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인간의 최후 - 세컨드핸드 타임, 돈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장수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0년대에 소련이 해체되었다. 러시아와 그외 다른 나라들로. 한때 페레스트로이카라고 해서 소련을 개혁한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기존 공산당의 집권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시기. 고르바초프. 그가 등장해서 사람들에게 공산주의를 개혁한다고 했다. 기존 스탈린 식의 독재가 아닌 진정한 공산주의를.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소련은 해체되었고, 소련에 속해 있던 나라들에서는 내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민중들의 삶은?


과연 나아졌을까? 이 책에 나오는 한 사람의 말이 가슴에 파고든다.


"그때는 참 살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참 살기 무서워졌어요." (518쪽)


공산주의가 민중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데 실패했다. 먹을거리 확보에도,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데도, 아마도 여기에는 별다른 이론없이 동의할 것이다. 만약 공산주의가 풍요로운 생활을 유지했더라면 지금 공산주의 국가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현실에는 도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공산주의 이념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독재정권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유형을 떠나거나 죽임을 당했다. 또한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했다.


그럼에도 강한 독재권력이 정권을 유지했다. 공산주의라는 명목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페레스토이카로 새로운 경향이 생겨났다.


이때 과거 공산주의 정권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쿠테타를 일으킨 적이 있다. 소련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때. 그렇지만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고, 이들에 의해 쿠테타 세력은 물러가고 말았다. 옐친이 부상하고 고르바초프의 몰락이 시작된 때다.


그 다음 여러 나라로 분리되었다. 각 나라에서 함께 살던 사람들이 서로 쫓아내고 죽이는 일들이 벌어졌다. 자본이 들어왔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했고, 지식인들은 쫓겨나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했다.


소수의 부자들이 생겨났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다. 그 다음은? 


한번 진행된 역사를 되돌리기는 어렵다. 자본주의화된 나라는 다시 공산주의로 가기 힘들다. 그래서 러시아는 이제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소련에서 독립한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고, 여기에 여전히 독재정권이 있는 나라들도 있고.


이 책은 페레스토리이카 이후 소련의 모습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고, 그들의 말을 그대로 들려주고 있다.


스탈린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자본주의를 열렬히 추구하는 사람도, 여러 독립국가에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던 사람도 모두 이 책에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


이것이 바로 소련 해체 이후의 삶들이다. 그런 삶 속에서 공산주의 때는 가난으로 살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자본이 지배하고, 또한 자본과 결탁한 다른 존재들이 삶을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소련이 해체된 지 30년이 지나가는데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들은 다른 공산주의적 인간, 즉 붉은 인간의 최후 이후에 어떤 인간으로 살아야 할지 합의를 보지 못했다. 합의는 커녕 소수에 의해서 흐름이 만들어졌고, 대다수는 그냥 끌려다녔을 뿐이다. 


그 혼란의 현장이 바로 이 책에 있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자부하는 우리나라,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자랑하는 우리나라, 하지만 우리가 겪어왔던 독재의 시기... 그 시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 그리고 지금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을 이 책을 통해서 볼 수 있게 된다.


우리 역시 이들과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과정을 겪어왔기에.. 그런 혼란이 지금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기에... 그래서 읽으면서 자꾸 우리 역사를 생각하게 됐다. 스탈린에 박정희를... 그 후 민주화 이후에 벌어진 신자유주의를... 민중들의 삶을...


사상 초유로 비상사태도 아닌데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를 불법으로 여긴 시민들이 나섰고, 비상계엄은 해제되었다. 소련의 해체기에 쿠테타가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몰려가 쿠테타를 무산시켰던 이 책의 이야기가 남 이야기가 아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다니.. 그래도 우리는 이 책에 나온 사람들처럼 사분오열되면 안 된다. 이 국면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 점에 대해서 이 책은 여러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퀴닝 - 꽃게잡이 선원에서 돼지농장 똥꾼까지, 잊힐게 뻔한 사소한 삶들의 기록 한승태 노동에세이 1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퀴닝(Queening)'


