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이란 무엇인가 살림지식총서 395
김정태.홍성욱 지음 / 살림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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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핵 안보 정상회의"가 열린다고 연일 방송을 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우리나라 서울에 모여 해 안보에 대한 회의를 한다고 호들갑인데... 그래서 회의가 열리는 26일과 27일에는 자동차를 자율적으로 2부제 운행을 하라고 한다. '자율적으로' ... '하라' 이게 서로 어울리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손님이 오니까 손님 대접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손님, 누가 초대한?

 

문제는 이 책과 연관을 지으면 두 가지가 걸린다. 하나는 바로 회의의 대상이자 주제인 "핵"이다. 얼마나 위험한 물건이면 세계 정상들이 모여 회의를 할 정도겠는가. 이 "핵"은 거대 기술의 대표이고, 또 비민주적인 기술의 대표이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물건이자 기술이다. 어떤 사람들은 핵이 무기로 쓰이면 파멸적인 물건이 되지만, 에너지를 생산하는 원자력으로 쓰이면 생산적인 물건이라고 하겠지만,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에서 보듯 원자력으로 쓰인다고 해서 생산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이 얼마나 거대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 그 기술의 결과로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양산이 되는지, 그 쓰레기를 보관하는 문제가 얼마나 힘든지를 생각한다면 적정기술이라는 말과 "핵"은 양립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는 계속 보유하고 있으며, 그것을 없애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지금, 핵 안보 정상회의는 기득권 유지 모임이라고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적정기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의 문제의식과는 반대 방향에 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회의다.

 

또 하나는 바로 자동차 2부제다. 자율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온갖 매체를 통해, 또 학교를 통해서도 2부제를 자율적으로 실시하라고 얘기하고 있다. 웬지 자율적이라는 이름에, 꼭 해야 한다는 어조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는 과연 적정기술일까? 지금과 같은 고유가 시대, 기름이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천만 대가 넘는 자동차는 적정기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동을 편하게 하자고 산 자동차가 이동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여기에 왜 자동차는 이리도 커지는지. 최근에야 고유가로 작은 경차가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지만, 길거리에 나가보거나 주차장에 보면 아직도 큰차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예전 기준으로 주차장에 그어진 선들은 커다란 차들에 부담이 될 정도이니. 많은 사람들이 함께 타는 자동차도 아니고, 주로 혼자 또는 둘이 타는 자동차인데, 지나치게 커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적어도 적정기술에 대해 생각한다면 차가 그렇게 커지는 현상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정부에서 "핵 안보 정상회의"를 홍보하는 일보다는 자동차 크기로 사람을 평가하는 문제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자동차와 인격은, 품위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홍보를, 아니 자동차가 클수록 오히려 지구에, 사람에 더 부담을 주고 있다고 홍보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권정생 선생은 자동차를 타지 않고 다닐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환경운동한다는 사람들 먼저 자동차 안 타기 운동을 하기를 바라셨다고 하는데... 이는 적정기술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 하셨지만, 그 분의 삶 자체가 바로 적정기술을 체화한 삶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담 적정기술이란 무엇일까? 이 책은 거기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는 책이다. 얇은 책에 적정기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적정기술은 세상을 바꾸는 희망의 기술이라고 한다. 기술을 폄하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기술을 이용하되, 인류의 생존과 지구의 지속이 공존할 수 있는 기술이 바로 적정기술이다. 이는 장거리 이동을 배제하고 현지에서 만들어내고 쓸 수 있어야 하며, 지나치게 복잡하여 전문기술자만이 다룰 수 있게 하지 않고, 누구나 쓸 수 있게 해야 하며, 지나치게 비싸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이어야 한다.

