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구한 책.

 

헌책이라기보다는 새 책이다. 책 속지에 글이 쓰어 있지만, 그 글은 이미 이 책을 읽은 사람의 흔적이니 반가우면 반가웠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때 엄청나게 팔린 시집이다. 시집이 안 팔리던 시절에 잘 팔리던 시집. 어쩌면 세기말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시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너무 잘 팔려서 그땐 거부감이 있었는데... 그래서 혹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지 했었는데...

 

이 시집이 나온 지 20년이 지나서야 읽게 되었다. 이제는 세기말 감성이 아니라, 어쩌면 더한 위기일지도 모르는데...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거의 30년이 되어 간다. 그때 그 잔치... 우리는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었고, 민주화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많은 부분에서 민주화가 된 것도 있지만, 민주화와 더불어 신자유주의가 우리 곁에 왔고, 신자유주의로 인해 이제는 생계를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나이 많은 사람의 월급을 나이 적은 사람에게 주겠다고 하는데, 이들의 연관성이 거의 없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던데...

 

민주화 이후 우리는 잔치 분위기 속에서 몇 년을 지냈고, 그 잔치가 파할 무렵, 잔치 속에서 잊고 있었던,잃고 있었던 것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 잔치는 끝났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잔치는 지속될 수 없다. 잔치는 단속적이다. 순간적이다. 다만, 단 한 번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잔치는 간헐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잔치는 끝났지만, 잔치는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순간에 있는 것 아닌가.

 

최영미의 시집 제목이 된 시를 읽는다. 민주화의 열기로 가득차 있던 시절, 그 시절은 바로 잔치의 시절이다. 그러나 이제는 잔치는 끝났다. 어쩌면 우리의 잔치는 일찍 끝났을 수도 있다. 이제는 일상에서 잔치의 결과를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면서도... 이 시의 이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상관이 있다'고 '상관이 있다'고 외친다는 느낌.

 

잔치는 계속된다는 외침으로 들린다. 바로 이제는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서른, 잔치는 끝났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답을 챙기고 마참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더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리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비평사, 1994년 초판 10쇄. 10-11쪽.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이미 잔치가 끝난 한 물 간 사상으로 취급되지만, 그러나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생길 수 없었던 사상.

 

그 사상에 대해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어쩌면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 사람을 불러 모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자본론

 

맑시즘이 있기 전에 맑스가 있었고

맑스가 있기 전에 한 인간이 있었다

맨체스터의 방직공장에서 토요일 저녁 쏟아져나오는

피기도 전에 시드는 꽃들을 집요하게, 연민하던,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비평사, 1994년 초판 10쇄.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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