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SF게임 - 건너편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무튼 시리즈 69
김초엽 지음 / 위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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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에서 내가 관심 갖고 있는 작가는 김초엽과 천선란이다. 조금 다른 결의 소설을 쓰는 작가로는 한정현이고... 물론 다른 작가들에게도 관심이 있지만, 최근에 이들의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천선란은 자신의 성장과 디지몬을 연결지어서 [아무튼, 디지몬]을 썼고, 김초엽은 SF게임과 관련지어 [아무튼, SF게임]을 썼다. 둘다 자신의 성장과 관련이 있는 대상을 골랐는데, 디지몬이 애니메이션이라면, SF게임은 그러한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분야에 속한다. 그럼에도 현실과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준다는 공통점은 있다.


SF게임이라고 했지만 그냥 게임이라고 해도 된다. 게임은 현실과 다른 세상에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를 현실에서 잠시 떼어놓고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 그 속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게임이다. 게임의 종류가 워낙 많아서 몇몇 종류로 딱딱 나눌 수는 없지만, 그 중에 SF게임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김초엽이 SF작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작가에 SF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는 없다.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이미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을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 내가 살지 못하는 삶을 다른 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소설 속 세상이니, SF작가라고 해도 되겠지만, 그냥 작가라고 해도 된다. 많은 소설 중에 그러한 분야의 소설을 쓸 뿐이니...


그렇다면 SF게임은 무언가. 역시 다른 세계 속에서 활동한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에는 내가 개입할 수 없지만 게임에서는 내가 개입할 수 있다. 물론 게임 속 인물이 '나'는 아니지만, '나'를 대리한다. 그래서 '나'는 게임 속의 인물을 통해 다른 삶을 살아간다. 다른 행위를 한다.


그 행위를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다른 게임을 찾아 계속 나아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래서 '게임 중독'이라는 말을 하고, 게임을 금지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게임은 스포츠가 되었다. 세계 대회도 있고, 게임을 전문적으로 하는 게이머들도 있는 세상이니.


또한 게임을 통해서 삶의 방향을 찾기도 한다. 그냥 게임 속에 파묻혀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소수다. 다수의 사람들은 소설이나 다른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듯이, 게임을 통해서도 무언가를 느끼고 배우게 된다.


김초엽 역시 그랬다. 성장하면서 게임 속에 빠졌던 자신의 시간이 결코 낭비가 아니었음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게임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꼭 게임을 끝까지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끝을 봐야만 게임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니... 이제 김초엽은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한다. 물론 선정적이고 지나치게 폭력적인 게임 (사회적 통념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아동 성폭행 게임 같은 것. 그런 게임이 출시될 리가 없다는 사회적 합의는 있다고 보니)도 있기는 하지만, 그 게임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냥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다, 그러니 해서는 안 된다, 또 중독이 되어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그만두게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사회적, 윤리적, 철학적 함의를 찾고 그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요즘 게임을 분석하는 책도 나오고 있다고 하니, 게임을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분석하고 논의하고 함께하려는 모습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김초엽은 게임에서는 패자부활전이 있음을, 즉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그러한 점이 우리 인생에서도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게임을 통해서 한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가 아니라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또다른 기회임을 생각할 수 있다면 게임은 삶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게임에 자신을 완전히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게임도 바깥에서 바라보는 자세를 지녀야 하겠지만.


즉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처럼 언젠가는 책 속에서 빠져나와야 하듯이, 게임 역시 빠져나와 바깥에서 볼 수 있는 관점, 그러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양한 게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작가 김초엽의 생각, 삶이 함께 녹아 있어서 재미 있게도, 또 여러가지를 생각하면서 읽은 책이다. 


이 '아무튼' 시리즈를 빌려와 말하고자 한다. 아무튼 우리는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관점을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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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남북은 긴장 상태다. 정말로 유전이라는 것을 느낄 정도로, 서로를 적으로 여기고 있다.


