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붉은 꽃이라도 십일 이상 붉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을 거꾸로 해석을 해 보면 아름다움이란 이렇게 순간일 때 쓸 수 있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영원히 붉은 꽃이 있다면 그 꽃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아름다움은 그 순간에 발산되는 것이다. 그것이 계속 지속된다면 아름답다는 마음이 들지 않고 그냥 하나의 풍경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아름다움은 곧 위태로움에서 온다. 금방 사라질지 모를 위태로움.
어쩌면 꽃은 십일 이상 붉지 않아서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네 인생은 어떤가. 무언가를 자신이 잘한다고 계속 그 자리를 지키면 아름다울까.
한 사람이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추함이다. 공포다. 결코 자신의 위태로움을 인정하지 않는 것. 위태로움을 인정하고, 자신의 자리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 이형기 시인의 '낙화'에 나오는 구절처럼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또한 편한 길만 가는 사람, 역시 아름다울 수 없다. 아름다움은 위태로움 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냥 편한 길에 있으면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
아름다움 그것은 아찔한 현기증이다. 위태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 자리를 지키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서 아름다움을 본다.
가야 할 때인데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 그에게서는 추함만을 본다. 그에게서는 어떤짜릿한 현기증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천수호의 시집을 읽다가 제목이 된 구절이 들어 있는 이 시, '빨간 잠'을 보며 사람의 아름다움도 어쩌면 이렇지 않을까. 우리는 위태로움 속에서 그것을 꿋꿋하게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을까.
그들의 삶에서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지만, 그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에 제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는 사람, 편한 길만 가려고 하는 사람, 그들에게서는 추함을 느낄 뿐이라는 생각.
고추잠자리를 보고 쓴 시, 이것은 고추잠자리에 빗댄 사람 이야기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빨간 잠
그녀의 아름다움은 졸음에 있다
빳빳 헛헛한 날개로 허공을 가린 저 졸음은
겹눈으로 보는 시각의 오랜 습관이다
'아름답다'라는 말의 벼랑 위
붉은 가시 끝이 제 핏줄과 닮아서
잠자리는 잠자코 수혈받고 있다
링거 바늘에 고정된
저 고요한 날개
잠자리의 불편한 잠은
하마, 꺾이기 쉬운 목을 가졌다
아름다움은 저렇게
알면서도 위태롭게 졸고 싶은 것
등이 붉은, 아주 붉은 현기증이다
오래 흔들린 가지 끝
저기 저 꿈속인 양 졸고 있는
등이 붉은 그녀
그녀의 아름다움은 위태로움에 있다
천수호, 아주 붉은 현기증, 민음사. 2009년 초판 2쇄. 18-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