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 너무 멀리 나간 교실 실험
토드 스트라써 지음, 김재희 옮김 / 서연비람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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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간에 나치의 만행에 대한 영상을 보여준다. 학생들이 질문한다. 왜? 도대체 왜? 그런데 역사 선생은 대답할 수 없다. 대다수의 독일 사람들이 어째서 나치에 동조했는지, 그 이유를 본인도 모르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역사 선생은 실험을 하기로 한다. 일사분란. 나치의 모습을 수업에 재현하는 것이다. 처음에 아이들은 장난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그것이 점점 더 확산이 되어 이제는 "파도"라는 조직이 된다.

 

"파도"에 가입한 아이와 가입하지 않은 아이가 극명하게 갈린다. "파도"는 조직의 이름으로 개인들을 통제한다. 개인의 자유는 없다. 오로지 공동체란 이름으로 활동할 뿐이다.

 

이쯤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학생이 나온다.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란 100%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의문을 제기하는 인간, 그런 성찰하는 인간이 꼭 있다. 아니, 꼭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성찰하는 인간, 의문을 제기하는 인간은 공동체에서 배척당한다. 그는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왜냐, 공동체의 결속을 깨뜨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파도"에 대해 비판적인 학생들에게 위협을 하기 시작한다. "파도"에 가입하지 않은 학생들은 두려움을 느낀다. 위화감과 두려움. 공동체에서 밀려날 것 같은 두려움.

 

자연스레 "파도"는 학교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이 된다. 집단 최면에 빠진다. 이때 수업을 시작한 교사는 끝을 내려 한다. "파도"의 지도자가 나타난다고 한다. 학생들이 기대하고 있는 그 순간. 그 지도자는 바로 '아돌프 히틀러'

 

세상에! 자신들이 수업시간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지 과거에 일어난 일일 뿐이라고, 현대에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자신들에게 일어났던 것.

 

자신들 역시 그런 광기 속에서 생각없음으로 살아왔다는 것. 성찰하지 못하고 조직의 흐름에 그냥 휩쓸려 가고 말았다는 것, 깨달음은 한 순간에 왔다. 하지만 과연 그 깨달음이 성찰의 결과였떤가?

 

아니다. 성찰의 결과가 아니라 교사에게서 주어진 또다른 해답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결과 학생들에게 성찰의 힘을 보여주었지만, 성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 사람은 역시 교사다.

 

소설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애초에 벤 로스가 시작한 건 역사 수업을 듣는 하나의 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소한 실험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실험을 통해 벤은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믿음을 남의 손에 내맡기는지를 확인했다. 그것은 분명 몹시 시리고 아픈 경험이었지만, 그러하기에 벤 로스는 교사로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의 본성에 그처럼 허약한 면이 있다면, 이른바 자기 성찰의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자 임무라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만약 교사들이 그 일을 방기하면 언제라도 같은 비극이 반복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249-250쪽)

 

벤 로스 선생은 실험을 끝냈다. 그것은 실험을 끝냈을 뿐이다. 교육은 그리고 배움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면서 토론을 해야 한다. 토론을 통해서 인간이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쉽게 속에서 개인을 말살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 깨달음은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지혜의 차원이다. 온몸으로 배우고 익힌 것이다. 이런 학생들은 이제 집단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개인에 대한 침해에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게 된다. 적어도 한 번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성찰하는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이것이 벤 로스 선생이 목적한 바일 것이다. 이게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성찰하는 힘, 이것이 결국 교육의 목표 아니던가. 지식은 이런 성찰을 하게 하기 위한 기반에 불과하지 않나. 따라서 학교는 지식을 주입하는 곳이 아니라 지식을 기반으로 생각을 하게 하기 위한 곳이다.

 

인용한 말에 교육의 본질, 교사의 자세가 담겨 있다. 이를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아무리 교육적 의도가 좋아도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고려해 보아야 한다.

 

벤 로스 선생은 말한다.

 

"전적으로 제 실수였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역사 수업은 과학 실험과는 다르다는 걸 깊이 깨달았습니다.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특히 실험의 일부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시작한 건 더 큰 잘못입니다." (227쪽)

 

그렇다. 소설 속에서 벤 로스 선생은 이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아마도 학생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해서 그들의 마음을 치유해야 했을 것이다.

 

"푸른 눈, 갈색 눈"이라는 차별에 대한 수업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에게 차별이 얼마나 쉽고 간단하게 일어날 수 있는지 인지시켜주기는 했지만, 이들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벤 로스 선생의 실험은 실제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라고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에게 경험을 통해 깨우치게 한다고 하지만 경험을 할 것이 있고, 해서는 안 될 것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찰의 중요성을 알까? 바로 이런 소설을 통해서다. 소설을 읽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집단이라는 이름에 넘어가는지, 집단 속에 숨어서 다른 개인을 공격할 수 있는지,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명해진 말, '악의 평범성'을 이런 소설을 통해서 인식하고, '성찰의 힘'을 생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이 왜 올해에야 번역되었는지... 독일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소설이 학교에서 수업 교재로 쓰이고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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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0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10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족 2017-07-10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66872, 저 비댓이 이걸지도 모르겠네요-_-;;;
2006년 번역되어 나온 책을 제가 읽었거든요^^

린(隣) 2020-03-22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2006년에 번역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