처음 들어보는 낱말이다. 책을 읽으면 좋은 점이 새로운 말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한데... 퀴닝이라? 그냥 낱말을 들여다보면 여왕이 있다. 그렇다. 이 낱말은 체스에서 졸이 상대편의 마지막까지 도달했을 때 하나의 말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때 여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 퀴닝이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즉 신분의 상승이다. 이는 자신의 처지를 극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의미로 쓸 수 있는데... 이 책은 원래 '퀴닝'으로 나오지 않고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고 한다. 개정판을 내면서 저자가 의도했던 대로 '퀴닝'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하는데...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과연 '퀴닝'이 있을까? 예전에 가난했던 집안의 아이가 고시에 합격해서 신분을 바꾼 사례를 들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법학전문대학원이 되어버렸으니,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상승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힘든 일을 한 사람들이 그 일의 대가로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 사회도 이러한 '퀴닝'이 가능한 사회가 되겠지만, 저자가 마지막에서 '인간이 남의 돈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선, 졸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일생 졸로 머무르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나는 조금 두려워진다'(440쪽) 했듯이,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하게 사는 삶이 유지되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 역시 마음이 좋지 않다.


이 책의 저자가 나중에 쓴 책부터 읽었다. 그 책을 읽고 자신이 직접 체험한 노동에 대한 이야기기에 더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했는데, 결코 노동을 미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자신을 좋게만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저자가 먼저 쓴 노동에 대한 책을 읽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동사의 멸종]보다 더 생생한 노동의 현장, 저자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것이 꼭 저자만이 겪는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최저임금이 간신히 보장되는 노동 현장에서도 계급이 있다는 사실. 그것도 외국인 노동자, 특히 동남아나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은 가장 밑바닥에 처해 있다는 사실. 한국인인 저자가, 그것도 젊은 한국인인 남성 노동자인 저자가 겪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보다도 더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


그것을 알고 있는 저자도 어떨 때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멸시하는 말을 하고, 그들을 막 대하고 있다는 사실. 머리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다 같은 노동자라는 사실이 막상 현장에서는 작동되지 않고 그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모습이 이 책에 적나라하게 나와 있으니...


또한 힘든 노동을 경시하는 그 노동으로 편리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런 사람들에게 질리다 못해 결국 그들을 막 대하는 저자의 모습이 "뭐 저런 노동자가 다 있어?"라고만 할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막바지에 처한 사람들의 몸부림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저자가 한 말에 동의한다. 정치인들, 한번 이런 노동현장에 화서 일해보라고... 돼지 농장에서 돼지분뇨를 날라보라고... 또 꽃게잡이 어선에 타서 꽃게잡이를 해보라고, 요즘은 셀프 주유소가 많이 생겼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한 손님들로 늘 북적이는 주유소에서 일해보라고, 아니 지금도 우리나라에 만연하는 기계공장에서 일해보라고...


예전에 '삶의 체험 현장'이라는 방송이 있었는데, 유명인이 가서 하루 체험을 하고 일당을 받아오는 방송이었다. 이들은 방송에 나온다는 점을 감안했는지 일당도 꽤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책을 보면 그것은 방송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저임금도 못 되는 돈을 주는 경우가 많고, 노동 현장은 가혹할 정도로 열악하다는 것. 여기에 사회구조를 비판하기보다는 바로 옆에 있는, 그것도 나보다 조금이라도 힘이 없다면 그들을 무시하고 막 대하는 쪽으로 변해가는 그런 모습은 절대로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


이런 책에서나 만날 수 있는 현장이다. 그러니 이런 책은 우리 사회의 노동현장을 가감없이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을 지탱하는 그런 노동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졸이 아니라 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적어도 졸이 졸로만 존재하는 사회는 아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 - 우리는 어쩌다 아픈 몸을 시장에 맡기게 되었나
김현아 지음 / 돌베개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도 의료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 의대 학생수 증원을 놓고 벌어진 갈등이, 전공의들의 사퇴로, 또 의대생들의 휴학으로, 그리고 의사국가고시의 거부로 이어지고 있다. 갈등은 지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해결될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이런 때 의사가 쓴 책을 읽는다. 의사이기 때문에 의료 현실을 직접 경험하고 있으니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으리라 믿고, 또한 그러한 문제점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면 좋을지를 어느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료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과 현장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관점을 다를 수 있음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의료 정책에 현장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는다면 문제는 더 발생할 소지가 있다.


