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3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녹턴"이라는 말, 낯설다. 이은미의 노래 제목에서 이 말을 들어보았는데, 계속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 말을 놓아두고 외국어를 쓴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본래 음악에서 나온 이 용어가 음악에 문외한인 내 처지에서는 어려운 말이고,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 말임에는 틀림 없다.

 

"녹턴"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 비록 문제가 많다고는 하지만,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사전이고, 현재는 우리나라의 기본 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녹턴(nocturne) : 조용한 밤의 분위기를 나타낸 서정적인 피아노곡. 19세기 초엽에 필드(Field, J.)가 처음으로 작곡한 형식으로, 특정한 박자와 형식은 없고 세도막 형식 또는 론도 형식을 따른다. 쇼팽의 19곡이 가장 유명하다. ≒노투르노ㆍ몽환곡(夢幻曲)ㆍ야상곡(夜想曲).

 

이라고 되어 있다.

 

무언가 서정적인, 마음을 울리는 음악이라는 느낌을 주는데, 그럼에도 가슴에는 잘 다가오지 않는다. 이럴 땐 어쩔 수 없다. 그냥 음악을 듣는 수밖에.

 

이 시집의 제목이 "녹턴"이다. 음악을 듣는다기보다는 시를 읽으며 그 분위기를 느껴야 한다. 굳이 제목을 의식하지 않아도 읽어가면서 무언가 마음을 울리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밤에 느낄 수 있는 착 가라앉은, 그러나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렇다고 절망에 빠지게 하지도 않는, 그런 분위기.

 

이 시집의 시들은 이런 분위기를 너무도 잘 드러내고 있다. 시들이 하나하나 모여 '시'를 구성하고 있다.

 

마치 이 시집에서 '나'와 '나'가 모여 '나들'이 되듯이 - 분명 시인 '우리'라는 말이 아니라 '나들'이라는 말을 쓴다. '우리'라는 말이 '나'와 '너'가 모여 있다는 느낌을 준다면, '나들'이라는 말에는 '나'와 '나'가 모여 있단 느낌을 준다 - 시와 시들이 모여 시집을 이루고, 이 시들이 시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가 바로 '녹턴'의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 분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시인의 현실 인식에서 온다. 우리 시대는 환희에 찬 시대가 아니다. 밤의 분위기를 지닌 시대다. 어둡다.

 

그러나 어둠을 밝히는 빛이 있다. 차가움을 녹이는 따스함도 있다. 그것이 태양처럼 강렬하진 않지만 어둔 밤 길을 밝혀주는 달빛처럼 - 그 달빛엔 빛만이 아니라 열(따스함)도 있음을 - 시들이 작동하고 있다.

 

시인은 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객의 본업은 죽은 사람을 만나 못다 한 그의 이야기를 듣는 일

  가객의 부업은 산 사람의 고단한 저녁에 피가 도는 날개를 달아주는 일 (조금 먼 아침 중 일부. 26-27쪽)

 

이 시에서 가객을 시인으로 바꿔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일인 것이다. 따라서 이 시집의 2부에서는 '세월호'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에 대한 시들이 나온다.

 

시인이 그 사건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시인이 애도하지 못하고, 그들이 못다 한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저 해주지 못한다면 세상은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을테니 말이다.

 

시인은 그래서 또 이렇게 말한다.

 

  지상에서 더 이상 시가 읽히지 않을 때

  '너'의 아픔에 덩달아 아픈 '나들'은 합리적으로 사라지고

  '나'이거나 '너'인 세상만 질서 있게 퇴화하여 남을 것이니

  이것이 내가 시의 죽음을 애도하는 첫번째 이유 (시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유 중에서 125쪽.) 라고

 

그렇다. 이 시집에서는 이렇게 시는 바로 '나들'이 된다. 시인과 시는 다른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시를 읽는 독자 또한 다른 존재가 아니다. '나들'이다. 이 '나들'이 있는 한 세상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차가움 속에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는다.

 

그런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 시집, 바로 "녹턴"이다. 그래서 제목이 녹턴이지 않을까, 녹턴이라느는 낱말이 조금 가까이 내 마음 속으로 다가오게 만들어준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기억하고 싶은 시. 바로 '사랑'이란 시다. 읽어보자. 그리고 읽히자. 문을 꼭꼭 잠가 자물쇠를 걸어둔 사람들에게.

 

사랑

 - 앞선 순례자의 묘비에 이 시가 적혀 있는 것을 읽었으나 곧 잊어버렸다 이 부주의함이야말로 나의 원죄이니 기억하라 오늘 당도한 사랑의 순례자여

 

새장 속에 꽃을 기른 적 있지

새장 문을 열어두어도

꽃은 날아가지 않았네

 

새장 속에 심장을 기른 적 있지

새장 문을 닫아둔 날

심장이 날아갔네 꽃이 날아갔네

 

잠긴 새장 바닥엔

무거운 핏빛 깃털 몇 낱

마르지 않는 고통 몇 잎

 

두려워 새장을 짠 자여, 문 닫은 자여

스스로의 무지를 애도할 것

 

김선우, 녹턴, 문학과지성사, 2016년. 14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