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그야말로 눅진눅진하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몸이 물에 젖은 옷을 입고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만히 있지는 못하는데, 자꾸만 걸어야 하는데, 옷은 점점 무거워지는 상태. 그렇다고 길이 편하냐 하면 그것도 아닌.

 

그런 느낌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시집을 읽었다고 해야 하나. 무엇하나 선명하게 마음에 딱 다가오지 않고 끈적끈적하게 들러붙는 느낌을 주는 시들이다.

 

선명함과는 거리가 먼 시들... 그런 시들을 읽으며 마음이 녹초가 된다. 그냥 축 처지게 된다. 세상에 시를 읽으며 어떤 희망을 얻어야 하는데 오히려 시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다니.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명징한 언어의 세계에 살다가, 그런 언어를 좋아하다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언어를 만나, 이건 뭐지 하는 기분... 도대체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대상을 만났을 때의 당혹감. 그런데도 그 끈적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

 

조금만 더 읽으면, 더 생각하면 명징한 의미를 발견할 것 같은 느낌... 그 느낌 속에서 읽고 읽어도 계속 발에는 끈끈이가 붙어있는 듯 경쾌한 걸음을 걷지 못한다.

 

무겁다. 머리를 무겁게 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결코 편하지 않다. 그러니 이 시집에서 어떤 명쾌함을 바랐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이게 이 시집의 장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여전히 이 시집은 깔끔하지 않게 다가온다.

 

시인은 이 시집을 1988년에 냈다고 한다. 이것을 2001년에 다시 냈다. 세기가 바뀌었는데 다시 출간한 시집.. 십 년이 지났는데, 세상이 변했는데, 그런데도 이 시집이 다시 나온 것은 시집이 지닌 불명확성 때문일 것이다. 불명확성은 불확정성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세월이 지나도 계속 의미는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그런 의미에서.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발 밑이 끈적끈적하기 때문에 빨리 갈 수 없고,다시 돌아오기도 해야 하는 그런 시들.

 

제목에서도 이 눅진함이 느껴지는데... '젖은 구두'란 표현이다. '젖은 구두' 정말로 열심히 산 생활인의 신발이다. 발에서 땀이 나서 신발이 젖도록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사람의 모습... 그 사람이 잠시 멈춰서 젖은 구두를 '벗고' 다른 세계에 있는 '해에게 보여줄 때' 그때 어떤 생각을 할까.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젖은 구두를 해에게 보여주면 해는 젖은 구두를 말려줄까? 아니면 지금 말려도 소용없어. 넌 계속 걸어야 해라고 할까. 누구든 이 세상에 나왔으면 죽을 때까지 걸어야 할 운명인 걸까? 그것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든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시집 제목이 된 시를 찾는데... 그래도 제목이 된 시가 시집의 대표격이지 않을까 하는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찾았더니, 이건 제목과 내용이 도무지 연결이 안 된다. 제목이 시 내용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이런 참... 게다가 제목과는 몇 글자가 다르다. ('내 젖은 구두를 해에게 보여줄 때' - 91쪽.  '를'이라는 조사가 들어갔고, '벗어'라는 말이 빠졌다.) 

 

그러다 제목이 아닌 첫 시행에 제목과 거의 같은 구절이 나오는 시를 찾았다. 이 시집의 마지막에 있다. ('길에 관한 독서' - 169쪽,  첫행이 '한때 젖은 구두 벗어 해게게 보여주곤 했을 때'로 시작한다. 제목과 많이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이것 역시 명확하진 않다. 그러나 이런 불명확성 속에서 계속 움직이며 걸어야 하는 사람들... 결국 길 위에 있어야 하고, 신발은 늘 젖어 있어야 하는, 그런 사람들의 운명, 또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 이 시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멈춤은 곧 죽음이니, 삶은 움직임이요, 정류장이 아닌 길 위에서 걷고 있음이고, 이는 바싹 마른 신발이 아닌 젖은 신발, 젖은 구두여야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명확하진 않다. 시집은 계속 마음 속에 어떤 찜찜함을 남기고 있다. 이렇게 받아들여도 되나,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음을 알라고. 꼭 한 쪽으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시인의 말에서 그 점을 느꼈다. 제발 하나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시인의 말' 제목이 바로 '자메이카 봅슬레이'다.

 

상반된 것이 하나로 묶여 있는 그 상태... 시는 이렇게 비슷한 언어들이 묶인 것이 아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언어들이 모여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그것이 시의 역할일 수도 있다고.

 

그러니 이 시집에서 어떻게든 하나로 해석되지 않고, 명확하게 이성으로 정리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 삶은 본래 이런 모순적인 것이라고, 그 모순들이 계속 움직이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린 길 위에 있을 뿐이라고. 그 길을 가자고. 그렇게 삶의 다양성, 모순성들을 생각해 보는 이문재 시집 읽기였다고 위안을 하면서...

 

시집 읽기를 마쳤다고 할 수밖에...

 

위에서 언급한 두 시는 길어서 인용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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