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부고(訃告)


  세상에, 시집 제목이 '죽마고우'인데 시인은 첫장부터 죽음을 이야기한다.


  삶과 죽음이 함께 간다고, 죽음을 잊지 말라고(메멘토 모리)하지만, 죽음이 삶의 친구라니. 그것도 오랜 친구.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죽음은 도처에 있다. 삶이 시작된 순간부터 죽음은 삶과 함께 한다. 어찌 죽마고우가 아니랴.


  이 친구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더욱 풍성해진다. 제대로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죽음을 없는 것으로 여기지 말고, 또 감추려고 하지도 말고, 함께 하는 친구로 생각하자.


시를 읽으면서 요즘 하나 둘 날아오는 부고를 생각했다. 어느 순간, 죽음은 이렇게 가까이 와 있구나. 부고 하나하나에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삶에서 죽음으로 건너간 사람들 이야기.


죽마고우


젊었을 때는 곁에 말 걸 상대라도 없으면 / 세상 혼자 떨어져 사는 거 같아 싫었다.

그것보다는 늙으면 더 외롭다 하는데 / 딱히 그렇지는 않다.

늘 곁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 / 둘러보니 없긴 없는데 있는 것 같다.

가만히 보니 죽음이다. / 당연히 죽음이 날 데려 갈 테니'

외톨이로 살아 고독하여도 두렵지 않다. / 왜 그런가 생가해보니 미리미리

죽마고우처럼 /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서다.

사람이니까 죽음도 죽마고우라 부른다.


강우식, 죽마고우. 리토피아. 2022년. 83쪽.






둘. 술


시인은 시도 죽마고우라고 했다. 시인이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다. 평생을 시와 함께 했으니, 죽음과 시는 시인에게 죽마고우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술이다.


술술 넘어가서 술인지, 자신을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존재. 죽음이 영원한 망각의 세계로 사람을 이끈다면, 술은 잠깐 동안 망각의 세계로 이끈다.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그러나 때로는 기억을 하지 못하는,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이 없듯이, 술 또한 기억을 지워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안 되는데, 절제가 되어야 하는데, 달리 알콜 중독이란 말이 나왔겠는가. 하지만 중독이 되면 잠시 망각의 세계에 들었던 정신이 지속적으로 이 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중독은 어찌 됐든 좋지 않다. 중독은 이곳과 저곳을 나누고, 저곳에서 다시 이곳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된다.


'술 권하는 사회'라는 현진건 소설. 일제시대 때만 그랬을까. 아니다. 지금도 사회가 술을 권한다. 자꾸 이곳을 잊으라고 한다. 그냥 저곳으로 가라고 한다. 등을 떠미는 사회. 하지만 사회에 등을 떠밀려 술을 마시다보면, 사회도 잊는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몸만, 자신의 정신만 축날 뿐이다. 그러니 술을 즐겨도 좋지만, 중독으로 가지는 않게 하자.


사회가 술을 권하면 적당히 마셔주어도 좋지만,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이곳을 잊을 때까지는 마시지 말자.


숙취


어디서 잘못 배운 술인지 모르지만 / 나는 술버릇이 나쁘다.

혼자서는 술을 절대 안 먹지만 / 가까운 친구와 마시는 술에 흥이 오르면

내가 앞장서서 일 배 일 배 부일배가 아니라 / 한 병 한 병 또 한 병이 된다.

내일은 죽어도 좋다며 술을 마신다. / 그리고는 술을 이기지 못한 이튿날은

아이고, 아이고 내가 간다는 영어 같은 / 그 신음 속에 열물 쓴물 단물을 다 토한다.

거기에 어머니인지 어머나인지 / 분간 못하며 찾는 어머니도 반드시 계시다.

그저 지나가길 바랄 뿐 약이 없는 숙취 / 그리고는 좀 원상 복귀되면 

돌본 마누라에게는 미안했는지 / 일평생 못 버리는 거짓말 금주 맹세를 하며

당신 보며 사는 것이 내 유일한 소망인데 / 못보고 죽는 줄 알았다고 입을 뗀다.


강우식, 죽마고우. 리토피아. 2022년. 70쪽.






