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열전 2 한서 열전 2
반고 지음, 신경란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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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엄청난 양이다. 벽돌책이라고 하기도 한다. 1000쪽이 넘는 분량이니. 중국 한나라 때의 인물들을 수록했으니 양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능력 있는 사람들과 또 역사에 남길 인물을 선정해서 수록했으니...


하지만 열전에 포함된다고 해서 모두 본받을 만한 사람은 아니다. 또한 모두가 잘살았던 것도 아니다. 끝이 안 좋은 사람도 많았고, 자신 때는 성공했을지라도 자식 대에, 그것도 아니면 자손 대에 망한 집안도 꽤나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전제군주 시절이니, 능력보다는 황제의 인정을 받아야 살 수 있었던 시대의 한계가 명확하다. 백성을 위하는 정책을 건의해도 황제의 심기를 건드리면 사형에 처해졌으니... 상소문을 보면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이는 그만큼 목숨 걸고 의견을 내야 하는 시절이라는 말이다.


또한 목숨을 걸지 않으면 자리를 보전할 수는 있겠으나 사서 편찬자의 말에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반고가 찬하여 말한다에서 00는 수년 간 승상이라는 직위에 있었으나 특별히 공을 세우지 못했고, 자리만 지켰다고 하는 인물들이 꽤 있었으니...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고 하는 승상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는데 중국 한나라 때 승상의 지위에 올랐다는 것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까지 갔다는 얘기고, 자신의 정치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런데도 이들의 목숨은 파리와도 같아, 황제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죽을 수 있었으니...


열전을 쓴 이유가 무엇인가? 역사 속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찾으라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황제라는 절대 권력의 말 한마디에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면, 이런 열전을 읽으며 목숨 보전을 하기 위해서는 또 집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려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반대로 그렇게 목숨을 부지해도 욕된 이름만 남기니까 좋은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목숨을 아껴서는 안 된다고, 옳다고 여기는 것은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고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2권에서는 무신에서 문신으로, 즉 나라를 세우고 안정을 이뤄가는 과정이 지나 이제는 안정기에서 다시 쇠퇴기로 접어드는 때에 활동했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니 무신보다는 문신의 비중이 커지고 있고, 이들을 통해서 유학이 중용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유학이 나라의 학문으로까지는 정립되지 않았음을, 황제에 따라 또 열전에 나오는 인물에 따라 유학을 숭상하고 공부한 사람과 다른 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이 함께 실려 있음으로 알 수 있다.


여기에 인재를 추천하는 방식도 여전히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하여 과거제와 같이 선발로 관리를 뽑는 제도는 더 뒤에 나올 것임을...


이러한 추천제는 장점도 있지만 추천하고 추천받은 사람끼리 작당한다는 문제도 있으니 능력있는 사람을 어떻게 발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황제가 중심일 수밖에 없는 전제군주 시대에는 그러한 인재들을 잘 등용하는 것이 백성들에게도 행복한 시절을 만들어주는 길이었을 텐데, 다른 말로 하면 '적재적소'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를 알게 해주는 '한서열전' 2권이다.


이 권에서 주목한 사람은 '금일제'다. 투항한 흉노의 태자라고 하는데, 무제에게 중용되어 무제 사후에 어린 황제를 보필하는 역할까지 했다고 한다. 꼭 필요한 인재라면 국적을 따지지 않고 중용하는 황제. 그러한 황제를 통해 '적재적소'라는 말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는데...


뒤로 갈수록 '적재적소'라는 말이 무너지면서 아첨을 일삼거나 또는 외척 세력이 대두하는 모습을 '한서열전' 2권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한 나라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고 생각하는데...


'적재적소'


이 말은 지금도 유용하다. 선출직으로 대통령을 뽑지만, 그 대통령을 뽑는 과정에서도 이 말을 생각해야 하지만, 선출된 대통령이 임명하는 많은 장관들과 다른 공직자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과연 그 자리에 맞는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제 능력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 많을수록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대통령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미디어가 발달해서 많은 것들이 공개된 세상에서도.


착각 속에 살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열전'을 읽을 필요가 있다. 중국 한나라의 역사를 통해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니까. 그들의 다양한 행적을 통해서 지금을 살필 수 있으니까. 