  한때 긴장이 풀리기도 했었는데, 서로 교류도 됐었는데, 남한에서 개성으로 출근하기도 했고, 금강산에 수학여행을 가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때 만들어 놓았던 길도 다 파괴되어 버렸다고 하고, 남 나라 전쟁에 군대를 보낸다, 무기를 보낸다 하고 있으니...


  언제 이 긴장이 폭발할지, 절대로 그러면 안 되는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런 긴장 폭발은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이젠 불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


  한 민족이라고 하지 않나. 통역 없이 대화를 할 수 있지 않나. 남북은. 그러니 다시 대화를 해야 한다.


만남 만큼 긴장을 푸는 데 좋은 것은 없다. 자주 만나야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는 일을 막을 수가 있다. 


자주 만나야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되고,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래야 긴장보다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평화롭게 지내면 우리 마음 속 서정성이 회복된다. 서정성의 회복. 이것은 우리 마음을 평화롭게 하기도 한다.


북한은 사회주의 문학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을 노래하는 시들이 없을 수가 없다.


이 시집은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북한에서 발표된 시들 중에서 서정성을 드러낸 시들을 엮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서정성이 없을 수가 없으니, 북한의 문학에서도 짙은 서정을 노래한 시들이 있고, 이 시집을 통해서 그러한 정서를 만날 수가 있다.


무엇보다 번역 없이 시를 만날 수 있으니, 시의 의미가 곡해될 일이 별로 없다. (물론 낱말이 다르게 쓰이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이것이 대화를, 또 시를 이해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이 시를 보자. 어디에서 누가 발표했는지 가리고 보면 남북 어느 시인이 썼는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서정은 남북 모두에 공통된다.


   사람이 나이들면서

                        - 송명근


사람은 나이들면서

자주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게 된다

이마의 주름들속에 묻힌

회억(회상, 회고)의 갈피를 펼쳐

아마도 남은 나이라도 서둘러

잃은 것 봉창하려는(보상하다) 몸부림 아니라

한창나이 젊은 시절

피끓어 일 많이 하던 시절

자주 뒤돌아보며 채찍질했더라면

한생에 얼마나 더 멀리 왔으랴

때늦은 후회는 지나간 밤의 꿈과 같다지만

때맞춤한 자책은 인생의 지름길 안내자라네


김철학 엮음, 북한의 대표적 서정시. 한빛. 1996년.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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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디지몬 - 길고도 매우 짧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아무튼 시리즈 67
천선란 지음 / 위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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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빠져들게 하는 존재들이 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무엇이든 한 가지에 푹 빠져 헤어나오질 못할 때가 있다. 왜 그런지 모른다. 그냥 빠져든다. 그 빠져듦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그 생각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빠져듦이 워낙 강렬해서 이성의 힘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작가 천선란에게는 디지몬이 그랬다고 할 수 있다. 무언인지 모를 외로움에 빠져 있던 천선란에게 다가온 디지몬. 천선란은 자신에게도 그런 디지몬이 왔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디지몬은 디지털 세상에 존재하는 것.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만날 수 없는 존재를 꿈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는 만날 수 없는 존재를 꿈꾸기에 이곳에서 저곳을 상상할 수 있고, 또 이곳의 힘듦을 이겨낼 수도 있다.


이곳의 힘듦을 이겨내지 않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또한 내 삶임을 다른 세상의 존재들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작가 천선란이 성장담이라고 봐도 된다.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된 지금까지의 일들을 디지몬과 엮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디지몬을 꿈꾸던 때에서, 디지몬에 나오는 인물들과 자신의 삶을 연결지어 이야기하고, 그들의 문장이 '용기, 우정, 사랑, 지식, 희망, 순수, 성실, 빛'(32쪽 주)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 자신이 마음에 들어했던 인물과 그 인물의 문장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렇다. 작가는 디지몬의 세계에서 자신의 세계를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발견했다고도 할 수 있다.


