걍팍한 세상, 동종요법이라고 하나, 비슷한 상황을 경험함으로써 치유를 한다. 그렇게라도 치유가 된다면 좋겠지만, 어쨌든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

 

시집을 읽는다. 도피로써, 또는 현실을 제대로 보는 눈을 갖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 읽는데, 그게 제대로 안 될 때가 있다. 시가 현실보다 더 슬플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를 통해 현실을 보는 일, 어쩌면 동종요법에 해당하는지도 모른다. 조은 시집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 주지 않는다"를 읽었다.

 

좀 우울하다. 시집에 실린 시들이 밝지 않다. 그렇기에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시집의 끝에 오규원 시인의 해설이 실려 있는데, 그 해설에 물과 벼랑이라고 이 시집의 전체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시집만큼이나 해설도 좋았다.

 

그리고 시인의 말에서 시인이 이 시집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계, 그런 세계가 있다면, 정녕 있기만 하다면, 이곳의 몸과 마음이 이보다는 편하리라' 고 자서에서 말하고 있다.

 

시인이 원하는 세계는 결국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계이고, 그러므로 지금 이 세계에 대해서 시인은 비판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시집에서 그런 비판적 시선을 잘 드러내고 있는 시가 '전원일기'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전원일기가 예전에 드라마로 방영했던 전원일기가 아니라 전원에 들어가 산 시기를 나타낸다. 한자어를 잘 보면 알 수 있다.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던 시기에서 절망과 좌절로 넘어가는 그런 시기. 그것이 바로 전원 생활인데, 이 때 전원생활은 오규원이 해설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전원이 아니라, 삶이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농촌을 말한다.

 

농촌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가를 이 시를 통해서 알 수 있는데... 1과 4을 보면 극명하게 그 모습이 대조된다. 희망에서 절망으로.

 

전원일기(田園一期) 1

 

  그곳으로 옮기는 이삿짐을 꾸리며 가족들은 평화로운 날들이 주렁주렁 열리리라 믿었다. 즐비한 돼지우리와 뒷간 악취도 신비롭던 그 봄 잡목 숲을 일궈 과실나무를 심었다. 어린 과실나무가 빗물을 걸러 먹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의 낮잠은 달고 깊었다. 빗물에는 삭정이들만 떠내려 갔다. 야산을 감싼 꽃잎은 넓었고 인근 비행장을 이륙하는 비행기 소리에 비탈의 도라지 밭이 세상을 희끗희끗 열었다. 아버지는 포클레인이 작업을 하고 있는 곳으로 가며 저수지에서 발을 씻었다. 아버지의 물살이 저수지에 가득 찼다. 멀리서 보는 아버지는 잔잔히 굽이쳐 산 하나를 넘어갔다.

 

조은,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 주지 않는다, 민음사, 2007년 개정판 1쇄. 16쪽.

 

전원일기(田園一期) 4

 

  새들이 돌아와 집을 지었다 밤 깊어도 새들은 잠들지 못하고 끄으윽 끄으윽 가족들을 쪼아 댔다 새가 쪼아 대는 곳에 고름이 차올라도 아무도 그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괭이를 휘두르며 울부짖으며 세상을 찍었다 그곳에서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허술했던가 괭이에 찍힌 비료 포대와 그곳을 이탈하던 독한 안개, 논밭의 잡초들은 넉넉한 그늘 아래 곡식들을 다스렸다 끄으윽 끄으으윽 마음껏 우리를 넘나들던 산천이며 초목이며 어린 새들이 마당 여기저기 빨갛게 주둥이를 말리며 머물렀다 그 새들의 날갯짓에 어둠은 두텁게 일어 햇빛이 우리 집에 닿기까지는 한나절도 부족했다 떠나온 그날까지

 

조은,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 주지 않는다, 민음사, 2007년 개정판 1쇄. 19쪽

 

그렇다고 도시의 삶이 행복할까. 아니다. 도시 역시 사람들이 살기는 힘들다. 그것을 역설적으로 '유토피아'라고 했다. 아니, 역설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아직 존재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유토피아처럼 갈구만 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시를 보자.

 

   유토피아처럼

 

유토피아처럼 과일 가게는 철거반에게 헐리고

새로 지은 상가의 층계는 말쑥하다

아파트로 들어가는 차량들과 삶이

즐거운 부인들이 구경하는 데서 냄비와 물통과 문짝과

딸아이의 속옷까지

맥없이 끌려 나와 널브러지는데

대단하다 정말 수차례 당해 본 사람처럼

 

담담하게

두 딸과 남편의 도시락을 오늘 아침에도

꾸려 주는 저 아주머니

 

조은,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 주지 않는다, 민음사, 2007년 개정판 1쇄. 76쪽.