이 책을 쓴 김현아 교수는 류마티스 내과 교수라고 한다. 오랫동안 의사로 활동해 왔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느꼈던 문제들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항들은 이 책을 읽으면 되는데, 가장 큰 문제의식은 시장이 우리나라 의료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의료 민영화를 거부하는 나라인데, 의료가 시장에 잠식당하고 있다고?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에 속하는 삼성의료원과 현대아산병원이 어디 소속인가? 거대 재벌 소속 아닌가. 이들 재벌이 자신들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에서 그 병원을 운영하는가?


아니다. 이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많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첨단 장비를 이용한 검사비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약을 처방받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환자 입장에서는 정확한 검사를 받고, 효과적인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지출해야 할 비용이라고 하겠지만, 이런 검사와 치료를 공공의료가 담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오히려 중증을 치료하는 병원은 사적인 기업이 운영하는 병원이 아니라 공공의료병원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의료 비중은 10%정도라고 한다. 다른 선진국들이 약 30%정도라고 하니, 공공의료는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의대 정원 문제는 단지 의사수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의료를 확충하느냐 아니면 의료를 시장에 넘기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시장에 넘기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대형병원 의사들이 하루에 만나는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정확한 숫자는 몰라도 대형병원에 가면 예약을 하고 가도 근 1시간 가까이 기다렸다가 달랑 3분도 안 되는 시간에 진료받고 처방받고 나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료의 시장화다. 의사들이 이렇게 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야 병원이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하니... 건강보험에서 진료수가가 낮은 것에도 원인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 지금 제도에서는 진료수가를 올려도 환자를 진찰하는 시간이 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병원이 이익을 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가 말한대로 의료는 우선 인간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과 죽음을 거부할 수는 없다는 것. 완벽한 정상 몸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질병에 걸릴지는 본인도 의사도 모른다. 하지만 첨단 기계를 이용해 검사를 하면 병에 걸릴 인자들이 나오게 된다. 그런 인자가 자신의 몸에 있다면 그때부터 마치 병에 걸린 듯 치료를 받으려 한다.


그러나 과연 몸에 있는 인자들이 모두 질병으로 발현되는가? 아니다. 수많은 인자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질병으로 발현된다. 발현되는 경우보다 안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1차 병원에서 진료받고 꾸준히 상담하면서 자신의 몸 상태를 지켜보는 의사가 있다면 상급종합병원에 가는 것보다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의사들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역시 자본주의의 한 구성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사들과 시민들이 대립할 이유가 없다. 의사들 역시 당연하게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요청해야 한다.


하루에 진료하는 환자수가 너무 많으면 적정한 진료 환자수를 정하자고 해야 한다. 스스로 과잉 검사를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살인적인 업무 환경을 고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니만큼 환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고 주장해야 한다.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하고, 충분한 진료 시간을 확보해야 하며, 진료나 치료가 아닌 다른 일로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의료가 시장에게 잠식당하지 않는다. 이는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사람들도 명심해야 하지만 당사자인 의사와 국민들이 협심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 수가 있게 된다.


아직도 진행 중인 의료 문제... 그런 중에 읽은 이 책. 이 의료의 문제가 의사들의 이기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제도와 환경이 함께 마련되어야 의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의사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주도적으로 제시하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자고 하면 국민들도 납득하고, 서로에게 더 나은 의료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한 책이다.


덧글


얼마 전에 읽고 써놓은 글인데...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전국민을 놀라움과 두려움, 당혹감에 빠뜨린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가 6시간만에 해제되었다. 절차를 지키지도 않았다는 문제, 지금이 과연 계엄령을 선포할 시기인가 하는 문제가 심각하지만... 이렇게 무시무시한 언어로 협박이라고 느낄 수 있는 표현을 했으니, 과연 의사들이 이 포고령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합니다.


과연 해결할 의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절차를 밟기 힘들 때 대통령이 긴급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헌법 조항을, 세상에 대통령이 스스로 나라를 위기에 빠뜨려 비상 시국으로 만들다니... 이것이 과연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할 일인지.


