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준 평전 - 성육신 신앙과 대승 기독교
김경재 지음 / 삼인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장공, 김재준.

 

구구만리 비어 있는 드넓은 하늘. 그것이 김재준이 지닌 호이다. 그의 다른 이름이 바로 이런 '장공(長空).

 

노자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비움은 무언가를 채울 수 있음이고, 무언가가 존재할 수 있음은 바로 이 비어있음 때문인데... 얼마나 비어있느냐에 따라 그릇의 크기가 달라지니.

 

대기만성(大器晩成)!

 

큰 그릇은 그 비어있음의 크기로 늦게 이루어지나니... 늦게 이루어진다고 무시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되는 일.

 

김재준. 그는 늦되어 기독교에 입문했다. 정식 학교 교육을 조금밖에 받지 못한 그가 동향 사람인 송창근의 권유로 서울에 유학을 하고, 그 때 그는 기독교 신앙을 접하고 자신의 인생을 바꾼다. 나이 20이 넘어서야.

 

그때부터 일본 유학, 그리고 미국 유학을 거쳐 신학 공부를 하고 우리나라에 돌아와 기독교에 종사한다.

 

처음부터 목회 활동을 하지는 않고, 또 그는 평양 중심의 보수주의 정통기독교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기에, 교사 생활을 하면서 목회 활동을 한다.

 

이 때 만난 제자 중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강원룡 목사이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강원룡 목사는 김재준과 비슷한 삶을 살게 된다.

 

교사 생활을 접고 그가 한 일은 신학교를 세우는 일. 그 신학교가 지금의 한국신학대학교(일명 한신대)이니... 그는 우리나라 진보 기독교의 대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엄혹한 시기에 한신대는 우리나라의 등불이 되는 인재들을 많이 길러냈으니 말이다. 지금도 특정 교파에 치우치지 않고 진정한 종교인의 삶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대학이라고 생각을 하니, 그의 업적은 한신대 설립과 유지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것만으로 대단하다 할 수 있다.

 

그는 보수주의 정통기독교(이 말이 좀 우습다. 모든 종교는 다 정통 아닌가?)와는 다른 길을 걸어 그들에게 파문도 당하고 했지만, 자신의 길을 멈추지 않는다.

 

옳은 길 앞에서 탄압과 시련은 그 길이 더욱 옳음을 알려주는 징표이기도 하리라. 하여 그는 편협되지 않은 기독교를 전파하기에 힘썼고, 이런 결과로 사회 문제에도 깊게 관여하게 되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종교는 낮은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삶이 결코 낮지 않음을, 하늘의 삶이 그들에게 내려왔음을 알려주고, 그들의 삶이 하늘의 삶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사회의 부조리에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 김재준은 바로 그러한 삶을 살았다.

 

부조리한 사회 현실. 독재로 치닫는 정권의 모습. 이런 사회의 모습을 고치기 위해 그는 앞으로 나섰다.

 

종교인이라고 뒤로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내면세계에 갇히지 않고, 또 신의 품 속으로만 들어가 다른 문제들은 거들떠 보지 않는 모습을 지니지 않고,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서게 된다.

 

암흑같은 시절에 김재준은 한 줄기 빛처럼 우리나라에 존재했고, 그런 존재가 우리 사회가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였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기독교에 매몰되어 다른 종교를 배타적으로 밀어내지 않고, 다른 종교도 포용하는 너른 품을 지니고 있었기에 더욱 빛이 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장공(長空)이다. 큰 비움. 그 비움으로 모든 것을 채워넣을 수 있는 사람.

 

이런 김재준의 삶을 출생부터 죽음까지 평전으로 엮어냈다. 이 평전 하나로 김재준의 삶이나 사상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런 종교인이 있었다는 사실.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함석헌만큼 김재준도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니, 그 정도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요즘 파격적인 행보로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그냥 교황이니까 그러려니 하지 말고 그런 교황의 모습이 파격이 아니라 당연히 지니고 해야할 모습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이미 교황의 그런 모습은 우리나라에 김재준을 통하여 발현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평전의 작가는 김재준의 기독교를 '대승적 기독교'라고 한다.

 

지금 시대. 다시 이러한 '대승적 기독교'를 실천하는 기독교인을, 아니 그러한 종교인들을 필요로 한다. 

 

덧글

 

소소한 오타. 그러나 잘못하면 착각해서 날짜를 놓칠 수 있는 것들

 

116쪽. 1960년 4월 20일 이승만은 대통력직 사임을 발표했다. -> 문맥에서 찾아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책은 날짜 하나하나에도 조심해야 한다. 20일은 26일의 오타.

  130여 명의 젊은 청년들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 4.19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은 사망자가 186명이라고 한다.(강준만, 한국현대사 산책 1960년대 1권) 또 이 때 희생당한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이라고 보면 130여 명이라고 하기보다는 180여 명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150쪽. 그리고 1973년 3월 12일 김재준은 캐나다행 비행기에 오른다. ->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이 1973년은 1974년의 오타다.

 

188쪽. '소화'는 나와 나이가 동갑이고, '히틀러'는 훨씬 아래다. 라고 김재준의 글이 인용되어 있는데, 소화는 일본 천황이었던 히로히토. 그는 1901년생이 맞으니 동갑이고, 히틀러에 대한 얘기인데... 히틀러는 1889년에 태어나 1945년에 죽었으니, 김재준보다는 한참 선배다. 그러니 이 인용문은 나는 '소화'가 동갑이고 '히틀러'보다 한참 아래다. 로 바뀌어야 하는데... 김재준이 착각을 한 것인지, 아니면 인용을 하면서 단어가 빠진 것인지... 김재준이 착각을 해서 그의 글에 이대로 썼다면 편집자나 평전 작가가 주를 통해서 바로잡아야 했을테고... 편집 과정에서 단어가 빠졌다면...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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