 

작은 책임에도 적정기술의 시대가 온다, 적정기술의 역사, 적정기술이란 무엇인가, 적정기술의 개척자들, 어떤 적정기술들이 있을까, 적정기술을 이끄는 단체들, 융합으로 새로워지는 적정기술, 앞으로의 과제라는 적정기술에 관한 내용들이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적정기술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이 먼저 읽으면 좋을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반드시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슈마허는 적정기술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적정기술이라는 말이 아닌 중간 기술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가 쓴 "굿 워크"를 보면 그 역시 중간 기술을 적정기술이라고 써도 무방하다고 하고 있으니 그의 책을 읽으면 적정기술에 대해서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적정기술을 개발하여 어려운 사람들의 삶이 개선되게 하는데 이바지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고나 할까. 이런 분야에서는 우리나라는 거의 무관심한 줄 알았는데, 그게 내 무지였다니. 지금도 적정기술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알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단체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기술 개발시대, 지금은 정보화시대, 온갖 최첨단 기계들이 난무하는 시대, 그러나 그럼에도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 식량이 없어서, 물이 없어서, 전기가 없어서 등등.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으로 지구의 생태를 가장 적게 파괴하여 지구와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내고 보급하는 노력을 하는 적정기술 단체들.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게 회의를 개최했다고 홍보할 수 있는 회의는 바로 이러한 적정기술 단체들의 회의 아닐까 하는 생각. 어렵고 힘든 나라 사람들에게 필요한 적정기술을 제공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맞는 적정기술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우리에게 맞는 적정기술을 제공하는 노력도 역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적정기술과 관련된 책들은 이 책에 소개된 '적정기술의 개척자들' 부분을 읽고 이들에 대한 책을 읽으면 된다. 적정기술들이 많아지면 우리의 삶이 달라진다. 그래서 적정기술을 희망의 기술이라고 한다. 명심하자. 이 시대 기계를 안 쓸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거대한 기계에만 의존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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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장갑
오탁번 지음 / 문학사상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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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이 아닌 다른 시집에서, 또는 다른 글에서 오탁번의 시를 본 경우가 많다. 시의 내용이 어렵지도 않고ㅡ 또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시들이 많았는데...

 

학자이기도 한 시인은 학자연하는 시를 쓰지 않는다. 그의 시에는 우리네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네 삶을 재인식하게 된다.

 

이 시집에서도 시의 화자가 어린아이이기도 하고, 시인 자신이기도 하고, 나이 든 사람이기도 하다.  어린 화자가 등장하는 시는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고, 절로 웃음이 나오게 하고 있으며, 시인 자신이기도 한 화자가 등장하는 시에서는 시인과 연결지어 시를 읽는 재미가 있다. 나이 든 화자가 나오는 시는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시들이 있고.

 

이 중에 '굴비'란 시. 우리나라 민담에서 차용한 이 시는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이 시의 해설에 나와 있듯이 눈물을 끌어내기도 한다.

 

얼핏 '굴비'란 시에 나오는 상황은 웃음을 유발한다. 그런 상황, 소위 음담패설이라고 하는 종류의 글을 읽을 때 나오는 웃음과 연관이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그 시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슬픔을 자아낸다.

 

웃기는 상황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음에, 그럼에도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음에 슬픔이 밀려오게 된다. 시인은 그런 슬픔을 따스한 시선으로 감싸주고 있다. 남편과 아내의 행동을 통해 그런 상황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나 해야 할까.

 

그래서 이 시집의 겉표지에 나오는 문장이 이 시집의 시들을 잘 대변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정겨운 인간의 사랑과 천진함이 묻어나는 순수한 서정시"

 

이 말이 딱 맞다.

 

우리의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된 시절까지 이 시집에는 다양한 내용이 실려 있고, 이들이 따스함을 잃지 않으면서 펼쳐져 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들이다.

 

제목이기도 한 시 '벙어리 장갑'을 보자.

 

벙어리 장갑

 

여름내 어깨순 집어준 목화에서/마디마디 목화꽃이 피어나면/달콤한 목화다래 몰래 따서 먹다가

어머니한테 나는 늘 혼났다/그럴 때면 누나가 눈을 흘겼다/-겨울에 손 꽁꽁 얼어도 좋으니?