누가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지 12월 3일 밤... 그날, 일을 겪은 국민들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작 당사자가 전혀 모른다는 것이 문제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두사 - 신화에 가려진 여자
제시 버튼 지음, 올리비아 로메네크 길 그림, 이진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화 속에 가려진 여자'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메두사에 대한 재해석 정도 되겠다. 메두사 하면 뱀머리를 가진 괴물로,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려 아테나의 방패에 박힌 존재로 기억한다.


그냥 그렇게 페르세우스의 모험에 등장하는 세 여자 중 하나로만 기억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페르세우스 신화에는 세 여자가 등장한다. 한 사람은 페르세우스의 어머니인 다나에, 그리고 또 한 여자는 메두사, 마지막 한 사람은 안드로메다이다. 


이 중에 다나에는 탑에 갇혀 있을 때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페르세우스를 낳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신화를 여성의 입장에서 해석을 하면 여성은 성의 주체로 서지 못하고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그들의 욕망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존재로 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나에는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페르세우스의 말을 통해서 등장하긴 하지만 언제나 남성의 욕망에 휘둘리고 위협받는 존재로밖에 나오지 않는다.


또한 안드로메다는 이 소설에서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화에서는 메두사를 죽인 페르세우스가 돌아가는 길에 안드로메다를 구출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 소설에서 페르세우스는 돌이 되어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가야 남성의 욕망에서 풀려나는 다나에는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소설에서 의미를 지니지 못하며, 안드로메다 역시 남성의 힘에 자신을 맡기는 역할밖에는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소설에 등장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메두사는? 괴물로 알려진 메두사는? 사실 신화를 읽다가 의문이 가는 점이 있었다. 사고는 포세이돈이 쳤는데, 왜 아테나는 메두사에게 벌을 내렸을까? 같은 신이라서 책임을 물을 수가 없었는가? 아테나 역시 여신 아닌가? 그렇다면 여성의 편을 들고 포세이돈에게 항의를 했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벌을 메두사에게 내린다. 그것도 가장 위협적인 뱀의 머리를 하는 존재로.


이것은 여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사례라고 해야 할까? 즉 아테나는 여성이지만 남성성을 추구한다. 남성이 추구하는 세상을 구현하려 하지 여성성이 구현된 세상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물학적 성이 여성이라고 해서 여성성을 발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신화나 이 소설에서 아테나를 통해 알게 된다.


괴물이 된 메두사.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왜 메두사를 괴물로 여겨야 하는가? 단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메두사의 외모가 변한 것은 우리나라 고전소설 [박씨부인전]에서 박씨 부인이 변한 것과 반대 방향이다.


메두사는 미인에서 추녀 혹은 괴물로, 박씨 부인은 추녀에서 미녀로 변신했다. 둘을 대하는 다른 사람의 태도는 어떠한가? 메두사는 아름다운 소녀에서 피해야만 할 (메두사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 돌이 된다) 존재가 되었다. 반대로 박씨 부인은 천대받는 여성에서 사랑받는 여성으로 변했다. 


이 둘의 변신을 보면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다. 즉 여성은 외모로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 여성이 지닌 능력이나 성품은 그 다음이고.


이 소설에서 메두사 역시 페르세우스의 본질을 파악하기 전에는 그 점을 깨닫지 못했다. 진실을 말하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페르세우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다하고 자신이 메두사임을 밝혔을 때, 페르세우스는 메두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냥 괴물일 뿐이다. 자신이 처치해야 할.


처치하고 돌아가 엄마를 구해야 할 대상으로밖에 메두사를 여기지 않는다. 그때까지 둘이 터놓았던 마음들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이는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편견에 갇혀 있을 뿐임을 보여준다.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페르세우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메두사임을 알지 못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만, 대화의 상대가 메두사임을 알게 된 순간 과거의 마음은 모두 버리고 오로지 자신이 처치해야 하는 존재로만 여기는 페르세우스.