때론 슬픈 장면이 나오는데, 그 슬픈 장면이 작가 천선란이 쓴 작품과 겹치면서 아, 이래서 작가가 이런 작품을 썼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디지몬들이 지닌 문장들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지녀야 할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몬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라고 하지만 어른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작품이고, 천선란 같은 민감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과 연결지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어린 시절에 빠져들었던 그 무엇이 단지 어린 시절의 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우리들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책의 뒷부분에 가면 천선란은 자신에게 온 또다른 디지몬을 이야기한다. 실제 디지털 존재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자신의 엄마를.


그런 엄마와 함께하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는 작가의 모습에 뭉클하기도 했다. 그래, 어려운 상황이라도 그 상황 속에 있는 나는 유일한 존재고, 그것은 나의 유일한 경험이니까.


그것이 바로 나니까,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작가 천선란을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면 좋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왜 천선란의 작품이 따스함을 품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기도 했고. 


그러면서 나에게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일까도 생각해 보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 내 삶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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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1-23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인듯요^^
누군가에게는 좋은 것이 있고,,, 위안이 되는 것이 있고,,, 어린시절 빠졌던 것은 더욱 깊게 기억되죠

kinye91 2024-11-24 14:5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이 ‘아무튼‘ 시리즈를 읽으면서 내게 영향을 주었고, 또 지금도 제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어요.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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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이다. 여러 소설이 실려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 우연이 겹쳐 삶을 이루고, 작은 것들이 우리 삶의 방향을 틀기도 하는 모습들이 소설들에 나타나 있다.


이것이 삶이라고... 삶은 결코 딱 정해진 길로만 가지 않는다고.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당신을 파멸의 길로만 인도하지도 않는다고. 


파멸의 길이라고 여겼던 길에서도 새로운 시작을 찾을 수 있고, 성공의 길이라고 여겼던 길에서도 어려움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


'열'이라는 소설을 보면 그런 점이 잘 나와 있다. 아내와 헤어지고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남자. 직장에 가기 위해선 아이들을 돌봐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 돌보는 사람을 쉽게 구할 수가 없다. 한번 구한 사람은 사고만 치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할 때 집을 나간 아내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이 돌봐줄 사람을 구해준 것. 나갔지만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 것. 인생이다. 그런데 다시 들어오면 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얼마간 편안한 삶을 누리던 주인공에게 아이 돌보던 사람이 떠나가게 된다. 그 사이에 그는 고열에 시달리고. 그렇다. 이것이 인생이다. 어디 어느 한쪽으로만 흘러가지 않는 것. 아이 돌보는 사람이 떠나갈 때 그는 드디어 자신을 떠나간 아내도 보낼 수 있게 된다. 이제 그에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소설이 있다. 문지혁이 쓴 [중급 한국어]에 소개가 되어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는 소설. 그 소설에서는 이 소설에 대한 해석까지도 되어 있어서 읽을 필요가 있나 싶지만, 어디 소설의 해석이 한 사람의 해석으로만 끝날 수 있는가? 남이 해석해도 내가 읽고 내 나름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읽을 필요가 있고...


여기서는 자신의 처지에만 빠져 있는 사람에게 다른 관점을 지닐 수 있게 하는 존재가 등장한다. 그냥 자신을 받아들여주면서 별 것 아닌 것을 주는 사람.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 빵집 주인은 그렇게 부부의 말을 들어주고, 절대로 논평을 하지 않으며,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준다. 그것이 상대를 편안하게 해준다. 그 편안함은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자신에게 갇혀 있던 삶에서 다른 삶을 볼 수 있게 하는 것.


어려움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 그 유명한 말인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 것. 그것은 빵집 주인이 내어준 빵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로 도움이 되는 그런 존재였던 것. 단지 빵이 아니다. 빵은 빵집 주인의 마음이고, 그 빵을 먹는다는 것은 주인의 마음을 받아들인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그들에게는 이제와는 다른 인생이 시작된다. 


