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탈무드 - 하브루타 아빠의 특별한 자녀 교육법 하브루타 교육 시리즈
양동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하브루타'

 

요즘 많이 들리는 말이다. 예전에 교육방송에서 유대인 도서관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도서관 하면 무조건 정숙, 정숙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대인 도서관은 떠들썩했다. 그런데 그 떠들썩이 남을 방해하는 시끄러움이 아니라 자신들이 모르는 것을 찾아가는 소리들의 모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구난방이 아니라 주제를 향해 가는 소리들의 모음, 그러한 떠들썩함이 온 도서관을 채우고 있었고, 그러한 채움이 유대인의 지혜로 나타나는가 보다 했었다.

 

그러한 교육방식을 '하브루타' 또는 '헤브루타'라고 한다는데, 책을 읽어도 혼자 읽고 혼자만의 사색에 빠지지 않고 꼭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질문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 교육방법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교육을 받은 유대인들은 토론에 능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게 된다. 그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탈무드'

 

이러한 하브루타 교육의 집대성이 바로 탈무드라고 할 수 있다. 너무도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탈무드지만 우리에게는 동화나 우화 수준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냥 이솝 우화 읽듯이 읽고는 재미있네 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아주 가끔은 교과서에 실려 아이들에게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그뿐이다. 더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사실 우화나 동화는 생각하면 할수록 새로운 면들이 발견되는데, 그래서 어떻게 읽느냐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느냐에 따라 같은 동화라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삶에 방향을 다양하게 제시해주기도 한다.

 

탈무드 또한 마찬가지다. 유대인들에게 탈무드는 성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고, 삶의 지침서 역할, 지혜를 얻어가는 도구로써의 역할도 한다고 할 수 있다.

 

'자녀 교육'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하브루타'란 말이 많이 알려져 있어서 자녀 교육에 있어서 토론을 도입하는 가정이 많다.

 

자녀와 대화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책은 어떻게 대화하는 것이 자녀교육에 좋을까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려고 한다. 그리고 책을 읽어주는 것이 자녀의 지능발달에도 또 정서발달에도 좋다고 하니,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는 책을 읽으라고 하거나 또 읽어주더라도 읽어주고는 거기에서 멈춘다. 더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러면 안 된다고, 더 나아가야 한다고. 책을 읽어주었으면 그 책에 대해서 자녀와 대화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교육을 탈무드를 통해서 하브루타 교육을 한 결과를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탈무드 한 편 또는 두 편 정도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에서 주제를 끌어내어 함께 이야기하는 것, 아무리 엉뚱한 대답이라도 인정해주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하브루타 교육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하브루타 교육의 장점으로 자녀들의 지혜를 일깨우는 것도 있지만, 함께 이야기를 함으로써 가족간의 유대도 돈독해지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교육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아이에게 탈무드 이야기를 해주고 질문을 하고 답을 듣고 또 질문을 하는 과정, 결국 자녀를 동등한 이야기 상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하브루타 교육 방법이다.

 

대화는 대등한 관계에서나 가능하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좀 낯설다. 아빠와 아이들이 이렇게 조곤조곤하게 대화할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이들은 독실한 신앙심으로 함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또는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쑥쓰럽다는  이유로 이런 교육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 가정환경이었다면 좀더 다양하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우리 아이들이 습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적어도 중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위한 공부만을 하는 공부기계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에서 과연 다양한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만약 그런 학생이 있다면 우선 아이들에게 진도 나갈 시간을 빼앗는다고 엉뚱한 아이라는 비난을 받을테고, 교사에게도 역시 시간을 뺏는,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아이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많다.

 

교과서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교과서를 비판적으로 보는 질문, 또는 그런 교육을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이건 가능의 문제가 아니고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문제인데, 아직도 그런 교육이 우리나라에서 가능하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이와 아빠가 조곤조곤 대화하는 이런 '토론 탈무드' 책이 부럽기도 하지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우리나라 학교는

 

하급반 교과서다.

 

하급반 교과서

                         - 김명수

 

아이들이 큰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그렇다 그렇다!"하고 읽으니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읽기여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

 

교육출판기획실 편, 내 무거운 책가방, 실천문학사. 1988년 3판. 147-148쪽

 

김명수의 하급반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다. 도대체 질문이 없다. 아니, 우리 사회도 역시 질문이 없다. 하급반 교과서는 학교의 저학년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나 전반에서 쓰이고 있다.

 

비판을 비난으로 다름을 차별로 만드는 사회 아니던가. 좀 다르다는 것을 못 견뎌하는 그런 모습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브루타' 교육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입 다물고 사는 사회가 아니라, 도무지 질문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말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사회, 그 말들이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함께 하기도 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책

 

무언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든다. 하브루타라고 하면 대등한 대화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빠가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아빠는 답을 알고 있고, 그 답으로 아이들의 대답을 유도해나간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모습이 하브루타가 아니지 않은가. 하브루타는 답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답을 대화를 통하여 만들어가는 것 아닌가.

 

아무리 아이들이 어리다고 해도 아이들의 답은 그 자체로 답이다. 아빠가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 답을 유도하면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답을 잘 찾기 위한 방편이 하브루타가 아니라 답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하브루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아빠는 너무 답에 매달려 있다. 아니, 본인이 끝에서 꼭 답을 말하려 한다.

 

그래서 대화가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닫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 전반적으로 그런 느낌을 준다. 잘못 읽은 것인가?

 

동의하기 힘든 것들

 

이 책 224쪽에는 중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노조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큰 자동차 회사의 노조들이 임금협상을 위해 극단적으로 자살을 하거나 그런 일이 있어요. 예전처럼 노동 환경이 나쁜 것도 아니고 좀 자제해야 돼요. 그렇다고 회사 편만 드는 것도 안 좋으니 서로 절충해서 살아야죠.'라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중도는 힘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말이고, 좋은 실천이지만, 힘없는 사람에게 중도는 포기요, 좌절이요, 죽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또한 '예전처럼 노동 환경이 나쁜 것도 아니고'란 말, 노동환경을 과거와 비교하면 안된다. 그것은 마치 조선시대와 지금을 비교하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살 만해졌는데 무슨 불만이냐는 말과 같다.

 

노동환경은 늘 현재의 문제다. 지금 노동자들이 견디기 힘들면 그것은 좋지 않은 노동환경이다.

 

235쪽에 '친구를 사귈 때는 나보다 한 단계 높은 친구를 사귀고, 여자를 사귈 때는 나보다 한 단계 낮은 여자를 선택하라는 말이야.'라는 말. 이상하다. 자기보다 나은 친구를 사귀는 것은 좋다. 그렇지만 내가 나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도 좋다. 이런 이야기는 뒤에 나오니 더 말할 것이 없는데, 문제는 여자에 관한 얘기다.

 

자기보다 한 단계 낮은 여자를 선택하라는 말, 이거 여성 비하 아닌가? 이 글이 나오는 장의 작은 제목이 '여성 상위'이고 여성이 정말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왜 이런 말을 굳이 삽입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친구건 여자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 좋은 일은 친구건 여자건 자기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여간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다. 초등학교 정도의 아이를 둔 가정에서 해볼 만한 교육방법을 다루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학교에서 교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시도해 볼 만한 내용이라는 생각도 든다.

 

토론 교육이 강조되고 있고, 학생 활동 중심의 수업을 강조하고 있는 이 때 이 책의 세세한 내용보다는 그 방법론을 배워서 교육 현장에 적용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내용을 100% 믿고 따르지 말 것. 그것은 '하브루타'가 아니다. 이 책의 내용을 자신만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볼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을 잘 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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