 

그럼에도 현실은 지속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삶은 지속되어야 하기에 이런 환경 속에서도 하던 일을 계속한다. 계속해야만 한다. 그것을 이 시가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무엇인지, 정말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농촌이나 도시나 다 살기 힘든데... 어떡해야 하나? 여기서 그냥 포기하고 머물면 안된다. 더 나아가야 한다.

 

아무리 당해도 제 할 일을 묵묵히 담담하게 하는 시 속의 아주머니처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담담하게 해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어느 순간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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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을 한다.

세상에 온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하다 보면 도대체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로 질문이 옮겨간다.

 

이왕에 이 세상에 나왔으니, 그 일을 무를 수 없다면 이 세상에서 내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존재 이유가 그래도 긍정적이어야 하겠단 생각을 하는데, 긍정적이라는 말은 세상에 이로운 일이 되는 일 하나는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도대체 세상에 이로운 일이 무엇인가? 세상에 이로운 일이 내게도 이로운가? 또는 내가 이롭다고 생각하는 일이 정말로 남에게, 세상에 이로운가?

 

이렇게 질문이 나아가다 보면 자신이 없어진다. 무슨 도인도 아니고, 도통한 것도 아니고, 세상은 그렇게 고민하면서 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나온 한 세상 아닌가. 또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는 세상에 이미 나와 있는 것들을 내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상희의 "잘 가라 내 청춘"이라는 시집을 읽다가, 그 시집에 나온 불안에 나 역시 불안해지다가 시 두 편을 발견하고, 굳이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시인은 이를 '간통'과 '드라큘라'로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시인은 절대로(? 이런 말, 절대로 옳지는 않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만, 간통은 이미 있는 존재, 또는 남에 속해 있는 존재를 몰래 나한테 끌어오는 일이고, 드라큘라 역시 남의 몸에 있는 피를 내 속으로 끌어오는 존재니...

 

이 둘은 모두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오는 일에 해당하고, 그것이 바로 우리네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

 

우선 시를 보자.

 

봉함엽서

 

  세상에 나와 이로운 못 하나 박은 것 없다. 못 하나만 잘 박아도 집이 반듯하게 일어나고 하다못해 외투를 걸어두는 단정한 자리가 되는 것을, 나는 간통을 하다가 생을 다 보냈다. 시를 훔치려고 소설을 훔치려고 외람된 기호를 가장했다. 아, 나는 남의 것을, 모든 남의 몫뿐이었던 세상을 살다 간다. 가난한 눈물로 물 그림을 그리던 책상은 긍지처럼 오래 썩어 가게 해 달라. 단 하나, 내 것이었던 두통이여, 이리로 와서 심장이 터지는 소리를 막아 다오. 그리고 떳떳한 사랑을 하던 부럽던 사람들 곁을 떠나는 출발을 지켜봐 다오.

 

이상희, 잘 가라 내 청춘, 민음사, 2007년 개정판 1쇄. 65쪽.

 

 드라큘라

 

내 눈 속의 공포를

좀 크게 그려 주세요

송곳니를 번쩍이며

저는 지금 가야 해요

빈혈이거든요

몹시 어지럽거든요

바람이 이런 식으로 불 때

참을 수 없거든요

누군가의 피가

부르거든요

어느새 이빨이

미녀의 목에 꽂혀 있거든요

혼혈의 뜨거운 방전

입술이 불붙거든요

운명이 재처럼

식은 연기를 피우거든요

그때

공포를 아는 척해야 하거든요.

 

이상희, 잘 가라 내 청춘, 민음사, 2007년 개정판 1쇄. 17쪽.

 

 

그렇다. 세상에 나온 것 자체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 돌이킬 수 없다면 이 세상에 적응하며 살 것.

 

어떻게? 이미 있는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내면서 살 것. 그렇다면 이것은 드라큘라가 남의 몸 속에 있는 피를 빨아들이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드라큘라가 남의 피를 빠는 일 자체가 공포겠지만, 드라큘라 자신도 공포에 빠져 있을 뿐.

 

그 공포를 가리기 위해 남의 피를 빨아들일 뿐. 이 역시 간통이다. 자신을 위해서 남의 것을 가져오는 일. 그것으로 세상에 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

 

우리는 이 두 말을 그다지 좋지 않은 말로 사용하지만, 우리네 삶은 어쩌면 이렇게 '간통'과 '드라큘라'의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애써 숨기지 말 것. 어차피 인생은 간통이고, 드라큘라의 행동일테니... 이를 양성화할 것.