셋. 기후 위기 또는 기후 재앙


10월이다. 이제는 선선해져야 한다. 계절은 어김없이 제 역할을 하니.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계절이 제 역할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냥 더위를 지속하기도 한다. 9월. 과연 선선해졌던가. 한여름과 같은 더위가 지속된 때도 있었다. 물론 일교차가 생겨, 아침-저녁으로는 살 만했지만, 낮에는 한여름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가 이상을 일으키고 있다. 기후가 이상을 일으켜? 


아니지, 사람이 기후를 이상하게 만들었지. 자신들이 만들고 기후 위기라고 한다. 기후 재앙이라고 한다. 고치려고 하지는 않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당연히 해야겠지만, 사회가, 나라가, 세계가 함께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런데 하지 않는다. 특히 가장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미국.


미국은 기후 위기에 대해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세계 경찰을 자처하면서, 세계 평화를 자신들이 유지한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를 다른 지구로 데려가려 하고 있다.


자신들의 생활습관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다른 나라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그냥 지금 그대로 살려고 한다.


그들이 지금 그대로 살면 지구는 다른 지구가 된다. 죽음이 개인을 다른 세계로 데려가고, 술이 잠시동안 다른 세계로 이끌어가지만, 이것은 개인의 문제에 더 가깝다면 기후 위기는, 기후 재앙은 개인이 아니라 가이아라 불리는 지구 전체의 문제가 된다. 지구를 통째로 다른 지구로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지구가 살기 힘들다고 몸서리치니 기후 재앙이 일어난다. 이것을 모르쇠하면 안 된다. 하여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해야겠지만, 사회가, 나라가, 전세계가 해야만 할 일을 하게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시에서 삼한사온이 사라진 것처럼, 우린 다른 지구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살 지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삼한사온


살면서 실감나게 믿었던 / 말들의 교과서

살면서 입에 달고 다니던 / 말들의 신조

어렸을 적에는 삼한사온이라 / 자주 입에 담았는데…

사라진 옛날이 됐다.


강우식, 죽마고우. 리토피아. 2022년. 61쪽.


덧글


이 시집에는 83편의 시가 실렸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세어 봐도 82편이다. 도대체 어디서 한 편 차이가 날까. 차례를 세어 봐도 82편인데, 작가의 말이 두 편이 있으니, 그것을 합치면 84편이고, 작가의 말을 빼고 여적을 넣으면 83편인데... 여적은 시가 아닌데.


아이들 같은 발상이지만 내 나이가 올해로 여든 셋이다. 시집에 실린 시도 83으로 여기에 맞췄다. (餘谪 112쪽.)

 

숫자를 잘못 세었나 쪽수로 계산해 보았다. 98쪽-15쪽=83쪽+1쪽이니 84쪽이고, 이 중 2부 제목이 2쪽이니 -2쪽을 하면 82쪽. 한 쪽당 시 한편이니, 82편이 맞다. 시인이 실수를 했는지, 출판사에서 한 편의 시를 뺐는지, 아니면 만 나이로 계산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님, 내가 무엇에 홀렸나. 걔속 82편이니... 참.


둘째, 이 시는 특이하게 가나다 순으로 시를 배열했다. 그래서 제목을 알면 시를 찾기 쉽다. 가나다 순이 시 내용이 연결이 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이런 시집을 봤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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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탄생
김민식 지음 / 브.레드(b.read)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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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문득 이상국 시집이 생각났다. 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시집 제목은 '집은 아직 따뜻하다'다. 그래, 집은 따뜻하다. 따뜻해야 한다. 그런데 시 내용이 이런 따뜻함이었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목 그대로 보자. 사람이 떠났어도 집은 따뜻하다. 사람들이 살았던 온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은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집을 지나치게 크게 지으면 온기를 느낄 수가 없다. 집이 아니라 사무실이나 다른 공간이라고 느끼게 된다. 집이 따뜻함을 유지하려면 적정한 크기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집도 역시 크지 않다. 작은 집을 추구한다.


그렇다고 저자는 아주 작은 집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극한으로 몰아가는 작은 집. 그런 집은 수련을 위해서 또 잠시 머묾을 위해서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집이 따뜻한 이유는 사람 몸을 지켜주기 때문이기도 한데, 몸을 지켜준다는 이야기는 마음이 편해지는 분위기와 자연환경으로부터 건강을 지켜준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집, 그런 집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남들과 같은 집이 아니라, 나를 편안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집. 


