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을 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최인훈이 쓴 소설 '광장'이 생각났다.

 

  4.19가 없었더라면 어쩌면 지금 우리 곁에 없었을 소설. 그렇게 소설 '광장'은 4.19와 함께 우리에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읽히는 소설로.

 

  이 영화도 '광장'과 비슷하지 않을까. 만약 작년의 촛불이 없었더라면 과연 이 영화가 개봉할 수 있었을까?

 

  이 시대에도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존재해,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만들고 제작, 배포했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기도 했다는데...

 

  이렇게 시대상황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과연 전(前) 정권에서 - 한자를 쓰는 이유가 있다. 그냥 한글로 전 정권하면 전두환의 전(全)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때 전 정권은 박근혜 정권을 말한다-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박종철의 죽음으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우리의 1987은 이렇게 박종철의 죽음으로 시작해 이한열의 죽음을 거쳐 12월 대선으로 막을 내린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를 위해 희생되었는데, 그런 희생을 바탕으로 열렸던 열매를 전혀 엉뚱한 사람이 따먹게 되는 그런 결말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서인지 영화는 이한열의 장례식에서 멈춘다. 1987년의 절반에서 영화가 멈춘 것이다.

 

이후에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노동자들의 대투쟁, 그리고 대선을 둘러싼 정치권, 운동권들의 이합집산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여기까지 나아가면 1987년 민주화 투쟁에 대한 이야기가 엉뚱하게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개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이때 민중들이 쟁취한 헌법은 지금 '87년 체제'라는 이름으로 지금 시대에는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벌써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시대에 맞게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드는데...

 

영화는 엄혹한 현실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에 참 험한 세상을 이렇게 살아서 지금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다.

 

영화에서 벌어진 일을 직접 겪었거나 소문으로 들었거나, 신문에서 보았거나 함녀서 그 시기를 함께 겪었기에 영화는 남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은 고문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믿자. 또한 시위로 인해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거의 없다.

 

(민주화 이후,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도 최루탄은 없어졌지만, 백골단도 없어졌지만, 시위로 인해 죽음에 이른 사람은 사라지지 않았다. 숫자가 줄긴 했지만... 하지만 1987년처럼 시위를 나갈 때 비장한 각오로 나가지는 않는다. 그만큼 이제는 공권력의 직접적인 폭력에서는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치안감으로 분한 인물이 위협하는 말이 너무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는 고문으로, 돈으로 안 되면 '가족'을 볼모로 위협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지켜줘야 할 가족의 목숨을 위협으로 내세우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위협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겪는 신체적인 고통이야 견딜 수 있지만, 자신으로 인해 가족이 겪어야 할 고통까지는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들이 영화 '선택'을 떠올리게도 했다. 장기수들의 비전향 이야기를 다룬 영화.

 

비전향 장기수들이 전향을 하지 않을 때 이들이 마지막으로 동원하는 수단이 바로 가족이다. 네가 전향 안 하면 가족들이 제대로 살기 힘들다는.

 

그런데 이 영화 '1987'에서는 아예 가족들의 목숨을 담보로 잡는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인다는 말이 아니다. 이들을 죽여서 간첩으로 몰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자신의 동료였던 경찰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이런 일들을 벌였던 집단이 우리나라 공권력인 경찰, 안기부, 검찰 등등이다.

 

물론 이 위에는 독재자가 버티고 있었고. 꽤나 오랫동안 자행되었던 이런 가족을 두고 하는 위협들...

 

영화는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던 사람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려 자백을 하게 되는 그런 모습...

 

영화는 그런 장면을 빗겨가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인간의 존엄이 그렇게 무너져 내릴 때, 그가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솟을 수밖에 없다.

 

영화 '선택'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 "0.75평,지상에서 가장 작은 내 방 하나"인데...

 

이렇게 사람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수법을 썼던 그들이 결국은 죗값을 치르게 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과연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만큼 죗값을 치렀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들 자신이 처절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 한 그들은 영원히 자신의 죄값을 치르지 못한다.

 

고문기술자라고 하던 사람이 회개했다고 목사가 되었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가. 지금은 목사를 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이런 고문들, 영화에 나와 우리에게 경각심을 가지라 한다.

 

그런 시대를 건너왔다고. 우리가 지금 웃으며 시위를 하지만, 그때는 아니었다고. 그것이 바로 얼마 전 우리 시대였다고.

 

이한열의 죽음. 그리고 그의 운동화. 소설 'L의 운동화'가 생각났다.

 

너무도 슬픈 모습. 그렇게 세상을 등져야 했던 한 젊은이. 영화에서그의 죽음 장면을 보는 일은 여전히 슬프다. 여전히 분노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최루탄의 각도를 규정대로 하는 전경들의 뒤통수를 치며 총을 내리게 하는 장면이 얼핏 나온다.

 

직선으로 나는 최루찬은 살인무기다.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의 각도를 낮추는 것은 국민을 죽이겠다는,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국민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그런 시대에도 목숨을 걸고 나섰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지했던 사람들, 수많은 그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바꾸었다.

 

대통령 직선제 쟁취... 형식적으로나마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그 시대의 모습이 30년이 지난 지금에 겹쳐진다.

 

다시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이제는 독재로 돌아갈 수 없는 우리 사회가 되었다.

 

영화는 그 점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다시는 독재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우리는 민주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1987년은 2017년에 재현되었다. 그때의 민주화가 미완성의 민주주의라면 지금은 완성된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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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0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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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09: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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