적재적소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은 '유취만년',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유방백세' 아니겠는가... 그 점을 명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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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들의 아침식사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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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들의 아침식사라는 제목을 생각한다.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예상한다면 소설을 읽으면서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게 소설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가 '어쩌고 저쩌고'다. 그렇다. 우리가 흔히 기타 등등이라고 하는 etc.가 소설에 나오기도 하니, 왜 이렇게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걸까?


수많은 이야기를 이렇게 섞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데 읽다보면 이야기가 연결이 되기도 한다. 작은 이야기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뤄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목이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먹고 자고 싸기. 인간이라면 누구도 해야만 하는 일. 먹는 일을 제목이 대변한다면, 그렇다면 나머지는? 자는 일은 이 소설에서 찾기 힘든데 싸는 일은 찾기 쉽다. 왜냐하면 '어쩌고 저쩌고'만큼 특색있게 다가오는 말이 '우주의 똥구멍'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말을 빌려보면 '이곳은 우주의 똥구멍이야(224쪽), 이곳은 우주의 똥구멍이 분명해요,'(265쪽)라고 한다. 똥구멍은 싸는 곳. 그러니까 먹는 것이 제목이라면 소설 속에 나오는 똥구멍은 싸는 곳이다. 무얼 싸지?


당연히 소화가 되지 않은 것을 싼다. 소화가 되지 않은 것? 과다 생산된 것. 필요 없음에도 필요하다고 광고해서 남들로 하여금 사게 하는 것. 그리고 곧 쓰지 않게 되어 쓰레기가 되어 버려지는 것. 버려진 다음 자연스레 분해가 되지 못해 인간에게 해를 끼치게 되는 것.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에 더 해를 끼치는 것.


소설에서는 그러한 예가 많이 나오는데, 주인공인 드웨인과 관련된 일들이 그렇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게걸스럽게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싸버리는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렇다면 챔피언들의 아침식사는 미국이라는 제국이 끝모를 성장을 추구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고, 우주의 똥구멍이라는 표현은 그렇게 성장, 성장하는 미국 또는 지구의 나라들로 인해 더욱 살기 힘들어지는 지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들이 편하자고 썼다가 버린 것들이 어떻게 돌아오는지는 '트라우트는 슈거크리크의 범람을 막는 콘크리트 홈통에 자신의 예술적인 발을 담갔다. 그러자마자 수면에 떠 있던 투명한 플라스틱 물질이 발을 코팅했다. ... 한쪽 발을 물에서 꺼내자 플라스틱 물질은 공중에서 즉시 마르며 진줏빛의 얇고 타이트한 단화로 변해 그의 발을 감쌌다.'(302쪽)는 표현에서 알 수 있다.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피해는 잘 알려져 있으니, 보니것은 그런 미래를 선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그때의 성장, 발전이 지닌 위험을 내다보고 있던 것이다. 그런 위험이 어디 플라스틱 뿐이겠는가. 그는 미국 사회가 지닌 많은 모습을 비판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노예제에 대한 비판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인간이 그러한 노예 또는 기계와 별반 다름이 없음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니 이러한 미국 사회는 '우주의 똥구멍'일 뿐이다. 그것을 인식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여전히 자신들이 먹는 것이 소화가 되지 않고 똥으로 변할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성장과 발전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지구에서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는 현실이니, 우리는 여전히 우주의 똥구멍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똥구멍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곳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보니것은 비관적이었다가 생각을 바꾼다. 이 장면이 소설 속에 있는데,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예술 역시 자본의 먹이로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자본에 먹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만의 고유한 성질을 잃지 않는, 기계로서 존재하지 않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 있음을 소설 속 인물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기도 하는데...


너무도 짧은 이야기들, 소설 속의 이야기와 작가가 직접 등장해서 자신의 등장인물과 대화하는 장면까지 사실주의 소설이라면 상상도 하기 힘든 이야기 전개방식을 택하고 있어서 낯설기도 한데... 그럼에도 비사실적인 표현이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가 표현하고 있는 일들을 우리가 계속 겪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시 제목을 생각한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자본과 성장이 결국 먹는 것과 연결이 된다는 생각이었을까? 작가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무모하게 먹어치운 것들이 결국은 배출될 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제목인 아침식사와 소설 속에 나오는 똥구멍이라는 말이 연결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는 '챔피언들의 아침식사'라는 표현은 제너럴 밀스사에서 만든 아침식사용 시리얼 상품의 등록 상표다.(17쪽)라고 해서 다른 오해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여기서도 우리는 자본이 얼마나 우리 생활에 깊숙히 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


'아침식사용 시리얼'이라고 하지 않나? 기본적인 먹는 것조차도 거대 기업이 잠식하고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 먹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이 그렇게 우리 삶으로 들어와 우리를 삶으로부터 더욱 떨어뜨리고 있는 현실을 보니것은 비판하고 있다.