저자 역시 이런 생각을 여러 군데서 비치고 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건축보다 자신이 우연히 만난 시골 건축이 더 좋다고 하는 말들. 화려한 디테일보다는 꾸밈없는 소박함이 좋다고 하는 말들. 디테일에는 비용이 들어간다고.. 비용은 단순히 돈만을 의미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력과 시간까지도 의미하니... 그런 건축보다는 적은 비용이 들었지만 살기에 편안한, 사람을 보듬어 주는 건축이 더 좋다고 주장하고 있다.


건축 자재로는 나무만한 것이 없다고... 나무는 오래가지 않냐고 하는 질문에 부석사 무량수전보다도 오래간다고 말한다는 그. 작은 평수의 나무집을 지어 사람들에게 보급도 하고 있다는 저자는, 집에 관한 여러 생각을 이 책을 통해서 펼치고 있다.


길지 않는 글들이 모여 있고, 다양한 집들이, 또 저자 글에 이어서 작은 설명이 스케치와 더불어 함께 해서 좋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글은 바로 '한옥'에 관한 글이다. (한옥은 없다. 137쪽-149쪽을 참조하면 된다)


도대체 '한옥'이 무엇인가? 한옥하면 어떤 집이 떠오르는가? 먼저 한옥하면 기와집이 떠오른다. 북촌에 있는 한옥들, 또는 전주한옥마을, 남산한옥마을 등등을 떠올린다.대부분 기와집이다. 


한옥을 짓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초가집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만큼 한옥은 특정한 형상으로 굳어져 있다. 그런데 과연 한옥이 무엇인가? 기와집만이 한옥인가? 아니라고 한다.


저자는 한옥이라는 말을 이렇게 뭉뚱그려서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통집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데, 굳이 한옥이라는 이름으로 단순화시켜야 하겠냐고 반문한다.


(이상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한옥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통집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마을인데도 그냥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기와집과 초가집이 함께 있기 때문인지... 이 이름을 보더라도 한옥으로 뭉뚱그려서는 안 되겠다.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그냥 기와집, 초가집, 귀틀집, 너와집 등등으로 그 집의 특성을 알려주는 이름으로 부르면 된다고 한다. 이를 통칭하는 말로 전통집이라고 하든지, 한옥이라고 하든지 하면 상관이 없지만, 지금은 한옥하면 특정한 집들만을 떠올리니, 저자의 지적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집은 다양한 재료로 지어진다. 예전에는 자신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집을 지었겠지만, 지금은 재료가 몇 가지로 통일되어 있다. 이것도 문제다. 환경에 맞는 집들이 지어져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도 동의한다.


특히 나무로 집을 지으면 탄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나무는 탄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또 나무로 집을 지으면 집을 짓는 재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일 수 있으니, 앞으로 환경을 생각한다면 나무집을 지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자기가 사는 곳에서 나는 나무면 더 좋겠지만... 이렇게 집을 짓는 재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상국 시집 제목이 사라지지 않았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그렇다. 집은 따뜻하다. 우리는 그 따뜻한 집에서 살아가야 한다. 나를 압도하는 집이 아니라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집. 그런 집에서 살아야 한다.


이상국 시 '집은 아직 따뜻하다'를 다시 읽으니 이 책에서 느꼈던 감정이 다시 살아난다. 이 책에 실린 내용 중에 이 시와 비슷한 내용도 있었으니... 사람은 사라졌어도 집은 그 사람의 삶, 그 사람의 온기를 품고 있다는...


집은 아직 따뜻하다


흐르는 물이 무얼 알랴                                 

어성천이 큰 산 그림자 싣고

제 목소리 따라 양양 가는 길

부소치 다리 건너 함석집 기둥에

흰 문패 하나 눈물처럼 매달렸다


나무 이파리 같은 그리움을 덮고

입동 하늘의 별이 묵어갔을까

방구들마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어둠을 입은 사람들 어른거리고

이 집 어른 세상 출입하던 갓이

비료포대 속에 들어 바람벽 높이 걸렸다


저 만리 물길 따라

해마다 연어들 돌아오는데

흐르는 물에 혼은 실어보내고 몸만 남아

사진액자 속 일가붙이들 데리고

아직 따뜻한 집


어느 시절엔들 슬픔이 없으랴만

늙은 가을볕 아래

오래 된 삶도 짚가리처럼 무너졌다

그래도 집은 문을 닫지 못하고

다리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이상국, 집은 아직 따뜻하다. 창작과비평사. 1998년. 초판. 64-65쪽.


