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김유정 문학상 수장작품집이다. 벌써 11회라고 한다. 소설에서 멀어진 지가 한참이 되어서 김유정 문학상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효석문학상, 만해 문학상 등은 알았어도.
김유정은 우리나라 단편 문학에서 정상에 오른 작가라고 할 수 있으니,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도 마찬가지로 장편소설이 아닌 중,단편 소설 중에서 골라 수상을 하는 이 방식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심사위원들이 어떤 기준으로 심사를 했는지는 몰라도 아마도 김유정 문학정신을 잘 계승한 작품이라고 인정한 작품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겼으리라고 믿고 본다.
이번 11회 수상작품집에서 수상작은 황정은의 '웃는 남자'다. 90쪽쯤 되는 중편소설에 해당한다. 웃는 남자라고 하지만 웃을 수 없는 남자 이야기다.
작품에서 주인공은 웃지 않는다. 웃을 수가 없다. 도대체 그의 삶 어느 곳에서 웃을 수 있단 말인가. 사는 곳도 그는 변두리다. 직장도 주변이다. 그렇게 그는 살아간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밝음이 아니라 어둠이다.
밝음과 어둠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삶 자체가 밝음과 어둠이, 천국과 지옥이,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다. 스펙트럼의 길을 따라 가면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그런 상태.
그냥 살아감, 그 살아감이 죽어감일 수 있는 것, 그것은 그가 일하는 곳이 세운상가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때는 활력있게 살아움직이던 그 공간이 이제는 죽어가는 공간이 된 세운상가.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몇몇만 남아 있는 상태.
여소녀란 나이 든 또다른 주인공과 d라는 이니셜을 지닌 주인공이 그곳에서 함께 한다. 낡은 것들과 함께...
그들은 진공관을 두고 대화를 하는데, d는 진공관에서 뜨거운 열기를 느낀다. 그가 다른 사물들에게서 느낀 온도와는 다른 뜨거움. 진공의 상태, 그것은 단순한 비어있음이 아니라 다른 것들로 연결시켜주는 그런 비어있음이다.
진공관은 자신이 비어있음으로 해서 소리를 내게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비어있음으로 인해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
제목이 웃는 남자이고, '소리'가 많이 등장하지만 주인공들은 제 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들이 제 소리를 낼 때 그때서야 비로소 웃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웃는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소리를 남에게 당당하게 낸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소설은 웃을 수 없는, 아직은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다른 소리들에 묻혀 사는 사람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다만 진공관으로 그들은 이제 자신의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이 책에는 다른 후보작들도 실려 있다.
김숨 '이혼', 김언수 '존엄의 탄생', 윤고은 '평범해진 처제', 윤성희 '여름방학', 이기호 '최미진은 어디로', 편혜영 '개의 밤'
이 중에 내게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준 소설은 김숨의 '이혼'과 편혜영의 '개의 밤'이다.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러나 헤어진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이혼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이혼'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위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개의 밤'에서는 자본의 힘에 묻혀사는 사람들의 삶, 그것을 깨우치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그런 시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개가 짖었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주인공의 질문에서, 불의를 보고 그것에 항거하는, 또는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거기에 어떻게 물들어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문제적 개인이 문제적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형식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그런 문제적 개인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설집을 통해 지금-여기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