계속 보니것 작품을 읽고 있는데, 이 작가의 작품 읽을수록 매력적이다. 다음 작품을 찾아 읽게 만든다. 그리고 이 작품 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겹치고 있기에,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지구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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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들, 조용히 빛나는
문선희 지음 / 가망서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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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배웠던 노래 '등대지기'가 있다.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그 노래 가사가 떠올랐는데...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바로 이것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등대들, 등대가 아니다. 고공 탑(CCTV탑, 송전탑, 송신탑, 굴뚝, 대교 주탑, 타워 크레인, 철탑, 광고탑, 종탑, 사일로, 전광판, 고가도로 교각) 이다. 평소에는 사람이 오르지 않는 곳. 아니 사람이 지낼 수 없는 곳.


등대는 그래도 사람이 지낼 수 있다. 외롭고 힘들고 또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한줄기 빛을 쏘아 다른 이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등대고, 그곳을 지키는 사람이 바로 등대지기다.


하여 등대지기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존재다. 그런 등대지기의 마음을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이라고 노래했다.


그러면 고공탑에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자신들만 잘살기 위해서 오를까? 아니다. 이들은 다함께 잘살기 위해서, 아니 살기 위해서 오른다.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을 때, 자신들의 목소리를 다른 존재들이 들을 수 있게.


이들이 고공탑에 오르기까지 수없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제발 들어달라고... 그런데 듣지 않는다. 듣지 않으니 듣게 해야 한다. 누가 외치는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게 해야 한다. 그 방법이 바로 고공탑으로 오르는 것.


평소에는 사람이 없는 곳, 사방이 트인 높은 곳. 사람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는 곳. 그곳으로 오른다. 올라서 보라고, 들으라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사람이 지낼 수 없는 곳에서 많은 날들을 보낸다.


자신의 목소리를,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등대가 어둠 속에서 빛을 내어 다른 존재들을 인도하듯이 그렇게 그들은 고공탑에 올라 약자들의 외침을 남들이 보고 들을 수 있게 한다. 등대와 같은 고공탑. 등대지기와 같은 고공 농성자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선 사람들. 이들 덕분에 많은 것들이 좋아지곤 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고공탑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고공탑에 올라야 할까?


그들이 고공탑에 올라가지 않도록 낮은 곳에서부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는 없을까?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작가는 이러한 고공탑들을 찾아 기록으로 남겼다. 소중한 작업이다. 어떤 고공탑은 철거되었고, 어떤 고공탑은 아예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기도 하고,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지워버리고 있으니,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는 작가가 있음에 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사진을 흑백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수평선과 바다의 이미지를 보여 바다 위 등대처럼 보인다. 또 흑백이기 때문에 어둠 속에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외로워보이기도 한다.


지독한 외로움, 괴로움. 그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빛을 보내려 하던 사람들. 그들의 마음이 바로 등대지기 노래의 가사처럼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작업을 해준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 앞으로 이렇게 높은 탑들에 사람들이 오르지 않는 사회였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민주노총 위원장을 했던 사람이지 않은가. 노동자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장관이 되지 않았나. 그러면 이제 노동자들이 고공탑에 오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공탑에 올랐던 많은 사람들이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경우가 많았으니 더더욱. 


사진만이 아니라 그 사진에 얽힌 사연들이 이 책에 실려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 등대지기 노래가 생각난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보여줬던, 길을 알려줬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마음.


이러한 일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러한 기록을 남겨준 작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 말 역시 마음을 울린다.


'세상은 그들을 약자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들을 초인이라 부른다. 초인적 인내력으로 세계와 독대한 단독자. 백마 대신 굴뚝을 타고 온 초인.' (97쪽)


이육사 시인의 '광야'에 나오는 구절을 빗대어 표현한 이 말. 여기에 덧붙이자면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란 시에 손님이 온다고 되어 있다. 그 손님이 어떤 형상으로 오는지 아는가? 바로 '고달픈 몸'으로 온다고 했다.


