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는 마법이 있다고 하지.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도 있듯이, 언어에는 어떤 주술적인 요소가 담겨 있어,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반대로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언어로 표현했을 때 그것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주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언어를 통하여 나타내고 현실이 되게 하는 것.

 

  옛날 삼국시대 신라의 수로부인 이야기를 보면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알 수 있다. 바닷속으로 잡혀간 수로부인을 구해내기 위해 동원된 무기가 바로 말이니...

 

  그러나 그것은 과거 신화적 이야기이고, 지금 시대에 언어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현실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냥 허황되게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이루려고 실력을 쌓아야 한다.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도 없이, 또 현실의 밑바탕도 없이 그냥 원한다고 해서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무슨 마법세계의 주문처럼 외운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청년들에게도 주문이 있다. 그것은 "할 수 있다"라는 주문과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주문이다. 청춘은 아파야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너희들이 아픈 것은 청춘이어서 그런다는 주문.

 

그러니까 "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는 주문.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주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두 가지로 파악할 수 있다. 

 

주문(注文) 

  어떤 상품을 만들거나 파는 사람에게 그 상품의 생산이나 수송, 또는 서비스의 제공을 요구하거나 청구함. 또는 그 요구나 청구.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도록 요구하거나 부탁함. 또는 그 요구나 부탁.

주문(呪文) 

  음양가나 점술에 정통한 사람이 술법을 부리거나 귀신을 쫓을 때 외는 글귀.

 

이미 청년시절을 겪고 자리를 잡은 사람이 하는 주문은 앞의 주문(注文)으로, 청년시절을 혹독하게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뒤의 주문(呪文)으로.

 

그러나 앞의 주문을 뒤의 주문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 왜냐하면 주문은 '어려서부터 주문이 통하지 않는 날이 더 많긴 했다'는 표현과 같이 이루어지지 않는 적이 더 많이 때문이다.

 

그러니 공연히 "할 수 있다"라든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주문을 외우라고 주문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리잡고 살 수 있도록,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현실을 바꾸어가려고 해야 한다.

 

누가?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와 힘을 합쳐. 그렇게 해야 하는데... 윤의섭의 시집 "마계"를 읽다가 '주문'이라는 시를 보고서, 이 시에서 말하는 주문이 두 뜻을 지니고 있으며, 어쩌면 이 시에 나오는 그녀는 지금 우리 사회의 '청년'들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생을 하는 청년들의 모습. 있는 사람들의 주문을 받지만, 자신도 자기 나름의 주문으로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기를 꿈꾸는 존재. 그러나 현실은 냉혹해서 자신은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 청년.

 

그래서 주문이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적이 더 많았다고 한탄을 해야 하지만, 한탄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주문이 현실이 될 수 있게 기반을 쌓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기성세대는 주문만 하지 말고 현실을 바꾸려 해야 하고, 청년들도 주문을 외우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줄탁동시()'라고 현실이 바뀌게 된다.

 

근데...이 시를 이렇게 읽어도 되나?

 

주문

 

손님이 메뉴를 고르는 사이

그녀는 침착하게 손님의 입에서 흘러나올 주문을 기다린다

메뉴판을 짚어 가며 손님은 그날의 만찬을 기대하는 눈빛으로 음식을 주문한다

주방으로 향하면서 그녀는 늘 그렇듯 주문을 왼다

싱카폴슬링 크림슾 닭고기샐러드 구운감자 연어스테이크 중얼거리며

계속 중얼거리며 주문을 왼다 디저트는 디저트는

창밖 가로등 위로 초승달이 떴다

오늘의 디저트는 초승달 한 조각

그녀가 주문을 외자 식당 손님들은

접시에 놓인 초승달 조각을 잘라 먹을 수 있었다 배를

불릴 수 있었다

이른 새벽 퇴근길에 그녀는 가로등 아래에서 택시를 기다린다

정작은 자신을 집으로 데려다 줄 택시라는 주문을 외치진 않고

이미 사라져 버린 초승달 떠 있던 자리만 바라본다

언젠가 남아 있는 주문을 다 외고 나면

입에 반쯤 걸린 초승달이고 은하수고 꿈이고 영혼이고 다 쏟아 내면

조금 추운지 그녀는 구두 굽을 두어 번 부딪친다

갑자기 바람이 잔잔해지는가 싶었지만 여전히 제자리다

어려서부터 주문이 통하지 않는 날이 더 많긴 했다

 

윤의섭, 마계. 민음사. 2010년. 4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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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1-30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로 하면..˝오더˝ 와 ˝스펠˝의 차이니까 확연히 차이가 있겟네요...오더는 주는 거고 스펠은 시전하는 거니까요.ㅎㅎㅎ kor ot par....아 시집 리뷰 재미났습니다...^^.

kinye91 2017-01-30 10:15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kor ot par가 무슨 뜻인지? 전 모르겠는데, 좀 알려주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