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술잔
현기영 지음 / 화남출판사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가끔 우연찮게 이런 책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다. 헌책방의 서가를 기웃기웃 하다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책.

 

현기영의 소설을 몇 편 읽은 나로서는 그의 산문집을 통해 그를 좀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산문집에서는 소설에서 하지 못한 자신의 개인사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로 손에 들게 된 이 책.

 

읽으면서 소설에서 느꼈던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소설이 자신의 감정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한다면, 산문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개인사가 잘 드러나 있는 산문을 읽고 그의 소설을 새롭게 보는 경우도 있고, 그의 소설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하는데...

 

현기영의 작품 중에 많이 알려진 작품이 "순이 삼촌""지상의 숟가락 하나"인데... 이들이 모두 제주도 4.3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 현기영이 제주도 출신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것을 소재로 삼아 소설을 썼겠거니 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4,3은 현기영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 이를 작품으로 풀어내지 않으면 그가 다른 소설을 쓰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4.3은 그의 마음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데... 그것을 소설로 풀어내고도 겪어야 했던 고초가 이 나라 현실이었으니.

 

정부에서 묻으려고 하는 진실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려 하니, 그런 작가를 가만히 놓아두기 힘들었으리라.

 

그래도 소설 때문에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해야 하다니... 그런 장면들이 지나치듯이 나와있지만, 과거에는 이렇게 작가가 작품을 쓰는 일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써야 할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4.3의 진실이 밝혀지는데 (사실 지금도 완전히 밝혀졌다고는 할 수 없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이런 점과 더불어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일들인 '이재수의 난'을 배경으로 쓴 "변방에 우짖는 새"와 일제시대 '해녀 투쟁'을 그린 "바람 타는 섬"을 소설로 쓰게 되는 과정도 나와 있어서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이 산문집은 현기영이 여기저기 발표했던 글들을 묶어서 펴낸 책인데... 작가의 주장을 잘 알 수 있는책이어서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산문이라기보다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글도 있는데... 아주 짧막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2부 잎새 하나 이야기'는 감동을 주기도 한다.(이 중에서도 '외주먹 아바이' '실종'은 짧은 분량에 비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 잎새 만큼 작은 글에서 이렇듯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또 현기영이 만난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서 다른 작가들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쁨도 누릴 수 있고, (신경림, 강요배, 이재무, 박철 등) 그가 2000년 초반 (특히 2001년, 2002년)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알 수 있는 글들도 있어서 현기영이라는 작가의 다른 모습도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제주도에서 자란 그가 제주도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지, 제주도는 그에게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에 나오는 제주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길잡이 노릇을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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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21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도에 신혼영행을 다녀온 후로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데, 언제 시간이 되면 렌트카를 빌려 제주도를 일주해야겠네요. 돌과 바람과 여자의 섬, 제주도...*^

kinye91 2016-02-21 11:27   좋아요 0 | URL
저는 몇 번 가봤는데... 갈 때마다 다르더라고요. 물론 제주도가 고향인 현기영 선생이 느끼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단지 관광만이 아니라 제주의 역사와 문화, 삶을 아는데 현기영 선생의 소설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저도 다시 더 가보고 싶은 곳이 제주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