고공탑에서 고달픈 몸으로 우리에게 온 손님. 그들을 작가는 굴뚝을 타고 온 초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맞이할 때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다는 마음을 지녀야 하고, 그들을 잊지 않고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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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 순례.


  예전엔 동네에서 헌책방을 쉽게 만났는데, 어느 순간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제 헌책방을 만나려면 큰 맘을 먹어야 한다.


  산책하듯이 가볍게 갈 수 있는 곳에 헌책방은 없다. 한 번 가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헌책방에 간다. 그런 헌책방도 또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책에 헌 책 새 책이 있을까마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밀려나게 된다. 


  하긴 도서관에서도 좀 오래 된 책은 개방된 서가에 있지 못하고, 보존서고라고 해서 사서들이 가서 찾아와야 하는 곳으로 밀려가니... 


가끔 알라딘에서 헌책을, 아니 알라딘은 중고서적이라는 말을 쓰니, 중고서적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책들은 그냥 폐휴지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이 버려지는 현실. 그런 현실 속에서 헌책방은 책이 버려지는 일을 최소한 막는 역할을 한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 읽었던 흔적을 헌책에서 발견하고 아, 이 사람도 이 부분을 생각했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도 드는데...


이번에 구입한 헌책은 [전봉건 시전집]이다. 전집이니까, 전봉건의 시를 모두 (과연 모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발표된 시들은 다 실었을 테니) 모아놓은 책.


전봉건 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피아노'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했던 시.


피아노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들었다.


남진우 엮음, 전봉건 시전집. 문학동네. 2008년. 49쪽.


음표들이 막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이 그려지는데... 그리고 다른 시들... 같은 제목에 다양한 변주를 한 시들... 돌과 6.25.


'돌'은 56편이 있고, '6.25'는 59편이 있다. 마지막 숫자가 56과 59니.


이 중에 돌 52를 보면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여기서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다.


  돌 52


햇살에게 말을 하면서 갔더니

바람을 만나 바람에게 말을 하면서

갔더니 비를 만나 비에게 말을 하면서

갔더니 나무를 만나 나무에게 말을 하면서

갔더니 어둠을 만나 어둠에게 말을

하면서 갔더니 새를 만나 새에게

말을 하면서 갔더니 강물을 만나

강물에게 말을 하면서 갔더니

돌을 만났다.


이제는 내가 말을 들을 차례다.


남진우 엮음, 전봉건 시전집. 문학동네. 2008년. 655쪽.


하아, 말하기보다 듣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돌을 통해서 깨우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시의 형태를 달리해서 그냥 직설적인 말하기와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기도 하다.


이런 시집, 헌책방에서 만났으니,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행복. 가격 또한 아주 싸니, 이 또한 행복 아닐까 하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책을 만나야 하는데, 인터넷으로 만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서점에 가서 종이책을 만지는 일, 헌책방에 가서 책들이 뿜어내는 향기를 맡는 일을 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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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불평등 - 글로벌 자본주의 변동으로 보는 한국 불평등 30년
최병천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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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보는 관점을 버리라고 한다. 불평등하면 좋지 않은 것, 없애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쉬운데, 인류 역사상 모두가 평등한 시대는 없었기에, 어쩌면 인류 역사 내내 우리는 불평등의 시대를 살아온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듯이 똑같은 생활을 하라고 하면 아마 견디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평등이라고 해서 무조건 같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나 대동소이(大同小異)라는 말 또는 '따로 또 같이, 같이 또 따로'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같을 수는 없다. 비슷할 수는 있어도. 그렇다면 불평등을 다름으로 인식하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불평등을 무조건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껴안고 가야 할 것. 다만 불평등의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방법을 찾는 것. 이것을 우리가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평등하기 위해서 위를 깎아 아래를 고이면 된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위는 놓아두고 아래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면 평등 개념이다. 그렇다면 불평등도 마찬가지다.