이 시에 나오는 함석집이 이 책을 다시 불러왔다. 저자는 함석집에서는 '가난의 함의가 담겨 있다(102쪽)'고 했다. 가난의 함의. 그렇지만 그 집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 집에 담겨 있던 따뜻함. 그것이 사라졌다.


'한국전쟁 후 주로 실향민이 모여 살던 도심 주변, 산등성, 개천가의 함석집들. 이제는 영화 속 장면에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기 나의 우직한 강원도 산골 마을에도 함석 지붕이 사라졌다. 함석집의 서정. 가난의 기억.(102쪽)'


책이 시를 부르고, 시가 다시 책을 불렀다. 집을 통해서 다양한 분야, 저자는 철학과 시를 집과 연결시키는데, 그 말이 맞다. 비록 이 글에서는 철학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삶이 바로 철학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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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방 - 오직 나를 위해, 그림 속에서 잠시 쉼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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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방이라고 한다. 아니, 방은 혼자 있기 좋아야 한다. 자신이 지닌 가장 내밀한 공간이 바로 방 아니겠는가.


그 방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에 빠질 수 있는 방을 지녀야 한다. 다 공개된 삶을 살더라도, 일부는 공개될 수 없는 삶이 있다.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자신만의 비밀들.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것은 삶이 풍요롭지 않다는 말과도 같을 수 있다. 비밀만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비밀도 없으면 그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을 가지려고 한다. 자기만의 방에서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려고 한다. 세상의 번잡한 삶에서 잠시 벗어나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장소, 바로 방이다.


이 책은 그림에 관한 책이다. 아니, 삶에 관한 책이다. 그림을 왜 보는가? 그림을 통해서 우리 삶을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방과 관련된 그림을 통해서 우리 삶을 보여준다. 우리 삶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경험과 더불어서, 또 꼭 방이 아니더라도 방과 같은 역할을 하는 다른 공간들을 그림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공간과 지금 이 책을 읽고 나의 공간을 이어주고 있다.


방은 나만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방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나에게 휴식과 위로와 충전을 주는 공간이다.


다양한 그림들이 이 책에 나오는데, 대부분의 그림이 그 전 미술에 관한 책에서는 본 적이 없는 작품들이다.


그만큼 이 책은 그림에 대한 설명보다는 그림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삶을 이야기학 있다. 또한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림이 아닌, 우리 삶을 그림 그림을 통해서 우리들이 위안을 받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작가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좀 아쉽지만, 방 안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많은 종류의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것도 방과 관련된 그림으로, 우리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그림들이니.


혼자 있기 좋은 방. 이 방은 늘 혼자만 있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을 잇기 위해서 나를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게 하기 위해서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니 이 방을 통해서 나는 삶을 살아가고,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이 책에 나온 많은 그림들은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지금 나를 돌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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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의 말, 무엇을 덧붙일까... 그래, 빅이슈를 읽고 무엇을 덧붙일까 하는 고민을 한다.


  굳이 무엇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냥 읽으면 되는 잡지 아니던가.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점들을 생각하게 해주니, 그 자체가 이미 내 삶에 덧붙여지고 있는 셈인데...


이번 호에는 직업에 관한 글들이 제법 있단 생가을 했다. 다양한 직업에 대한 소개.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커버스토리는 늘 어떤 직업을 지닌 사람들 이야기니, 더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 교사의 이야기도 있고, 행사를 기획하는 사람 이야기도 있다.


이런 직업과 더불어 집에 대한 이야기.. 가족에 대한, 소위 정상가족이라는 말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글, 김경서의 '비정상적 빈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신의 빈곤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빈곤한데도 호소할 수가 없는, 정상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왜 그들의 삶에 정상-비정상이라는 말로 덧붙이려고 하는지, 그냥 그들의 삶을 그대로 인정해주면 되는데... 


이런 덧붙임은 쓸모가 없는데, 빅이슈를 통해서 그 점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번 호에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담은 존재를 소개하고 있는데, 급속도로 디지털화 된 세계에서 예전의 존재들에 대해서 느끼는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글들이다.


아, 나도 그랬었지. 나도 저런 존재들과 함께 했었지...카세트 테이프... 한참 듣다보면 테이프가 늘어져서 소리가 길어지던 그런 테이프에 대한 생각.