'대성당'이라는 소설이 그렇다. 대성당을 설명해달라는 맹인의 말에 난감해 하는 주인공. 하지만 맹인은 주인공에게 대성당을 그려달라고 한다. 그가 연필로 그릴 때 그 손을 잡고 있는 맹인. 주인공은 대성당을 그리면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계를 알게 된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그 매개 역할을 맹인이 한다.


맹인... 볼 수 없는 사람. 이때 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시각에 갇히지 않았다는 뜻. 편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니, 맹인과 함께 대성당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의 눈에 비친 대성당을 그대로 그린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대성당을 만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 나만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받아들이고 함께하는 삶.


이전에 읽는 소설집과 비슷하게 이 소설집의 소설들도 결말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인생을 예측하기 쉽지 않듯이. 하지만 읽으면서 그래, 이것이 인생이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소설들이 많이 실려 있다.


이 작은 단편 단편들이 모여 우리 삶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면 좋을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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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조용히 좀 해요
레이먼드 카버 지음, 손성경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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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비 C'est La Vie'라는 말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라고 할 수 있는 말. 어려울 때나 뜻한 대로 안 되거나 할 때 또는 뜻밖의 일이 생겼을 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디선가 들어서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 있던 말이었는데....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말 속에 있는 이것들은 너무도 다양하고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인생이란 새옹지마라는 말과 같을 수도 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에 연연하지 말고 살아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말이기도 하고.


인생이 명료하기만 하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마는, 우리네 인생은 명료할 수가 없고, 부연 안개 속을 헤매듯,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걱정도 많이 한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 인생을 만들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예측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하는 것이 인생.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하루하루가 다음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알 수가 없다.


이 소설에 나타난 삶이 바로 그렇다.


레이먼드 카버.  문지혁의 [중급 한국어]를 읽다가 작품 속에 나온 작가였다. 그 작가가 쓴 작품은 커녕 작가의 이름도 처음 들어봤으니...


한 소설에서 다른 소설로 넘어갈 수 있는 다리를 놓아주는 소설을 만났으니, 기꺼이 다리를 건너가 보자 하는 생각.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을 몇 권 빌리다. 무엇부터 읽을까? 모를 때는 발표 순으로 읽는 것을 택한다.


작가의 첫작품집이라고 알려진 [제발 조용히 좀 해요]를 읽는다. 단편들이 모여있다. 길지가 않다. 해설에 보면 레이먼드 카버가 체호프를 좋아하고 존경했다고 하는데, 그런 단편들을 썼다고 할 수 있다.


읽다 보니 단편 소설들 제목을 소설 속 대화나 내용에서 따온 경우가 제법 있다. 소설집의 제목이 된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역시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참 인생이란 별것 아닌 것으로도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들이 많다. 또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도 있고.


'제리와 몰리와 샘'이라는 소설을 보면 개때문에 삶이 방해받는다고 여기는 사람이 개를 버리고 오자, 개를 잃어버린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개를 찾으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어떻게든 개를 찾아 데라고 와야 하는데, 결말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이렇듯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수십 번 바뀌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임을,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서도 몇 년 전에 일어났던 일로 아내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지만, 그런 배신감이 불쑥 나눈 말들에서 나오고, 그렇다고 또 자신의 행동이 그러한 배신감을 복수하는 쪽으로만 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낚시를 갔다온 소년이 부모를 모두 경악시키는 장면이라든지, 자신들은 선의를 베푼다고 여기지만 그것이 상대에게는 아닌 경우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 소설들이 실려 있다.


결국 이 소설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무엇이라고 딱 정의할 수 없다는 것. 고정되지 않고 변한다는 것. 꼭 큰 것만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에서도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래, 의도와는 다르게 진행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 인생들의 모습, 레이먼드 카버는 이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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