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불편한 날들.

 

차가운 물 속에 자식을 잃은 사람들을 다시 물로 몰아내려 하고 있는 현실.

 

통행의 자유는 어느 순간 허락한 곳만을 통행할 수 있는 자유로 바뀌었고, 명박산성 이후 사라졌다고 믿었던 산성이 이번엔 근혜산성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으니...

 

자고로 산성이란 도피의 공간일 뿐인데... 국민들은 산성 바깥에 있고, 소수 집단만 산성 안에 있는 형국. 여기에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외국으로 가 버린 상태.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은 없는데, 왜 산성을 쌓았지. 최근 드라마로 징비록을 하던데, 전란 중에 도성을 버리고 도망가던 왕이 그래도 큰소리를 치던데... 왕이 도망간 궁궐, 백성들이 어떻게 했는지가 역사책에 너무도 잘 나와 있어서 다시금 산성을 쌓았는지.

 

무엇보다, 물로 죽은, 물에 실종된 사람을 둔 유가족, 실종자 가족들을 다시 물로 몰아내려 하는 일은 이건 정말 해서는 안되지 않나.

 

본시 물은 백성이고,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왕인데, 어찌 물로 물인 백성을 몰아내려 하는지, 그것도 물로 생명을 앗긴 사람들에게. 여기다 각종 손해배상 청구에 엄정한 수사를 통한 처벌을 호언하고 있는 경찰들까지.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을 따스하게 감싸주지 못할 망정, 아무리 봄이라고 하더라도 차가운 물, 날카로운 물을 그들의 머리 위로, 그들의 몸 위로 날려서야 되겠는가.

 

그들에게는 그런 물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자세, 또 얼마나 힘들겠냐는 위로,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주어야 하는데.

 

도대체 이 땅에 사랑이 남아 있는지, 적어도 국민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한다고 입만 열면 말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국민에 대한 사랑이, 나라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는지 의심스러운 나날들이다.

 

그들이 국민을 사랑한다면 울타리 안에 남아 있는 99마리의 양도 중요하지만 울타리 밖으로 나간 단 한 마리의 양에게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사랑의 실천이고, 위정자가 지녀야 할 태도 아닌가.

 

최근에 시를 많이 읽는다. 신문이고 텔레비전이고 하도 안 좋은 소식들, 눈 막고 귀 막고 싶은 소식들만 들려서, 그래도 시를 읽으며 마음을 추스리고 싶기 때문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300호 특집으로 편집한 시집, "쨍한 사랑 노래"를 다시 읽었다. 이 땅에서 사라져 가는 사랑을 시를 통해서라도 느끼기 위해서. 그러다 황동규의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를 읽고 아, 이거다 했다.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꽂꽂이도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얼굴 붉은 사과 두 알

식탁에 얌전히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프라이팬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

겨울 비 잠시 그친 틈을 타

바다 쪽을 향해 우윳빛 창 조금 열어놓고,

우리 모르는 새

언덕 새파래지고

우리 모르는 새

저 샛노란 유채꽃

땅의 가슴 간지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 것.

이국(異國)의 햇빛 속에서 겁도 없이.

 

박혜경,이광호 엮음, 쨍한 사랑 노래, 문학과지성사, 2005년. 71-72쪽

 

이게 바로 정치인들이 지녀야 할 자세 아닌가.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지녀야 할 자세 아닌가. 나서지 않고 국민을 위해서 궂은일을 하는 것. 국민들이 궂은일에 마음쓰지 않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하는 것.

 

국민들의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씻어내주는 일. 그것이 바로 설거지고, 그런 설거지가 사랑 아니겠는가.

 

너무도 쨍한 사랑. 그것은 드러내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남모르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궂은일을 해 놓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환하게 웃을 수 있게, 세상은 봄이 왔으나 마음은 아직도 겨울인 사람들에게 그들 마음에도 봄을 맞을 수 있게 하는 일, 그런 설거지.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설거지 대상을 국민으로 삼은 것은 아닌지... 물의 방향이 바뀌어야 하는데...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겨눠졌던 물줄기는, 그들의 응어리를, 그들의 한을 씻어내는 쪽으로 가야했는데...

 

도대체 어떤 설거지를 하는 거지? 우리나라 경찰들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말로는 국민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신들만 앞에 나서서 가면서 국민들이 설거지 해야만 하는 것들만 남겨놓고, 국민들이 오히려 설거지를 하게 만들지.

 

정치인들, 위정자들, 그리고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말로만 '국민의 심부름꾼'이라고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국민을 위해서 행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물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국민을 향해서 그 물줄기가 칼날처럼 날아와서는 안된다. 물줄기는 국민들의 응어리를 씻어내는, 국민들이 치워야 할 것들을 설거지해주는 쪽으로 향해야 한다.

 

그래서 이 시처럼 행동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정말 국민을 사랑하는 모습이다. 그런 생각만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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