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흔적을 걷다 - 남산 위에 신사 제주 아래 벙커
정명섭 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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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고 난 지 70년이 지났다. 70년 대충 따져도 두 세대가 바뀐 세월이고, 강산은 무려 7번이나 바뀌어야 한 세월이다. 이것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했던 기간의 두 배를 독립된 국가로 지내오게 된 세월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는 뭣하지만 프랑스를 예로 들면 그들은 독일치하에서 몇 년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전쟁이 끝난 다음에 독일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발빠르게, 또 치열하게 움직였다. 7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에 나치 독일의 잔재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면 아니라는 답을 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프랑스는 몇 년 안 된 나치 독일의 지배에서 이루어진 잔재들을 깨끗이 청소하려고 했는데... 우리는 무려 36년이라는 (정확하게 34년 11개월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통칭 우리는 36년이라고 한다) 세월을 일제 지배에서 지내왔으니... 얼마나 많은 잔재들이 남아 있겠는가.

 

그러므로 프랑스보다 더 치열하고 끈기있게 일제 잔재를 청산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엉뚱하게 일제가 우리나라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식의 억지주장은 좀 아니라고 보고)

 

가장 중요한 것이 우선 인적 청산이었을텐데...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독립운동가들이 감옥에 가기도 하고, 그 자손들은 힘들게 살고,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그 자손들 역시 대대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현실이다.

 

인적 청산이 안 되었으니, 나머지들이 제대로 청산되었을 리가 만무하다. 기껏해야 보존하여 기억해야 할 것들을 그냥 없애버리거나 또는 망각 속에 묻어버리고 만 경우가 허다하다.

 

어디에 일제 잔재가 남아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고. 최근에야 많은 학자들과 사람들이 일제의 잔재를 찾아 보존하고 기억할 것과 없애버려야 할 것들을 구분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 단적인 예가 요즘 벌어지고 있는 위안부 배상금 문제... 일본이 배상금이라는 용어를 절대로 쓰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10억 엔을 받아 왔는데... 일본이 왜 그 돈을 주겠는가? 위안부 제도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인권말살 정책이었음을 시인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아직도 살아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는데... 정부는 이 문제를 명확하게 단도리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는데...

 

눈에 보이는 현안마저도 이렇듯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고 있는 실정에서 무슨 일제 잔재를 청산하겠는가. 인적 청산에 이어 제대로 된 사과도 배상도 받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일제의 잔재를 껴안고 살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나라 곳곳에 일제 잔재가 있다고 하는데... 여러 번 가 본 곳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알아보지도 못하고 지나쳤던 곳들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이 책을 보니, 부끄럽게도.

 

이렇게 역사의식이 없어서야 하면서 나를 자책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꼭 나만의 문제이겠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처럼 이렇게 모르고 지나치는 일제 잔재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서울 한복판에서부터 제주도까지 일제 잔재는 아직도 남아 있다. 남아서 일제시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일제시대를 기억 속에서 밀어내 버리고 있는 중은 아닌지...

 

이 책에 나오는 일제 잔재들은 주로 관공서라든지, 우리나라 농민들을 착취했던 지주들의 집, 유물, 그리고 군사시설들이다. (구체적인 흔적들이나 장소는 책을 읽거나 찾아보면 될 듯)

 

특히 서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군사시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만큼 일제는 우리나라 곳곳에 자신들의 군사시설을 남겨 놓았고, 이 군사시설이 나중에 미군에 의해 또 우리나라 군에 의해 유지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덕분에 일제의 흔적이 남아 그 시대를 증언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 증언들이 학자들에게만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데... 지금 모습은 일제의 흔적이라는 것들은 학자들의 공부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우리는 현대사의 비극을 제대로 공부하고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은 반만 맞는다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뿐만이 아니라 현재도 없다고...

 

이 말이 가슴에 팍 와 닿았다. 그래 역사를 잊으면 현재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렇게 일제의 흔적을 걷는 것이 아니라, 일제의 흔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차라리 이 책의 제목처럼 일제 잔재를 청산해서 일제의 흔적이 역사의 기억으로만 우리에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일제의 잔재 속에서 헤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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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6-10-04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일제의 잔재나 흔적이 우리 한반도 곳곳뿐만 아니라 한국인 마음 속에까지 너무나 넓고 깊숙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일제의 잔재나 흔적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죠. 저는 우리 한국인들이 일제 식민지적 의식 구조에서 지금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고 봅니다. 한국인들 대부분이 식민지 노예의 의식 구조 속에 아직도 갇혀 있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한국/한국인들이 진정으로 자주독립하는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위 글 가운데 《그리고 아직도 살아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는데... 정부는 이 문제를 명확하게 단도리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라는 문장 속에 일본어에서 온 외래어가 있는데요. 아시고 쓰신 것인지요? 즉 많은 사람들이 “단도리”를 우리말로 잘못 알고 있어서 한번 말씀드려 보는 것입니다만...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네요.

단도리(だんどり, 段取り)는 원래 일을 해 나가는 순서, 방법, 절차 또는 그것을 정하는 일을 뜻하는 일본어이다.

표준국어대사전 최신판에서 삭제하고 채비, 단속, 준비 등으로 순화한 단어라고 합니다. 혹 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kinye91 2016-10-04 10:32   좋아요 0 | URL
아하, 감사합니다. 부끄럽게도 `단도리`라는 말이 일본 말에서 온 줄 모르고 썼어요. 우리말에 일본말의 잔재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 가운에 그런 말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아요. 사전을 찾아보는 습관을 가져야 하는데, 아직은 그게 잘 안되고 있어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그런 말 안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