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노동의 역습 - 대가 없이 당신에게 떠넘겨진 보이지 않는 일들
크레이그 램버트 지음, 이현주 옮김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일리치의 개념을 빌려와 현대인의 일상을 분석하고 있는 책인데,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이란 책에서 집안일처럼 임금에 기초한 경제에서 돈을 받지 않고 하는 모든 일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했다. (17쪽 참조, 또는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 참조)

 

제4차 산업혁명 시대, 이제는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가 도래했는데, 그러면 인간은 자신들의 노동을 기계에 맡기고 더 많은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이론상 그래야 하는데... 과연 우리에게 여가 시간이 늘어났는가? 하는 질문을 이 책은 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이 '그림자 노동의 역습'이니, 이것은 분명이 기계화, 정보화 되었음에도, 아니 기계화 정보화 되면서 그림자 노동이 더 늘어났다는 얘기일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즉 임금을 받지 않는 노동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여기서 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예전에는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즉, 예전에는 그 일을 누군가가 임금을 받고 일을 했는데, 기계화, 정보화 되면서 그 일을 포함하고 있는 일을 기계가 처리하고 (이런 기계 군단을 '키오스크'라고 한다. 무인정보화시스템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김포공항에 갔다가 그 키오스크를 보게 됐다. 당당하게 키오스크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기계. 거기에서 직원 없이 직접 항공권을 뽑는 사람들) 그에 따르는, 누구 말로는 부수적인 일들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예전에는 주유소에 가면 주유를 해주고 서비스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냥 앉아서 카드만 내면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셀프 주유소가 많이 생겼다. 셀프 주유소에서는 내가 차에서 내려 직접 주유를 해야 한다.

 

주유를 해주던 사람은 임금을 받고 그 일을 했는데, 이제는 직접 내가 임금을 받지 않고 내 차에 기름을 넣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림자 노동의 역습이다.

 

비슷한 예가 바로 지금 이렇게 리뷰를 작성하는 일. 예전에는 서평을 기고가들이 돈을 받고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책을 읽고 자유롭게 글을 쓴다. 이렇게 시간을 쓰면서도 돈은 받지 않는다. 이것 역시 그림자 노동의 역습이다.

 

이런 사례들이 이 책에는 많이 나온다. 매표를 하는 경우도 그렇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먹고 나오는 경우도 그렇고, 마트에서 물건을 사서 나오는 경우도 그렇다. 여기에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발달로 인해서 우리의 일은 더 많아졌다.

 

프랑스에서는 업무시간 외에 오는 상사의 이메일에는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명시한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하고, 우리나라 역시 이와 비슷한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단다.

 

그만큼 여가 시간에도 일을 할 수 있게 된 사회가 되었는데, 일을 지시하는 일 이외에도 이메일로 오는 수많은 스팸메일들을 확인하고 지우는 시간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노동 시간을 줄여준다는 기계들이 오히려 다른 일을 사람에게 전가하고 있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사회적 변화를 거부할 수는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시간이 돈이기 때문이다. 즉 여유를 가지고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을 지닌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자신의 돈을 소비하는 것이고, 이는 생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상류층도 그림자 노동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돈으로 그 일을 할 사람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류층은 이런 변화된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그림자 노동을 시킬 수가 없다. 자신이 온전히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여가 시간이 늘어날 수가 없다. 오히려 노동 시간은 비슷하다고 해도 하지 않았던 일까지 떠맡게 된 것이 현실이다.

 

알게모르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기계문명의 발달로 사람들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회색신사들에게 시간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시간을 많이 확보한다는 환상을 지닌 발달이 오히려 그림자 노동을 더 확산시킨 셈. 회색신사들의 꾀임에 빠진 소설 속 사람들처럼 우리는 참 바쁘게 산다.

 

바쁘게 사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에 대한 대책은 나와 있지 않다. 왜냐하면 '시간은 돈이다'는 명제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물어 보라. 왜 공부하니? 대학 가려고요? 왜 대학 가려고 하니? 돈 잘 벌려고요. 왜 돈을 벌려고 하니? 행복하게 잘 살려고요. 그럼 지금 행복하니? 아니요.

 

삶의 목표는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다. 결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수단인 돈을 벌기 위해 행복을 희생시키고 있는 현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그럼 대책이 뭔가? 답은 명확하다. 시간이 중요하다.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은 내가 자유롭게 쓸 시간이라는 의미다. 돈을 버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즐기면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돈을 쓸 수 있는 시간보다 더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또 내가 쓸 수 있는 시간보다 더 빨리 하기 위해 기계를 확산하는 것보다, 조금 벌더라도 내가 쓸 수 있는 만큼 벌고 나머지 시간은 여유롭고 자유롭게 보낼 시간을 확보하는 것.

 

나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너무 빠른 속도의 기계를 거부할 수도 있는 것. 미국에서도 셀프 주유소를 금지하고 있는 주가 있다는 사실... 이런 사실이 더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회색신사로부터 그림자 노동의 역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 아닐까.

 

그럼에도 이 책에서는 대안은 나타나지 않는다. 어쩌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계가 처음 나왔던 시대처럼 '기계파괴운동(러다이트 운동)'을 벌일 수도 없으니 말이다.

 

다만, 슬로 라이프라고 천천히 여유롭게 살기 운동을 전개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행복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 그리고 인터넷 속에, 스마트 폰 속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람과 사람이 대면하는 시간, 그런 만남의 장소를 만들어 가는 것.

 

조금 더디더라도 일자리를 나누는 것, 기계에 모든 일자리를 주지 않는 것, 아마도 인공지능이 모든 직업에 잠식한다면 사람들에게 여가 시간이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즐길 수 없는 생계 불능의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일해야 하는 시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우리 모두가 조금씩 불편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을 지니고, 더 즐거운 더 행복한 삶을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요즘 그런 느리게 사는 삶을 사는 사람들과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 대안을 제시 못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대안은 제시할 수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기에. 이 시대의 방향을 틀거나 반대로 돌려야 하는데, 그거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과연 제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더 많은 여가 시간,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지를...

 

문제는 제기해야 한다. 문제를 알아야 해답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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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2-25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트런드러셀의 <게으름에대한찬양>에서 주장하는 철학과 일맥상통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kinye91 2017-02-25 18:13   좋아요 1 | URL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자 노동의 역습이란 책은 그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기는 하지만 통하는 면도 꽤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은 빨리빨리 문화나, 또 자동화, 기계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