한 곡 한 곡을 빈 테이프에 녹음하던 시절에 대한 생각. 테이프에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해 선물하고 선물을 받던 그때에 대한 추억. 그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다.


그렇게 다시, 지나온 세계를 생각하고, 지금 사는 세계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고, 좀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빅이슈.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내 삶에 무언가를 더 채워주는 잡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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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 나도 모르게 쓰는 차별의 언어 왜요?
김청연 지음, 김예지 그림 / 동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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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상대와 나를 잇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끊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말은 상대에게 힘을 주기도 하고, 힘을 빼기도 한다. 상대를 격려하기도 하고, 좌절하게 하기도 한다. 말은 살림의 말이 될 수도 죽임의 말이 될 수도 있다. 말은 붕대가 될 수도 있고, 칼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말은 중요하다. 중요한 말임에도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상대에게 다르게 다가간다. 상대에게만이 아니다. 나에게도 다르게 다가온다. 그래서 말은 중요하다. 잘 말해야 한다. 


그런데 가끔 주변에서 들리는 말들 가운데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는 말들이 있다. 상처를 주는 말들.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말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말들이 있다. 그런 말들은 그래도 사람들이 쉽게 인식한다. 그 말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쓰지 못하도록 막을 수가 있다.


문제는 자주 쓰는 말이라서 별다른 생각없이 쓰는 남에게 상처주는 말들이다. 심지어는 언론에서도 그 말들이 쓰이고 있어서 남들도 다 쓰는데 뭐가 문제야 하는 식이 되기도 한다. 이 책 제목처럼.


이 책은 그렇게 자주 쓰이는 말 중에서 차별을 담고 있는 말을 다루고 있다. 다른 말로 바꿔 쓸 수 있으니 사용하지 않거나, 바꿔쓰면 좋은 말들에 대한 이야기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으로 청소년에 관한 말부터 시작한다. 급식충... 사람을 벌레에 비유하면 듣는 사람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런데 많은 말들에 이 벌레 '충'자가 붙는다. 남들을 비하하는 말로.


중고등학생을 급식충이라고 하고, 대학에 지역균형발전전형으로 들어온 학생을 지균충이라고 하고, 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말로 한남충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고 하니... 이건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이 말... '지방대 출신으로 대기업 입사' 

어디서 많이 본 구절 아닌가. 여기서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지방대'에 있다. 예전에 표준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서울말이 표준어이니 다른 지역 말들은 표준어가 되지 못한 불완전한 말들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각 지방의 말들 중에, 그러니까 서울이라는 지방의 말을 표준으로 삼아 맞춤법을 정리했을 뿐이라고, 말들에는 위계가 없다고... 이 말을 대학에 적용하면 각 지방에 대학이 있는 셈이니,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대학들도 지방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방대 출신이라는 표현은 서울을 중심에 놓고 다른 지역을 아래로 보는 차별이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모든 대학은 지방대다. 이런 생각을 지닌다면 위에 쓴 말을 쓰지는 못하겠지.


이런 예는 많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호칭을 고칠 필요가 있고.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참 다양한 직업인들을 만날 수 있지. 그런데 직업인에 따라 누구한테는 '선생님' 또는 '님'이라는 말을 붙여 부르고, 누구한테는 '아저씨' '아줌마' 심지어 '어이' '여기'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어. 의사한테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붙여 부르면서 소방관한테는 '아저씨'라는 말을 붙여 부르는 게 대표적인 예지.' (45쪽)


이런 호칭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냥 생활에서 쓰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면서 직업에 따라서 다르게 부르지 하는 생각. 그 말들이 은연 중에 차별로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의사에게는 늘 의사선생님이라고 하면서 경찰, 소방관과 같이 우리들 삶을 다른 방향에서 살리는 사람들에게는 아저씨 또는 그냥 '-님'(이 경우도 많지는 않지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경우 말은 사람들을 잇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끊는 역할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직업이 말을 통해 은연 중에 구분되고 있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직업의 귀천이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쓰는 말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말들이 왜 문제인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어서 받아들이기가 쉽다. 말, 한 번 나오면 다시 담기 힘드니, 잘 생각하고 내보내야겠다. 


다른 사람의 귀를 통해서 마음까지 닿는 것이 말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청소년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읽고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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