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인생 3라운드에서 詩에게 길을 묻다
최복현 지음 / 양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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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킨의 시를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어렸을 때 멋도 모르고 읊어댔던 그 유명한 시 구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과연 삶이 우리를 속일 수 있을까.

삶이 우리를 속인다기보다는 우리가 삶을 속인다고 보아야 한다.

이 책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중년, 인생의 3라운드다.

인생을 죽음까지 이르는 4단계로 나눈다면 3단계는 이미 정상에 오른 단계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몰입한 인생.

눈은 오로지 앞만 보고, 발은 쉴틈도 없이 달리기만 했던 인생.

그런 인생에서 갑자기 정점에 이르렀다.

더 이상 발을 내디딜 곳이 없다.

백척간두에 선 느낌.

이제 눈은 하늘을 보지 않는다.

눈은 자신의 발밑을 본다.

무엇을 딛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과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진다.

당혹스럽다.

이제껏 살아온 인생이 이것이었나.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과거를 생각한다.

자꾸 자꾸 자기를 과거의 자기로 되돌리려 한다.

더이상 새로움을 추구하지 못할 때 주저앉고 만다.

그게 중년이다.

인생 3라운드다.

중년이란 말보다 3라운드란 말을 쓰겠다고 한다.

왜?

3라운드 하면 다음 라운드가 시작되리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 3라운드에 무엇으로 힘을 얻을까.

시다.

나를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해주는 대상.

시.

시는 거리에서 나온다.

나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을 때 시가 나온다.

시를 읽는다.

나를 떨어뜨려 두고, 나를 보기 위해서.

이재무의 '신발'이란 시가 생각난다.

 

신발의 문수 바꾸지 않아도 되던 날부터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간 친구여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간 꿈이여

                                                                         - 이재무, '신발'  전문

 

이게 중년이다.

다시 이재무의 시다.

'마흔'이다.

 

몸에 난 상처조차 쉽게 아물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이 겪는 아픔이야 오죽하겠는가

유혹은 많고 녹스는 몸 무겁구나

                                                                            -이재무, '마흔' 전문

 

이제는 몸이 무겁다.

새로움보다는 있는 것을 지키기도 버겁다.

자꾸 잃어간다.

더 많은 꿈을 잃어간다.

열정을 잃어간다.

하나하나 다 잃어가면서 하고자 하는 의지도 잃어간다.

잊어간다.

할 수 있음을.

해야 함을.

천상을 꿈꾸던 젊은시절을 거쳐 이제는 지상의 안녕을 지나 다른 피안을 세계를 꿈꾼다.

단지, 그것만이어서는 안되는데...

 

글쓴이는 이러한 중년을 인생 3라운드라고 하여 의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를 시에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시들이 책 속에 나온다.

우리나라 시인부터 외국의 시인까지.

역시 인간이란 국적을 불문하고 보편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여 인생 3라운드.

정신없음에서 정신있음으로,

자신을 잊음에서 자신을 찾음으로,

달리기에서 걷기로

인생의 행보를 바꾼다.

이를 시가 알려준다.

인생이란 이렇다고.

하여 생의 종착역에서야 깨달을 진리를 우리는 시를 통해 미리 깨닫게 된다.

삶이 더욱 풍요로와진다.

의미가 있어진다.

의미는 주어지지 않는다.

바로 찾아야만 한다.

그 찾음을 시가 도와준다.

인생 3라운드, 시를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때,

시를 통해서 더욱 의미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이다.

 

덧글

좀 아쉽다.

많은 시들이 인용되었는데, 전문이 아닌 경우가 꽤 있다. 책의 부록으로 전문을 수록해주었으면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는 특정한 시구로 감동을 주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그 시구로 감동받은 시의 전체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찾기가 힘든 경우가 많으니.

물론 인터넷으로 찾으면 쉬울 수 있으나, 시를 통해 삶의 여유를 찾는 사람이 기계문명의 속도에 의존하는 역설을 범하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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