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뉴스에서 사랑의 온도탑이 100도를 넘었다고 했다.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기부금을 모았다는 얘기다. 참 훈훈한 얘기다. 이런 훈훈함이 사람들이 겨울을 견디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뉴스를 보면서 씁씁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 모두가, 아니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일들을 자꾸만 개인에게 미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IMF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사고는 있는 자들이 다 쳐놓고, 그 뒷수습은 없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회복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분배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자꾸만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사랑의 온도탑. 좋다. 이거 100도를 늘 넘겼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런 사랑의 온도탑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어려운 사람이 꼭 연말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사람들이 지내기 힘든 것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아니 계절을 가리지 않고 힘들텐데...

 

연말에 이런 행사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런 행사 자체가 필요없게 사회기반 시설을, 사회복지를 만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바우만의 말처럼 내 형제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왜 내 형제를 내게 묻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오는 순간, 그 사회는 윤리적인 사회에서 벗어나 버린다는 그런 말... 그런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하여 '삶이보이는 창'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사랑의 온도탑을 데우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사람들 사이의 온기를 내보내고 있다. 이게 삶창이 지닌 매력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친절'시리즈다.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나치게 친절을 강요하는 사회는 친절하지 않음이 팽배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친절을 강요하는 사회, 그런 친절은 자신에게만 해당이 된다. 남에게는 오히려 막 대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회. 그것은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친절을 가장하고 사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대면하고 서로의 진심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이번 삶창에서 말하는 '친절 금지'일 것이다.

 

사람들의 따스한 이야기.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그럼에도 아직도 힘들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이번 호에도 실려 있다. 그래서 삶창은 나를 깨어있게 한다.

 

적어도 눈 뜨고 있으라고 한다. 그것도 강하게가 아니라 나직하게 나에게 속삭인다. 깨어 있는 삶이 아름답다고.

 

삶창은 이렇게 계속 따스하게 깨어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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