 

서로가 서로에게 이런 존재임을 인정할 것. 인정하고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줄 것. 공포는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는 사이에 사라질 수 있음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약한 존재끼리 함께 살아감을, 서로 도와야 함을,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 와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시집.

 

좀 억측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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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살아가리라. 아무리 세상이 험난해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폐허가 되어도 자연은 생명을 이어나간다. 그게 바로 자연이다.

 

누가 그랬다지 않은가. 하늘은 자비롭지 않다고. 하늘은 우리에게 온갖 시련을 준다. 우리만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를 누르는 힘과 그것에서 우리를 이끄는 힘이 균형을 이루면서.

 

손진은의 시집을 읽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도서관에서 빌렸다.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숲이 설레는 것은 하나의 힘만이 아니다. 두 힘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숲은 설렌다.

 

그래서 시집을 읽어가는데... 만물이 생동하는 이 봄에, 지금 철쭉이 한창인데... 이제 곧 숲은 푸르름을 자랑하리라. 그 푸르름 속에서 온갖 생명이 살아가리라. 그 생명 속에는 죽음도 있으리라. 죽음도 함께 껴안고 가는 숲. 그게 바로 자연이고, 생명이다.

 

이 시집의 첫시가 마음을 울린다.

 

 - 서시

 

부챗살 모양 잎을 늘어뜨린 채

큰 나무가 그늘 드리울 때

작고 앙증한 줄기 끝에 여린 잎들이며 꽃을 매단

어린것들 날아오르려 퍼득거린다

솟아오르고 누르려는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이 두근거리는 몸짓들 사이로 스며들어

그 속에서 자라는 죽음이며 상처까지를 어루만지는 햇살

전율하는 숲이 반쯤은 솟아오르고

반쯤은 스스로 억누를 때

열려진 사물들 속에서

잎파랑처럼 알 수 없는 느낌으로 떠는 모든 육체들

그 힘으로 구름은 하늘에 천천히 흐르고

그 힘으로 가볍게 떠 있는 공중의 새들

 

손진은,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민음사, 2007년 개정판 1쇄. 11쪽.

 

이 시에서 시집의 제목을 따왔다. 그만큼 생명의 존재에 대해서 느낌을 주는 시다. 이런 시를 읽으며 생명에 대해서, 생명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팽팽한 균형 속에서 이루어짐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존재다.

 

이제 곧 숲은 자신의 푸르름으로 하늘의 푸르름과 경계를 그을 것이다. 그 경계 속에서 우리는 온갖 생명을 만나게 될 것이다. 숲이 밀어올리는 힘과 하늘이 내려누르는 힘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그 균형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 봄에, 우리는 우리의 약동하는 생명 속에서 그 생명의 힘을 지탱해주는 죽음도 기억해야 하리라. 죽음과 생명은 균형을 통해 우리를 이끌고 있음을.

 

그레도 우선 봄을 만끽하라. 눈 앞에 주어진 봄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명의 균형을 잃는 일이니. 잊지 말 것은 잊지 말고, 즐길 것은 즐기고...

 

화창한 이 봄에... 이렇게 생명의 균형을 노래한 시를 읽는 즐거움도 느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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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뿌릴 두고

한 자리에 있기만 해선

꽃을 피우지 못 해

산들바람에도

날아가야 한다고

민들레 씨앗들이

제 존재를 허공에 날려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제가 뿌리 내릴 곳을 향해

다른 풀들이 있는 곳

다른 꽃들이 있는 곳

팍팍한 땅

전혀 꽃피울 수 없을 것 같은

보도블록 사이에도

씨앗들은 제 자릴 잡아

꽃을 피운다.

 

꽃을 피워야 민들레 씨앗인 것을

 

하나 가끔은 아주 가끔은

제 자리를 찾지 못 하고

허공으로만

떠도는 것들이 있으니

제 뿌리를 떠났으나

꽃 필 곳을 찾지 못 하고

헤매고만 있는 것들이 있으니

 

허공에 넘쳐나는

하얀

민들레 씨앗,

 

제 자리를 찾지 못한

,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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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불편한 날들.

 

차가운 물 속에 자식을 잃은 사람들을 다시 물로 몰아내려 하고 있는 현실.

 

통행의 자유는 어느 순간 허락한 곳만을 통행할 수 있는 자유로 바뀌었고, 명박산성 이후 사라졌다고 믿었던 산성이 이번엔 근혜산성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으니...

