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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SF #1
정소연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평점 :
SF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한때 문단에서 정통 문학으로 취급받지 못해서, 외국에서는 많은 작품이 나왔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도외시 되었던 문학이었는데... 최근에 봇물 터지듯 SF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왜 그럴까? 그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장을 이 책에서 발견했다. SF에 대한 여러가지 글을 실어 놓은 바로 이 책에서.
'SF 영화에 투영된 과학과 기술은 현시점에서 상상한 미래가 아닌, 그 시대가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무엇을 욕망하고 두려워했는지를 반영한다.' (279쪽)
이 문장에서 SF 영화를 SF문학으로 바꿔도 된다. 우리나라에서 SF문학이 많이 나오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욕망하고 두려워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소외되고 차별하는 것들이 결국 우리를 좀먹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SF문학을 읽게 하는지도 모른다.
SF문학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기정사실로 드러나 있고, 소외와 차별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상상의 세계, 상상의 인물(존재)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문학을 통한 간접 경험을 충분히 하게 된다.
이러한 때 SF문학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은 그에 걸맞게 다양한 글을 싣고 있는데, SF 공간과 작가에 대한 소개와 비평이 있고, 영화감독 연상호와 SF작가 배명훈의 인터뷰가 있으며, SF작품이 7편이 실려 있고, SF에 대한 칼럼과 신작 소개가 수록되어 있다.
그야말로 SF작품에 대하여 다양한 방면에 대한 글들이 실려 있어, SF작품에 대한 초심자라도 쉽게 읽을 수 있고, 여러 편의 SF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자신이 읽은 것을 떠올리면서 읽을 수 있다. 여기에 새로운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더 많은 작품을 찾아 읽을 수 있기도 하고.
소설적 상상을 현실이 뛰어넘었다고 하는 말들도 들리지만, 현실은 소설의 상상을 넘어설 수 없다. 인간은 지금을 살고 있지만 눈은 늘 저 멀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 바라봄을 우리에게 현실처럼 안겨주는 것이 바로 소설이다. 문학이다.
하여 SF작품에는 현실과 다른 장소, 인물, 사건들이 나오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국 현실로 수렴된다. SF작품을 통해 발산된 다양성들이 현실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들의 삶을, 생각을 통해 수렴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의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서도 SF작품을 읽게 된다. 지금이 불안할수록 더 많은 SF작품을 찾게 되는데, 우리 사회에서 SF작품이 많이 나오는 것도 우리의 불안이 더욱 심해졌음을 의미한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뭐, 딱딱한 글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실린 소설 일곱 편을 읽어봐도 좋다. 짧은 소설들이기 때문에 큰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읽다가 다른 책에서 읽은 김초엽의 '인지 공간'을 읽다가 이 구절에서 잠시 멈췄다. 역시 문학은 여러 번 읽을수록 다른 점을 느끼게 한다. 씹을수록 맛나는 음식과 같다.
'진리는 논쟁 속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고 그들은 말했다. 불변하는 진리는 모두의 인지 속에서 동일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여전히 믿는다.' (150쪽)
과연 그럴까? 인지 공간이라는 모두가 공통으로 믿는 지식의 공간, 그 외의 지식은 사라져야 하는 공간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인간일까? 인지 공간에는 어떤 지식만이 남을까? 그것은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남겨야 한다고 믿는 지식들 뿐이지 않을까? 소수에 해당하는 의견, 지식들은 인지 공간에 남지 못한다. 그리고 남아 있는 지식만이 진리라고, 다른 것들을 배제하게 된다.
전체 속에 개인은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은 아니다. 진리는 논쟁 속에서 성립한다.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논쟁이 되고, 다양한 발산들이 수렴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진리는 찾아질 수 있다.
단지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권력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진리까지도 자신들만이 알고 있다고 하는 식의 사회는 발전할 수 없는 사회다. 그런 사회를 우리는 두려워한다. 하여 다시 읽은 김초엽의 '인지 공간'은 권력에 의해 왜곡된 진리가 우리를 얼마나 왜소하게 만드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한 권력을 깨뜨리는 것은 또다른 거대한 권력이 아니라 작품 속 '이브'처럼 작은 존재, 그러나 자신을 잃지 않고 용기있게 나아가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SF문학에 대한 여러 글들이 실린 이 책을 읽으면 아마도 SF문학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