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


  그릇을 굽는 도구. 실용적인 그릇부터, 예술 작품이 되는 도자기까지.


  뜨거운 가마 속에서 흙은 작품이 되어 나온다. 우리 삶에 다가오게 된다.


  가마는 그래서 미래를 품고 있는 상자다. 판도라의 상자에는 온갖 것이 들어 있다고 했는데, 그 상자에는 이미 완성된 것들이 들어 있을 뿐이다.


  물론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판도라의 상자는 인간에게 좋은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인간을 벌하기 위해서 보낸 상자니까. 그것을 열면 온갖 것들이 나오지만, 그 중에는 안 좋은 것들도 꽤 많았다고.


하지만 가마는 아니다. 가마 속에는 완성되지 않은 것들이 들어간다. 미래를 품고 있는 것들이 가마 속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만들고 나면 그때서야 가마 밖으로 나온다. 완성되지 못할 것들은 가마 속에서 깨져버리거나, 나오자마자 폐기되고 만다. 판도라의 상자와는 다르다. 가마는 우리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들을 내보낸다.


이러한 가마를 우리 인생이라고 하자. 인생살이를 시로 소설로 수필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글로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말로 표현을 한다. 우리의 삶이 가마라면,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흙을 가마에 넣어 무언가를 만들어내 밖으로 내보이는 것과 같다.


어떤 가마는 아주 높은 열로 빠른 시간 안에 흙을 구워 내보내지만, 어떤 가마는 약한 열로 오랫동안 흙을 구워 내보낸다. 어떤 것이 더 좋다 나쁘다 할 수 없다. 가마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의 특성에 따라, 또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


이 시집은 시인이 삶 속에서 굽고 굽고 또 구워서 드디어 내보내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삶 속에 넣고 이리저리 만지고 또 만지고, 열을 가하고 또 가하고, 드디어 이 정도면 되었다 싶을 때 꺼내놓은 시들.


그래서 [60년의 가마를 열다]는 시인이 살아온 생애를 글로 풀어내다라고 할 수 있다. 시집의 첫시가 '60년의 가마'다.


 60년의 가마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조심스레 미루어 추측해 본다

어느 순간 이 세상의 부름을 받았고

그로부터 태동이 시작되었을 게다

세상의 시계 소리를 귀담아들으며

인간 면모를 갖추는 연습했을 거다


이것은 나와 아주 가까운 그 누구도

내게 눈치로도 알려준 적 없어

내가 여태껏 짐작해낸 것뿐이다

어떤 그릇이 될 거라는 그림도 없이

처음엔 순수한 채 투박한 토기처럼

점차 빛나는 도자기를 빚어내려 했었다


36.7 인간 세상의 가마에서

60년 시간 담금질로 구워낸 그릇들

설렘을 안고 맞선을 보이려 합니다


조이섭, 60년의 가마를 열다. 그림과 책. 2021년. 16쪽.



이 시집의 서시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시인은 자신의 인생을 드디어 가마 속에서 꺼내어 보여주기 시작한다. 자신이 겪은 일들, 감정들을 시로 만들어 가마 속에서 꺼낸다.


시집을 통해 우리는 가마 속에서 나온 시인의 삶을, 시인의 그릇들을 만나게 된다. 차분히 하나의 인생이 가마 속에서 어떻게 빚어지고 달구어졌는지를 이 시집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내 인생을 가마 속에서 어떻게 굽고 있는지 생각한다. 나 역시 가마 속에 삶이라는 흙을 넣고 지금 굽고 있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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