페르세우스는 사회적 통념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지만 메두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자신의 머리에 있는 뱀들이 자신의 일부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힘도 인식하고, 이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언니들이 날개가 달린 존재로 변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하고, 그럼에도 메두사에게 날개가 달리지 않은 것은 메두사가 지내야 할 세상은 여전히 만만하지 않음을 생각하게 한다.


뱀이 달린 머리, 이는 우리들과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게 하는 장치다. 그런 다름이 차별로, 차별이 처단으로 이어지게 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신화 속 여성을 다른 각도에서 쓴 다른 소설들 생각을 했다. [페넬로피아드]와 [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와 더불어 어쩌면 우리는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메두사'처럼 괴물로 여기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도 우리가 여성들을 '메두사'로 매도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박경석.정창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경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박경석 하면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에 앞장선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의 얼굴을 뉴스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고. 한때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으로 지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는데... 구체적인 그의 삶과 생각을 들은 적은 없었다. 그냥 시위를 하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보기만 했을 뿐.


그러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계속되고 있다는 말은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는 뜻인데,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지하철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생각했다.


사람도 많고 바쁘기도 한 출근길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함께 타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말지만, 어떤 사람들은 왜 이 시간에 나와서 우리 출근을 방해하느냐고 비난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당신들을 지지합니다라고 하기도 하는, 서로 다른 관점들이 표출되는 그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현실을 다시 직시한다.

 

그가 왜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포기할 수 없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것은 단순히 장애인도 지하철을 편하게 타자는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의 근본 시스템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여기까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 투쟁이 단지 자신들의 편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운동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공감 차원을 넘어서서 지금 시스템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드러내고 ,그 시스템을 잠시라도 중지시켜보는 실천들이 필요한 거죠. 전장연처럼 지하철이라는 컨베이어 벨트를 멈춰 세우는 것 같은 실천이 그래서 저는 정말 중요한 거라고 생각을 해요. ... 지금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건 이놈의 시스템인데, 정작 고 시스템은 전혀 공격도 안 받고 우리끼리 각자 권리를 두고서 서로 피터지게 싸우기만 하고. (65쪽)


그렇다. 그는 이를 원형경기장에 비유했다. 원형경기장에서 싸우는 검투사들. 그들은 상대를 향해 칼을 휘두른다. 그렇지만 정작 그들을 그곳으로 내몬 사람들은 그들의 싸움을 보면서 즐긴다. 이게 무엇인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현실.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모습 아닌가.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원형경기장에서 나와야 한다. 싸워야 할 대상은 바로 눈 앞에 있는 검투사가 아니라 원형경기장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싸우게 만든 자들이다.


박경석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무지를 탓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우리 사회가 T4사회라고 외쳤는데, T4사회가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나의 무지를. 아니 T4사회라는 말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들은 나의 무지를.


장애인을 조직적으로 말살한 나치의 정책이 T4정책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장애인을 제거한 것이나 지금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하는 박경석의 절규. 이 절규를 우리가 왜 듣지 않고 있는지.


그래서 박경석은, 그와 더불어 장애인들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에서 보이는 존재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에서 목소리를 내는 존재로 당당하게 사회에 나서려 한다.


그들이 당당하게 나설수록 우리 사회는 더 좋은 사회기반을 마련할 것이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원형경기장에서 바로 눈 앞의 상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원형경기장을 부수려는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장애인 투쟁의 역사를 어느 정도 개괄할 수 있었는데... 새롭게 느낀 점은 많은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고 있었던 것.


국가 예산 편성권을 기재부(기획재정부)가 독점적으로 쥐고 있다는 것. 복지부나 기타 다른 부서와 합의가 되어도 기재부에서 예산 편성을 하지 않으면 합의된 정책들이 실시될 수 없다는 점. 그런데 기재부는 무슨 근거로 예산 편성권을 독점하고 있는 걸까? 그들은 철저히 경제(성과)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한다고 하는데... 


국가는 비용(성과)보다는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쪽에, 사람을 중심에 두는 쪽에 예산을 편성해야 하지 않나. 그러니 기재부의 예산 독점권은 시민들에 의해 견제받아야 한다는 박경석의 말에 동감한다.


국민적 합의로 예산을 편성해야 사회적 합의를 이룬 문제들을 실행할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