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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잉어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7
비키 바움 지음, 박광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2월
평점 :
크리스마스. 모두에게 행복이 충만한 날. 그런데 과연 모두가 행복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을까? 크리스마스 이브에 잉어를 먹던 풍습이 있던 오스트리아. 그런데 전쟁으로 잉어를 구하기가 힘들어진다. 한 집안의 가장 큰 축제이던 잉어 요리가 힘들어진 상태.
이 상태에서도 말리 고모는 잉어를 골라온다. 마른 잉어. 마치 당시 전쟁 통 사람들의 생활을 암시하듯 잉어는 살이 오르지 않았다. 이 잉어를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살려야 한다. 그래야 요리를 할 수 있다. 소설은 '라너 집안의 아이들한테 크리스마스는 12월 6일에 시작된다'(9쪽)고 하니. 거의 20일 가까이 잉어를 살려두어야 한다.
욕조에 들어간 잉어. 가족들은 잉어와 대화도 한다. 친숙해 진다. 그러나 때가 온다. 잉어로 요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죽이지? 아무도 죽이려 하지 않는다. 결국 잉어 요리를 담당하는 말리 고모가 나선다. 드디어 나온 잉어 요리. 과연 가족들은 잉어를 먹을 수 있을까? 방금 전까지도 자신들과 함께했던 잉어를.
못 먹는다. 모두 먹지 못한다고 하자... 말리 고모는 절규한다.
"우리가 왜 잉어를 죽였지? 말해봐. 왜 잉어를 죽인 거야?" 말리 고모가 흐느꼈다.
......
"맞아. 왜 죽이지? 왜? 왜?" 그가 크리스마스 잉어를 말하는 건지 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잉어' 중에서. 28쪽)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잉어조차도 그렇다. 함께했던 시간이 쌓이면 쉽게 죽이지 못한다. 살생이란 그렇게 부담이 되는 것. 즉 가까운 거리가 살생을 머뭇거리게 한다. 반대로 가까운 거리가 살생을 하도록 부추기기도 한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학살을 보라. 어제까지 다정한 이웃이었던 사람이 학살자로 변한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가까운 이웃이든 멀리 있어 전혀 왕래가 없던 사람이든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그러니 이 소설의 말미에 말리 고모와 라너 박사의 말은 당시 전쟁 상황을 비판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잉어의 죽임조차도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데, 왜 전쟁을 하지? 왜 전쟁을 해서 서로를 죽이지?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얻지? 우리는 잉어도 먹지 못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는데, 도대체 사람들은 왜?
크리스마스 잉어에 빗대어 전쟁이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잠식하는지까지 나아가게 하는데, 짧은 단편에서 처음에는 크리스마스를 맞는 사람들의 설렘, 행복이 드러나는데, 후반부에 전쟁으로 인해, 잉어를 죽이고 결국 먹지 못하는 장면에서 그런 소소한 행복을 전쟁이 앗아가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 다음 소설인 '길'은 한 여인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데... 쳇바퀴 돌 듯 집안일에 매여 살던 주부의 죽음. 그런데 남편의 반응이 너무도 기가 막히다.
'어떻게 될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집안일은 누가 하지? 맙소사, 아이들은 어떡하나.'('길'에서. 70쪽)
아내 생각이 아니다. 남은 자신에게 닥친 일이다. 그만큼 아내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록 그 역할을 할 때는 남들이 인정하지 않고 의식하지도 않지만. 아내의 부재 앞에서 기껏 생각한 것이 바로 이것이라니...
당시 어쩌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는 생각일 것이다. 아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마음. 이렇게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떠나 이제 자신의 세계로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길'이다. 그것이 죽음을 통해서만 얻어진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만큼 당시 여자들 특히 주부들의 삶은 그렇게 가족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다.
세번째 단편인 '굶주림'은 슬프다. 망상이라고 해도 좋지만, 굶주림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 '굶주림'보다 더 마음을 아프게 한 소설은 '백화점의 야페'다.
마치 우리나라 최서해의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넥타이 하나로 세상의 화려함을 깨닫고, 그것을 얻기 위해 들어간 백화점에 결국 불을 내고 죽는 야페의 모습.
아마 '굶주림'에 등장하는 가브릴로프스키의 회상록이 남아 있다면 최서해가 쓴 '탈출기'를 연상시켰을 수도. 망상인지 아닌지 불분명하지만 그녀는 젊었을 때 귀족이었고, 한때는 부유한 생활을 했지만 극심한 가난의 고통에 시달리고, 그것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아마 망상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굶주림'의 화자가 그래도 지식인의 모습을 조금 지니고 있고 화려한 세계를 경험했다면, '백화점의 야페'는 구루병 환자, 지하실에 사는 늘 사회의 하층민이었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돈도 잘 벌지 못하는 직업. 그런 야페에게 백화점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장소다. 그런 장소에 몰래 들어가 원하는 넥타이를 손에 넣지만 넥타이로 끝나지 않는다. 그 다음, 그 다음... 그러다 의도치 않게 살인을 하고, 결국 방화를 한다.
최서해 소설이 그렇지 않은가. '기아와 살육'이나 '홍염'이 그렇지 않은가. 살인과 방화. 가난한 사람들이 막판에 몰렸을 때 했던 행동들.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었던 조건. 그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나섰던 작가들.
그들이 그런 현실을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은 그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는, 사회를 바꾸어야 하기에 연대하자는 외침이 아니었던가.
비키 바움의 소설도 마찬가지다. 전쟁 반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조건 개선, 그리고 집안일에 매몰된 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 또는 그러한 조건의 개선 등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짧은 소설들이지만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문제들과 연결지어 생각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