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드물게 가는 전시회 관람이다.
문화생활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장소가 그리 먼 곳도 아닌데, 한 번 가려면 큰 맘 먹어야 한다.
시간과 비용, 그리고 효과... 효과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전시회를 제대로 감상하려는 자세가 아닌 줄 알지만, 모처럼 시간과 돈을 낸 것인데... 가서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린 시절 미술관에 가본 적이 없다. 박물관이야 학교에서 갔기 때문에 주마간산 식으로 대충 훑어본 적은 있지만, 미술관에는 학창시절에는 가본 적이 없다.
그러니 미술관에 간다든지 음악회에 간다든지 하는 일은 나에겐 참으로 낯설고 망설여지는 일일 수밖에 없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어린 시절 이런 문화를 관람하고 감상한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어른이 되어서도 잘 안 된다.
그래서 어린 시절, 특히 학창시절 경험이 중요하다. 평생에 걸쳐서 문화를 어떻게 경험하느냐를 결정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들은 이렇게 문화경험을 좀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르누아르의 작품은 책에서 많이 봤다. 색채의 화려함에 끌렸었는데, 그의 작품이 직접 온다니,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전시장이 가기에 그리 힘든 곳도 아니고, 시간도 나겠다, 관람비가 13000원이라서 조금 비싸다는 생각도 했지만, 복사본이 아닌 원본이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까지 왔으니 그 정도는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간 것.
총 4개의 전시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소녀들, 가족들, 여인들, 나체화들... 모두가 다 여인들 그림이다. 물론 가족들에서는 여인과 르누아르의 아들인 장의 그림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주제는 모두 여인이다.
아주 작은 그림... 손이 큰 사람이라면 손바닥 크기만한 그림에서부터 조금 큰 그림까지 르누아르가 그린 여인들 그림 중에 47편 정도가 왔다고 한다. 정확한 편수는 기억이 안 난다. 하여튼 40편은 넘었고, 50편은 안 되었다.
그런데... 서양 미술에 관한 책에 르누아르라면 실리는 그림들, 그런 아주 유명한 그림들은 오지 않았다. 하긴 그렇게 유명한 그림이, 아마도 꽤나 비쌀 그림들일텐데, 위험을 감수하고 먼 거리를 이동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래도 아쉽다.
르누아르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그림을 직접 볼 수는 없다니... 그럼에도 그가 그린 그림 원작을 볼 수 있다는 것, 색채 표현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맨 마지막 전시에서 비록 복제품(레플리카)이지만 손으로 만지면서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에서 위안을 삼았다.
여린 색들의 조화, 그리고 여인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평생의 주제로 택한 그의 집념 또는 일관성을 느낄 수 있는 전시회라고 할까.
여기에 한 가지 더 전시장을 들어가는 초입이 어둡다. 약간의 어둠을 지나야 르누아르 전시장에 들어가게 된다. 1전시장부터 4전시장까지가 이런 구조로 되어 있다.
어둠을 지나 전시장에 들어가면 인상파라고 할 수 있는 르누아르의 그림을, 그 화려한 색채를, 조명과 더불어 만날 수 있다. 그런 효과를 느끼라고 그렇게 전시장의 동선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점은 좋았다.
르누아르의 대표작들을 직접 눈으로 보려면 아무래도 그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나라의 미술관으로 가야겠지.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그래도 책에서만 만나던 사람의 그림을 직접 눈으로 봤다는데 의의를 두면서 나온 '르누아르의 여인' 전시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