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국어사전 -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 비판 뿌리와이파리 한글날
박일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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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좀 달라졌지만,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학생이 있는 집에서는 모두들 영어사전 한 권씩은 가지고 있었다.

 

영어가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중요한 과목이 된 지는 오래되었고, 영어 공부를 위해서는 단어를 찾고 익히는 것이 기본이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전이 필수였다.

 

영어사전을 보면 초중고, 대학생들이 익혀야 할 어휘들에 표시가 되어 있었고, 용례도 풍부했는데, 이와 반대로 우리나라 사전인 국어사전을 집에 가지고 있는 학생은 드물었다.

 

혹시 좀 산다는 집에서 장식용으로 한글대사전과 같은 두꺼운, 그러나 한 번도 펼쳐보지 않는 그런 사전을 비치해 둔 적은 있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국어사전을 넘기며 우리말을 찾는 학생은 드물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말 하면 웬지 다 알 것 같았고, 찾지 않아도 문맥 속에서 뜻을 유추해낼 수 있었으니, 아주 어려운 말들이 아니면 사전을 굳이 찾을 필요가 없었기도 하지만, 국어사전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했던 경우가 더 많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영어사전은 하나씩 두고 있으면서 국어사전은 두지 않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제는 스마트폰 시대가 되었다. 말 그대로 온라인 시대가 되었다.

 

종이사전은 전자사전으로 대체되었으며, 한 때 유행했던 전자사전도 이제는 그냥 스마트폰에서 검색을 하면 각종 어학사전이 다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도 영어는 역시 중요시 여겨진다. 영어사전을 온라인으로 검색하는 사람은 많지만, 국어사전을 온라인으로 검색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여기서 사람이라고 했다. 학생이라고 하지 않고. 온라인 시대에는 학생과 어른의 구분이 필요없으니, 그냥 사람이라는 말로 통칭해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이래서일까? 국어사전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교육부도 국어학자들도, 그리고 일반인들도. 그냥 그런 사전이 있나 할 뿐이다. 너무도 가끔, 아니 거의 찾지 않는 사전이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공신력있는, 가장 기본적으로 참조해야 할 사전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대답하지 못할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을 펴냈고, 온라인으로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어떤 글을 쓸 때, 또는 맞춤법이나 낱말을 찾을 때, 낱말의 정확한 사용을 알고 싶을 때 '표준국어대사전'을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면 우리말이 잘 쓰이고 있다고 할 수 없을텐데...

 

국어사전에 대한 무관심. 일반인들만 무관심하면 그나마 괜찮다고 위안을 삼겠으나, 정작 '표준국어대사전'을 펴낸 국립국어원조차도 국어자선에 대해 관심이 크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간혹 국어사전을 찾을 때 답답함을 느끼곤 했는데... 정말 짜증났을 때가 신동엽의 '산문시1'을 읽을 때, 그 시에 나온 말 '흡쓰며'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았는데... 나와 있지 않을 때... 사전이야 그렇다치고 국어원에 질문했을 때도

 

 "안녕하십니까? 문의하신 ‘흡쓰며’는 그 기본형이 ‘흡쓰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는 “표준국어대사전” 외 다른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아 그 의미와 기본형에 대해 명확히 답변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시어인 점을 감안하며 시인의 독창적인 변용의 결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라는 답변만을 들었는데...

 

국어에 관해서 연구하고, 정리한다는 국립국어원에서 우리나라 유명한 시인이 쓴 시구절에 나온 말을 더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그렇게만 답변했다는 사실. 그냥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지 않다와 다른 사전에도 없다가 끝이다.

 

그 말이 어떻게 나온 말인지 연구해서, 찾아서 알려주겠다는 말은 없었으니... 답답했었는데...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답답한데 '우리말을 다룬 책을 몇 권 내는 바람에 남들보다 국어사전을 뒤적일 기회가 많았'(7쪽. 들어가며)다는 이 책의 저자는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일제강점기에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을 하던 조선어학회 사람들을 잡아가두며 일제가 했다는 말.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다' (10쪽. 들어가며)

 

조선어사전을 편찬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분들도 있는데... 해방이 되고, 선진국 대열에 올라, 이제는 문화강국을 꿈꾼다는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사전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너무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개인에 의해서 사전이 만들어지지도 않고, 국가에 의해서, 국가에 의해 설립된 기관에서 국어를 전공한다는 전문가들이 모여 사전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가장 믿을만한 좋은 사전이 '표준국어대사전'이 되어야 함에도,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으니...

 

책을 읽을수록 화가 나기만 했다. 이렇게 엉터리일 수가? 그냥 조금 잘못이 있겠지 했었는데... 조금 잘못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만 할 사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총 13장에 걸쳐 '표준국어대사전'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 책의 초고를 마치는데 두 달 정도 걸렸다'(263쪽. 나오며)고 했는데, 이 정도 기간에 이렇게 많은 문제점을 찾아내고 지적할 수 있을 정도면... 이건 '미친 국어사전'이 아니고 '엉터리, 또는 나오지 말았어야 할 국어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이 우리의 정신을 담고 있고,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면 사전은 그런 말의 집합, 정신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나라의 공인된 기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사전이 이렇게 엉터리라면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루바삐 고쳐야 하는데... 역사교과서를 바로잡는다는 망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 잘못된 우리 국어사전부터 바로잡을 노력을 해야 하는데, 방향이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정치권이 하는 일은.

 

하나하나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를 이 책에서 예를 들지 않겠다. 예를 들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냥 책을 읽어보면 된다. 책을 읽어보며 온라인으로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라. 그러면 이 책에 나와 있는 문제가 정확함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화가 난다. 설마, 국립국어원의 관계자들이 이 책을 읽지 않지는 않겠지. 적어도 자신들이 관계된 작업을 비판하는 책인데, 읽고 수정할 것은 수정하고, 반박할 것은 반박해야겠지.

 

그것이 우리말을 더 잘 살리는 길이고, 진정한 우리 국어사전을 만드는 길일테니 말이다. 최소한 이 책에 대한 논평이 국립국어원에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국어사전을 만들어냈으면 한다. 이건 정말 시급한 일이다. 중요한 일이고. 다른 무엇보다도. 그 많은 국어학자들은 무엇하고 있나? 한 나라를 대표하는 '표준국어대사전'이 이렇게 엉터리라는데... '미친'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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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oo 2015-11-03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폰 어플이 있어 20달러인가 주고 샀는데(사실 내이버 백과사전이 표준국어대사전이죠) 지금은 다음사전(고려대 국어사전)을 더 많이 보는 거 같아요.

kinye91 2015-11-03 17:55   좋아요 0 | URL
저는 표준국어대사전을 가끔 참조하는 편인데요, 이 책에 의하면 그래도 다음국어사전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