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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이다. 여러 소설이 실려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 우연이 겹쳐 삶을 이루고, 작은 것들이 우리 삶의 방향을 틀기도 하는 모습들이 소설들에 나타나 있다.
이것이 삶이라고... 삶은 결코 딱 정해진 길로만 가지 않는다고.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당신을 파멸의 길로만 인도하지도 않는다고.
파멸의 길이라고 여겼던 길에서도 새로운 시작을 찾을 수 있고, 성공의 길이라고 여겼던 길에서도 어려움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
'열'이라는 소설을 보면 그런 점이 잘 나와 있다. 아내와 헤어지고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남자. 직장에 가기 위해선 아이들을 돌봐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 돌보는 사람을 쉽게 구할 수가 없다. 한번 구한 사람은 사고만 치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할 때 집을 나간 아내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이 돌봐줄 사람을 구해준 것. 나갔지만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 것. 인생이다. 그런데 다시 들어오면 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얼마간 편안한 삶을 누리던 주인공에게 아이 돌보던 사람이 떠나가게 된다. 그 사이에 그는 고열에 시달리고. 그렇다. 이것이 인생이다. 어디 어느 한쪽으로만 흘러가지 않는 것. 아이 돌보는 사람이 떠나갈 때 그는 드디어 자신을 떠나간 아내도 보낼 수 있게 된다. 이제 그에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소설이 있다. 문지혁이 쓴 [중급 한국어]에 소개가 되어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는 소설. 그 소설에서는 이 소설에 대한 해석까지도 되어 있어서 읽을 필요가 있나 싶지만, 어디 소설의 해석이 한 사람의 해석으로만 끝날 수 있는가? 남이 해석해도 내가 읽고 내 나름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읽을 필요가 있고...
여기서는 자신의 처지에만 빠져 있는 사람에게 다른 관점을 지닐 수 있게 하는 존재가 등장한다. 그냥 자신을 받아들여주면서 별 것 아닌 것을 주는 사람.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 빵집 주인은 그렇게 부부의 말을 들어주고, 절대로 논평을 하지 않으며,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준다. 그것이 상대를 편안하게 해준다. 그 편안함은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자신에게 갇혀 있던 삶에서 다른 삶을 볼 수 있게 하는 것.
어려움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 그 유명한 말인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 것. 그것은 빵집 주인이 내어준 빵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로 도움이 되는 그런 존재였던 것. 단지 빵이 아니다. 빵은 빵집 주인의 마음이고, 그 빵을 먹는다는 것은 주인의 마음을 받아들인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그들에게는 이제와는 다른 인생이 시작된다.
'대성당'이라는 소설이 그렇다. 대성당을 설명해달라는 맹인의 말에 난감해 하는 주인공. 하지만 맹인은 주인공에게 대성당을 그려달라고 한다. 그가 연필로 그릴 때 그 손을 잡고 있는 맹인. 주인공은 대성당을 그리면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계를 알게 된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그 매개 역할을 맹인이 한다.
맹인... 볼 수 없는 사람. 이때 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시각에 갇히지 않았다는 뜻. 편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니, 맹인과 함께 대성당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의 눈에 비친 대성당을 그대로 그린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대성당을 만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 나만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받아들이고 함께하는 삶.
이전에 읽는 소설집과 비슷하게 이 소설집의 소설들도 결말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인생을 예측하기 쉽지 않듯이. 하지만 읽으면서 그래, 이것이 인생이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소설들이 많이 실려 있다.
이 작은 단편 단편들이 모여 우리 삶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면 좋을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