불평등하니까 위를 아래로 내리자가 아니라 아래를 위로 올리자, 위하고 똑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도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리자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 책을 읽은 소감이 바로 그렇다. 불평등에 대해서 무조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불평등을 받아들이고,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격차를 줄이는 것이 위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아래를 올리는 방안, 위와 아래가 함께 올라갈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고,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층과 하층이 어떤 집단인지부터 합의가 되어야 한다. 상층과 하층에 대한 합의가 없으면 논의가 산으로 갈 수 있다. 서로 다른 계층을 두고 정책을 제시하면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할 대책이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하층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하층은 고령층이라고 한다. 수입이 없는 고령층. 그렇다. 노인빈곤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니, 수입이 없는 고령층을 하층이라고 보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 고령층에 대해서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가? 지금 실시하고 있는 기초연금 제도를 손보고, 즉 '지급대상자를 70%로 하지 않고, 월 288만원(2022년 부부 기준이다)+물가상승분만큼으로 대상자를 동결하'(369쪽)고 '절감된 예산으로는 75세 이상 저소득층 노인에 한해 보충연금을 도입해서 추가 지급을 해야 한다'(369쪽)고 주장한다.


(참고로 2025년 기초연금 수급대상자는 부부가구의 경우 364만 8천원이 기준이고, 단독 가구의 경우는 228만 원이다. 이를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한 것과 비교해보면 3년동안 물가상승률을 4%라고 가정해도 약 325만원이 된다. 한 가구당 40만 원 정도의 예산이 절감되는 셈인데... 정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물론 그는 보충연금을 일몰제로 하자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소멸되는 법으로 하자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보편 복지냐 선별 복지나는 논쟁이 있어야 한다. 공론화를 통해 우리 현실에 맞는 정책이 입안되고 실시되어야 한다)


이렇듯 이 책에는 구체적인 정책이 제시되어 있으니 참조해 볼 만하다. 여기에 우리가 잘못 알고 있다고 지적하는 사항이 몇 있는데, 이는 불평등이 꼭 경제 위기와 함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경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역설적으로 불평등이 축소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또 경제가 활성화될 때 특히 수출이 늘 때 불평등이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고 튱계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이는 수출 산업이 주로 대기업을 비롯한 규모가 큰 곳에서 이루어지고, 이들 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기 때문인데... 


불평등이 우리나라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 또 세계 정세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는 우리나라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적절한 분석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한다.


농어업과 같은 생존에 필수적인 분야를 저부가가치 산업이라고 여기에 대한 투자보다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대기업과 같은 규모가 큰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견 타당하면서도, 그럼에도 농어업을 포기할 수는 없는 현실을 감안해서 농어업 종사자들에 대한 지원, 투자 등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으면 했는데...


사실 계층 간 불평등도 심각하지만, 지역 간 불평등도 심각하고 농어촌은 거의 소멸 위기에 처해 있으니, 이는 생산성을 넘어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여기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 하층은 고용되지 않은 고령층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 여기에 상위에 있는 노동자들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위에 있는 노동자들을 올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


수출로 인해 대기업이 살아가나고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하는 만큼, 그에 따른 협력업체들 (중소기업)의 노동자 임금도 상승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 즉 수출이 잘 되어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해서 불평들의 폭이 확대되는, 저자가 주장하는 '좋은 불평등'을, 함께 상승해서 불평등의 폭이 좁아지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결국 분배를 통해서 할 수밖에 없는데, 세금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도 저자가 좀더 정리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세금이 불평등의 격차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할 테니까. 그런 역할을 하는 예가 바로 저자가 제시한 기초연금인데... 


또한 저자는 대학의 등록금 인하에 대해 '대학 등록금 동결정책은 대학 교육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사회진출을 위해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 공급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 등록금 동결은 해지하되, 저소득 학생의 경우 장학금 지원을 강화하면 된다'(344쪽)고 부정적인 생각을 보이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


오히려 장학금을 지급하는 쪽이 아닌 고등학교 무상교육처럼 등록금을 대폭 낮추고, 교육에 필요한 재원을 세금을 통해 마련하는 방안을 고민해 보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저자 역시 '복지 정책이 2차 분배이고, 노동 정책이 1차 분배라면 교육 정책은 0차 분배다'(348쪽)고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에 따른 재원을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마련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저자의 주장에 참고할 사항이 많은데, '좋은 불평등'이란 역설적인 표현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점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으니, 정책 입안자들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특히 불평등의 원인을 국내와 국외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저자의 관점은 배울 필요가 있다. 지금 세계는 한 국가만으로 존재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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