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그림 하나, 시 하나
신현림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월
평점 :
학창시절에 시화전이라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적어도 40대가 된 사람들은 초중고등학교 시절에 시인들이 쓴 시든, 모방시든, 창작시든 시를 쓰고 그 시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보았을 것이다.
잘된 작품은 상도 타고 전시도 되어 다른 학생들이 볼 수 있기도 했고. 어쩌면 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그림을 그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런 활동을 하는 시간도 많이 줄었겠지만.
이와 반대로 우리나라 옛사람들은 그림에 글을 써서 함께 보관을 했다. 글이 먼저가 아니라 그림이 먼저 있고, 그 그림에 맞는 시나 글귀들을 적어 넣은 것. 일명 화제라고 하는데...
그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역시 그림과 더불어 그림에 달려 있는 글로 인해 더욱 빛나지 않던가. 옛날 우리 선현들은 이렇게 그림과 글(시)를 함께 존재하면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림과 시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이러한 그림과 시의 관계를 더욱 잘 보여주는, 여기에 그림과 시에 대한 글까지 곁들여 그림과 시, 그리고 글이 하나로 어우러진 멋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관에 가면 그림을 보기에만 급급해 다른 것들을 놓치게 되는데, 그림을 앞에 두고 자신의 감상을 표현할 수 있는 시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을 자신의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일테고, 그런 사람은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시나 그림이나 감정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런 아름다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라면 삶 자체도 아름다워지도록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많은 그림과 많은 시들이 하나로 엮여 있다. 이들을 엮는 글쓴이의 눈과 마음이 부럽기도 하다.
더욱이 이 책에서는 그림에 어울리는 시를 우리나라 시인들의 작품으로만 한정하지 않았다. 그림과 어울리는 시라면 외국 시인들의 작품도 과감하게 실었다. 따라서 이 책에는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도 많지만 그에 못지 않게 외국 시인들의 시도 많다. 좀더 폭넓은 시야를 지닐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이에 더하여 이 책은 그림을 그림으로만 보지 않고, 시를 시로만 읽지 않는 그런 자세, 예술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이 책에서 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통합적으로 예술을 받아들일 때 아름다움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음도 느낄 수 있고.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림과 시들을 다 열거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 몫이니 남겨 놓고, 그림 한 편과 시를 이 책에서 예로 들어 본다. (내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시이기도 한데, 이 그림에서 이런 시를 연상하고 연결시킨 지은이에게 경의를 보낸다)
그것은 폴 세잔의 "소년"이란 그림에 김명인의 "아들에게"란 시다. (이 책 66쪽에서 69쪽)
이 그림을 보고 무엇을 떠올리는가? 소년에 관한 어떤 것들을 떠올려도 좋다. 이 책의 지은이는 이 그림을 보고 김명인의 시 '아들에게'를 떠올렸다고 한다.
특히 '아들에게'에서 나온 많은 시 구절 중에 이런 시 구절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모든 외로움은 네가 견디는 것. 더 많은 멀미와 수고를 바쳐 너는 너이기 위해 네 몫의 풍파와 마주 설 것!"이라는 구절이 소년의 앞날에 보내는 응원 같다. (69쪽)
그렇다. 그림을 보더라도 그 그림에서 느끼는 감정을 다른 예술로 바꿀 수 있는 것. 그런 시야를 이 책은 보여주고 있고, 우리도 충분히 그렇게 시와 그림 또는 음악과 시 등등을 감상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은.
덧글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269-270쪽 윤동주의 '자화상'을 실은 부분.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중략)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많은 시집들에서는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중략)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로 표기되어 있어 연을 구분하고, 1,2 연과 마지막 연은 한 행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이 시를 볼 때 이 책처럼 행갈이를 하는 것보다는 연 구분을 하고 긴 구절을 한 행으로 표기하는 것이 이 시를 아름답게 느낄 수가 있다. --- 이것은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