서리 내리는 가을이 성큼 오면/다래가 터지며 목화송이가 열리고/목화송이 따다가 씨아에 넣어 앗으면/하얀 목화솜이 소복소복 쌓인다/솜 활끈 튕기면 피어나는 솜으로/고치를 빚어 물레로 실을 잣는다/뱅그르르 도는 물렛살을 만지려다가/어머니한테 나는 늘 혼났다/그럴 때면 누나가 눈을 흘겼다/-손 다쳐서 아야 해도 좋으니?

까치설날 아침에 잣눈이 내리면/우스꽝스런 눈사람 만들어 세우고/까치설빔 다 적시며 눈싸움한다/동무들은 시린 손을 호호 불지만/내 손은 눈곱만큼도 안 시리다/누나가 뜨개질한 벙어리장갑에서/어머니의 꾸중과 누나의 눈흘김이/하얀 목화송이로 여태 피어나고/실 잣는 물레도 이냥 돌아가니까

 

어린 시절 이야기. 따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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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알아야 할 학부모 마음 학부모가 알아야 할 교사 마음
하이데마리 브로셰 지음, 이수영 옮김 / 시대의창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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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교, 교육, 우리나라에서 늘 문제가 되는 일이고, 또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지금은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가려져 있지만, 학교는 폭력만이 아니라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한 문제 중의 하나가 학부모와 교사 간의 갈등 상황이 아닐까 하는데...

 

학부모와 교사는 학생을 사이에 두고 함께 가기도 하고, 때로는 대립하기도 하는 존재이다. 교사가 학생의 앞에서 학생을 이끄는 존재라고 한다면, 학부모는 학생의 뒤에서 학생을 밀어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학부모와 교사를 파악하면 학생을 사이에 두고 이들은 다른 방향에서 학생을 볼 수밖에 없다. 앞에서 보는 학생과 뒤에서 보는 학생은 전혀 다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관점이 바람직할까. 꼭 어느 관점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이들이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지라도, 한 가지에서는 일치하기 때문이다. 학생의 발전, 학생의 바람직한 성장.

 

이것은 교사나 학부모가 모두 공통적으로 지녀야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을 사이에 두고 학부모나 교사는 갈등보다는 공존을 지향해야 하는 관계가 맞다.

 

교사와 학부모가 갈등을 할 때 정작 피해를 보는 존재는 학생이기 때문이다. 학생을 위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학생을 망치게 되는 역설이 작동한다.

 

학부모와 교사의 갈등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나 보다. 독일에서 이런 책이 나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이것은 독일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겪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지 하는 생각.

 

서로 다른 존재라는 생각으로 공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교육의 목표를 이룰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교사와 학부모가 현명하게 공존할 수 있나, 하는 공존의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불필요한 갈등은 많이 줄어들게 되고,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많은 갈등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어 설득력이 더 있으며,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하는 책이다.

 

학부모나 교사가 읽어두면 서로의 입장에 대해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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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보이는 창은 낮은 곳을 지향한다. 결코 권력을 지향하거나, 자본의 축적을 지향하거나 하지 않는다.

 

낮은 곳에서 자신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실려 있다. 그냥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니라, 올바름을 추구하는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래서 가끔은 가슴이 찡하기도 하고,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에 주먹을 쥐게 되기도 한다.

 

이번 호 특집은 무언가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산다는 것,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래, 아무리 인간이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하지만, 관계를 떠나서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가끔은 자기만의 방을 지니고 싶어하듯이, 이러한 관계가 굴레로 다가오기도 한다. 굴레로 다가오는 관계는 이미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존재가 된다.

 

이럴 때 앞뒤 따지지 않고 뚝 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번 호에 있다.

 

이런 사람들 이야기 외에도 우리의 일상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그런 삶은 남의 삶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여기에 이번 호에 실린 손바닥 소설은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세상에 한미 FTA를 이렇게 풍자할 수 있다니... 짧은 소설에 들어 있을 내용은 다 있으니, 조금이라도 한미 FTA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은 우리나라 재벌 문제와 정치 문제와 그리고 이 자유무역 문제를 연계해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을테다.

