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 - 인디언에게 배우는 자유, 자치, 자연의 정치
박홍규 지음 / 홍성사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순간, 놀랍고, 이럴 수가! 하는 생각이 들고, 설마? 하다가, 그럴 수도 있겠지... 수긍도 하다가, 그래도 이건 너무 한 거 아니야, 하다가, 아냐, 내가 모르는 사실이 있어, 하면서도, 그래도? 뭔가 미심쩍어 하면서 읽었는데...

 

민주주의의 원형을 우리는 흔히 고대 그리스에서 찾았는데, 이 책에서 박홍규는 민주주의의 원형은 인디언 사회에 있다고 한다.

 

인디언들이 아시아 대륙에서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많고, 그들의 피부색과 우리들의 피부색이 비슷해서 우리는 어쩌면 같은 종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도 수긍을 하지만, 서양의 민주주의, 특히 미국의 민주주의가 영국이나 유럽의 민주주의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인디언에게서 배운 것이라니...

 

이렇게 파격적인 주장을 할 수가 있나,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생각으로 읽어 갔다. 인디언들에 대해서 재조명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이제는 어느 정도 그들에 대한 생각이 완성되었다고 보고 있는데, 이렇게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그들에게서 연원했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보아서 흥미도 있었지만 반신반의 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읽어가면서 책 내용에 점점 더 빠져들어가게 된다.

 

법학자답게 근거를 들어서, 특히 사회계약이라든지 법률 쪽에서 논리적으로 잘 설명을 하고 있어서 읽다 보면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책을 읽어가면서 기존 지식이 무장해제된다. 기존에 내가 지니고 있던 생각이 서양의 교육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시 이래서 교육은 중요하다.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하여 지도자라고 하여도 개인의 자유를 침범할 수 없으며, 지도자이기 때문에 개인의 재산이나 권력을 축적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사회였고, 그래서 그들은 작은 집단끼리 자치적인 삶을 살았으며, 이러한 자치를 바탕으로 하여 서로 연합하는 연맹체의 제도를 마련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지리상의 발견이라고 하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상륙은 사실은 침략에 다름 아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있으며, 이들의 침략으로 몇 천 년 동안 이어져 오던 자유롭게 자치했던 인디언 사회가 멸망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한 번은 들어보았던 이름, 라스카사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줘 같은 서양인이지만 인디언을 대하는 태도가 콜럼버스와 라스카사스가 어떻게 다른지, 우리는 이방인을 대할 때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이 라스카사스는 영화 '미션'의 모델이라고 보면 된다. 주인공과 신부 둘 다 합친)

 

이들이 이렇게 자유와 자치를 중심으로 자연과 함께 하는, 그렇다고 자연에 매몰된 삶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 그리고 남녀 평등이 먼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유럽의 법률에도 인디언 사회의 제도가 많이 반영이 되었다고 법률적 조항들을 예로 들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인디언 사회에서 이루어졌던 자유ㅡ자치의 모습인 '호데소노니 연방회의'는 가장 적절한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미국의 연방 헌법이 이 '호데소노니 연방회의' 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저자는 미국의 헌법 학자들은 이를 믿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만, 그는 페인, 제퍼슨, 프랭클린의 예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쳐가고 있다.

 

미국의 연방 헌법이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보다는 그것이 표방하고 있는 방향이 중요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나오는 인디언들의 '호데소노니 연방 회의'는 참으로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미국의 초기 학자들, 정치가들이 인디언들과도 잦은 접촉을 했을테니, 이를 몰랐을 리 없고, 영국으로부터 독림하여 자신들의 헌법을 만들 때 참조했을 가능성은 높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과거의 영향력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 하는 것보다 지금, 우리는 여기에서 이들이 이미 오래 전에 실시했던 그러한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미국 대통령이었던 케네디의 연설문이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특히 이 구절, 정말 지겹도록 외웠던, 그러나 잘못 생각하면 국가주의로 머물 수만 있는 그런 구절인데.. 이 구절을 아니키 민주주의에 맞게 해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네디가 워낙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있는 대통령이고, 그의 연설문은 영어로 또 번역본으로 많이 읽히고 있으니...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my fellow citizens of the world; ask not what America will do for you, but what together we can do for the freedom of man.

(친애하는 미국 국민 여러분,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물어 주십시오.

친애하는 세계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지 말고, 우리가 다 같이 인류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 주십시오.)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물으라는 얘기는 국가만 바라보면서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서 어떻게 복지정책을 펼치를 바라만 보지 말고, 우리가 진정 원하는 사회를 위해서 우리 각자가 자유롭게 노력해서 국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는 말로 바꿀 수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오로지 중앙정부만 바라보면서 중앙정부의 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우리 자신들의 삶을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우리 스스로 자율적으로, 자치적으로 만들어가는 삶을 살아가자고 하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게 바로 우리가 요즘 말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다.

 

그러니 이것은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제를 옹호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율, 자치, 협동의 삶을 만들어가도록 해야 한다는 말, 이것이 아직은 국가를 없애기는 힘들지만 국가와 함께 잘 지내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디언에게 배우는 민주적 아나키즘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국가를 위해라는 말에서 국가란 존재하는 실체라고 보기보다는 자치적인 삶들의 총합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케네디가 이런 뜻으로 말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말을 이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가는 개인들 위에 군림하는 리바이어던이 되기 때문에,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라는 말은 개인적이고 자치적인, 자율적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라는 말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뒷구절은 그대로다, 강대국을 바라보지 말자. 세계의 시민들은 각자가 인류의 자유를 위해, 그것은 자신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먼저 자신의 자유를 위해 실천을 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이럴 때 세계 연합이 성립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국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G2니 뭐니 하면서 강대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데, 그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아나키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또 자치적인 집단들의 연합, 이것이 오래 전부터 인디언들이 실천해왔던 일이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아나키 민주주의라는 점.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아나키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이미 실현되었던 오래된 미래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