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 알베르 카뮈 전집 20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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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실린 글들은 시사성을 지닌다. 시사성을 지닌다는 말은 그 시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 시대상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들거나 또는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 이해 말고도 시사성이 있는 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글의 효용성이 사라지고 말 가능성이 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때 주장한 내용들이 현재에는 맞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카뮈라고 해서 다르겠는가. 이 책에 실린 카뮈의 시사평론들은 주로 1940년대의 글이다. 독일이 프랑스에서 물러가기 시작한 때로부터 종전이 되고 1950년이 되기 전까지의 글.

 

그러니까 지금 우리 시대와는 너무도 먼 거리에 있는 글들이다. 지금 시대와는 많이도 다르기 때문에 카뮈의 글 중에 지금은 무의미한 글도 꽤 있다.

 

가령 공산주의에 관한 글들... 1990년대 들어 공산주의권이 몰락했다. 이제는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극소수의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공산주의 국가는 사라지고 말았다. 공산주의 이념 역시 과거 속으로 사라져 이제는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카뮈의 이 글이 발표될 당시는 공산주의가 막 자리잡는 시기, 소련이라는 일국 사회주의를 넘어 동구권들이 공산화된 시기이기도 하고, 유럽 지식인들 중에서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지식인들이 제법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기 직전의 시대... 그 시대에 카뮈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글을 신문지상에 발표했다. 그런 글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이런 혼란의 시기에 카뮈는 질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사회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요한데, 그에 대한 카뮈의 말을 보면 단순한 질서가 아니다. 이 질서에는 정의가 있어야 한다.

 

사회적 질서란 그러니까 정부와 통치받는 사람들 사이의 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치는 어떤 상위의 원칙에 의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 원칙은 바로 정의다. 정의 없는 질서는 없고 민중의 이상적인 질서는 그들의 행복 속에 있다.

... 오로지 잘 통치하기 위하여 질서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의미 있는 유일한 질서를 구현하기 위하여 잘 통치해야 한다. 정의를 강화하는 것이 질서가 아니라 질서에 확신을 주는 것이 정의인 것이다.  61쪽.

 

이런 사회를 그는 바란다. 정의가 관철되는 사회. 이 정의 앞에서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이념은 수단에 불과하다. 정의가 없는 자본주의, 공산주의 이 모두를 카뮈는 비판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1940년대는 이미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라고 한다. 군사력이 너무도 커지고 강해졌기에 혁명을 통해서 사회를 변혁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희생이 따른다는 것이다.

 

너무도 많은 희생, 이것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희생한다는 것인데... 수단을 돌아보지 않고 목적만을 추구하는 방식에 대해 카뮈는 부정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부조리한 사회가 유지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인데, 부조리한 사회가 유지되길 바라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바로 '반항'을 해야 한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를 피로써 뒤엎는 것이 아니라, 피를 거부하되 다른 방식으로 거부하는 것, 그런 반항을 하는 것, 그것이 카뮈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반항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또 어떤 효과를 낼 것인지는 잘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반항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카뮈같은 작가는 작품으로 반항을 할 수 있다. 글로 반항을 할 수 있다.

 

정복자가 똑같은 것으로 평준화하는 바로 거기에서 예술가는 서로 다른 것을 구별하려고 노력한다. 육체와 정념의 차원에서 살고 창조하는 예술가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타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복자는 타자가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세계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즉 주인들이 있고 노예들이 있는 어떤 세계인 것이다. 예술가의 세계는 살아 있는 저항과 이해의 세계다. 273쪽.

 

바로 자신과 같은 예술가들이 반항하는 길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세상에는 모든 작가들이 품어 마땅할 또 다른 야망이 한 가지 있는 듯하니 그것은 바로 힘이 닿는 한, 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얽매여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증언하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다. 259쪽.

 

이렇게 카뮈의 글이 시대성을 띠고는 있지만, 시대를 넘어 보편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게 하는 글들이 바로 이런 글들 아닌가 한다.

 

예술가들, 또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며 자유롭고 평등하게 지내는 것, 그것이 바로 평화를 이루는 길이고,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

 

그 길을 가로막고 있는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를 고치기 위해서 반항해야 하는 것, 그런 점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시대, 예술가들, 지식인들,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글들이 꽤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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