 과학서적을 읽는 느낌을 주지 않고 그냥 모험을 엿보는 느낌을 주면서도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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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드라마 - 너무 가까워 낯설게 만난 당신 인생의 이야기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 후마니타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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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손을 내민다. 말을 해보라고.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묻혀질 뻔한 삶들을 글로 살려내겠다고. 홀로인 삶이 아니라 함께인 삶으로 나아가자고.


'구술생애사'는 이렇게 우리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누구의 삶을? 이미 앞에 나선 사람들의 삶이 아니다. 많이 알려진 사람들의 삶도 아니다.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글로 남기려는 행위다. 우리는 누구나 한번뿐인 삶을 살고, 또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자신의 생애를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의 삶은 기록으로 남고, 누구의 삶은 기록할 가치가 없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글이 기득권을 보여주는 존재였다면, 반대로 글은 기득권을 해체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구술생애사는 그렇게 기득권을 깨는, 우리의 삶이 모두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는 실천이다.


'6411의 목소리'라는 것이 있다. 남들처럼 유명하지 않아도 권력을 쥐고 있지 않아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지배-복종의 사회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잃어버린 목소리들을 찾아야 한다. 찾아줘야 한다가 아니라 찾아야 한다. 그런 찾는 행위가 바로 '구술생애사'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 이야기되지 않는 삶은 없다. 다만 자신이 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다보면 하나 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런 이야기들이 넘치면 특정한 이야기가 권력을 휘두를 수 없게 된다. 글이 말에게 손을 내밀고, 말이 다시 글과 손잡고 다른 말들을, 글들을 이끌어내게 된다.


뒤에 감춰져 있던, 또는 드러나지 않았던 삶들이 말을 통해서 앞으로 나오게 되고, 이것이 글을 통해 기록으로 남아 우리에게 전달이 된다. 우리는 그 삶들을 읽고 들으며 그들이 내민 손을 맞잡게 된다.


손과 손이 맞잡고 함께하는 일, 이것이 바로 연대다. 이러한 연대는 평등한 관계들에게서 일어난다. 따라서 이 책은 평등한 사람들의 연대를 꿈꾸는 책이 된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삶이 그 사람만의 삶으로 끝나지 않음을, 내 삶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내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이야기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함께하게 된다. 그러면 특정한 이야기가 설치는 일은 사라진다.


노회찬 재단의 기획으로 이루어진 이 작업은 '6411의 목소리'의 연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만민보'라고 우리 사회 각층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앞에 있던 삶들이었다면, 이 책은 아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삶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그런 삶들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들이 늘 뒤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책에 기록이 되든 되지 않든 이들 역시 자신의 삶에서 앞에 선 사람들이다. 그런 삶을 다시 글로 우리에게 보여준 것뿐이다.


그러니 뒤에 있던 삶이라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삶이라는 뜻이지 이들의 삶이 뒤처진 삶이었다는 말이 아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앞에 서서 삶을 살았다. 다만 그것이 권력을 지향하는 삶이 아니었을 뿐이지.


소중한 삶들을 이 책을 통해서 만났다. 아직까지도 이들이 겪었던 일들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기도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해 우리는 계속 나아가고 있다.


이런 작업을 한 노회찬 재단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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