 

자고로 산성이란 도피의 공간일 뿐인데... 국민들은 산성 바깥에 있고, 소수 집단만 산성 안에 있는 형국. 여기에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외국으로 가 버린 상태.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은 없는데, 왜 산성을 쌓았지. 최근 드라마로 징비록을 하던데, 전란 중에 도성을 버리고 도망가던 왕이 그래도 큰소리를 치던데... 왕이 도망간 궁궐, 백성들이 어떻게 했는지가 역사책에 너무도 잘 나와 있어서 다시금 산성을 쌓았는지.

 

무엇보다, 물로 죽은, 물에 실종된 사람을 둔 유가족, 실종자 가족들을 다시 물로 몰아내려 하는 일은 이건 정말 해서는 안되지 않나.

 

본시 물은 백성이고,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왕인데, 어찌 물로 물인 백성을 몰아내려 하는지, 그것도 물로 생명을 앗긴 사람들에게. 여기다 각종 손해배상 청구에 엄정한 수사를 통한 처벌을 호언하고 있는 경찰들까지.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을 따스하게 감싸주지 못할 망정, 아무리 봄이라고 하더라도 차가운 물, 날카로운 물을 그들의 머리 위로, 그들의 몸 위로 날려서야 되겠는가.

 

그들에게는 그런 물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자세, 또 얼마나 힘들겠냐는 위로,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주어야 하는데.

 

도대체 이 땅에 사랑이 남아 있는지, 적어도 국민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한다고 입만 열면 말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국민에 대한 사랑이, 나라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는지 의심스러운 나날들이다.

 

그들이 국민을 사랑한다면 울타리 안에 남아 있는 99마리의 양도 중요하지만 울타리 밖으로 나간 단 한 마리의 양에게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사랑의 실천이고, 위정자가 지녀야 할 태도 아닌가.

 

최근에 시를 많이 읽는다. 신문이고 텔레비전이고 하도 안 좋은 소식들, 눈 막고 귀 막고 싶은 소식들만 들려서, 그래도 시를 읽으며 마음을 추스리고 싶기 때문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300호 특집으로 편집한 시집, "쨍한 사랑 노래"를 다시 읽었다. 이 땅에서 사라져 가는 사랑을 시를 통해서라도 느끼기 위해서. 그러다 황동규의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를 읽고 아, 이거다 했다.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꽂꽂이도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얼굴 붉은 사과 두 알

식탁에 얌전히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프라이팬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

겨울 비 잠시 그친 틈을 타

바다 쪽을 향해 우윳빛 창 조금 열어놓고,

우리 모르는 새

언덕 새파래지고

우리 모르는 새

저 샛노란 유채꽃

땅의 가슴 간지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 것.

이국(異國)의 햇빛 속에서 겁도 없이.

 

박혜경,이광호 엮음, 쨍한 사랑 노래, 문학과지성사, 2005년. 71-72쪽

 

이게 바로 정치인들이 지녀야 할 자세 아닌가.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지녀야 할 자세 아닌가. 나서지 않고 국민을 위해서 궂은일을 하는 것. 국민들이 궂은일에 마음쓰지 않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하는 것.

 

국민들의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씻어내주는 일. 그것이 바로 설거지고, 그런 설거지가 사랑 아니겠는가.

 

너무도 쨍한 사랑. 그것은 드러내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남모르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궂은일을 해 놓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환하게 웃을 수 있게, 세상은 봄이 왔으나 마음은 아직도 겨울인 사람들에게 그들 마음에도 봄을 맞을 수 있게 하는 일, 그런 설거지.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설거지 대상을 국민으로 삼은 것은 아닌지... 물의 방향이 바뀌어야 하는데...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겨눠졌던 물줄기는, 그들의 응어리를, 그들의 한을 씻어내는 쪽으로 가야했는데...

 

도대체 어떤 설거지를 하는 거지? 우리나라 경찰들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말로는 국민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신들만 앞에 나서서 가면서 국민들이 설거지 해야만 하는 것들만 남겨놓고, 국민들이 오히려 설거지를 하게 만들지.

 

정치인들, 위정자들, 그리고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말로만 '국민의 심부름꾼'이라고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국민을 위해서 행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물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국민을 향해서 그 물줄기가 칼날처럼 날아와서는 안된다. 물줄기는 국민들의 응어리를 씻어내는, 국민들이 치워야 할 것들을 설거지해주는 쪽으로 향해야 한다.

 

그래서 이 시처럼 행동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정말 국민을 사랑하는 모습이다. 그런 생각만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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