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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자신의 부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려는 부자가 나온다. 그의 행동은 이해받지 못하고, 오히려 정신병자로 오인받을 수도 있다. 여기에 변호사가 나온다. 악덕 변호사라고 할 수 있지만, 글쎄? 변호사라고 다 선량한 사람은 아닐 터. 오히려 돈을 위해 복무하는 인간이 변호사일 수도 있으니... 돈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돈을 목적으로 변호하려는 인물을 악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당연한 미덕?
신에게 축복을 받았는지 현세에서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현세에서 잘사는 것이 바로 신이 내린 축복의 증거라고 하는 종파도 있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죄인인가? 참.
하여간 자신의 노력도 없이 물려받은 부가 축복일까? 그것을 자신의 능력인 양 또는 축복인 양 아무런 거리낌 없이 누리는 것이 좋은 모습일까?
노블레스 오블리쥬라는 말을 귀족들에게만 써서는 안 된다. 현대판 귀족은 바로 자본가들 아닌가. 굳이 자본가가 아니어도 수십 억 연봉을 받는 사람들(수십 억? 그들에게는 부자 축에도 못 드는 돈이겠지만, 대부분 보통사람들에게는 엉청난 돈이다. 해마다 수십 억을 벌 수 있다는 것은)은 자신에게 그러한 돈이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 현대판 '노블레스 오블리쥬' 즉 '기부 문화'다. 내가 가진 것을 남과 함께하겠다는 실천, 그것이 기부다. 기부를 통해 부를 어느 정도 나누는 것, 돈이 없어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 그것이 가진 사람들이 지녀야 할 덕목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99개 가진 사람이 1개 가진 사람의 것마저 갖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또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으니, 돈이 돈을 먹는 사회에서 그러한 기부를 실천하고 사는 사람은 보편적이지 않다.
기부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기부가 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특별한 경우로 취급되기 때문인데...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일상의 모습이라면, 기부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부하지 않는 사람이 신문에 실리는 사회가 되겠지.
그런 사회가 유토피아일까? 내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남과 함께하는 사회. 유토피아일 수 있다. 꿈에 있는 사회,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 능력주의라는 말이 유행하는 지금, 돈은 내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에, 현실에서는 더더욱 나누는 사회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만약 그런 사회가 이루어지려면 논쟁이 되고 있는 '기본소득'이 게으름뱅이를 양산한다는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 소설, 바로 이러한 점을 다루고 있다. 엄청난 부자. 그러나 자신의 부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람. 상류층의 문화 속에 살기 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고민을 듣고 적당한 돈도 주면서 사는 사람, 엘리엇 로즈워터. 그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엘리엇의 대척점에 있는 또다른 프레드 로즈워터는, 보험판매원으로 상대방이 죽어야 보험금을 타는 생명보험을 들라고 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도 신의 축복이 있기를 이라면서 죽은 사람의 가족이 말할 것이라는 장면이 있는데... 두 장면에 나오는 말은 같지만 지니고 있는 마음은 다르다.
엘리엇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서 감사의 말을 듣는 반면, 프레드는 사람이 죽어야 남들이 살게 도는 일을 해서 감사의 말을 듣는다. 그것이 진정 감사의 말인지는 의문이지만.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부자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막대한 재산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돈을 보고 꼬여드는 파리들이 있기 마련. 소설에서는 무샤리라는 젊은 변호사가 그 역할을 한다. 그리고 돈에 눈이 멀어, 사실 친족이라는 이유말고는 재산을 물려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프레드가 돈 욕심을 내어 변호사와 함께 소송에 참여하고 있으니...
작가가 보여주는 세계는 '돈이란 건조시킨 유토피아라네'(187쪽)라는 또다른 변호사의 말이 통하는 사회인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세상을 뒤집는다. 엘리엇이라는 인물을 통해 돈은 특정 개인이 움켜쥐고 자신만을 위해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송에 걸린 엘리엇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소설이 끝나는데, 그 결말에 웃음지을 수밖에 없다. 하, 이런 대안을 내놓다니... 참...
돈이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돈만으로는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돈은 서로 나누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데... 이 소설에서도 지금까지 읽은 보니것(이 번역에서는 보네거트란 이름으로 나온다)의 소설 속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제5도살장]에 나오는 외계인 '트랄파마도어인'들도 나오고, 환상 소설을 쓰는 작가 트라우트도 나오고, 그리고 2차세계대전 때 겪는 일들도 나오는데...
세 권째인데... 참 많이 연결되는구나, 이 작가의 소설을 읽어가면서 또 이렇게 연결된 인물을 만나게 되려나 하는 기대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작가의 풍자에 감탄을 하게 되는데... 경쾌하게 진행되는 사건을 통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무엇을 풍자하는지, 지금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논쟁 중인 사안들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이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되고.
여기 대조적인 두 주장이 있다. 비교해보자.
'태어날 때부터 이 나라의 큰 덩어리를 소유하게 하고 다른 아기한테는 땡전 한 푼 쥐여주지 않는다면, 그건 매정한 정부라고 생각해요. 한 나라의 정부라면 최소한 모든 아이에게 재물을 공평하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해요. 안 그래도 힘든 인생인데, 돈 문제까지 고민하다 병이 나서야 되겠어요? 우리가 조금 더 나눈다면 이 나라의 모든 사람이 풍족할 거예요.'(137쪽. 엘리엇의 말)
'재산 기부는 무익하고 파괴적인 행위라는 것, 그건 가난한 사람들을 풍족하거나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응석받이로 만든다는 것! 그리고 기부자와 그의 후손들은 징징 짜는 가난뱅이와 똑같이 된다네.' (186쪽. 재산을 관리하는 법률대인인 매캘리스터의 말)
여기서 부유세 또는 누진제 세금과 기본소득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정부에게 무엇을 정책으로 만들어 실행하게 해야 하는가. 오로지 당신의 능력에 따른 결과이므로, 거기에 정부가 개입할 필요는 없다는 최소 정부를 주장하겠는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부의 분배를 추진하는 최대 정부를 주장하겠는가. 꼭 양극의 정부를 주장하지는 않더라도 그 스펙트럼 상에서 어느 쪽으로 가는지 자신의 입장을 정리할 수는 있지 않을까.
적어도 작가는, 커트 보니것은 부를 나누어야 한다는 쪽으로, 사람들은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쪽으로 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이러한 소설을 썼겠지. 늦게 만난 작가지만 그의 작품에 감탄을 하게 된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