 

역시 삶이 보이는 창에 실릴 만한 소설이다. 아주 짧지만 통쾌하다. 아니 슬프다. 이게 현실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 많기에. 그런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웃음이라지만, 그냥 웃고 마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힘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소소한 일들이 우리를 만들어간다는 사실. 이 책을 읽으며 늘 드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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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창비시선 341
이시영 지음 / 창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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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제목을 보고 골랐다. 그렇게 말해도 된다. 제목,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이는 용산 참사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시로 어떻게 표현했을까, 내가 알던 이시영이란 시인은 짧은 시들을 쓰려고 노력했던 시인이었는데, 이 시를 어디에선가 우연히 보게 되었을 때는, 짧은 시가 아니라 쉬임없이 길게 주욱 써내려간 산문시였기 때문이다. 용산참사 앞에서 시인이 어떻게 감정을 절제할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정제된 언어로, 짧게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오로지 마음 속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만이 있을 뿐이고, 그 탄식이 시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탄식으로 모든 감정을 대신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슴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그 고통스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내야 하나? 시인은 그 감정을 한 편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마치 짧은 영화를 보여주듯이 그 날의 일들을 시로써 보여주고 있다. 감정을 울리기보다는 먼저,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 영상을 통해 감정을 울린다. 잊을 수 없는, 잊혀지지 않는 그 날의 일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오로지 수단으로만 보고만 현실. 여기에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시로 많이 나오고 있다. '조사받다가 남산 수사관들에게서 우연히 들은 말'에서는 고 문익환 목사가 등장하고 있으며, '금강에서'라는 시에서는 4대강 이야기를 하고 있고, '아수라'라는 시에서는 구제역 파동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가축들을 생매장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시론'에서는 서정주와 이용악, 오장환이 등장하고 있다. 그밖에도 많은 사건들이 시에 등장하고 있다.

 

리비아 사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 촛불시위 때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들, 데레사 수녀, 권정생 선생, 어린이 노동 등등.

 

이런 시들은 시가지니고 있는 함축성이나 상징성보다는 그냥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들을 시라는 형식을 통하여 전달을 해주고 있다. 그래서 읽기에 편하다. 읽으면서 그 때 그 일들을 떠올리고, 우리들의 삶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하나의 사건이 단지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면서 우리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게 만드는 일, 그 일을 바로 이 시집에서 하고 있다.

 

여기에 이시영 특유의 짧은 시들이 있다. 이들이 서로 비슷한 시들끼리 하나의 장으로 묶이지 않고, 각 장에서 서로 섞여 있다. 짧은 시를 읽으면서 시의 함축성, 상징성 등을 생각하며,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기도 하고, 곧이어 나오는 이야기가 있는 시들을 읽으면서 시와 사회를 생각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난해하지 않아서 좋다. 너무도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한 편의 시를 이해하는데, 절망에 빠져들게 하는 시들이 적어도 이 시집에는 없다. 짧다고 하는 시들도 무슨 선문답처럼 먼 나라 이야기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그 짧은 구절에 감정이 오롯이 실려 있다.

 

내 마음에 드는 짧은 시. 이렇다. 아침이 오다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는 시다.

 

아침이 오다

 

방금 참새가 앉았다 날아간 목련나무 가지가 바르르 떨린다

잠시 후 닿아본 적 없는 우주의 따스한 빛이 거기에 머문다

아침 풍경이다. 따스하다. 또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이렇게 짧은 시들은 마음을 울리게, 긴 시들은 사건을 생각하며 내 삶을 생각하게 다가온다.

 

시를 읽자. 시를 읽자!고 많이 하는데, 막상 어떤 시를 읽어야 할지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럴 때 먼저 이런 시집을 읽자.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그 친숙함 속에서 삶의 방향성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시들.

 

결코 마음이 편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시집의 122쪽에 있는 '직진'이란 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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