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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죽음 1
진중권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우선 진중권의 책은 재밌다. 재밌게 읽힌다. 그의 글솜씨가 좋은 것인지, 미학이라는 난해한 학문도 쉽게 접근할 수가 있게 된다.
그림과 철학과 사회사상과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잘 버무러져 있어 책을 쉽게 읽어나갈 수가 있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그림을 통해서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고, 아리에스가 주장한 것을 진중권 식으로 그림을 통해서 정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생각하라는 말처럼, 죽음은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죽음은 늘 삶 곁에 있다. 그런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밝히는 일은 어려운 철학, 종교의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렇게 심오한 내용을 어렵게 접근하지 않는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인식 변화를 단계로 설정하고 그 단계에 맞는 그림들을 선정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를 왜 그렇게까지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었는지, 또 죽음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그림의 변화를 통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물론 그림의 변화하는 얘기는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와 일치한다.
시대의 변화를 그림에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 1권에서는 세 단계를 다루고 있다.
우리의 죽음 (중세 초기에서 중세 전성기) - 나의 죽음 (중세 전성기에서 르네상스) - 멀고도 가까운 죽음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 너의 죽음 (낭만주의 시대) - 반대물로 전화한 죽음 (현대)
이런 다섯 단계 중에 세 번째 단계인 '멀고도 가까운 죽음'까지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초기에 기독교를 믿는 (이 책은 주로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 그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 거기에서 영향을 받은 그림들이 나온다. 기독교라고 한 것은 우리가 속칭 말하는 기독교, 천주교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개인화하지 않았다.
그냥 그들은 모두 어느 순간에 최후의 심판을 통해 천당에 가거나 지옥에 갈 것이었고, 특히 크리스트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천당에 갈 것이기 때문에 죽음은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나의 죽음' 시대에 이르면 이제는 크리스트를 믿는다고 해서 모두 천당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개인의 심판이 대두된다. 이들에게는 이제 죽음은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된다.
단지 믿음만으로 천당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들이 그림을 통해서 나타나고... 이것이 더 심화되는 것이 이제는 죽음은 공포로 등장하게 된다. 모든 것을 헛되게 만드는.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이것이 바로 '멀고도 가까운 죽음'의 시대다.
죽음을 끝없이 의식하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 이런 상태를 드러내는 그림들까지 1권에 나와 있다.
결국 우리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시대에 따라서 변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시대에도 역시 잘 죽는다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 과거의 죽음에 대한 생각과는 꽤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죽음은 우리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공통적이다. (물론 부활을 믿는 사람들, 영생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아니겠지만)
그래서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말로 바꾸어야 한다. 죽음에 관해서는 우리가 어찌 손 대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삶을 우리 스스로 가꾸어갈 수가 있다.
죽음에 도달하기 위한 삶. 종말로 다가가는 삶이 아니라, 순간 순간 존재하는 동안에 최선을 다하는 삶. 그것이 어쩌면 죽음과 더불어 사는 삶일 것이다.
이렇다면 죽음은 우리가 감추고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을 비춰주는 거울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옛그림에 나타난 죽음들을 보고, 읽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삶의 충실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 책이 기능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아쉽게도 이 책은 품절되어 구하기가 힘들다. 나 역시 1권은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서 구입했는데... 2권 역시 읽으려면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